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29화 (129/648)

제129장: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살육

반 시진 후.

삼천 명의 동창 무사가 여씨 별원을 빽빽하게 포위했다.

몇백 구 쇠뇌와 몇십 구 소형 투석기,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독유탄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여천남의 머리털이 비쭉 섰다.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문회가 진정 미친 게로구나. 투석기까지 쓸 생각을 하다니.”

창가에 선 이도진이 새카맣게 깔린 동창 무사들을 보면서 말했다.

“동창이 염주부에 이렇게 많은 무사를 가지고 있었나? 근처 주부의 모든 무사를 합친다고 해도 팔백 명이 다일 텐데?”

이도진의 추측이 맞았다. 동창 무사는 팔백 명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 이천여 명의 무사 중 팔백 명은 혈관음의 혈교방, 나머지 일천 오백 명은 진남공부의 무사들이었다.

이문회의 밀서와 군비 오십만 냥 은자를 받은 소공야와 공작 부인은 빠른 판단하에 호위무사들까지 모조리 끌어모아서 동창 무사의 갑옷을 입혀 보냈다.

이렇게 힘을 합친 무사들이 감쪽같이 동창 무사가 되어, 총 삼천 명이 넘는 수가 되었다.

목청이 큰 동창 무사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광서 동창 진무사 이문회 대인의 명령에 따라, 살인범 강현을 잡으러 왔다! 여천천, 여천남은 즉시 강현을 내놓으시오! 명령에 불복할 경우, 여씨 별원을 폐허로 만들고, 별원 내에 있는 모두를 죽일 것이오!

여씨 별원이 적국과 내통하여, 소금, 철 등의 불법 거래를 하였소. 이는 반역죄에 해당하므로, 별원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문을 열고 투항하시오! 명령에 불복할 경우, 즉시 처형될 것이오!”

삼천 명이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여씨 별원을 빈틈없이 포위하기엔 충분한 인원이었다.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자니, 여천천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이런 식의 치욕은 당한 적이 없었다.

여천천은 날이 밝는 대로 두변을 죽이러 가려고 했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동창 무사들에 의해서 별원 안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검마 이도진이 여천천을 데리고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순 있겠지만, 그건 도망치는 것과 다름이 없고,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일이었다.

여씨 별원의 주인인 여천남이 별원의 외벽 꼭대기로 올라가서 소리쳤다.

“이곳이 어딘지 알고들 이러는 것이냐! 이곳은 대녕 제국에 있는 여씨 토사부의 최고 기관이다. 감히 이곳을 포위하다니, 그쪽이야말로 반역을 일으키려는 것 아니냐!”

동창 무사들은 여천남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금 전에 외치던 호령을 거듭 외쳤다.

두변을 해친 범인 강현을 내놓고, 여천천에게 자수하라는 내용과 여씨 별원이 적국과 내통하였으니 즉시 문을 열고 투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몰살시키겠다는 내용의 호령이었다.

이때, 여씨 별원의 몇백 명 무사들이 활을 집어 들고 외벽 위로 올라가 방어진을 쳤다.

삼천 명의 동창 무사들은 방어진을 보고도 즉시 공격하지 않고, 포위만 한 상태로 멈춰있었다.

동창 무사들과 여씨 별원 무사들의 숨 막히는 대치가 시작되었다.

“이문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도진의 말에 여천남이 대꾸했다.

“그것참 다행이로군요. 우리와 동맹인 파벌들에게 지원 요청을 하겠습니다.” 잠시 뒤, 여씨 별원의 하늘 위로 다섯 개 특이한 색깔의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이건 최고 단계의 신호탄이었다. 모든 여씨 가문의 사람과 여씨 가문이 관리하는 파벌, 그리고 여씨 가문의 맹우는 이 신호탄을 보자마자 곧장 여씨 별원을 지원하러 오라는 뜻이었다.

새벽 5시, 여씨 별원의 신호탄을 본 사람들이 황급히 이 사실을 무사들에게 알렸다.

무사들이 하나둘씩 각지에서 무기를 들고 별원을 향해 달렸다.

여씨 가문 산하의 파벌들도 별원을 지원하기 위해 말과 무사들을 이끌고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또 두 시진이 흘렀고, 태양이 하늘을 훤히 비추기 시작했다.

삼천 명의 동창 무사들은 여전히 벌레 한 마리도 기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빽빽하게 별원을 포위하고 있었다.

목청이 큰 동창 무사들이 번갈아 가며 쉬지 않고 호령을 외쳤다.

별원 안에 있던 몇백 명의 무사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일 듯이 동창 무사들을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여씨 별원의 최고 단계 신호탄을 보고 달려온 지원 인력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별원 밖에 도착한 사람만 해도 족히 이삼 천 명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다들 동창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복면을 쓰고 있었다.

별원 안팎으로 다소 혼잡스러운 광경이 되었다.

삼천 명의 ‘동창 무사’가 별원을 포위하고 있었고, 이삼 천 명의 여씨 가문 산하의 파벌들이 무기를 쥐고 호시탐탐 동창 무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머릿수나 위치적으로 보았을 때, 동창 무사들이 반대로 포위당한 꼴이 되었다.

포위당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여씨 별원 안에 있던 여천천 등은 조금 전의 긴장감도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별원을 지원하러 달려온 무사들도 동창 무사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는지, 큰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동창 무사들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몇천 명의 동창 무사들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칼을 뽑지 않자, 이제는 이들이 겉으로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물러 터진 사람들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동창 무사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더니, 고작 이 정도가 다인가 보네.”

“오늘 이 몸이 동창 개 발싸개 놈들 몇을 죽여야겠다. 그래야 엄당 기세가 좀 꺾이지.”

“죽인 뒤에 아랫도리를 벗겨서 알 없는 남근 구경을 한번 해보자고.”

이 패거리 대부분이 무뢰배인지라, 전혀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는 동창 무사들을 무시하면서 온갖 저급한 욕설을 내뱉었다.

여천남이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고는 다시 외벽 위로 올라가서 큰소리로 외쳤다.

“동창들은 당장 물러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안팎으로 동시 공격을 할 것이고, 이곳이 당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오.

다섯을 셀 동안 물러나지 않는다면, 한 놈도 빠트리지 않고 모조리 죽일 것이오.”

“다섯!”

“넷!”

“셋!”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어지러운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몇십 리에 한 번씩 말을 바꿔 타면서, 장장 열세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광서 동창 진무사 이문회가 마침내 여씨 별원에 도착했다.

삼천여 명의 ‘동창 무사’들이 일제히 화끈 달아올라서는 말굽 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보았다.

드디어 우리들의 든든한 기둥이 도착하셨구나!

이문회는 말을 멈춰 세우기도 전에 우렁찬 목소리로 호령을 내렸다.

“공격하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라!”

“존명!”

삼천여 명의 동창 무사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화살에 불을 붙인 후 활시위를 당겼다.

슉, 슉, 슉.

동창 무사들이 쏘아낸 화살이 별원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졌다.

쿵, 쿵, 쿵.

몇십 대 투석기가 동시에 발사되었고, 묵직하고 거대한 돌덩이가 일제히 별원으로 내리꽂혔다.

이문회의 더욱 잔혹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살육이 이제 염주부에서도 시작되었다.

한편, 광서 동창 전 진무사 왕인은 밤사이에 계림을 떠나 항주로 향했다.

아직 허벅지 사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더는 계림부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항주까지 호위해주는 사람이 예닐곱 명밖에 없었지만, 이문회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아마 호위 한 명 없이라도 홀로 항주로 가야 했을 것이다.

마차에서 급히 상처를 수습한 뒤인지라, 왕인은 처음보다 통증이 덜 느껴졌다.

아직 자신이 당한 치욕스러운 일에 몸을 떨었지만, 항주에서 펼쳐질 더 밝은 미래에 희망을 걸었다. 항주 직조국의 제독 환관이라면, 3품에 달하는 고관이었다. 훗날 경성으로 돌아갈 날이 온다면, 어쩌면 사례감에 자리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래 왕인은 이번 인사이동에서 2선으로 물러난 뒤, 적시에 조용히 퇴직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반 계급이나 높은 제독 환관 직으로 승진했다. 제독 환관은 대녕 제국의 진정한 대환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인의 마음속에서 야망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어떻게 잘해 보면 사례감에서 한자리 꿰찰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다.

‘사례감이라. 사례감은 제국의 내각과 맞먹는 기관이지. 비홍(批紅: 내각 대신들이 먼저 상주서를 보고 어떻게 처리할지 의견을 써서 황제에게 올리면, 황제가 붉은 글씨로 비준 표시를 하는데, 몇 본 빼고 대부분의 비홍은 사례감 태감이 진행했다)의 권력이 있는 것이니, 사례감의 몇몇 대환관은 내상(內相)이라는 칭호까지 가지고 있고.’

“이문회, 네놈이 아무리 날뛰어도 나는 네놈 머리 위에서 널 내려다볼 것이다. 네놈이 뭘 해도 내 지위가 너보다 높아. 네놈이 감히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여씨 토사의 벌집을 건드리다니, 넌 죽은 목숨이다. 내 기필코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네놈을 찌르는 그 수많은 칼 중 하나가 내 칼일 것이고, 내가 찌른 게 가장 치명타가 될 것이야!”

마차 안에서 누워있던 왕인은 아픈 것도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마차 안에서 이문회를 공격하는 상주서를 쓰기 시작했고, 장장 몇천 자에 달하는 상주서를 완성했다. 상주서를 통해 이문회는 불순한 마음을 품었고, 권력을 밝히며, 목적 달성을 위해 사람 마음을 매수하고, 여씨 토사를 자극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한 뒤, 혼란을 틈타 광서에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려 하는 자가 되었다.

왕인은 자신이 쓴 상주서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칼이 되어 이문회를 찌를 것이고, 결국 그가 피를 뚝뚝 흘리다가 죽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왕인이 쓴 상주서는 실로 훌륭했다. 이문회가 재물을 밝힌다는 말 한마디 없이도, 그가 사람의 마음을 매수하고 권력을 탈취하려는 불순한 마음과 여씨 토사를 자극하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을 아주 예리하게 잘 풀어냈다.

이문회가 직접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그가 제국에 흑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숨겨놓았다.

왕인이 자신이 쓴 상주서에 한창 심취해 있을 때, 마차가 돌연 멈춰 섰다.

“멈추긴 왜 멈춰? 어서 가지 못할까!”

왕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왕 공공, 더 갈 수 없습니다.”

밖에 있던 심복 무사가 대답했다.

왕인이 마차 휘장을 걷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면을 쓴 몇십 명의 동창 무사들이 마차의 앞길과 퇴로를 막고 있었고, 산속에서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누는 십여 명의 궁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왕인, 이문회 대인께서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동창 무사 수령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인은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문회가 내게 치욕스러움을 안겨줄 수는 있어도, 나를 죽이진 못할 것이다. 나는 직조국의 제독 환관, 3품 고관이다!”

동창 무사 수령이 말했다.

“이 하늘 아래에 이문회 대인께서 하실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죽여라.”

명령이 떨어지자, 십여 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슉, 슉, 슉, 슉!

왕인을 호송하던 일곱 명의 무사들이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수십 명의 동창 무사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 동창 무사들의 수령은 적어도 3품 무사 급으로, 마차에서 왕인을 단번에 끌어내서 바닥에 눌렀다.

“왕 공공, 죽기 전에 이문회 주인어른께 남기실 말씀 있으십니까?”

동창 무사 수령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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