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8화 (128/648)

제128장: 여천천이 놀라 떨다.

염주부, 여씨 별원.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처럼, 여천천은 자신의 곱디고운 피부를 위해 매일 충분히 잠을 잤다.

시끄러워서 잠에서 깬 여천천은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깨운 사람을 향해 찔렀다.

다행히 그녀의 심복도 무공이 뛰어났고, 여천천이 몽롱한 상태에서 찌른 것이기에 검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심복이 빠르게 피하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잠을 깨우다 개죽음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주인, 이문회가 동창 무사들을 이끌고 문산루를 쳤고, 대살육을 시작했습니다! 계림부에 있는 여씨 가문의 모든 비밀 점거지가 송두리째 뽑혔고, 그곳에 있던 여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벌써 이천 명에 달했고, 그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순간 여천천의 잠이 확 달아났다. 벌떡 몸을 일으킨 여천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이냐? 그럴 리 없다! 문산루는 우리 여씨 토사부의 광서 요충지 중 하나인데, 문산루를 쳤다는 건 여씨 토사부를 공격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 범의 간덩이를 먹은 놈도 이런 시국에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심복이 말했다.

“제가 들은 소식이 틀림없습니다. 벌써 계림에서 온 전서구만 열 몇 통입니다. 서신 모두 여씨 밀문(密文)으로 작성되었고, 내용도 똑같습니다.”

여천천의 아름다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문회 그놈이 미친 거야? 진짜 미쳤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보복이다. 보복을 위한 게지.”

문밖에서 검마 이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도진 또한 이 믿기지 않는 소식에 잠이 달아나고,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 왔다.

심복 시녀가 재빨리 여천천의 어깨 위로 옷을 둘러준 뒤, 작게 기침을 했다.

이도진과 강현이 그제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문회 그놈이 미친 게다. 제대로 미친 게야. 두변이 죽은 것도 아니고 독에 중독되었을 뿐인데도 이런 광적인 보복을 할 줄이야. 감히 계림에 있는 모든 여씨 가문의 거점을 갈아엎고, 겁도 없이 대살육을 펼치다니.”

이도진의 말에 안색이 사색이 된 강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지금 당장 무사들을 이끌고 계림으로 가서, 동창과 목숨을 걸고 싸워서 문산루를 지켜내겠습니다.”

“이미 늦었어.”

여천천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보석처럼 반짝이던 여천천의 두 눈에 놀라움과 분노가 어렸다.

“그놈이 도대체 뭐라고. 이 하늘 아래서 우리 여씨 가문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진남공조차도 우리 여씨 가문의 가업에 손을 못 대는데, 이문회 그놈이 뭐라고 감히 우리를 건드려?”

부아가 치밀어오른 여천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영역이 무참히 침범당한 느낌을 제대로 느끼게 된 여천천이었다.

그녀는 안하무인인 데다, 아무렇게나 살인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자신이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두변이든 누구든, 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의 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문회가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 사람을 모조리 죽이고, 광서 요충지인 문산루까지 공격했다는 말을 듣고는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이문회,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여씨 가문을 무서워하지 않지?’

이도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문회는 온 세상 사람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두변은 자신의 역린이라고. 누구든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순간, 그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고.”

이도진 스스로도 만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검술 종사지만, 이문회의 행동은 두피가 저릿할 정도로 놀라웠다.

‘이 세상에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여천천이 이를 부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이문회 그놈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 여씨 토사부의 보복이 두렵지 않은 거야? 아니면, 우리가 동창 사람들을 마구 죽여서, 이문회를 가루로 만들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이도진이 말했다.

“여씨 가문에서 손을 쓰지 않아도, 문관 집단, 무장 집단, 엄당 집단이 불나방처럼 달려들 것이다. 이문회와 동창 이연정을 탄핵하는 상주서가 빗발칠 것이야. 천하에서 제일 강한 집단들이 이문회를 즈려밟고 뼈도 추리지 못하게 할 것이고, 동창의 주인인 이연정도 제 앞가림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 테지. 곧 있으면 온 천하가 동창을 둘러싸서 공격하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여천천이 물었다.

“그럼, 이문회는 죽은 목숨인 거네요?” “죽을 거다. 신선이 온다고 해도, 그를 살리려는 황제가 만 명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만천하가 이문회를 저격하는 국면이라면, 아무리 대권을 잡은 황제여도 이문회를 지켜주지 못할 게다.

지금 같은 시국에는 여씨 토사부의 몇만 대군이 북상하는 그날이 바로 이문회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게다가 능지처참으로 사형을 당하겠지.”

이도진이 대답했다.

“도대체 왜일까요?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왜 이런 짓을 벌이냔 말이에요. 고작 두변 그놈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여천천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또 물었다.

이도진이 탄식했다.

“이 세상엔 정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영예와 존엄을 위해서라면, 불바다에도 뛰어들고, 칼산도 넘을 사람들 말이다.”

여천천이 소리를 빽 지르면서 화를 냈다.

“멍청한 것. 어디에도 쓸모없는 목숨을 버리겠다면 알아서 버리라지, 왜 우리 여씨 가문에 불똥을 튀기는 건데요?

그놈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고 해도 우리 여씨 가문의 체면은 돌아오지 않잖아요! 고작 두변 그놈 하나를 위해서라니. 지나가는 개보다도 못한 목숨 때문에 우리 여씨 가문을 욕보여?”

정말로 버르장머리 없는 말이었지만, 여천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보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놀라움 뒤에 이어지는 감정은 무궁무진한 분노였다.

여천천이 탁자 위를 세게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여씨 별원의 모든 무사들을 집합시켜라. 혈관음의 저택을 공격하러 간다. 내가 두변 그놈의 몸을 토막 내고, 뼈를 으스러트려야겠다. 그놈의 살로 고깃국을 만들고, 그놈의 머리를 익혀서 이문회 앞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리겠구나. 감히 우리 여씨 가문을, 나 여천천을 건드린 놈의 결말이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줘야겠다.”

“알겠습니다!”

강현이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현은 명사수이기도 하지만, 여씨 가문의 만호 군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태생이 거만했고, 나약한 대녕 제국을 멸시해왔다.

이문회가 광서 여씨 가문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는 얘기를 듣자, 강현은 크게 분노했다. 문산루의 장궤가 다름 아닌 자신의 친형이지 않은가.

그래서 강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이문회에게 갚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문회가 문산루를 공격했으니, 자신은 두변을 능지처참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이도진은 여천천을 막고자 했다. 두변을 죽이려면 정당한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가버린 여천천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강현이 여씨 가문의 무사들을 집합시키려고 급히 몸을 돌아설 때, 한 중년 사내가 다급하게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여 대인!”

중년 사내를 본 강현이 서둘러 허리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이 사람이 바로 염주부 여씨 별원의 주인이자, 여여해의 부친이 거둬들인 의자 중 한 명이자, 여여해의 의형제 여천남이었다.

광서에 위치한 여씨 가문의 요충지 두 곳 중, 모든 거래는 계림의 문산루에서 성사되고, 실질적인 금은 교환도 문산루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철, 소금, 무기, 곡식 등 진정한 물물 거래와 운반은 염주부 여씨 별원에서 이뤄졌다. 염주부가 항구와 가깝다 보니, 모든 물자가 이곳에서 해상으로 운반되는 것이다.

광서의 여씨 가문에서는 여천남이 제일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그 뒤를 잇는 자가 강라였다.

“소저를 뵙습니다.”

여천남이 여천천을 향해 예를 올렸다.

“당치도 않습니다. 천남 숙부는 손윗사람이시니,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천천이 답례했다.

여천남이 물었다.

“이문회가 문산루를 공격했고, 계림에 있는 여씨 가문 거점을 모조리 갈아엎었습니다. 소저께선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요?”

여천천이 대답했다.

“강현에게 별원 전체 무사를 집합시켜서 혈관음의 저택을 공격하러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두변의 살로 고깃국을 만들고, 머리를 익혀서 이문회 앞으로 보내버리라고 했고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천남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문회가 곧 도착할 겁니다. 그 전에, 이걸 보내왔습니다.” 여천남이 손에 쥐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순식간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상자 안에는 문산루의 장궤이자, 여여해의 심복인 강라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그것도 반으로 잘린 것을 간신히 실로 꿰맨 모양이었다.

실로 구역질 날 정도로 징그럽고 무서운 광경이었다.

강현이 눈시울이 찢어질 듯이 포효했다.

“이문회! 내가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강라는 그의 친형제였고, 둘 사이가 무척 좋았다.

“이문회가 계림 문산루를 공격했을 때가 언제입니까?”

이도진의 물음에 여천남이 대답했다.

“전서구에 의하면 밤이 되자마자 그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제 막 세 시진 반 정도가 지난 겁니다.”

여천천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고작 세 시진 반이 지났는데, 이문회가 강현의 머리를 계림에서 염주부까지 보냈다고요?”

계림에서 염주부까지의 거리는 족히 일천 리가 넘었다. 그런데 현대 시간으로 치면 예닐곱 시간 만에 머리를 계림에서 염주부까지 보낸 것이다.

여천남이 말했다.

“훈련된 독수리를 이용해서 운반한 겁니다. 지점 하나를 지날 때마다 독수리를 바꿔서 세 시진 만에 이걸 우리 앞으로 보낸 겁니다.”

여천남이 소매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서신도 한 장 있었습니다.”

“읽어주세요.”

여천천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내 아들 두변을 다치게 하다니. 그 죗값으로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의 모든 거점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여씨 가문의 사람을 몰살하겠다!’

여천남의 말이 끝나자, 실내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이문회가 송두리째 뽑아버리겠다고 한 곳이 단지 계림부뿐만이 아니라, 광서 행정지역의 다른 주부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해야 하지? 삼천 명? 사천 명?’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천천도 저도 모르게 치아가 떨려왔다. 이문회의 보복이 이토록 잔혹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독화살로 두변을 쏜 사람이 강현이라는 자던데, 그자를 내게 넘겨라. 내가 그놈의 피부를 벗겨버리고 사지를 찢어버려야겠으니.’

여천남이 계속해서 서신을 읽자, 강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꿈 깨라 그러십시오! 제가 지금 즉시 무사들을 이끌고 북상하여 이문회 그놈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여씨 별원의 주인인 여천남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어서 이문회의 서신을 읽었다.

‘강현을 내놓은 뒤에, 여천천은 동창으로 와서 속죄를 해야 한다. 만약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여씨 별원을 단숨에 폐허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별원에 있는 모든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서신을 다 읽은 여천남의 표정이 복잡했다.

강현은 귀까지 빨개져서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놈이 감히요! 이문회에게 간이 백 개가 있다고 해도 이곳 여씨 별원을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소저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거고요. 그 자식이 뭐라고 감히!”

여천남이 말했다.

“이문회가 문산루를 공격한 그 순간부터 이미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린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죽을 것도 이미 예감했겠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면, 못할 게 뭐 있겠느냐.”

바로 이때, 바깥 거리에서 낮은 굉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서 자세히 들어 보니, 그 소리는 떼를 지어서 몰려오는 발걸음 소리였다.

집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백성들은 새벽 4시에 이런 발걸음 소리와 갑옷과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몇몇은 몰래 창가로 다가가서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백성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완전무장한 상태의 동창 무사들이 질서정연한 대열로 빠르게 여씨 별원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광경이었다.

창가에 붙어 있던 백성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재빨리 이불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