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34화 (134/648)

134장. 하늘의 뜻

두변이 나타남과 동시에 여씨 별원의 전투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모든 사람의 관심은 두변과 여천천의 결전으로 옮겨갔다.

결국 바다로 나간 배는 두 사람이 탄 배 하나가 아니라, 여러 대의 배였다.

영종오, 축무애, 이도진, 소공야 송옥견 등 몇백 명이 두 사람을 따라서 배를 타고 출항했다.

비록 결전을 치르는 두 사람 중 한 명의 무공 실력이 매우 형편없고 입문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몇백 명의 사람은 두 사람의 결전의 증인이 되고자 따라나선 것이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나가면서도 두변이 왜 결전을 신청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 의문에 대한 단 하나의 답이 있었다.

의부 이문회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이로구나.

두변은 이제야 막 무공에 입문한 햇병아리였고, 제대로 된 검법 하나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천천은 서남에서 유명한 천재 검객으로, 2년 전에는 열여섯도 채 되지 않은 나이로 7품 무사를 돌파했다.

무공으로 본다면, 두변 열 명이 와도 여천천의 손가락 하나만 못했다.

물론 두변이 여천천을 기마술로 이긴 것에 대해서는 경악했다.

하지만 기마술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정신력 기마술을 익혔기 때문이고, 이건 순전히 대종사 영종오 덕분이지 않은가.

하지만 무공과 현기라는 것은 기마술처럼 하루 이틀 연습한다고 해서 실력이 증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상 두변의 무공이 여천천을 능가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건 불가능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오늘 결전의 마지막을 눈감고도 예상할 수 있었다.

두변은 눈 깜빡할 사이에 여천천의 손에 죽을 것이고, 다른 결말은 결단코 없었다.

이미 정해진 결말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문회의 아들 사랑이 태산과도 같고, 두변의 효심이 바다와도 같다고 감탄했다.

의자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려는 아버지와 의부를 위해 목숨을 희생할 아들이라니!

하지만 두 사람의 절절한 부애와 효심은 축무애와 여천천, 이도진 등까지 감동시킬 수는 없었다.

그들은 두변의 행동에 대해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멍청한 것.’

‘저런 돌대가리.’

두변과 여천천 두 사람은 한 배를 타고 오지도로 향하고 있었고, 배를 몰고 있는 사람은 혈관음이었다.

혈관음도 두변이 왜 여천천에게 결전을 신청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마 대결 이후로 혈관음은 두변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믿고 따르기로 했다. 물론 속으로는 두변이 이번 결전에서 이길 가능성은 추호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두변이 어떻게 매번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면 무조건적으로 믿기로 했다.

오지도는 염주항에서 190리 떨어져 있어서, 배를 타고 가면 세 시진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면 때마침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을 때였다.

몇십 척의 배가 소리 없이 바다 위를 가르고 있었고, 심각한 분위기에 그 누구도 입을 열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두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씻은 듯 맑기만 했다.

애석하게도 천둥 번개라고는 반 줄기도 기대할 수 없는 날씨였다.

같은 시각, 이문회가 광서 행정구역의 모든 여씨 토사의 거점을 뿌리째 뽑고, 여씨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소식이 전서구를 통해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어젯밤부터 시작된 이문회의 대살육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어서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전서구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 소식은 바로 이문회가 전 태자소부이자 전 내각 대학사인 계동앙을 발로 밟아서 죽였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은 사건이 발생한 후로 불과 열두 시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폭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 소식이 퍼지는 속도가 몹시도 비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엄당 고위 간부의 귀에 들어갔다.

이문회가 자신의 상사이자, 신임 항주 직조국 제독 환관 왕인을 납치하여 살해한 뒤, 그의 시신을 처참히 훼손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이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벼락같은 소식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제국 전체가 들썩였다.

이문회의 모든 행동이 폭탄이 되어, 썩고 썩은 고인 물에 하나씩 떨어졌다.

시커먼 고인 물에 폭탄이 떨어지니, 한마디로 제국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수준의 파급력이었다.

왜곡된 소식이 어떻게 퍼지든, 지금의 이문회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두변과 여천천의 결투만 남아 있었다.

이문회는 혈관음과 마찬가지로, 두변이 어떻게 매번 기이한 일들을 해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변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배가 바다 위를 가로지를 동안, 태양은 서서히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대략 세 시진 뒤, 두변의 심장이 덜컹했다.

그의 시야에 오지도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회오리 모양의 먹구름이 차츰 모이고 있었다.

아직 햇빛을 완전히 가릴 정도의 먹구름은 아니지만, 이미 바다 위로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태양은 아직도 바다 위에 떠 있었고, 약 30분이 더 지나야 수평선 가까이 질 듯했다. 그리고 태양이 수평선에 정확히 반쯤 가려질 때, 번개가 내리칠 것이다.

30분 뒤.

붉은 석양이 바다를 비추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금색으로 수놓은 비단이 두른 듯하고, 하늘 가장자리는 온통 불에 타는 듯 붉었다.

수십 척의 배가 오지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20년 전, 영종오와 이도진이 무예를 겨루던 곳이었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이도진이 패배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이 바로 두 사람이 세 번째 대결을 펼치는 날이었지만, 오늘은 두 사람의 제자가 이곳에서 결투를 펼칠 것이다.

여천천이 오지도를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저 위에서 싸우기 싫어.”

바로 옆 배에 타고 있던 이도진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

여천천이 대답했다.

“이제 만조 시간인데, 그러면 섬이 곧 물에 잠기잖아요. 제 치마가 얼마짜리 치마인데, 고작 두변 한 놈 죽이겠다고 제 귀한 치마를 젖게 해선 안 되죠.”

여천천이야 당연히 두변의 목숨이 제 치맛자락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했다.

여천천은 혈관음의 배 갑판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어서 그녀의 예쁜 사슴가죽 신발 밑창이 다 젖은 것부터 몹시 심기가 불편했다.

여천천은 아름다운 눈자위를 굴리면서 결투를 펼칠 만한 예쁜 곳을 물색했다. 이어서 그녀는 맑은 하늘 위에 회오리 모양으로 모여 있는 먹구름을 발견했다.

먹구름이 크진 않았지만 몹시 낮게 있던 터라, ‘악마의 문’ 같은 느낌을 주지 않은가!

독특한 광경에 흥미가 생긴 여천천이 먹구름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배를 몰아서 저쪽으로 가. 회오리 먹구름 아래서 결투해야겠어.”

여천천은 뭐든 제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인이었다.

여천천의 말을 들은 두변은 속으로 감탄했다.

‘오늘의 결투는 정말로 하늘의 뜻이로구나. 여천천, 넌 바로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여천천이 이런 식으로 구는 게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여천천은 결병증이 있을 정도로 옷을 무척 아끼고, 자신의 용모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치맛자락이 물에 젖는 게 싫었을 것이다.

만약 여씨 가문의 무사가 그녀를 대신해서 목숨을 잃을 때, 그 무사의 피가 여천천의 치마에 한 방울이라도 튄다면, 여천천은 감동은커녕 예쁜 치마에 피를 튀겼다고 성질을 낼 사람이었다.

강현이 죽을 때도 그녀는 전혀 속상해하지 않았다. 여천천은 강현이 제발 죽여달라고 비는 행동이 여씨 가문의 체면을 떨어트린 것이라고 여겨서 분노하기만 했을 뿐이다.

혈관음이 말없이 두변을 쳐다보면서 그의 의견을 물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관음이 낮게 떠 있는 먹구름 아래로 배를 몰았다.

몇 분 뒤.

혈관음의 배가 먹구름 아래서 닻을 내렸다.

닻을 내릴 무렵, 얕게 모여 있던 먹구름이 점점 더 두꺼워지면서 아래에 있는 배를 집어삼킬 듯이 낮게 깔렸다.

이때, 태양은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지금부터 번개가 내리치기까지 채 10분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두변이 혈관음에게 말했다.

“지금은 우선 다른 배에 가 있어요. 결투가 끝난 뒤에 다시 와요.”

여천천의 성격대로라면, 이따가 시체나 거두러 오라는 핀잔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여천천은 아예 두변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싫다는 듯이 아예 두 사람을 등지고 서 있었다.

혈관음이 두변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확실해?”

두변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요.” 혈관음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돛을 올리고 배에 있던 모든 수하와 함께 이문회가 탄 배로 옮겨갔다.

“엄당의 개자식, 시간 질질 끌지 말고 어서 죽기나 해.”

여천천이 말했다.

두변은 여천천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갑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에 눈을 감았다.

“이제 와서 빌기엔 좀 늦지 않아? 온 세상의 천지신령이 죄다 와도 네놈 목숨을 구해줄 수 없어.”

여천천이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두변은 여전히 여천천의 말을 무시한 채 정말로 기도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읊조렸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무언가를 읊조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면서 돌고래가 울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은 찰나이며, 그 찰나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니까.

두변은 지금 특수 제작된 절연 옷으로 온몸을 거의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얼추 된 듯하자, 두변은 몸을 일으켜서 절연 장갑을 끼고 나무로 만든 절연 모자를 꺼내 머리에 썼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절연체가 되었다.

여천천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의아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결투는 이도진과 영종오의 명목으로 진행하는 것이니, 두 대종사가 시작을 알려야만 결투가 시작된다.

이도진이 물었다.

“영 종사, 이제 시작해도 되겠소?”

영종오는 대답 없이 서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도진이 냉소했다.

“영 종사, 다시는 동쪽으로 뜰 수 없는 해를 보며 감상에 젖은 거요? 꼭 저무는 해가 자기 자신 같아서 말이오.”

‘멍청한 것!’

영종오가 노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속으로 대꾸했다.

미리 두변의 말을 들은 영종오는 결투가 시작되어야 할 시기를 잘 알고 있었다.

이도진이 그를 재촉했다.

“영 종사, 곧 해가 질 텐데. 시간 끌지 마시오.”

이때, 두변이 한 손으로는 엄청난 자력을 가진 현철검을 꺼냈고, 다른 한 손으로 비분 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 그런 다음, 몸을 푸는 것처럼 현철검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 동작은 검법이 아니라 춤을 추는 것만 같아서, 현철검의 검 끝이 바닥으로 향한 채 계속해서 허공에다 원을 그려냈다.

선와 검법의 시작이었다.

두변의 검 끝에서 서서히 회오리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비금 가루를 천천히 날리자, 큰바람 없이도 비금 가루가 공중에 흩어졌다.

게다가 회오리 에너지에 자력이 있다 보니, 비금 가루가 자연스럽게 회오리 에너지를 따라 돌기 시작했다.

회오리 진이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높아졌다.

회오리 진이 눈 깜빡할 사이에 20~30미터 높이에 2미터 직경 크기가 되면서, 두변과 여천천을 감쌀 정도가 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변이 뭘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뭘 하는 거야? 결투 전에 하는 의식 같은 건가?’

바로 그때, 오지도 방향에서 돌고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3초가 지나면 번개가 내리칠 것이라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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