제97장: 소후야를 두들겨 패다!
종정이 진술서의 핏자국을 입으로 불며 두변에게 물었다.
“우리가 지록위마(指鹿爲馬)하고 흑백을 경도했다고 생각하겠지?”
종정이 술잔의 술로 손을 씻고는 손수건으로 닦았다.
허창전의 죄가 무겁긴 했으나 세 가지 반역죄도 날조된 것이 맞으니 두변도 고개를 끄덕였다.
종정이 탄식했다.
“재밌는 것은 이 세 가지 죄목이 거의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는 실제로 토사들과 결탁해 반란을 꾀했고, 안남국 반왕과 내통했다. 비록 광서와 강소성과 절강성의 방어 정보를 왜구들에게 넘겨주지는 않았지만, 왜구들과 빈번하게 거래를 이어오며 식량과 병기 등의 전략 물자들을 팔아오지 않았느냐.”
두변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종정이 대답했다.
“다 장사 때문이지. 너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허창전은 내가 예전부터 눈여겨봐온 인물이다. 본래는 시기가 좀 더 무르익으면 다른 사람들과 엮어서 같이 죽이려 했는데, 조카님이 나보다 먼저 손을 쓰게 되었구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종정이 말했다.
“그저 개 한 마리 죽인 셈이니 별것 아니다. 하지만 어디 이런 자가 허창전 하나뿐이겠느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매국하지 않는 상인이 어디 있으며, 제국을 팔아넘기지 않는 가문이 어디 있겠느냐?”
이때 옆에서 두평아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변!”
“누이, 왜 그래?”
“나 토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굳이 옆에서 이 과정을 전부 지켜본 두평아는 결국 속이 메스꺼워 참을 수가 없었다.
두변이 놀라 말했다.
“어서 가봐.”
두평아가 쏜살같이 달려나갔으나, 문을 나서지도 못한 채 토를 쏟아냈다.
소후야 유몽우는 정신이 들었는지 두변과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감히 너희 엄당이 사람을 막무가내로 죽이고 흑백을 전도하다니! 게다가 내 표묘루에서 살인을 해? 내 폐하께 네놈들의 죄를 아뢸 것이다!”
두변이 저도 모르게 종정을 쳐다봤다.
“나를 보지 말아라.
훈귀 가문이니 저자를 죽여선 안 된다. 순검을 죽이는 것과 후작 세자를 죽이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아무리 그래도 두변이 소후야를 죽이려 하겠는가?
두변도 소후야가 아무리 어리석다 한들 유무환의 아들이며, 그래도 조금은 인연이 있는데 적당하게 훈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종정의 말을 들은 소후야는 득의양양하게 벌떡 일어서더니 두변을 가리켰다.
“이제 무서움을 알겠느냐? 내가 훈귀의 자제라는 걸 알아보겠느냔 말이다.”
소후야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말해주지. 너흰 이미 늦었다. 너희들이 사실을 날조하며 조정의 관리를 죽이는 걸 내 똑똑히 보았다. 내 표묘루에서, 그것도 내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일이 네놈들 생각처럼 쉽게 마무리되진 않을 것이다. 천하가 네놈들 엄당의 수중에서 놀아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돌아가서 광서 순무에 편지를 써 부친과 순무 대인께 네놈들의 죄를 물으라 할 것이다. 이 사건을 크게 만들어 반드시 황제폐하께서 광서 엄당을 손 보시게 만들 것이야.”
이 명문가 자제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정말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두변이 앞으로 다가와 소후야의 뺨을 후려쳤다.
“뭐야? 감히 나를 때려?”
소후야 유몽우가 놀라서 물었다. 방금 저 동창의 천호가 훈귀의 후손인 나는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나를 때려?
두변은 대답도 하지 않고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뺨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소후야 유몽우는 반격하고 싶었지만 이삼과 이사가 즉시 양팔을 잡은 상태였다.
짝! 짝! 짝! 두변은 민첩술을 최대한 활용하며 소후야의 뺨을 미친 듯이 후려쳤다.
정말 백 대도 넘게 뺨을 맞은 소후야 유몽우는 멀끔했던 얼굴이 탱탱 부어올라 돼지머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고집스럽게 얼굴을 굳히고 있던 소후야는 맞을수록 무력함을 느끼고는 결국 처량 맞게 눈물을 터뜨렸다.
“네놈이 막무가내로 설치며 내 누이를 욕보였지만 네 부친의 얼굴을 봐서 거세만은 면해주도록 하지.”
뺨을 다 때린 두변은 손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 내고는 술주전자를 들어 유몽우의 돼지 같은 얼굴에 붓기 시작했다. 벌겋게 부은 얼굴에 술이 닿자 따가워서 유몽우가 뛸 듯이 아파하며 울부짖었다.
이때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오더니 능천각 문이 벌컥 열렸다. 알고 보니 봉오후 유무환이 후부 무사 십여 명을 대동하여 온 것이다.
소후야 유몽우는 아버지를 보고서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크게 소리쳤다.
“아버지, 저를 구해주십시오. 저 엄당 놈들이 제 표묘루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저를 폭행했습니다. 이는 조정의 후작인 아버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이 소환관 놈을 잡아들여 상주서를 올린 후에 이문회를 고발해야 합니다. 그자가 이번 사건을 사주한 자가 틀림없습니다.”
봉오후 유무환이 아들 앞으로 다가와 두변을 한번 쳐다봤다.
“맞아요. 저 두변이라는 환관 놈을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들이세요. 저놈의 두 손을 잘라 버려야겠습니다.” 소후야가 분노하며 다그쳤다.
“아버지, 빨리요. 어서 저놈의 두 손을 잘라버리세요!”
봉오후 유무환이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술병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는 몸에 걸친 후작 금포를 벗고 소매를 걷어붙인 뒤 주먹을 움켜쥐었다.
소후야가 이를 보고 흥분해서는 웃기 시작했다.
“두변, 이 잡종 환관놈아. 우리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한번 설쳐 보아라. 아버지. 저놈을 때려잡아 아들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걱정하지 말아라. 네 한을 풀어주마.”
봉오후 유무환이 말을 마치고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아들인 유몽우에게 다가가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그는 전력을 다해 두 주먹을 빗발치듯 내리쳤고, 두변보다도 훨씬 매섭게 손을 썼다.
주먹뿐 아니라 발길질까지 하는 걸 보니 자신의 친아들을 때려죽일 기세였다.
주먹으로 살을 자르고, 발길질로 뼈를 부러뜨리고, 그 무자비한 공격은 보는 두변마저 고통을 느끼게 했다.
소후야 유몽우는 처음에 놀라다가 정신없이 맞으면서 제 인생에 회의를 느꼈다.
으아악! 멀끔하게 생겼던 소후야는 결국 돼지 잡는 듯한 비명까지 내지르게 되었다.
무려 30분을 맞은 소후야는 정신이 반쯤 나가 버렸다. 더는 비명도 지르지 못해 소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봉오후 유무환의 주먹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더 때리면 내상을 입습니다.
후야, 그만하십시오. 그러다 죽겠습니다.”
두변이 나서서 유무환을 붙잡았다.
“내가 오늘 저놈을 때려죽여야겠다. 나는 저런 무지하고 파렴치한 무뢰한을 낳은 적이 없다. 네 아비를 사지로 내모는 놈들이랑 감히 호형호제하고 있어? 낙문의 아들이랑 의형제를 맺다니! 그 집안은 너를 인질로 이 아비를 위협한 곳이란 말이다. 동창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네 동생 둘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거다.
이런 빌어먹을. 차라리 그때 벽에나 쏘는 게 나았지. 그럼 네놈 같은 미련한 잡종은 안 낳을 수 있었는데.”
유무환은 말을 할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올라 유몽우를 향해 마구 발길질해댔다.
잠시 후 그는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는데 그래도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변이 그에게 술 한잔을 따라주었다.
유무환이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조카, 네게 우스운 꼴을 보였구나. 집안의 일이니, 관용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두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유무환이 말했다.
“3대 학부 대회가 끝난 후 인질로 잡힌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왔고, 아들 두 녀석도 동창에서 구해준 덕에 잘 지내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멍텅구리가 되어 있었겠지. 진남공에게 진 빚이 있어서 그의 군비를 충당하는 데 도움을 보태느라 진득하니 집에 있지 못해 아들이 저 모양으로 지내게 되었네.
3대 학부 대회에서 대판 겨루던 그 다음 날, 유몽우 이 머저리는 낙문 아들놈과 술을 마셨지. 그리고는 술에 취해 인질로 잡혔네. 그런데 풀려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그저 술에 취해 잠을 잤다고 여긴 모양이야. 그러니 아직도 저런 놈이랑 호형호제하고 있는 게지.”
유무환이 자신과 두변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오늘 또 이런 사달이 벌어질지 생각도 못 했네. 조카, 안심하게. 내 돌아가자마자 폐하께 상주서를 올려 내 작위의 계승자를 바꿔 달라고 할 걸세. 그 아들놈은 아직 어리지만 착하고 성실하다네. 우리 유가에 뛰어난 인물이 없어 앞으로도 많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니 조카가 잘 도와주게.”
두변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후야,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저희가 비록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인연이 닿았으니 잘 방비해 놓겠습니다.”
두변이 유무환의 아들을 돌봐주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두변의 앞날은 차치하고라도 이문회의 후계자라는 신분만으로도 충분히 유무환의 후대를 돌봐줄 능력이 되었다.
아무런 권세가 없는 훈귀 가문은 자산 일부와 작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 긴 말 않겠네. 술이나 들게.”
유무환이 두변과 술을 비웠다.
“이제 볼일들 보게. 나는 이 불효자를 데리고 집으로 가겠네.”
“후야, 조심히 가십시오.”
두변이 얼른 일어나 예를 올렸다.
유무환이 손짓을 하니 무사 둘이 소후야 유몽우를 들고 나갔다.
옆에 있던 종정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유 후야는 아직도 우리 같은 엄당은 여전히 무시하는군. 인재라고 생각하는 자네와는 웃으며 얘기하지만, 우리한테는 아는 척도 하지 않는군.”
실제로 유무환은 두변의 금기서화에 크게 감명받았기에 오직 두변에게만 존중을 표했다.
종정은 동창의 천호이고 오주부에서 권세가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유무환은 그를 딱히 안중에 두지 않았고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두변이 웃으며 말했다.
“종 숙부, 괜한 말씀 마세요.”
그리고 두변은 평아의 시어머니인 오 부인을 쳐다봤다.
30분 만에 모든 일이 일어났지만 오 부인과 이노야 오정융에게는 1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은 너무나도 의외였고, 너무나 갑작스러웠으며, 충분히 놀라운 광경들이었다.
오씨 가문은 최소 몇십만 냥의 가산을 지닌 대주재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허창전이나 소후야 유몽우 등은 손가락 하나로 자신의 가문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오히려 두변은 그저 자신의 가문에 짐만 되는 가난한 친척쯤이었고, 오씨 가문에서 일하는 노복만큼도 못한 존재였다.
그런데 짐이라고 여겼던 두변이 허창전을 산 채로 죽이고, 소후야 유몽우를 얼굴을 돼지머리로 만들었는데, 봉오후 유무환은 오히려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게다가 허창전을 거침없이 죽여 버리고 심지어 그의 가산을 몰수하기까지 해?
허씨 가문은 오주에서 백 년 넘게 토호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반역죄 세 가지를 뒤집어쓰고 이제 멸족하게 되었다.
이렇게 중대한 일을 손바닥 뒤집듯 너무도 쉽게 처리하다니!
이제 오 부인의 눈에 비친 두변은 더할 나위 없이 신비하고도 강력한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 부인이 잘못 파악한 것이기도 했다.
허창전의 세력이 크긴 했으나 개인적으로 행해온 악행이 너무 많았고, 정식으로 임명된 관리도 아니었으며, 뒷배경이 불법적인 것과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인물들은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동창 선에서 처리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대상이 현령이나 주부의 관리로 바뀌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허창전만큼 세력이 크지는 않지만, 동창에서 함부로 손댈 수 없으며 이들을 죽일 권한도 당연히 없었다. 7품 현령일지라도 그들의 생사는 황제가 결정하듯이, 정인관(正印官: 지부, 지현 등 각 지방의 관리들이 사용하는 정사각형 인장. 임시 관직이나 정규체계에 없는 관리들은 사용할 수 없는 인장이다. 즉 공식 관리를 비유)은 결코 녹록한 관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 부인은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을 모르기에 두변이 엄청난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두변과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