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5화 (125/648)

제125장: 결전의 시작

여천천이 두변을 해친 건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는 이 사건이 엄청난 음모로 변질될 것이라 직감했다. 이문회는 그 거대한 음모는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판국으로 짜일 것이며, 그 누구도 이 판국을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판국에서 이문회는 뒤로 물러설 수도,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도 없었다.

이문회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직 칼을 쥐고 앞으로 나아가서 살길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문회가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두변, 지금 네가 나와 몇백 리나 떨어져 있고, 그 어떤 교류도 하지 못하지만, 나는 너를 알고, 너도 나를 알 거라 믿는다. 우리 부자는 꼭 손을 맞잡고 이 판국에서 살길을 뚫어내야 한다.’

이문회가 명령했다.

“염주부 부근 모든 동창 무사들을 집합시켜라. 내가 그곳에 도착하는 즉시 여씨 가문의 별원을 공격한다.”

이빨이 죄다 빠진 전 태자소부 계동앙이 침상에 누워서 새는 발음으로 화를 냈다.

“이문회 꼭 죽여야 해! 꼭 죽여야 해!”

‘이문회 그놈이 감히 나를 밟고 지나가?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낙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문회는 꼭 죽을 것이고, 두변도 죽을 겁니다. 하지만 그 둘로는 부족합니다. 감히 하늘을 건드렸으니, 몇 명을 더 골라서 같이 묻어버리지요. 제일 좋은 건 이연정까지 끌어들이는 겁니다. 이연정을 죽이진 못하더라도, 큰 부상 정도는 입힐 수 있겠지요.”

축무애가 말했다.

“동창이 너무 오랫동안 위세를 떨치고 살았소이다. 북쪽과 남쪽에 있는 대군 장수들에게 미리 언질해 뒀으니, 신호 한 번이면 곧바로 동창에게 공격을 퍼부을 것이외다.”

낙문이 말했다.

“몇몇 내각 대신과 각 행성의 총독과 순무사에게도 얘기해뒀습니다. 신호 한 번이면 그들은 방대한 양의 상주서를 쏟아낼 것이고, 이문회와 동창은 그 속에서 숨도 못 쉬고 끝장날 것입니다. 아무리 황제가 이문회를 보호하고 싶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겁니다.”

축무애가 웃으면서 말했다.

“천하가 동창을 상대로 공격을 퍼부을 테니, 설령 이문회가 머리 세 개에 팔이 여섯 개 달린 자라고 해도 뼈도 못 추릴 겁니다. 사례감의 대환관 몇 분은 눈치가 있으실 테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알고 계시겠지요. 정말 흥분되는군요. 이렇게 역사적인 전투가 우리 광서에서 시작되다니요.”

계동앙이 말했다.

“토사 여씨 가문이 몇만 대군을 이끌고 북상할 날이 바로 이문회의 제삿날이고, 동창 파멸의 날이 될 것이다. 엄당을 짓밟고 승리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술을 짝으로 마셔도 모자라겠군.”

계동앙은 아픈 것도 잊은 채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때, 낙문이 괴이한 눈빛으로 계동앙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 대인, 대인께선 전 태자소부이자 전 내각 대학사이시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동창을 공격하고 이문회라는 악인을 죽이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문회를 죽이기 위해서는 저울 축을 하나 더 얹어서 더욱 비장한 연출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낙문의 말을 듣자, 계동앙의 안색이 변했다.

“지금 그게 무슨 뜻인가?” 낙문이 말했다.

“전 태자소부이자 전 내각 대학사이신 계 대인께서 미쳐 날뛰는 동창 진무사 이문회에게 밟혀 죽였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이 세상 모든 서생의 분노와 동정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계동앙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지, 지금 뭐 하려는 것인가!”

낙문이 말했다.

“계동앙 대인, 부디 대의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낙문이 베개를 가져와서 계동앙의 얼굴을 세게 짓눌렀다.

“읍, 읍!”

가엾은 계동앙이 있는 힘껏 발버둥쳤다.

베개를 힘껏 누르고 있던 낙문이 축무애를 바라보았다.

축무애가 모질게 웃더니 계동앙의 가슴팍을 정확하게 발로 지르밟았다.

우드득.

계동앙의 남은 갈비뼈가 모조리 부서지면서 그의 오장육부를 찔렀다.

쿨럭!

검붉은 피가 새하얀 베개를 적셨다.

광서의 문관 우두머리였던 계동앙이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이문회의 발아래 죽은 것이 아닌, 동맹 맹우에게,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후배에게 죽임을 당했다.

계동앙이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하자, 광서 순무사 낙문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찧으면서 울부짖었다.

“어찌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실 수 있습니까. 이문회, 감히 내 스승을 밟아 죽이다니, 내 기필코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같은 시각. 무수히 많은 전서구가 여씨 가문의 문산 토사부에, 염주부 여씨 가문 별원에 날아들었다.

여씨 가문은 곧 이 끔찍한 악몽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소용돌이 검법을 배우기 전에, 현기 각성이 필요하다. 소용돌이 능량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기 내력이 어느 정도 필요해.”

현기 각성은 무도를 하는 사람이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턱이고, 정신력 각성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다.

정신력 각성은 만 명 중 한 명이 할 수 있을까 말까이지만, 현기 각성은 무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관문이기 때문이다.

현기 각성을 해야만 내력이라는 게 생기고, 검기를 다룰 수 있고, 진정한 무도를 익힐 수 있다.

그러면 현기 각성이란 무엇인가?

무도자의 스승이 무도자에게 내력 현기를 키울 수 있는 씨앗 하나를 넣어줄 것이다.

물론 현기 각성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씨앗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씨앗을 결정짓는 것은 본인 단전의 용량이다.

현기 씨앗이 단전에 들어간 뒤에는 그 기운을 느껴야 하며, 현기가 온몸의 근육과 근맥을 조절할 수 있도록 다스려야만 나중에 자유자재로 현기를 방출할 수 있다.

현기를 방출한 뒤에는 토납탄흡(吐納呑吸: 기를 뱉고 마시는 기술)을 배워야 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공기 속에서 흡입한 현기를 단전으로 수용해서 자신의 내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어쨌든 단전은 체내의 우물과도 같은 것이고, 현기는 우물이 마를 새도 없이 채워지는 물과도 같은 것이다.

현기를 더욱 강력하게 수련할 수 있는지는 단전의 크기에 따라, 근맥의 강함에 따라 다르다. 단전이 커야 더욱 많은 현기를 수용할 수 있고, 근맥이 강해야 더욱 강력한 내력을 기를 수 있다.

그래서 현기 각성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단전을 활성화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근맥과 혈자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단전을 활성화하는 것은 현기를 내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므로 스승의 지도가 필요하고, 근맥과 혈자리를 활성화하는 것은 학생 본인이 해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무도 학생들에게는 현기 각성이 아주 기나긴 여정으로,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해도 최소 반년 이상의 시간을 써야 한다.

근맥과 혈자리에 대해 공부하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현기 씨앗으로 어떻게 근맥과 혈자리를 운행하는 건지 터득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현기를 다스리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과정은 아주 복잡하고 힘겨운 과정이지만, 모든 무공자라면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반년 만에 이 과정을 끝내지만,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2년이면 현기 각성을 완성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천부적인 재능은 지혜와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두변이 현기 각성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사실 그가 현기 각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몹시 짧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짧을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두변, 눈을 감아 보거라. 내가 너의 단전을 활성화하고 현기 씨앗을 심어주마.”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이 눈을 감자, 영종오가 손가락으로 두변의 명치 단중혈을 눌렀다.

그 순간, 두변은 청명한 에너지가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게 바로 현기의 씨앗이자, 영종오의 가장 순수한, 가장 강력한 내력이었다.

영종오의 인도 하에 현기 씨앗은 단중혈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두변의 단전에 들어갔다.

지금 두변의 단전 안은 혼돈일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종사가 현기 씨앗을 조종하면서 두변의 단전 안에서 끊임없이 충격을 주었다.

쾅!

두변의 단전 자리가 갑자기 번쩍 빛이 나더니, 단전 안에 가상 공간이 생겨났다.

이게 바로 활성화된 단전이었다.

물론 지금 두변의 단전은 몹시 협소했고, 작은 현기 씨앗이 간신히 들어있을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네 단전은 중간 정도로 그리 특출난 편은 아니구나. 영설과 옥진의 단전은 내가 아니라 정비(靜妃)께서 활성화했지만, 그 둘의 초기 단전은 네 단전의 다섯 배에 달했다.”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은 영종오의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영설과 옥진의 천부적인 무도 재능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나단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영종오가 이어서 말했다.

“물론, 네게는 모든 법칙이 무의미하겠지. 너는 이미 천재의 규범을 벗어난, 엄청난 요물이니까.”

현기 각성 첫 번째 단계, 단전 활성화가 끝났다.

“이어서 해야 할 건 근맥과 혈자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건 네가 직접 해내야 한다. 네 체내에 있는 단전을 느껴야 하고, 단전 내에 있는 현기를 느껴야 한다. 현기를 체내에서 움직이고, 모든 근맥을 통과한 뒤에 다시 현기를 단전에 돌아오게 하는 게 바로 2단계다. 이 과정까지 끝내면 현기 각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대종사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실질적인 과정은 몹시 복잡했다.

대부분의 무도 학원에서 단전의 존재를 느끼는 데만 족히 보름이 걸리고, 단전 내의 현기를 직접 조종하는 것은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온몸에 근맥이 몇백 곳이 있다 보니, 현기가 전신의 근맥을 통과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몇만 번 이상 실패해야 현기를 체내에서 한 바퀴 돌리고 현기를 다시 단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현기 각성은 천재여도 반년 이상 걸린다는 게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두변은 눈을 감고 자신의 단전을 감지해 보았다. 불꽃 같기도, 은하 같기도 한 뭉쳐있는 불빛이 보였는데, 빛이 나고 허구의 공간처럼 느껴지는 그곳이 바로 단전임을 알아챘다.

두변은 눈을 감자마자, 1초도 안 되는 시간만에 단전을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름은 걸리는 과정이나, 두변은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이어서 그가 해야 할 것은 단전 내의 현기를 제어하는 것이다.

현기를 제어하는 첫 번째 단계는 정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본인의 정신으로 단전 내의 현기에 낙인을 찍은 뒤에 현기를 제어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정신력 각성이 필요한 건 아니다.

현기를 제어하는 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한 달가량이 필요하다. 숱한 실패를 겪은 뒤에, 갑자기 어느 순간에 정신 낙인을 완성할 수 있고, 그 뒤에야 현기를 제어하면서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두변은 또 찰나의 순간에 현기의 정신 낙인을 끝냈고, 곧바로 현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그가 해야 하는 건, 현기를 잘 제어해서 온몸의 근맥과 혈자리를 지나게 한 뒤, 다시 단전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천재여도 이 과정은 최소 네다섯 달이 필요했다.

그런데 두변이 이 과정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0초였다.

두변은 30초만에 현기를 제어해서 온몸의 근맥과 혈기를 통과시켰고, 마지막으로 현기가 단전에 돌아오게 했다.

두변이 이토록 빨리 이 과정들을 완성할 수 있던 이유는 모두 정신력 각성 덕분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무도 천재들은 현기 각성을 먼저 완성하고, 몇 년에 걸쳐서 정신력 각성을 하게 된다. 정신력 각성이 현기 각성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영종오의 말대로 두변은 천재를 넘어선 요물이다 보니, 정신력 각성을 완성한 상태에서 현기 각성을 배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다음에 두변은 영종오 대종사에게 현묘한 소용돌이 검법을 전수받기 시작했고, 이 과정 또한 무척 빨랐다.

그야말로 시간과의 달리기 경주와 같고, 죽음의 신과의 달리기 경주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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