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4화 (124/648)

제124장: 운 좋게 내게 물어봤으니

낙문 등이 경악했다.

여여해의 심복이자, 토사 여씨 가문의 광서 사자이자, 광서에서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인물인 강라가 일순간 몸이 두 갈래로 찢어져 버렸다.

강라는 그렇게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즉사해버렸다.

곧이어 이문회가 문산루를 가리키면서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이천 명의 동창 무사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수백 구의 대형 쇠뇌가 문산루에 있던 여씨 가문의 무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호화롭고 아름답던 문산루는 눈 깜빡할 사이에 핏빛으로 물들였고, 여씨 가문의 무사들은 반항할 틈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문회는 시체가 널브러진 문산루를 등진 채 낙문 등에게 말했다.

“이제 상주서를 쓰시지요. 나를 위해 만든 그 판,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해봅시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죽기를 각오하고 인정사정없이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게 설령 죽음의 신이더라도, 나는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하늘이 이번 기회에 우리 부자를 데려가나, 안 데려가나 한 번 보지요. 하하하!”

고열 때문에 두 눈이 퉁퉁 붓고 빨개진 영종오가 믿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이놈은 천부적인 재능이 차고 넘치는 놈이구나!’

두변은 명상을 하지도, 꿈속 세계를 다녀오지도 않았는데 이런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영종오는 문득 부끄러웠다.

두변이 자신의 무공으로 여천천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영종오는 당연히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종오는 오직 무공만 고려해서 그 문제를 생각했고, 자신의 생각을 무공이라는 틀 안에 가두었다.

하지만 두변은 여천천을 죽이겠다는 범상치 않은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생각의 틀을 깨고 여천천을 죽일 방법을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게다가 더욱 무서운 점은, 두변이 말한 방법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황당무계한 방법이긴 하나, 놀랍게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그런 검법이 있습니까?”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면, 그항 검법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 내게 물어봤으니, 그 검법이 있다고 말하겠다.”

두변이 크게 기뻐하면서 물었다.

“어떤 검법입니까?”

“소용돌이 검법이다. 아주 기이한 검술이기도 하고, 실전에서 쓰이지도 않는 검법이기도 하지. 이미 오래전에 실전(失傳)된 초식이기도 하다.”

“그 검법은 어디에 쓰이는 겁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실전된 지 정말 너무 오래됐거든. 하지만 내 추측에 의하면, 그 기술은 특수한 땅굴 깊은 곳에서 특정한 힘과 원소를 수집하는 데 쓰인 것 같더구나. 그리고 그 기술은 검법이라기보다는, 주술에 가깝다.”

“어떤 건지 알겠습니다. 이 검법의 요지는 체내의 내력 현기와 주위의 공기를 이용하여 공진을 일으키고,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군요.”

“그렇다. 그런 검법이 있다고는 내가 말해줬지만, 네가 어떻게 번개를 끌어모을 것이냐? 번개가 어딜 향해 가는 건지는 완전히 무작위이고, 예측할 수조차 없다.”

“아주 강력한 자력을 가진 금속으로 검을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용돌이 검법을 쓰는 동시에, 더욱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내서 소용돌이가 더욱 거세질 테니까요.”

두변의 말에 영종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두변이 대답했다.

“검술을 시전하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금속 가루를 대량으로 방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금속 가루가 자기장 소용돌이에 흡수되어서, 자기장 소용돌이가 거대한 공간 도체(導體)가 될 것입니다.”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두변이 한 말은 모두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그때가 되면, 저와 여천천은 자기장 소용돌이 속에 같이 갇힐 겁니다. 저는 미리 절연 신발, 옷과 모자를 준비해둘 겁니다. 저희는 산꼭대기에서 싸울 것이니, 번개를 유도하는 높이는 충분할 겁니다. 번개는 거대한 자기장 소용돌이에 의해서 우리 쪽으로 내려칠 것이고,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연속적으로 내려치겠지요. 하지만 저는 절연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있는 덕에 죽지 않을 것이고, 여천천은 죽겠지요.

여천천이 번개를 맞는 즉시 가루가 되어 사라지진 않겠지만, 여천천이 가진 모든 저항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틈을 타서 여천천의 심장을 검으로 찌를 것이고요.”

영종오 대종사는 탄복한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두변이 말한 방법은 이론적으로 완벽하고, 아주 대담하고 기상천외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어디에서 번개가 칠 줄 어떻게 아느냐? 광서의 여름이 원래 천둥 번개가 잦긴 하다만, 네가 여천천과 결전을 펼치는 그 날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

영종오가 물었다.

영종오가 생각했을 때, 정확히 어디서, 몇 시진에 번개가 칠지 맞히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두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기술을 연마하기도 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었다.

꿈속 세계가 두변을 정말 아낀다면, 두변은 정확히 어느 날, 몇 시진에, 어디서 번개가 내리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두변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제가 알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 어느 날, 몇 시진, 어디서 번개가 칠지를요.”

영종오 대종사가 말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네가 엄청난 기적을 만들 수 있겠구나. 정말 상상도 못 할 기적 말이다. 그 방법이라면, 네가 여천천을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뒷감당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두변이 말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여천천은 언제든 저를 죽이러 올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한 시진 뒤일 수도, 내일 아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한시라도 빨리 기묘한 소용돌이 검법을 연마해야 합니다. 여천천이 저를 찾아와버리면, 이미 늦어서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요.”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지금 당장 소용돌이 검법을 네게 전수해주마.”

계림부, 문산루.

여씨 가문의 무사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몇 배가 되는 동창 무사들을 감당할 리 없었다.

동창 무사들은 모두 무장한 상태였고, 원거리 전술을 활용했다. 그들은 촉에 독이 발린 화살을 강력한 대형 쇠뇌로 쏘아댔다.

“쏴라.”

한 번, 또 한 번의 화살비가 문산루를 향해 쏟아졌다.

여씨 가문의 무사들은 우수수 쓰러지면서도 활을 놓지 않고 동창 무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동창 무사들도 사상자가 일부 발생하긴 했지만, 짧디짧은 일각의 시간이 지날 동안 몇만 개의 화살을 쏘아낸 터라, 여씨 가문의 무사 중 살아남은 자가 얼마 없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여씨 가문 무사들은 몰래 벽 뒤로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격!”

이문회의 명령이 떨어졌다.

무공 고수인 중년 환관 하나가 백 명의 무사들을 데리고 문산루 안으로 돌진해서는, 살아남은 여씨 가문의 무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덕분에 불과 일각만에 벽 뒤에 숨어서 그나마 살아남은 여씨 가문 무사들도 목숨을 잃게 되었다.

문산루의 삼백 명 넘는 무장 무사들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

문산루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새빨간 피가 낭자했다.

이문회가 오늘 밤에 동창 무사들에게 내린 명령은 딱 하나였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라.

문산루 안에 있던 여인들과 손님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잔혹한 광경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오줌이 줄줄 새어 나왔다.

짝, 짝, 짝, 짝!

하늘을 찌르는 피비린내 속에서 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광서 순무 낙문, 남해도장 축무애가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사실 어떤 말로도 낙문이 느낀 전율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문회는 미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낙문의 세계관을 뒤엎어 버렸다. 사람이 이 지경까지 독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것에 낙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문회는 적이기도, 네 개의 세력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고 싶은 인물이니, 절대로 기세에서 밀릴 수 없었다.

낙문이 손뼉을 치면서 이문회 앞으로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이 형제, 정말 시원시원하군. 오늘 이 광경이 감탄스럽기 그지없구려.”

옆에 있던 축무애가 바닥에 고꾸라져있던 계동앙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계동앙의 몰골은 낭패 그 자체였다. 얼굴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갈비뼈도 두어 개 부러졌다. 이문회의 따귀 한 번에 이빨이 다 부러졌던 터라, 그의 입 안에는 피가 잔뜩 고여있었다.

“고작 두변 그놈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럴 가치가 있소?”

낙문이 물었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몇 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이문회가 대답했다.

“하늘이 사람을 죽이고자 할 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하더군. 역시 그 말이 맞았어. 자네가 미친 정도는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야.”

“그건 대인의 사고가 너무 편협해서이겠죠.”

“이문회, 자네는 하늘을 상대로 칼을 뽑은 것이고, 건너면 안 될 강을 건넌 것이야. 거센 눈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상주서를 어찌 감당할 셈인가? 적어도 몇천 통은 될 텐데 말이지.

여씨 가문의 보복도 기다려야겠지. 토사 여씨 가문이 몇만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게 될 것이고, 동창의 하늘이 무너져내릴 것이네.”

“안 가실 겁니까? 안 가신다면, 대인도 이곳에 함께 남겨드리지요.”

이문회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이문회의 위협적인 태도에 낙문이 흠칫 놀랐다가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콧대가 너무 높아졌고, 살생에 중독되었어. 돌아가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이 세상에서 자네를 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겠군.” 낙문과 축무애 두 사람은 계동앙을 양쪽에서 부축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낙문의 말대로, 이문회는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천라지망(天羅地網)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이문회를 죽이고자 하는 세력은 사람을 절망시킬 정도로 강할 것이고, 이문회가 아닌 그 누구도 가루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낙문의 말이 맞았다.

이문회는 정말로 건드리면 안 될 하늘을 건드린 것이다.

중년 환관 한 명이 이문회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사제, 우리 이번엔 정말 죽는 것인가?”

중년 환관의 이름은 이륜(李倫)이었다. 그는 이문회와 같은 학원을 졸업했고, 상당한 무공 실력을 가진 자였다. 그는 동창 소속이 아니지만, 이번에 특별히 이문회를 도와주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륜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아닌지라, 아주 젊을 때부터 동창에서 쫓겨나, 황릉을 지키고 있었다.

이문회가 그를 동창으로 다시 데려오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었지만, 이륜은 그저 조용하게 황릉을 지키는 게 좋다면서 그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했었다.

“난들 알겠습니까. 하지만 절대로 순순히 투항하진 않을 겁니다. 저와 두변이 목숨을 지키려면, 앞으로 제가 거둬들일 수확이 저희 목숨값 정도는 되어야 할 테지요. 다들 이 판국에서 바둑알을 어떻게 굴릴지 저도 궁금합니다. 정말로 저를 죽일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이문회는 경성에서 자신이 의부 이연정의 뜻을 거스른 그 순간부터 천하가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 거라고 짐작했다.

최근 몇 년간, 이문회는 제국을 좀먹는 무수히 많은 벌레를 죽였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의 돈줄을 끊었으며, 많은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니 이문회의 피부를 벗겨버리고 창자를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의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문회가 호북에서 여천천이 두변을 죽이려고 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오늘 같은 판국이 될 거라고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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