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11화 (111/648)

제111장: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

여씨 가문이 준비한 말들은 상태가 다 달라서, 신체조건이 좋은 말도, 안 좋은 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구간을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말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두변이 말했다.

“제 천리마는 어디 있습니까? 천리마를 타고 경주를 하고 싶은데요.”

“그건 당연히 안 되지. 내기에 건 거잖아.”

여천천이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말 중 한 마리를 골라서 경주를 해야 한다면, 두변은 이번 시합에서 질게 눈에 훤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산 언덕에서 체구가 크지만 야윈 말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말의 몸 곳곳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눈빛은 심하게 발정 난 짐승의 눈빛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말은 다짜고짜 여천천의 곁에 있던 한혈보마 운니를 향해 내달렸다.

이 야생마는 생김새가 몹시 추했다. 천룡 마장 사람들이 약을 써서 야생마를 포획한 후에 보물 취급을 하면서 길들이려 했지만, 야생마는 끝내 사람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다치자 어쩔 수 없이 감금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야생마가 여천천의 한혈보마를 보자마자, 꼭 열렬히 사랑하는 몽중정인이라도 본 것처럼 목줄을 끊고 나무 울타리를 걷어차 버리고 튀어나온 것이다.

야생마의 몸 곳곳에 다친 흔적이 있고, 생긴 것도 못생겼지만, 힘만큼은 장사였고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평범한 말들보다 몸집이 크고, 말굽도 한 둘레는 훨씬 더 커 보였다. 조금 야윈 감은 있지만, 워낙 용맹스럽고 강인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서 야생마 중의 왕이라 할 만도 했다.

“저놈 잡아! 저 잡종놈이 내 한혈보마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간, 내가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거니까!”

여천천이 다급하게 외치자, 조마사 열댓 명이 달려오는 야생마를 막으려고 우르르 모여들었다. 조마사들은 이 야생마를 생포할 생각이었다.

근처에 다다른 야생마는 갑자기 난폭해지더니 제 앞을 가로막는 조마사들을 물고 그들을 걷어찼다. 짧은 찰나 동안 벌써 조마사 셋이 부상을 당했고, 그중 한 명은 다리가 부러지기까지 했다.

성질이 괴팍한 것도 모자라서 힘까지 무진장 센 놈이었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암컷 말 대여섯 마리가 강렬한 수컷 향기에 취해서는 야생마 근처로 다가와서 애정표현을 했다.

하지만 야생마는 자기를 에워싼 암컷 말들을 가차 없이 걷어찼다.

그러자 이 광경을 본 다른 수컷 말들이 눈을 부라리면서 야생마에게 달려들었고, 총 여섯 마리가 야생마 한 마리를 상대하게 되었다.

결과는…… 몹시 참혹했다.

1대 6의 싸움에서 야생마는 깔끔한 승리를 거뒀다. 수컷 말 여섯 마리는 살갗이 터지고 근육이 파열되어 절뚝거리면서 도망치기 바빴다.

여씨 가문의 가장들은 야생마가 잠시 숨을 돌리는 찰나를 틈타 재빨리 야생마를 밧줄로 묶어서 제압했다. 야생마는 성난 콧김을 내뿜으면서 흙을 뒤집어놓을 정도로 악을 쓰며 포효했다.

정말로 성질이 거칠고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버릇없는 야생마 그 자체였다.

두변은 이 난폭하고 강한 야생마를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소리쳤다.

“이놈으로 하겠습니다.”

여천천은 깜짝 놀랐다.

이 야생마는 그야말로 사나운 짐승이어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조마사라도 이 말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한데, 하물며 말에 대해 무지한 두변이 이 말을 타겠다고?

아마 말 등 위에 올라가기도 전에 야생마의 발길질 두어 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단혼 구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데, 이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타고 경주를 하겠다고?

매 순간이 죽음의 고비일 텐데,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이 맞구나!

두변이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 꼴이니, 여천천은 당연히 기뻤고 그를 막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여천천과 달리, 혈관음과 저홍면은 두변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두변,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아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홍면의 말에 두변이 대답했다.

사실 두변에게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말 열 마리 중 단 한 마리도 단혼 구간을 완주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야생마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천천이 말했다.

“두변이 올라탈 수 있도록 야생마를 꽉 붙잡아라.”

그러자 여씨 가문의 건장한 가장들이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서 이 흉포한 야생마를 억지로 출발지점까지 끌고 갔다.

야생마의 힘이 장사인지라, 장정 여덟 명이 땀을 뻘뻘 흘려야 했고, 간신히 야생마에 말고삐를 씌우고, 안장을 올리고, 말등자까지 달았다. 그리고 두변이 말 등에 기어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왔다.

두변이 말 등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야생마가 갑자기 미친 듯이 굉장한 힘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여천천의 명령 한마디면 장정들이 동시에 손을 놓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야생마는 두변을 말 등에서 그대로 떨어뜨린 후 두개골과 갈비뼈가 다 으스러질 정도로 짓밟아 죽여버릴 게 분명했다.

여천천은 그 장면이 너무도 보고팠다.

두변이 자처한 죽음이지 않은가!

단혼 구간은 둥근 원 구조로, 출발점이 곧 종점이기도 한 경주로였다.

저홍면이 모래시계를 들고,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외쳤다.

“준비!” 그녀는 모래시계를 재빨리 뒤집는 동시에, 빠르게 두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여씨 가문의 가장들이 손을 놓는 순간, 만에 하나 두변이 말 등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그를 구해낼 심산이었다.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여천천의 한혈보마가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초속 23미터에 달하는 한혈보마의 속도는 현대 지구의 가장 빠른 순종마보다 무려 2할 이상은 더 빠른 속도였다.

정말,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의 말 아닌가!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가장 여덟 명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놓았다.

자유를 되찾은 야생마는 곧바로 콧김을 뿜으면서 앞발을 높게 치켜들고 두변을 등에서 떨구려고 목을 흔들었다. 야생마는 두변이 등에서 굴러떨어지는 즉시 밟아 죽일 것이다.

저홍면과 혈관음이 말에서 떨어지는 두변을 구하고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야생마가 갑자기 돌변했다.

난폭하기 짝이 없던 짐승이 갑자기 차분하고 조용해졌다. 두변이 정신 명령으로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본성이 야생적이고 난폭하다고 해도, 정신력의 통제는 거역할 수 없었다.

‘저기 저 앞에서 달리는 암컷 말 보이지? 저건 한혈보마거든? 당장 저 말을 쫓아가!’

두변의 정신 명령이 떨어지자, 야생마가 미친 듯이 돌진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여천천의 한혈보마를 쫓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일이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정이 여덟이나 달라붙어서 진땀을 빼며 끌고 오는 걸 목격한 사람들은 경악했다.

야생마를 포획한 지 한 달이 넘었고, 열댓 명의 조마사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길들여보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두변이 사람의 손을 평생 타지 않을 것 같던 야생마를 어떻게 순식간에 길들였을까?

두변이 도대체 무슨 요수(妖手)를 부린 걸까?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두변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서, 더 빨리! 당장 저 앞선 말을 없애버려!’

두변은 야생마의 왕을 몰아 여천천의 뒤꽁무니를 미친 듯이 추격했다.

두변이 타고 있던 야생마는 정말로 광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앞선 한혈보마를 쫓고 있었다.

야생마의 신체조건이 뛰어났고 속도도 굉장한 것이 맞지만, 한혈보마에 비해선 조금 뒤떨어진 건 사실이다.

단혼 구간이 시작되자마자 700미터 넘는 평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한혈보마는 초속 23미터에 달하는 속도로 빠르게 이 구간을 지나갔다.

하지만 두변의 야생마는 아무리 미친 듯이 달려도 초속 17미터가 다였다.

그래서 그런지, 야생마와 한혈보마 사이의 간격은 좁혀지긴커녕, 더욱 멀어져만 갔다.

여천천도 야생마를 타고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두변이 놀라웠다. 그녀는 두변이 야생마를 길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쫓아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여천천은 빠르게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운니의 말 등 위로 몸을 바짝 붙였다. 엉덩이가 살짝 하늘을 향해 치솟으면서 몸 전체가 숨 막힐 정도로 고혹적인 곡선을 이루었다. 게다가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기마복이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 남자들이 코피를 뿜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녀의 뒤를 쫓는 두변은 이런 황홀경을 구경할 겨를이 없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야생마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인마일체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면서 음흉하게 침을 꿀꺽 삼켰을 테지만.

한혈보마는 700미터 넘는 평지를 30초도 안 되는 속도로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단혼 구간의 첫 번째 관문인 해발 900미터의 산 속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이 산은 낭군 병영에서 봤었던 해발 100미터의 동산이 아니었다. 해발 900미터 높이에 달하는 데다, 제대로 된 산길도 없고, 산림이 우거졌고 길이 몹시 가파르고 복잡했다. 어느 말이어도 이 산을 마주하게 된다면 공포심이 앞설 것이다.

높이가 900미터라고 얕봐선 안 되는 게, 산꼭대기까지의 거리가 총 3킬로미터에 달했다. 평범한 준마의 체력으로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몇 번 이곳에서 시합을 했던 여천천은 아주 익숙한 듯이, 산 정상까지 거리가 짧고 쉬운 길을 골라서 달렸다.

오르막길이다 보니 당연히 속도를 줄여야 했지만, 여천천은 속도를 많이 줄이지 않았다. 한혈보마는 빽빽한 나무들을 민첩하게 피하며 달렸고, 가파른 지형도 가볍게 훌쩍 뛰어넘으면서 산을 올랐다.

여천천이 탄 한혈보마는 가히 말 중의 용이고, 신기에 가까운 보마인 만큼, 산을 오르는 속도마저도 평범한 말이 평지에서 질주하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이게 바로 한혈보마인 것이다. 이게 바로 여천천이 기마술에서 백승무패를 거둘 수 있는 이유였다.

여천천과 운니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동반자이자,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거의 통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천천의 뒤를 맹렬하게 쫓아오던 두변은 야생마와 인마합일을 이룬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산속으로 들어온 야생마는 오히려 이곳이 그의 홈구장인 셈이었다.

야생마는 사람의 손에 포획당하기 전까지 자유자재로 세상을 누비면서 살았고, 자유를 만끽하며 매일같이 달리고 싶은 만큼 달렸다.

이 야생마는 드넓은 초원도 좋았지만, 험준한 고산을 정복하는 것을 더 즐겼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다양한 고산을 정복하는 데 썼고, 산을 오르면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짐승들과도 힘을 겨루었다. 야생마의 몸에 상처가 많은 이유는 사람이 때려서가 아니라, 산속 짐승들과 싸우면서 생긴 흉터, 나뭇가지에 찢긴 상처, 아니면 넘어져서 생긴 타박상이었다.

어쨌든 이 흉터는 야생의 훈장인 셈이었다.

한혈보마보다 속도가 더딘 것도 이런 상처들 때문이기도 하고, 혈통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야생마는 스스로 숱하게 많은 훈련을 했고, 높은 산을 오르면서 위험천만한 짐승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해왔기에, 다른 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체력이 강인했다.

야생마가 예전에 혼자서 산을 오를 땐 속도가 빨라서 나뭇가지에 몸이 찔리거나, 진흙을 피하지 못해서 구덩이에 빠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두변의 정신력이 통제한 덕분에 야생마는 아주 완벽하게 나무와 구덩이를 피할 수 있었다.

야생마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산길을 뚫었다.

속도를 늦출 필요가 없었다. 구덩이를 일부러 피할 필요도 없었다.

야생마는 그저 돌진만 할 뿐이었다.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돌파,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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