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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109화 (109/648)

제109장: 압도적인 차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낭단의 붉은색 말만 치열한 승부욕으로 가득 차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두변이 타고 있던 회색 말은 제자리에서 앞발을 치켜들면서 울부짖더니, 앞발을 내려놓은 뒤로는 뛰는 듯 마는 듯, 느긋한 산책에 가까운 뜀박질을 보였다. 정말 극단적으로 나태한 태도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두변은 어제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두 팔로 말의 목을 부둥켜안고 몸을 바짝 낮췄다.

그러자 회색 말은 더욱 짜증이 났는지, 제자리에서 맴돌면서 답답하게 목을 부둥켜안은 두변을 말 등에서 떨어트리려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 장면을 본 저홍면 노장군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면서,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이문회는 저홍면의 오랜 벗이자 맹우였다. 저홍면은 오롯이 이문회를 믿고 두변의 선택을 지지해준 것이고, 두변이 하룻밤이면 고급 정신술을 익힐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도 머리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를 한 번 믿어보기로 선택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 지경이니, 저홍면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두변이 보여준 기마술은 어제만큼 형편없었고, 말 한 번 제대로 타보지 못한 기마 왕초보의 모습이었다.

혈관음의 안색도 아예 핏기가 없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어제 알 수 없는 감정적인 충동 때문에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면서까지 완전히 두변을 믿기로 했었는데, 그렇게까지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하면서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설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저홍면이 말했다.

“그만하면 됐다. 두변, 말에서 내려오너라. 관음, 너는 즉시 혈교방에 사람을 보내서 상황을 설명하고, 낭군 부대에 합류해서 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자. 여천천이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군부대까지 찾아오면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대신 네가 지금껏 쌓아 온 혈교방의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구나.”

혈관음의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저홍면이 두변을 향해 말했다.

“두변, 여천천과의 경주 시합은 잊고, 어서 염주부를 떠나거라. 여천천은 그렇게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니, 도망간 네 뒤꽁무니를 쫓아가진 않을 게다.”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두변이 말했다.

낭단은 벌써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갔고, 몇백 미터의 차이를 줄이고 두변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경주 시합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경우엔 시합을 중단하곤 한다. 그만큼 승패엔 아무런 이변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두변은 말 등 위에서 빠르게 정신 분열을 하고는 <수어록 기마편>의 정신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순식간에 말이 되었다.

뒤이어 두변은 곧바로 자신이 올라탄 회색 말의 송과선을 감지했고, 말에게 정신 명령을 전달했다.

‘격앙! 장렬! 용맹!’

의기소침해서 눈동자에 빛도 없어 보이던 회색 말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회색 말은 완전히 다른 말이 된 것처럼 힘차게 콧김을 내뿜는데, 최고급 경주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가득했다.

이히힝!

회색 말이 머리를 털면서 울부짖었다.

‘출발!’

두변이 정신 명령을 전달하자마자, 회색 말은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회색 말은 평소의 최고 속력보다 배로 빠른 속도로 달렸다.

두변은 말에서 떨어질까 봐 여전히 조금 전과 같은 자세로 말의 목덜미까지 껴안고 말 등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말을 조종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몸은 곧 말의 몸과 완벽히 일체화된다는 걸 알기에, 절대로 말 등에서 떨어질 리가 없다는 생각에 천천히 말의 목에서 팔을 풀었다.

그러자 회색 말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1분이 채 되지도 않은 시간에 두변과 그의 말은 첫 번째 울타리 장애물 구간에 도착했다. 높낮이가 다른 장애물 30여 개로 구성된, 총 400미터가 넘는 구간이었다.

낭단은 실력이 몹시 뛰어난 기수이긴 하나, 이렇게 빽빽이 놓인 장애물 앞에선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을 다루는 것이지, 말을 통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변은 낭단과 달랐다. 정신 세계에서 그는 말과 일심동체였고, 회색 말을 조종하는 것은 흡사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정확하고 즉각적이었다.

두변은 장애물을 넘으면서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슉, 슉, 슉, 슉.

회색 말은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바람처럼 빠르게 장애물을 넘었다.

300미터 넘는 차이를 벌리며 선두를 달리던 낭단은 순식간에 두변에게 추월당했다.

낭단은 두변이 이렇게나 빨리 자신을 쫓아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만약 그가 두변이 얼마나 쉽고 가볍게 장애물 구간을 통과했는지 보았다면, 더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장애물 구간을 지난 뒤, 잠시 나오는 평탄한 구간에서는 회색 말이 다시 한번 뒤처졌다. 낭단의 붉은색 말보다 체격 조건이 떨어지는 회색 말은 다시 몇십 미터가 뒤처지게 되었다.

곧이어 승부욕이 강한 낭단의 붉은색 말은 더 많은 격차를 벌리기 위해 거침없이 다음 구간으로 진입했다.

두 번째 관문은 약 300미터 길이에 각종 도랑과 깊은 구덩이로 가득 찬 곳이었다. 기수는 말을 아주 섬세하게 다루면서 이 구간을 지나가야지, 자칫하면 말이 도랑에서 미끄러지거나, 구덩이에 빠져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다. 말이 넘어지는 정도의 사고는 아주 경미한 사고이지만, 심한 경우엔 말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낭단은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어느새 낭단의 뒤를 바짝 쫓아온 두변의 회색 말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지금, 이거 말의 목숨을 걸겠다는 거야?

여긴 사방이 다 도랑과 깊은 구덩이라고! 자칫하면 말이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으로 다리를 못 쓸 수도 있게 되는 건데, 정말 말을 아낄 줄 모르는 놈이로군!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두변의 뒤통수를 향해 호통을 치려던 그때, 낭단은 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두변의 회색 말은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몹시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도랑을 건너고, 완벽하게 구덩이 위를 뛰어넘으면서 이 위험한 구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뭐야 저거. 어, 어떻게 저렇게 말을 조종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는 지금 멍하니 서서 놀라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낭단이 잠시 한눈판 탓에 붉은색 말은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서 깊은 골짜기 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낭단은 모든 집중력을 쏟으면서 붉은색 말의 말고삐를 쥐었다. 그는 이 위험천만한 구간만 지나면 다시 평지가 나올 테니, 그때 다시 두변을 앞지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낭단이 다시 고개를 들고 두변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두변은 벌써 낭단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낭단이 아직도 두 번째 관문에서 고전하고 있는 동안, 두변은 벌써 세 번째 관문에 도착했던 것이다.

지금의 두변은 거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는 중이었다.

세 번째 관문은 해발 100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동산을 지나는 것이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심하진 않지만, 아주 울창한 나무숲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 하는 구간이었다. 일반적인 경우엔 산을 오르거나 내릴 때 속도를 줄여야만 말이 나무에 부딪히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 질주했다.

회색 말은 아주 완벽하게 나무들을 피해 갔고, 나무에 부딪히기는커녕 말의 털끝 하나 나무에 스치지 않았다.

두변은 그렇게 막힘없이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이게 바로 정신 기마술, <수어록 기마편>의 위엄이었다. 정신술을 통한 통제야말로 인마합일(人馬合一)을 가능하게 했고, 제 몸 다루듯 말을 완벽하게 다루는 건 이미 기마술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곧이어 20미터 폭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급류가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다.

말들은 어느 계곡이든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된다. 말이 물을 싫어하는 건 천성이고, 깊이를 알 수 없으니 계곡 앞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건 어느 말이나 같았다.

아주 영리하고 기수와 합이 굉장히 잘 맞는 말이라도 계곡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지게 되고, 돌다리 두드리듯 한발 한발 신중하게 내딛는다. 그러다 물이 말 다리의 절반까지라도 닿게 되면, 아무리 영리한 말이어도 뒷걸음질 치면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변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인마합일이니, 두변은 자신의 몸을 다루듯 말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말이 물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정신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변은 사람인지라, 어디가 깊고, 어디가 얕은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덕에 두변은 말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곡을 건널 수 있었다.

계곡을 지나자, 마지막 관문인 자갈밭이 펼쳐졌다.

일반적으로 강가의 자갈은 다른 말들에게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구간일 것이다. 방금 막 물에 닿은 말굽 때문에 미끄러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급류를 지나자마자 가장 안전한 통로를 계산했고, 곧이어 회색 말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날 듯이 자갈밭을 통과했다.

드디어 앞쪽이 깃발이 꽂혀있는 전환점이었다.

그는 자신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뽑아 들고 말머리를 돌린 뒤에 종점을 향해 질주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두변은 한 번도 속도를 늦춘 적이 없었고, 위험한 다섯 관문을 막힘없이 통과했다.

심지어 두변은 산속에서 낭단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는 벌써 깃발을 쥐고 출발점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낭단은 아직도 세 번째 관문에서 애를 쓰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두변은 눈 깜빡할 사이에 회색 말과 함께 붉은 깃발을 쥐고 빠르게 종점을 향해 달렸다.

이때 저홍면은 혈관음에게 이번 시합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라며 위로를 하고 있었다.

말굽 소리를 들은 저홍면은 깜짝 놀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낭단이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빠를 리가 없을 텐데?’

저홍면과 혈관음은 고개를 들고 앞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말을 타고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두변이었고, 그는 손에 쥔 붉은 깃발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기가 뭘 본 건지 믿을 수 없어서, 본능적으로 조금 전에 뒤집어 놨던 모래시계로 눈길을 돌렸다.

출발 이후로 반 각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즉 7분 조금 넘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거, 이럴 리가 있나?

이 경주로를 가장 빨리 완주한 기록은 15분이었고, 몇십 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던 기록이었다.

이 영지에서 숱하게 많은 부대가 주둔했던 터라, 무수히 많은 실력이 출중한 기마병들이 경주 시합을 벌였었다.

그런데 두변이 그 기록을 반 토막 내버렸다? 심지어 출발할 때 지체한 시간까지 포함해서?

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정말 말도 안 되잖아!

이건, 보통 사람이 쓸 수 있는 기마술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반 각 만에 4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달리고, 그 사이에 관문이 다섯 개나 있었는데, 설마 관문을 통과할 때 속도를 한 번도 줄이지 않았던 건가? 산을 오르내릴 때도, 장애물을 넘을 때도, 계곡과 자갈밭을 넘을 때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고? 이게 말이 돼?

만약 두변이 손에 쥐고 있는 붉은 깃발이 아니었다면, 저홍면은 두변이 잔머리를 굴려서 완주하지 않고 중간에 되돌아온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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