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장: 여천천을 단숨에 꺾어 버리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혈보마가 지그재그 코스로 비스듬히 산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 야생마는 아예 직선으로 산길을 뚫고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고 해도, 뒷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껑충 뛰어넘으면 그만이었다.
다른 말들이 이런 식으로 질주했다간 3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고, 근육이 파열되어 다리를 더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산을 즐기던 이 야생마는 가파른 구간을 만날 때마다 더욱 힘차게 뛰어올랐다.
4, 5분이 지나지도 않아서 야생마는 벌써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야생마의 경로는 1.8킬로미터에 불과했다. 다른 말들이 지그재그로 산을 오른다고 쳤을 때의 총 거리인 3킬로미터의 절반밖에 안 되는 길이였다.
야생마는 쉬지도 않고 더욱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변의 정신술이 아니었다면, 야생마에겐 하산하는 게 더 위험했을 것이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서 넘어질 수도 있고, 가속력까지 붙은 터라 나무에 부딪혀서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도 산을 내려올 때는 본능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목숨 걸고 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변의 인마합일 덕분에 야생마는 자신의 속도를 마음껏 방출하면서 미친 듯이 내달릴 수 있었다. 야생마는 나무에 부딪힐 걱정도, 말굽이 미끄러져서 넘어질 걱정도 하지 않았다.
두변은 야생마를 제 몸 다루듯이 자유자재로,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속도가 극한에 달했고, 광기도 극한에 달했다.
해발 900미터에 달하는 산을 내려오는 데 고작 2분 남짓 걸렸을 뿐이다. 2분이라는 시간은 다른 말들과 비교할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두변은 총 6분 만에 단혼 구간의 첫 번째 관문인 고산 밀림 구간을 끝냈다.
두변은 곧바로 두 번째 관문인 흔들다리에 진입했다.
이 흔들다리는 몇백 미터에 달하는 두 절벽 사이에 걸려 있어서, 다리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이 구간에서 경주마에게 필요한 자질은 담량과 평정심이었다.
흔들다리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거린다. 속도가 일정하지 않거나, 달리는 경로가 직선이 아니거나, 말굽에 쓰이는 힘이 일정하지 않으면 무조건 심하게 흔들리게 되어있다. 그리고 다리가 극심하게 흔들린다는 것은 또 말과 기수가 추락해서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경주마는 흔들다리 위로 올라갈 담량조차 없다. 설령 올라간다고 해도, 말의 눈을 가린 채 달팽이 기어가는 듯한 속도로 지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속도를 올리거나, 조금이라도 말이 흥분하게 된다면, 둘 다 죽은 목숨일 뿐이다.
하지만 두변이 정신력을 통제하는 이 야생마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의 방식으로 흔들다리로 돌진했다.
일정한 속도, 직선 경로, 그리고 말굽을 들고 내리는 박자감과 힘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고 최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흔들다리는 격렬한 흔들림 없이 두변과 야생마를 반대편으로 안내했다.
인마합일인 상태에서 두변은 공포를 잊었고, 야생마도 두려움을 떨쳤다.
아니, 어쩌면 이 야생마는 원래 산을 타고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이런 흔들다리의 공포 따위를 전혀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야생마는 보통의 말들이 조심조심 힘겹게 지나갈 흔들다리를 쏜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800미터에 달하는 흔들다리인지라, 아무리 뛰어난 경주마라고 해도 2, 3분은 걸린다.
하지만 두변의 야생마는 딱 1분 만에 흔들다리를 뚫고 지나갔다.
두변과 야생마는 또 한 번 기록을 갈아엎었다.
흔들다리를 지난 뒤에는 좁디좁은 협곡이었다.
협곡은 좁기도 하고 굽이굽이 굽어 있었는데, 가장 넓은 폭이 2미터가 안 됐고, 가장 좁은 폭은 1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어떤 말이든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잘 살피면서 지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날카로운 암석에 가죽이 찢길 수도 있고, 심한 경우엔 옆구리부터 복부까지 갈라질 수도 있었다.
일선천(一線天)이라고 불리는 이 협곡은 말 한 마리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서, 두변은 아예 말 등 위에 서서 야생마를 몰았다.
인마합일인 상태인지라, 두변은 야생마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그 어떠한 장애물에도 부딪히지 않으면서 1.3킬로미터에 달하는 일선천 협곡을 질주했다.
조금 전보다 속도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말에 비하면 몇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두변이 일선천 협곡을 지나는 데 쓴 시간은 2분 30초였다.
지금껏 이곳을 지나온 그 어떤 경주마보다도 빠른 기록이었다.
단혼 구간의 마지막 관문이 두변과 야생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관문은 바로 모든 관문 중 가장 험난하고, 가장 어렵고, 가장 지독한 회오리 모양의 절벽로였다.
이 관문은 절벽을 타고 오르는 좁은 오솔길로,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로 빙글빙글 도는 길이었다. 4.5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를 계속 빙글 도는 구간이었다.
오솔길의 폭은 2미터가 안 되었고, 아무런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절벽 바로 옆은 몇백 미터 낭떠러지라서,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곳은 단혼 구간에서 제일 악명 높은 관문으로, 참혹한 비극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몇십 년 이래,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말과 사람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 길은 원래 경주로가 아니라, 군사용 비품을 운송하는 길이었다.
어떤 말이든, 이 절벽 앞에선 한 마리의 온순한 양이 된다. 속도를 낼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죽고 싶지 않으면 아주 조심조심,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지나야 한다. 이곳은 몇 걸음 걸었다 싶으면 바로 길이 꺾여서, 제때 멈추지 못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두변에게는 제 정신술을 뽐내기에 완벽한 구간이었다.
인마합일이 되어 야생마를 조종한다는 건, 야생마가 이 절벽에서 정확히 어디에서 속도를 줄이고, 어디서 어떻게 다리를 틀 것인지 모두 계산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두변은 그저 야생마를 타고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커브를 돌 때 유선형으로 휘날리는 말꼬리, 드리프트라고 불릴 정도의 절제된 말굽의 움직임 등, 아주 정확한 계산 하에 움직이는 야생마는 한껏 멋을 뽐내며 달릴 수 있었다.
야생마는 그렇게 속도를 크게 줄일 필요도 없이 번개처럼 빠르게 절벽을 타고 나는 듯이 내려왔다.
아주 능력이 뛰어난 준마여도 9리에 달하는 절벽 오솔길을 내려오는 데 최소 15분은 걸린다.
하지만 두변과 야생마는 오직 6분이면 충분했다.
6분이라니, 말도 안 되는 6분이었다.
다른 말들과 비교했을 때, 두변은 단순히 이기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순식간에 적수를 격살해버린 셈이었다.
이게 바로 정신력 각성의 위엄이자, <수어록 기마편>의 위엄, 그리고 영종오 대종사에게 숨겨진 알 수 없는 힘의 위엄이었다.
두변이 여천천과 경주 시합을 벌인 것은 애초부터 승패를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천천을 지르밟기 위한 것이었다.
여천천이 천재 기수이고, 막강한 한혈보마를 경주마로 쓰고, 어린 나이에 정신력 각성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여천천의 기마술의 경지는 무적에 가깝긴 했다. 그렇기에 여천천이 서남 토사 연맹 경주에서 한 번도 승리를 놓친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이 쓴 건 단순한 정신술이 아니라, 인마합일이었다. 이건 애초부터 시대를 초월한 수준의 불공평한 시합이었다.
이건 마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탱크 조종수가 살상력이 강한 탱크를 몬다고 해도, 인공지능 미사일 전투기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니 여천천이 이 경주에서 압살당하는 건 시합이 시작됐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다.
단혼 구간의 마지막 관문, 절벽 구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이 경주 시합이 곧 끝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평지에서 몇백 미터 막판 스퍼트만 끝낸다면, 승리는 두변의 것이 된다.
같은 시간, 여천천은 이제 막 첫 번째 산에서 내려왔고, 두 번째 관문인 흔들다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천천은 속으로 몹시 뿌듯했다. 해발 900미터 산을 오르내리는 데 평소보다 더 훌륭한 실력을 선보였고, 자신이 세웠던 최단 기록을 깨트렸다.
두변이 야생마를 길들여서 경주에 참가한 게 놀랍긴 했지만, 여천천은 두변이 지금쯤 자신의 그림자도 못 볼 정도로 뒤떨어졌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토사 공주 여천천은 고개를 저으면서 탄식했다.
무적의 삶이 이렇게나 적막하구나!
지금의 여천천은 두변이 벌써 종점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소용돌이처럼 굽어진 절벽 오솔길을 빠져나오던 바로 그때, 두변은 갑작스럽게 엄습해오는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리고는 생각할 겨를도,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말과 함께 힘껏 옆으로 비껴서 무언가를 피했다.
슉! 슉! 슉! 슉!
어마무시한 아홉 발 연발 화살이었다.
화살 아홉 발은 상하좌우에서 마치 그물을 던지듯 두변을 향해 덮쳐왔다.
이 화살을 쏜 사람은 분명 여천천의 사람이자 명사수인 강현일 것이다.
그는 아마 어딘가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절벽 샛길을 먼저 빠져나온 사람이 두변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활시위를 당겨서 두변을 죽일 생각으로 화살을 쏜 것이다.
다행히도 두변은 정신력 각성 덕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이 몇십 미터 밖에 있을 때부터 위험을 감지하고 제때 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화살,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
두변은 마치 사신(死神)이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을 한 발, 또 한 발 피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니, 두변보다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었어도 강현의 화살에 맞아서 고슴도치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두변도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었다.
마지막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두변의 목덜미를 스쳤다. 비록 피가 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화살의 방향이 1센티미터만 더 정확했다면 두변은 이미 송장이 되었을 것이다.
두변은 강현이 어디 있는지 찾을 생각이 없이, 인마합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샛길을 쏜살같이 빠르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홍면 등이 있을 종점을 향해 달렸다.
높은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현은 재빨리 활시위를 다시 당기려 했지만, 이미 그럴 기회는 사라져버렸음을 자각하고는 활을 내려놓았다. 그는 자기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부득 갈면서 옆의 벼랑에 주먹을 날렸다.
두변은 마지막 몇백 미터를 미친 듯이 질주했고, 종점까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종점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귀신인가?
시합이 시작된 지 고작 몇 분이 지난 거라고!
단혼 구간의 최단 기록 역시 여천천으로, 고작 2각 만에 이 구간을 완주했다.
현대 지구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31분 정도로, 2등보다 반 각이 빠른 기록이었다. 이 기록이 바로 여천천이 기마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이제 막 1각이 지났을 뿐인데, 두변이 종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얘, 얘가 날, 날아서 온 건가?
아니면, 중간에 무슨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었나?
하지만 모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단혼 구간에 비밀 통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건 무얼 뜻하는가?
두변이 야생마를 타고 기마 천재인 여천천과 한혈보마를 이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도 한 끗 차이가 아닌 엄청난 격차로 여천천을 압살했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