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18화 (118/648)

제118장: 돌이킬 수 없는 강

“상처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습니까?”

두변이 걱정스레 물었다.

폐가 뚫린 거라면, 아무리 의술이 발달된 현대 지구라고 해도 몹시 심각한 상처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옛날 옛적 대녕 제국이니, 두변이 영종오를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영종오가 대답했다.

“지금으로 봐선, 내 무공 절반은 쓸 수 없게 된 것 같구나. 적어도 2년 이상은 요양만 해야 무공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을 게다. 그리고 내 수명도 칠팔 년 정도 줄어들 것 같다.”

두변은 너무나도 속상했다.

영종오는 두변의 머리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미련한 것아. 뭐하러 속상해하느냐? 그때쯤이면 너도 충분히 강해졌을 것이고, 내 가르침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게다. 대녕 제국에 필요한 건, 다방면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나 같은 한두 명의 무도 종사가 아니다. 나 같은 대종사도 규일을 죽일 때나 필요한 사람이지, 평소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식품 같은 것이다.”

영종오는 자랑스러운 감정과 스스로에 대한 낙담이 뒤섞여서 탄식했다.

두변이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진지하게 말했다.

“사부, 전 여천천을 죽일 겁니다.”

“네 무공과 책략을 봤을 땐, 몇 년 이내면 그 기고만장한 토사 공주를 죽일 수 있을 게다.”

두변이 말했다.

“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에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지만, 군자가 아닌 자들은 복수 생각에 단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저는 10년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바로 그 건방진 년을 죽이고 싶습니다.”

영종오가 경악한 얼굴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두변, 그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냐.”

지금은 아무도 여천천을 죽인 후의 감당을 하지 못한다. 제국이 안남 왕국을 치기 위해서 병마를 움직이고 있는 터라, 제국의 서남쪽에는 제국의 병마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여천천을 죽이게 된다면, 여여해는 반란을 일으킬 것이고, 삼만 정예군을 비롯해서 십만 대군을 움직일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제국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진남공부는 안남 왕국과 여여해의 협공을 감당해야 해서, 자칫하면 전멸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제국 남방이 고스란히 함락되어 버릴 것이다.

두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영종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변은 여천천을 죽이고 싶었다.

분노한 두변은 물불 가리지 않는 화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꿈속 세계에서 여천천을 죽이라는 임무를 받았으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광서 계림, 동창 진무사부.

이문회가 곧 계림에 도착할 예정인지라, 왕인은 며칠째 악몽에 시달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이문회가 계림에 가까워질수록, 왕인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경성으로 가서 소식을 알아오기로 했던 의자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왕인은 특별한 지시나 명령 없이는 광서를 떠날 수 없었다.

물론 속으로 두렵긴 했지만, 왕인은 겉으로 최대한 덤덤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식탁에 놓인 맛있는 요리조차 삼켜내기 힘들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왕 공공, 듣기로는 두변 그놈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합니다. 독을 써서 그를 해친 사람은 이문회도 감히 어찌할 수 없는 토사 공주 여천천이라고 합니다.”

왕인의 심복 환관이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인은 미칠 듯이 기뻤다.

여천천 공주는 확실히 동창이 건드리기 힘든 인물이긴 했다. 제국의 현재 국면을 보았을 때, 동창뿐만 아니라 여씨 가문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변은 죽었느냐?”

왕인이 묻자, 환관이 대답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정도인지라, 곧 죽을 듯합니다. 여씨가 쓰는 독은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걸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혈관음이 여씨 가문의 별원 앞에서 꼬박 하루를 무릎 꿇고 해독제를 애원하고, 진남공 부인과 소공야가 나섰는데도 여천천은 꿈쩍도 하지 않더랍니다. 심지어 여씨 가문에서는 연단사가 됐든, 의원이 됐든, 그 누구든 두변의 독을 치료한다면,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로 염주부의 연단사와 의원들은 두변을 치료하길 거부했고, 여씨 가문의 발표에 반해서 두변을 치료하러 갔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약방이나 의관까지 싹 다 태워버렸고요. 그러니 두변은 죽음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하! 좋다. 하늘도 보는 눈이 있구나. 그 재수 없는 놈이 그런 일을 당한 건, 다 인과응보다. 난 이 자리에서 그놈이 죽는 소식을 기다려야겠구나. 참 잘 죽었다, 잘 죽었어! 게다가 그놈을 위해서 복수할 담량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쯧쯧.”

이어서 왕인은 술을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켜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 재수 없는 놈의 죽음을 위해서, 오늘 한 번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야겠다.”

왕인의 심복은 아첨의 미소를 보이면서 서둘러 왕인의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입맛이 돈 왕인은 식탁에 놓인 음식을 즐겁게 먹고 마셨다.

좋은 일은 쌍으로 오는지라, 그날 저녁쯤 되었을 때 경성에서 전지(傳旨) 환관이 도착했고, 왕인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황제께서 명하시길, 왕인을 광서 동창 진무사 직에서 해직하니, 다음 진무사인 이문회가 부임하는 대로 인수인계하라. 왕인은 항주 제조국 제독(提督) 직조(織造) 환관으로 임명한다.”

왕인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기쁘기도 하고, 심지어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왜지? 도대체 왜?

광서 진무사 직에서 면직되는 건 알고 있었어. 내가 크나큰 잘못을 했으니까. 그래서 심복을 시켜서 삼십만 냥 은전을 들고 경성의 사례감 어르신께 뒷돈을 찔러넣은 것이고. 내 목표는 몇 급을 하락해도 좋으니, 권력과 지위를 아예 다 잃는 정도만 아니면 되는 거였는데?

왕인은 황릉을 지키는 일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고, 반 급, 아니 일 급을 하락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위가 강등되기는커녕, 도리어 한 단계 더 높은 제독이 되었다.

아니 왜?

왕인은 이런 발령이 정말 의아스러웠다.

대녕 제국에는 제조국 다섯 곳이 있는데, 그중 소주(蘇州), 항주, 남경(南京)의 제조국이 가장 컸고, 가장 수입이 좋았다.

항주의 직조국만 보아도 매년 오가는 은자가 백만 단위였고, 그곳은 광서 동창 진무사보다 훨씬 더 재원이 풍성하고 중요한 곳이었다.

내가 큰 잘못을 했음에도 결코 강등되지 않고, 오히려 조금 더 높은 직급으로 더 좋은 곳에 발령 난 이유가 도대체 뭐지?

아무리 삼십만 냥 은자를 뒷돈으로 썼다지만, 이렇게까지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는데?

현대 지구의 급으로 따지자면, 광서 동창 진무사는 지방청장 수준이었고, 항주 제조국 제독은 부시장 급이었다.

왕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진급까지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간, 진급한 건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

왕인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이문회에 대한 두려움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바로 이때, 밖에서 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문회 공공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왕인은 화들짝 놀라서 몸을 흠칫 떨었다.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왕인은 술잔을 연거푸 들이켜서 안색을 되찾았고, 술기운 덕에 다시 조금 전의 의기양양함을 회복했다.

내가 저놈을 두려워해서 뭐 해? 난 이미 항주 직조 제독이라고. 이문회가 광서 동창 진무사가 됐다고 해도, 나보다 반 급은 낮아. 그러니 내가 저놈을 두려워할 게 뭐 있어?

“들라 하라.”

왕인이 말했다.

이때, 전지 환관이 왕인에게 다가가서 나지막이 귓속말했다.

귓속말의 내용은, 이문회가 공개적으로 동창 주인 이연정의 뜻에 반했고, 이미 이연정의 총애를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왕인은 씰룩거리는 광대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문회에 대한 두려움이 말끔히 가시고, 이문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는 우월감과 통쾌함이 온몸을 감쌌다.

이문회. 동창 주인 이연정의 총애를 잃게 된 데다가, 나는 항주 직조국의 제독이 되어버렸네?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전지 환관은 조용히 밀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뒤, 이문회가 왕인의 앞에 나타나서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이문회, 진무사 대인을 뵙습니다.”

아직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던 터라, 왕인은 아직도 광서 동창 진무사였다.

이문회는 낯빛이 몹시 차가웠지만, 가슴 속은 화산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끝없는 분노로 가득 찼다.

이틀 전, 그가 호북에 도착했을 때 두변이 누군가에 의해 중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손을 댄 자는 제국 서남 지역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토호 여씨 가문, 여여해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여천천!

어떤 말로도 이문회가 느끼는 분노와 살기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문회는 부글부글 끓기만 하고 아직 폭발하지 않은 활화산이었다. 왕인의 파렴치한 짓들을 모두 알고 있지만, 두변이 이미 왕인이 직접 자신의 의자를 죽이게 했고, 왕인이 광서를 떠나겠다는 약조를 받은 터라, 그 일은 잠시 모른 척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문회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여씨 가문이었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문회가 오늘도 깍듯하게 왕인을 대하는 것이다.

이문회가 자신을 무척 공경하게 대하자, 취기가 오른 왕인은 더욱 득의양양해졌다. 그는 이문회가 이연정에게 버림받았고, 그래서 왕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왕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그에게 답례하지도 않고,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늘어져서 말했다.

“문회, 왔는가? 축하하네. 드디어 그토록 중요한 한 발을 내디뎠군. 진무사 직에 진급한 것 말이다.”

이문회가 말했다.

“예, 왕 공공께 자리를 물려받고자 왔습니다.”

이문회는 광서 동창 진무사 인장을 받고자 온 것이다. 진무사 인장이 있어야만 정정당당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아? 뭐가 그리 급한가?”

왕인이 사무적인 말투로 무뚝뚝하게 물었다.

이문회가 대답했다.

“문산 토사부 여씨 가문이 무고한 동창 일원을 해쳤습니다.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합니다.”

왕인은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복수하려고?”

이문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광서 동창을 총동원해서 여씨 가문을 몰살할 것입니다. 여씨 가문의 별원을 포함한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놀라서 술기운이 확 달아난 왕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여씨 가문은 제국 서남에서 세력이 가장 큰 토호였다. 광서 지역 곳곳에 침투한 그들의 세력은 마치 촘촘한 그물망과도 같아서, 여씨 가문이 광서성에서 만든 점포, 별원, 마구간, 장비 점포, 부두, 패거리 등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광서성에 잠복하고 있는 여씨 가문의 사람들만 해도 몇천 명은 되었다.

이문회는 두변이 여씨 가문에게 공격당했다는 이유로 광서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여씨 가문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다른 곳은 차치하고라도, 계림부 문산루가 바로 여씨 가문의 광서 거점이었다. 문산루의 장궤(掌柜 : 점포 주인) 강라(岡羅)는 여여해의 심복이자, 여씨 가문의 광서 대표이고, 평소엔 순무 대인과 담소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는 순무 정도가 아닌, 4품 관직 정도의 사람들은 상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문회가 지금 광서 지역에 있는 몇천 명의 여씨 가문 사람들을 몰살하겠다?

심지어 여씨 가문의 별원에는 여천천이 살고 있는데?

정말 미쳐버린 건가? 완전 미친놈이잖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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