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10화 (110/648)

제110장: 끊임없이 돌파하라

저홍면이 이토록 놀란 또 다른 이유는 정신력을 이용한 기마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대녕 제국에 존재하긴 하지만, 바다에서 바늘 찾기 수준으로 드물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녕 제국에서 정신력 각성을 한 사람들이 결코 없는 건 아니지만, 정신력 각성과 동시에 영종오 대종사의 <수어록 기마편>을 학습한 사람은 영종오 대종사의 몇몇 제자들이 다였다.

두변이 인마합일이라는 필살기를 쓰면서 몇십 년 동안 깨지지 않던 기록을 단숨에 깨트려버렸으니, 저홍면이 충분히 놀랄 만한 상황이었다.

충격이 가시지 않던 저홍면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두변, 어떻게 해낸 것이냐?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두변이 대답했다.

“정신술로 말을 조종해서, 인마합일에 도달했습니다.”

저홍면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감탄했다.

“영종오 대종사께서는 정말로 박학다식하신 천인이시로구나. 말을 이 정도 수준으로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을 알고 계셨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약 10분이 지나자, 낭단이 붉은색 말을 타고 종점에 도착했다. 낭단의 눈빛에는 이미 두변을 향한 무한한 존경과 탄복이 어려있었다.

사실 그가 두변을 향한 감정은 존경과 탄복보다, 놀라움과 의아함이 더욱 컸다.

낭단은 사람이 그 정도 수준으로 말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저홍면이 물었다.

“낭단, 너는 여천천과 겨뤄본 적이 있지 않으냐. 네가 보기에는 여천천과 두변 중에 누구의 기마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

낭단이 대답했다.

“두변 선생의 기마술은 신출귀몰한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제 눈으로 봤음에도 믿기지 않습니다. 두변 선생이 여천천과 경주 시합을 벌이게 된다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두변 선생이 필승하실 겁니다.”

저홍면이 말했다.

“가자.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설치는 꼬맹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러 가야지.”

두변, 혈관음, 그리고 저홍면 세 사람은 곧장 천룡 마장으로 향했다.

‘여천천, 전갈의 독을 품은 고약한 년. 딱 기다려라. 내가 네년이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한혈보마를 빼앗고,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가르쳐주마.’

천룡 마장 안.

토사 공주 여천천은 백 명이 넘는 가장과 병사들을 데리고 두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여천천은 악어가죽으로 만든 기마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춰서 입는 기마복 특성 때문에 여천천의 몸매가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천천의 터질 듯한 가슴이 더욱더 부각되었으나, 코피가 날 정도로 화끈한 몸매에 비해 여천천의 얼굴은 천사와도 같이 아름다웠다.

여천천의 실제 나이는 열아홉이지만, 그녀의 몸매는 스물다섯에 가까웠고 얼굴은 열다섯 같았다.

사람들은 악독하기로 소문난 여천천이 도대체 뭘 먹고 자랐길래 저렇게 발육이 좋은 건지 궁금해했다.

여천천이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간덩이가 작아서 못 올 줄 알았는데, 용케 왔네.

혈관음, 이왕 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어디 도망갈 생각 마라. 내가 두변을 없애버린 뒤에 같이 집으로 가야지. 넌 내일 바로 우리 오라버니와 합방을 하게 될 테니까.”

버르장머리 없는 여천천은 아예 노골적으로 혈관음을 희롱했다.

“어차피 첩이니까 괜히 시끌벅적하게 하진 말자고. 아무튼, 우리 여씨 가문은 진남공부의 여인을 한 명은 데려오려고 했거든. 혈관음, 그냥 네가 운이 없는 걸 탓해야지. 하필 네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스스로를 내던진 거니까.”

여천천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을 이었다.

혈관음은 저도 모르게 두변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랑스러웠다. 그 자랑스러움의 원천은 자기 자신이 아닌 두변이었다.

혈관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시합의 승리자가 두변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마음이 편안할 뿐이었다.

“너희가 내기 서약을 안 지킬까봐, 내가 친히 집에서 백 명 넘는 병사들을 데려왔다. 아, 그리고 내 사부도 같이 오셨고. 그러니까 저홍면 노장군을 내세우면서 혈관음을 데려갈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저 노장군, 대단하신 분인 건 알고 있지만, 노장군의 무공이 제 사부와 견줄만한 수준은 아니시잖아요.”

사람들의 눈앞에 검마 이도진은 없었지만, 이도진의 숨 막히는 기운이 몇백 미터 범위까지 뻗어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숨 쉬는 게 힘들다고 느낄 정도였다.

두변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하러 내기 서약을 깰 생각을 하겠습니까. 여천천 소저, 나중에 서약을 깨는 사람이 소저이진 않겠지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네. 내 말은 금구옥언(金口玉言)이니, 너희 같은 놈들을 위해 내 말을 번복할 생각 없다.”

여천천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 꼬맹이가 정말로 말을 안 가려서 하네. 금구옥언이 황제 폐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인데, 어째서 토사 공주 나부랭이가 그런 단어를 쓰는 거냐? 폐하 앞에서 저 단어를 썼다간 반역죄로 처벌을 당해야 하는데! 하지만 대녕 제국이 몰락하고 있는 와중에, 누가 저 꼬맹이의 무례함을 지적할 수 있고, 책문할 수 있겠나.’

두변이 말했다.

“그럼 다행입니다. 진 사람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내기에 건 것을 내놔야 합니다. 그러니 소저의 한혈보마와 제 천리마를 미리 준비해두시지요. 이따 제가 둘 다 데려갈 테니까요. 한 마리는 타고 가고, 한 마리는 끌고 갈 거거든요.”

두변은 어딘가에 있을 이도진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도진 종사! 오늘 경주 시합의 증인이 되어주실 수 있습니까?”

검마 이도진은 두변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지만, 검집 끝으로 땅을 살짝 치면서 응답을 대신했다.

쨍!

발아래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지고, 굉음 때문에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검집으로 살짝 땅을 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파급력을 가지다니! 검마 이도진의 무공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여천천이 말했다.

“두변, 나는 네놈이 어쩜 그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내게 경주 시합을 제안한 건지 궁금하거든? 설마 내가 기마 천재인 걸 모르는 건가? 매년 서남 토사 연맹에서 여는 기마술 대전에서 내가 늘 일등을 해왔는데? 기마술로 날고 긴다는 사람들도 모두 내 발아래서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지. 그런데 환관 놈이 감히 내게 대결 신청을 해? 네놈은 어딜 가나 마차만 탔지, 한 번도 말을 타고 이동한 적도 없지 않아?”

토사 공주 여천천은 제 멋대로이긴 해도 두변에 관한 조사는 충분히 한 모양이었다.

두변이 말했다.

“맞습니다. 기마술 수업을 할 때마다 땡땡이치기 바빴죠.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말고삐 하나 제대로 쥐지 못했는데, 간밤에 훈련을 좀 해보니까 느낌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여천천 소저에게 도전장을 내밀러 온 겁니다.”

아무도 여천천 앞에서 이런 건방진 말투를 쓰지 않았다. 두변의 말투는 건방진 수준이 아니라 경망스럽기까지 했다.

여천천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말부터 골라. 네놈과 말 한마디 섞는 것조차 역겨우니까.”

여천천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그녀의 뒤에서 가장 한 명이 말을 한 필 끌고 왔다.

두변은 그 말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두변은 살면서 이토록 훌륭한 준마를 본 적이 없었다. 이 말은 일반 준마보다 덩치가 한 둘레는 더 컸고, 몸에는 상한 털 한 가닥 없이 고급스러운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말의 눈동자는 사람의 눈동자처럼 생기가 가득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게다가 육안으로 보이는 말의 근육이 아주 탄탄하고 모양이 예뻤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말의 머리부터 등, 그리고 꼬리까지 아주 완벽한 유선형이었다.

두변이 살던 현대 지구에서는 ‘전투력이 강력한 전투기는 반드시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전투기의 기동성이 뛰어나려면 속도가 빨라야 하고, 속도를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공기역학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두변의 앞에 있는 말은 말갈기조차도 공기역학을 고려한 것처럼 완벽해 보였다.

이 말이 바로 여천천이 목숨처럼 아끼는 한혈보마, 운니였다. 온몸이 윤기 나는 비단과도 같은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고, 은은하게 햇살에 비치는 광택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운니는 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말 중의 왕이라고 칭할 만했다.

두변의 천리마가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라면, 여천천의 한혈보마는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일 것이다.

운니의 눈만 봐도 이미 몇 살짜리 아이의 지능에 맞먹을 정도였다. 시종의 손에 끌려서 이곳으로 올 때도 고개를 당당하게 치켜들고 걸음을 옮겼고, 말굽이 올라가고 바닥에 닿을 때까지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아주 우아하고도 경쾌해서, 마치 무대에 선 무용수의 몸짓을 보는 듯했다.

‘이놈 진짜 물건이구나. 진정한 보마(寶馬)다!’

모든 사람의 앞을 지날 때까지, 운니는 시종일관 머리를 치켜들고 교만해 보이는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여천천의 옆에 멈춰 선 운니는 장난스럽고 친근한 눈빛으로 여천천을 바라보면서 여천천이 자신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고개를 숙였다.

“아이, 착하다.”

여천천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서 한혈보마 운니의 목덜미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순간,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내들의 몸이 나른해지더니, 그들이 모두 속으로 외쳤다.

‘저 말이 나였으면!’

사갈처럼 악독한 여인이긴 하지만, 여천천의 미모와 몸매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내들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끝이 제 몸에 스치기만 해도 좋아서 기절하거나 영혼이 달아날 것이다.

“여봐라. 말 열 필을 끌고 와라.”

여천천이 명령했다.

곧 가장 열 명이 말 열 필을 끌고 나타났다.

“괜히 내가 네놈을 괴롭힌다고 헛소문을 퍼트릴까 봐 준비했다. 이중 아무 말이나 골라서 타.”

여천천이 말했다.

여천천은 이번 경주에서 두변이 탈 말에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건 두변을 납작하게 눌러주는 보여주기식 시합일 뿐이니, 굳이 자기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었다.

말을 탈 줄도 모르는 두변은 차치하고, 광서 엄당에서 가장 뛰어난 기수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압승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두변은 자신이 탈 말을 아주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여천천의 한혈보마가 보통의 말보다 월등히 뛰어난 준마인 만큼,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지구력과 순발력, 그리고 총명함이 필요했다.

두변은 여천천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서 전력을 다해 시합에 임해야 했다. 여천천과의 시합은 아침에 낭단과 벌였던 시합과는 차원이 다를 게 분명했다.

여천천을 이기고자 한다면, 평범한 준마로는 부족했다. 두변은 반드시 이들 말 중에 가장 신체조건이 우수하고 영리한 준마를 선택해야 했다.

두변은 자신의 앞에 세워진 말들을 한 번 슥 훑어보았다. <수어록 기마편>을 학습한 덕에, 두변은 말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는 혜안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천천이 준비해준 말들은 모두 너무 평범했다. 두변에게 아무리 신기에 가까운 정신 기마술이 있다고 해도, 말의 체력과 속도가 부족하면 단혼 구간을 통과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혼 구간의 첫 번째 관문은 길이 몹시 험준한 해발 900미터의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거리가 총 5~6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리고 두 번째 관문은 흔들다리, 세 번째 관문은 아주 깊고 좁은 협곡, 네 번째 관문은 꼬불꼬불하고 위험천만한 절벽로였다.

단혼 구간은 총 1만 5천킬로미터가 넘고, 지형 조건이 매우 열악했다. 그래서 이 구간을 달리게 되는 경주마의 9할이 완주하지 못할 정도였다. 두변이 정말 신들린 기마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승은커녕, 말의 상태에 따라 완주도 다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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