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19화 (119/648)

제119장: 하늘을 가르고 땅을 가르다

“미, 미친 게냐? 제국에서 지금 병마를 모두 안남 왕국으로 움직이는 터라, 서남 지역에는 아무런 방비선이 없다. 네가 지금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을 몰살하겠다는 건, 여여해에게 제발 반란을 일으켜달라고 애원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

이문회가 말했다.

“제국의 토사 따위가 제국 위에 군림하다니요. 기고만장해져서 동창의 일원조차 마음대로 죽이는 토호인데, 이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까? 동창의 존엄, 제국의 존엄은 어떡하고요? 게다가 여씨 가문이 광서에 둔 세력 거점들은 모두 불법입니다. 그러니 이참에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겠습니다.”

“만에 하나 여씨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너와 나는 천고의 죄인이 되는 것이고, 능지처참에 처해질 것이다.”

“여씨 가문은 감히 반역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뒤를 바짝 쫓는 사륭(沙隆) 토사가 지금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지라, 여씨 가문은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여씨 가문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최대 수혜자는 사륭 토사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여씨 가문에서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정말로 병마를 모아서 반란을 일으킬 모양새를 취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여여해는 절대로 진짜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할 겁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거든요.”

이문회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의 세력을 뿌리 뽑고 몰살하는 건, 두변을 위한 복수일 뿐만 아니라,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의 모든 거점을 깨끗이 없애버리기 위함이었다.

이문회는 이미 영종오 대종사가 염주부로 달려가 두변을 구해냈다는 전서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복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도 아주 잔혹하게, 광서를 핏빛으로 물들 정도의 복수를 하기로.

이문회는 그래야만 만천하 사람들에게 동창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문회에게 이번 일은 두변의 의부로서, 광서 동창의 진무사로서, 미래 동창 주인으로서 해내야 할 소명 같은 것이었다.

이문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 이유 덕분에 왕 공공께서 이미 항주 제조국 제독 직위를 얻었다는 걸 압니다. 공공께서는 마음 편히 항주로 가시지요. 그리고 제가 광서 동창 진무사 직위를 이어받은 뒤, 여씨 가문을 자극하여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한들, 왕 공공께서는 이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어서 이문회가 손을 뻗었다.

“왕 공공, 이제 광서 동창 진무사 인장을 제게 주시지요.”

이문회는 진무사 인장을 손에 넣어야만 정식적으로 동창 무사들을 움직여서 광서의 여씨 가문을 몰살할 수 있었다.

왕인의 안색이 싹 변하더니, 단호한 태도로 이문회에게 말했다.

“이문회, 이미 동창 대도독께 죄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면서, 어찌 내게 이리도 무례한 것이냐? 고작 두변 그놈을 위해서 사사로운 복수를 하고자 이러는 것이니, 내가 상부에 보고해야겠구나.

동창 진무사의 인장을 달라? 미안하지만, 너에겐 줄 수 없다!”

왕인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언성을 높이자, 이문회가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조정에서 이미 성지가 내려왔지 않습니까. 저는 광서 동창 진무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왕 공공이 그 자리를 위임해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왕인이 음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폐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그건 당연히 아니지. 미안하지만, 난 네가 말한 나를 항주 제조국으로 발령한다는 성지를 받은 적도 없고 전지 환관도 본 적 없다. 내가 성지를 받은 뒤에 다시 와서 진무사 직을 위임받도록 해라. 나는 아직 광서 동창 진무사이니, 인장은 줄 수 없다. 그만 물러가거라.”

전지 환관이 자신의 밀실에 숨어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왕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왕인은 인장을 이문회에게 절대로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이문회가 여씨 가문에 손도 대지 못하도록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문회의 눈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먼저 여기서 검을 뽑아야 하는 건가!

왕인이 진무사 인장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왕인은 이문회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막고 싶었다. 만에 하나 이문회의 행동으로 인해 여씨가 정말로 반역을 일으킨다면, 광서 동창 전 진무사인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다.

둘째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여씨 가문의 광서 거점에는 왕인의 지분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단지 이 이유 때문에 왕인이 이문회를 막아서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인은 매년 광서의 여씨 가문으로부터 많은 수익을 얻고 있었고, 그 액수는 최소 이만 냥 이상이었다.

광서에서 무탈하게 발을 빼기 위해서 왕인은 이미 삼십몇 만 냥 은자를 썼고, 그 은자를 꺼낼 때는 거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문회 때문에 매년 안정적으로 들어오던 이만 냥 넘는 은자를 다시는 구경도 못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왕인은 눈앞이 캄캄했다.

예전이라면 이문회가 무척 두려웠겠지만, 지금은 이문회가 유일한 뒷배인 이연정을 잃었으니, 자신이 이문회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왕인은 이문회에게 진무사 인장을 주는 시점을 배 째라는 식으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룰 심산이었다. 인장 주는 시점을 미루는 동안, 이문회가 하고자 하는 일을 경성의 동창에 고발하여 이문회가 벌을 받게 할 계획인 것이다.

고발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이문회가 사사로운 복수에 동창의 권력을 이용하고, 토사가 반역을 일으키도록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이문회가 순조롭게 광서 동창 진무사가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이문회를 한 방에 보내버릴 절호의 기회이니, 왕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기회를 날려버릴 수 없었다.

이문회는 왕인이 무슨 꿍꿍이로 인장을 주지 않는 건지 제 손바닥 보듯 훤했다.

이문회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존칭도 빼고 천천히 말했다.

“왕인, 사람이 너무도 미련해서 그런지, 지난번 일로 교훈이 부족했나 보군. 어쩜 그리 하나밖에 모르는 건지.”

이문회가 말하는 지난번 일은 왕인이 여경사와 모의하여 두변을 해치려 했던 일이었다.

얼굴을 시원하게 얻어맞은 왕인이 악독한 표정으로 말했다.

“까놓고 말할 거면 시원하게 말해보지 그래? 자네는 고작 두변을 위해서 공개적으로 동창 주인인 이연정 공공의 뜻을 거역했고, 그로 인해서 이연정 공공의 총애를 잃었다. 내가 왜 뒷배도 없는 놈을 두려워해야 하나? 잘 생각해 보게. 어쩌면 경성에서 자네에게 주기로 한 광서 동창 진무사 자리도 수포가 될 수 있거든. 그런데 나는 항주 제조국의 제독이 될 몸이란 말이지.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건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지 않나?”

이문회가 말했다.

“내 모든 힘은 의부께서 주신 거라고 생각하나 보군. 뒷배를 잃었으니, 나 이문회에게 더는 경외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건가?”

왕인이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그럼, 아니란 말이냐? 동창 대도독의 지지가 없는 이문회는 시체 아닌가?”

“허허. 왕인 공공, 나보다 열댓 살은 더 먹었으면서, 진정한 힘의 원천과 권력이 어디서 오는 건지 전혀 모르는군.”

“어디 한수 가르쳐보든가. 내 친히 경청해드리리다.”

이문회는 왕인의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없어서는 안 되고, 대체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진정한 힘이고 권력이다. 모든 걸 의지해야 할 정도의 뒷배가 있어야 할 사람은 당신처럼 줏대 없이 잔머리만 굴리는 사람이지. 한없이 가볍고, 뒷배가 아니면 혼자 서 있지도 못하는 사람 말이다.”

왕인이 폭소했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나 같이 잔머리만 굴리는 사람이 곧 있으면 항주 제조국 제독이 될 텐데? 이문회 네놈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나이가 어려서 아직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유치한 건지. 내가 할 말은 똑같다. 네놈 이문회는 이 공공의 뒷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름에 한 철만 사는 벌레가 어찌 겨울에 대해 알겠는가. 이문회는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왕 공공, 정말로 진무사 인장을 내게 넘기지 않을 건가?”

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안 준다. 내가 안 준다고 해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나를 항주로 발령하는 명이 도착하면 넘겨줄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난 네가 동창 권력을 이용해서 사적인 복수를 할 거라고, 토사가 반역을 꾀하게끔 자극할 것이라고 경성에 고발할 것이다.”

이문회가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동창 무사 두 명이 서른 몇 살쯤 되어 보이는 중년 환관 한 명을 끌고 들어왔다.

왕인은 끌려온 환관을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중년 환관은 다름 아닌 왕인이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진정한 심복 연협이었다.

얼마 전, 왕인은 연협에게 삼십몇 만 냥 은표를 쥐여주면서 경성 사례감 어르신에게 뒷돈을 찔러 넣으라고 시켰었다. 그 덕에 안전하게 광서를 떠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항주 제조국이라는 더 큰 고깃덩이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이문회가 말했다.

“의자 연협을 시켜서 삼십몇 만 냥 은표를 뇌물로 썼더군. 연협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걸 다 말했다.”

왕인의 진정한 심복인 의자 연협은 겉으로 보기에 다친 곳이 없었지만, 엄청나게 피폐해 보이고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왕인의 얼굴빛이 차츰 어두워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문회를 비웃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내가 사례감 어르신들 몇 분께 돈 삼십몇 만 냥 은표를 뇌물로 쓴 건 맞지만, 그걸 자네가 고발할 수 있나?”

“없지. 다만, 이자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라는 것쯤은 알려주고 싶었다.”

이문회가 무사들에게 간결하게 명령했다.

“무릎을 꿇려라.”

동창 무사 둘이 왕인의 의자 연협을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 목이 앞으로 나오도록 그의 어깨를 눌렀다.

연협이 처절하게 외쳤다.

“의부! 제발 살려주세요!”

서걱.

연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문회의 검이 연협의 목을 베었다.

“데리고 들어오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건지, 이문회가 또 명령했다.

이번에는 족히 열댓 명의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은 모두 왕인의 의자이자 광서에 있는 그의 모든 심복이었다.

방 안으로 끌려온 사람 중에는 요염한 여인도 한 명 있었다. 이 여인은 왕인의 첩으로, 그는 이 첩을 얻기 위해서 첩에게 직접 남편을 독살하는 악랄한 책략까지 쓰게 했다.

왕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이문회를 노려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문회, 처자식에게까지는 화를 가하지 않는 법이다. 네놈이 감히!”

이문회가 말했다.

“내 검은 무고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왕 공공, 당장 인장을 내놓아라.”

왕인이 포효하듯이 소리쳤다.

“네 이놈! 꿈 깨거라!”

“죽여라.”

이문회의 명령이 떨어지자, 열댓 명의 동창 무사들이 순식간에 자리에 있던 왕인의 의자들과 첩의 목을 베었다.

열 몇 개의 잘린 머리통이 왕인의 발치에 떨어지자, 왕인은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왕 공공, 인장을 내놓아라.”

이문회가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다.

“절대로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럴 배짱이 있다면, 어디 한 번 나를 죽이고 가져가 보거라! 나를 죽여 보라고!”

왕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이문회가 손짓하자, 동창 무사 둘이 왕인에게 다가가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눌렀다.

왕인도 무공이 굉장한 사람인지라,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밖을 향해 외쳤다.

“여봐라! 다 죽어버린 게냐! 반란을 일으키려는 이문회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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