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장: 너무 찌질하잖습니까
진무사부 밖에는 수십 명의 동창 무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왕인의 외침을 들었음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왕인의 방 앞을 지키는 동창 무사마저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보았느냐? 이런 게 바로 힘이고 권력이다. 저들이 경외심을 갖는 건, 내 지위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다.”
이문회가 번개같이 검을 빼내 왕인이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검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어서 순식간에 왕인 앞에 나타나서 그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덥석 쥐었다.
왕인의 무공이 굉장한 건 맞지만, 이문회 앞에서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는 의자에 꾹 눌린 채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이문회가 직접 누군가를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지라, 왕인도 이번 기회에야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 셈이다.
“왕 공공, 입궁을 꽤 일찍 했다 들었습니다. 그때 입궁한 환관들은 주머니만 떼는 게 아니라, 남근을 아예 뿌리까지 잘랐다지요. 그런데 내가 들은 바로는 왕 공공의 것은 완전히 깨끗하게 잘리지 않았다던데, 맞습니까?”
이문회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여봐라, 왕인 공공의 바지를 벗기고, 남근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잘라 드려라.”
“뭐, 뭐? 네놈들이 감히!”
왕인이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발버둥 쳤지만, 이문회의 손에 눌린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창 무사 둘이 왕인에게 다가가서 그의 바지를 내렸다.
그 순간, 전 광서 동창 진무사 왕인은 모든 존엄과 체면을 잃어버렸다.
수십 년을 당당한 대환관으로 지내던 왕인이 수십 명의 제자와 수하들 앞에서 바지가 벗겨졌으니,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창 무사가 날이 흰 곡도(曲刀)로 왕인의 남근 뿌리 위를 지그시 눌렀다. 이문회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주머니만 없을 뿐 남근은 건재했다.
“허 백호, 죽고 싶은 게냐! 이문회는 이미 동창 대도독께 버림받았다. 나는 장차 항주 제조국 제독이 될 몸이고!”
왕인이 허 백호를 향해 소리치다가,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이 말했다.
“잘 생각하거라. 이문회가 너희를 데리고 죽음의 길로 가는 건데, 그래도 멍청하게 이문회를 따를 것이냐?
이문회는 곧 끝장이다. 너희도 나를 따르지 않았느냐? 너희는 진무사부의 백호니까, 내가 너희를 데리고 항주로 가마. 내가 그곳에서 너희 모두를 반 급 이상 진급시켜 주겠다고 약조하마.”
곡도를 쥐고 있던 사람은 허광창 백호였다. 그는 광서 동창 진무사부 직속의 백호이니, 어떻게 보면 왕인의 직속 수하이기도 했다.
이문회가 물었다.
“허광창, 어떻게 생각하느냐?”
허광창이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죽을 때까지 이 대인을 위해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왕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문회는 곧 끝장이라니까! 동창 진무사 자리에서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그 직위를 박탈당할 거라고!”
허광창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이 대인께 충의를 다하는 것은 이 대인의 관직 때문이 아니라, 이 대인 사람 때문입니다.”
이문회가 감정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어떤 게 진정한 힘이자, 권력인지 알겠습니까? 왕 공공이 앉을 항주 제조국 제독 자리가 어떻게 당신에게 간 줄 알고 있습니까? 아마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지요? 경성 동창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나를 자극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자 도구일 뿐입니다. 아마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내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깨달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마 내 말뜻을 더욱 고통스럽게 깨닫겠지요.”
이문회가 이어서 말했다.
“왕 공공, 셋을 세겠습니다. 셋을 셀 동안, 광서 동창 진무사 인장을 내게 주지 않는다면, 왕 공공은 남근을 영영 잃을 것입니다.”
“셋!”
이문회가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왕인이 크게 소리쳤다.
“이문회! 내가 네놈을 죽여버릴 것이야!”
“둘!”
“네놈들 다 장님이냐? 이문회는 곧 끝장날 놈이라고. 네놈들도 같이 끝장이야!”
“하나!”
“기다려라! 가져오겠다. 내가 가져온다고!”
왕인은 완전히 무너져서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광서 동창 진무사의 인장이 왕인과 이문회 사이에 나타났다.
평소 왕인의 사생활을 관리하던 소환관, 왕인의 의손자 왕천냉이 이문회의 앞에 나타나서 두 손으로 광서 동창 진무사 인장을 받쳐 들고 있었다.
“주인, 인장을 받으시지요.”
왕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왕천냉! 내가 네놈을 의손자로 받아들이고, 네게 태산과도 같은 은덕을 베풀었거늘, 이렇게 나를 배신해?”
소환관 왕천냉이 말했다.
“저는 처음부터 이 공공의 사람이었습니다. 왕 공공의 곁에 있다고 해서 다 왕 공공의 사람인 건 아니지요.”
왕인이 처량하게 말했다.
“왜? 도대체 왜? 내가 네놈에게 잘 못 해주기라도 했느냐?”
소환관 왕천냉이 말했다.
“사람이 너무 찌질하잖습니까. 공공 같은 사람은 이미 위에서 갈아치우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문회가 말했다.
“인장을 왕인 공공에게 전해주거라. 왕 공공에게서 직접 받아야겠다. 그래야 조정의 법도에 맞지.”
소환관 왕천냉이 즉시 진무사 인장을 왕인의 손 위로 올려놓았다.
이문회가 왕인에게 허리를 숙이며 큰절을 올렸다.
“왕 공공, 제게 인장을 주시어, 진무사 위임 의식을 끝내주시지요.”
그리고는 인장을 받을 수 있도록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왕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관례에 따라 인장을 직접 이문회의 손바닥 위로 올려놓았다.
광서 동창 진무사 위임식이 끝났고, 이문회는 그렇게 정식으로 광서 동창 진무사가 되었다.
왕인이 이를 부득 갈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문회, 내가 네놈을 기필코 죽일 것이다. 감히 토사를 자극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해? 내가 네놈을 꼭 죽여버리마. 넌 끝장이다!”
이문회가 일어서면서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시지요.”
왕인은 지금 당장 항주로 떠나고 싶었다. 이곳에는 단 한 순간도 더 있기가 싫었다.
이문회가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
“왕 공공, 조심히 가십시오.”
왕인이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더 할 게 남았느냐?”
이문회가 말했다.
“얼마 전에 여경사와 모의하여 제 의자 두변을 해하려고 하셨지요. 그때 공공께서 직접 의자를 한 명 죽이긴 했고, 광서를 자발적으로 떠나겠다고도 했지만, 그걸론 부족합니다.”
“이문회,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다. 뭘 더 어쩌고 싶은 것이냐? 나는 곧 항주 제조국 제독이 될 것이다. 네놈보다 더 급이 높다고. 그런데 네놈이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사례감의 가법이, 조정의 법도가 무섭지 않으냐!”
이문회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뭐 특별한 걸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왕 공공에게 남근이 아직 남아있으니, 제가 그걸 깨끗이 제거해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왕 공공도 아마 밖에 나가서 그 일을 말하기는 창피하실 테니까요.”
말이 끝나자, 이문회는 검을 뽑고 휘두르고 다시 검을 검집에 넣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0.5초였다.
왕인은 아랫도리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숙여보았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흥건한 피였다.
주머니만 없던 남근이 아예 뿌리까지 깨끗하게 잘려버렸다.
이제 왕인은 쭈그려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하는 몸이 되었다.
“아, 아아!”
왕인은 가슴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고, 꼭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사람처럼 눈에 초점을 잃었다.
“왕 공공, 항주까지 가시는 길 평안하시기 바라지만, 분명히…….”
이문회는 왕인을 위협하던 게 아니라, 정말로 그의 남근을 잘라버릴 생각으로 셋을 셌던 것이다.
이문회는 왕인을 더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진무사 관포와 관모를 갖춰 입은 뒤, 인장을 높이 치켜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전고를 울리고, 무사들을 모아라.”
곧이어 진무사의 커다란 전고가 천둥처럼 울리면서 칠흑 같던 계림의 밤하늘을 갈랐다.
반 시진 뒤.
광서 동창 진무사부 대문 앞 연마장에 무장 무사 이천여 명이 대열을 갖춰 서 있었다. 모든 동창 무사는 갑옷을 갖춰 입었고, 손에는 쇠뇌를, 등에는 활을 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금니까지 무장한 듯이 이를 악물고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광서는 안남 왕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고, 서남 토사 연맹과 가까이 있는 터라, 상황이 몹시 복잡했다.
이문회가 몇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무사들을 가르친 결과, 광서 동창 무사들은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막강했다.
다른 지역의 동창에도 만호라는 직위가 있지만, 보통 직속 무사가 이천 명이 넘지 않았고, 천 명도 안 되는 무사들을 거느린 만호도 있었다. 그런데 광서 동창에는 직속 무사 오천 명이 넘었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바로 이곳 계림부에 있었다.
높은 단상 위로 올라간 이문회가 이천 명의 동창 무사를 내려다보았다.
무사들은 불꽃과도 같은 짧고 강렬한 함성을 지른 뒤, 침묵을 유지했다.
“이번 일은 수색을 하는 게 아니라, 전투를 치르는 것이다!
제국 토사 여씨 가문이 폐하의 은덕에 감사할 줄을 모르고, 우리 광서 행정 지역에 거점을 만들어 백관을 매수하고, 불법 거래를 하며, 첩자를 심어 정보를 빼돌렸다. 그들은 군사 장비를 사적으로 거래했고, 적국과 내통하는 정황이 보이므로, 역모를 꾀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번 전투의 목적은 광서 지역에 있는 모든 여씨 가문의 비밀 거점까지 통째로 뿌리 뽑는 것이다. 여씨 가문이 광서에 심어둔 첩자와 잠입자까지 일망타진할 것이다.
매수된 관리 목록과 적국과 내통한 정황, 그리고 군사 장비를 사적으로 거래한 증거를 모두 손에 넣어야 한다.
광서 팔백 리까지 급보를 전하라. 광서 지역 내의 모든 주부 소속의 동창 천호들은 내 명령에 따라 문서에 있는 모든 거점을 소탕하라!
내 명령에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죽여도 좋다.
오늘 밤에 그대들이 기억할 것은 딱 하나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라!”
이문회가 비장한 모습으로 명령을 내렸다.
“출발하라!”
일사불란하게 진무사부 밖으로 몰려나간 정예 동창 무사 이천 명은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의 점포, 주루, 부두, 금전소 등을 향해 거센 홍수처럼 달려들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라!
계림부는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곧이어 하늘을 뒤덮을 듯한 홍수는 광서 지역 전체를 잠식했다.
이 일은 머지않아 제국의 서남 전체를 들썩이게 할 것이다.
염주부.
검마 이도진은 온몸을 검은 두봉으로 가린 불청객을 맞았다. 불청객의 얼굴은 두모에 가려 자세히 보기 힘들었지만, 거대한 체구만큼은 단연 돋보였다.
“두변은 죽지 않았습니다.”
불청객이 말했다.
“그게 어때서? 나와 무슨 관련이 있지?”
이도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우리는 그가 죽길 바랍니다.”
“그럼 직접 죽이면 되잖소.”
“그의 곁에는 영종오와 이문회가 있으니, 우리가 죽이기 쉽지 않지요. 그리고 죽인다고 한들, 이문회의 보복이 너무 잔혹하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이 종사의 손을 빌려서 두변을 죽였으면 합니다.”
“괜한 걸음 하셨소. 매년 이문회와 이연정에게 죽는 우리 북명검파의 사람들도 부지기수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동창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동창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도 않소. 두변은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니, 우리는 그를 신경 쓰지 않소.”
“이 종사가 우리를 위해 두변을 깨끗이 없애버릴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두변을 죽일 완벽한 시기이지 않습니까. 일이 성사되면, 저희가 비옥한 농토 삼천구백 묘를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