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장. 여천천의 죽음
모든 사람이 의아해하는 찰나, 이도진의 표정이 급변했다. 회오리 기운을 느낀 것이다.
“결투를 시작한다. 여천천, 두변에게서 멀리 떨어져! 저놈을 일격에 죽여라!”
여천천도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타닷!
여천천은 이도진의 말을 듣자마자 두변에게서 2~3미터 떨어졌다. 두변이 만들어 낸 공간 도체, 회오리 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두변을 향해 다시 돌진하면서 검기를 내뿜었다.
날카로운 검기가 총알처럼 빠르게 두변을 향해 날아왔다.
‘이도진, 저 귀신같이 교활한 것!’
영종오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여천천이 두변에게서 멀어지는 찰나, 두변은 놀랄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선와 검법을 변형했다.
그는 여천천이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그녀를 향해 에너지 자력을 쏘았다.
두변은 자신이 어떻게 회오리 진에서 에너지 자력을 끌어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회오리 진은 그대로 에너지 자력을 타고 일직선으로 변해서 물러나려는 여천천을 번개처럼 쫓아갔다.
이와 동시에.
파지지직!
하늘에 떠 있던 소용돌이 모양의 먹구름에서 갑자기 크지 않은 번개 한 줄기가 내리쳤다.
그 뒤로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갔다.
비금 가루가 가득 섞인 회오리 진이 번개를 흡수하면서 거대한 전도체가 되었다. 번개 한 줄기가 거대한 번개 에너지가 되어 두변이 쏘아낸 에너지 자력의 궤도를 따라갔다.
번개 에너지는 순식간에 여천천의 검 끝으로 옮겨갔고, 곧바로 여천천의 오른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엄청난 전류가 여천천의 몸속으로 침투했다.
게다가 혈관음의 배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고 여천천의 신발 밑창도 젖어 있어서 발바닥에도 전류가 흘렀다.
하지만 두변은 절연체로 온몸을 꽁꽁 감싼 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전류가 여천천의 몸을 통해 배 전체와 바다까지 흘러 들어갔다. 여천천이 하늘과 바다를 잇는 하나의 전도체가 된 것이다.
파지지지직!
여천천의 팔에 순식간에 핏자국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한 채로 미친 듯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때, 여천천이 뿜어낸 검기가 두변의 가슴팍을 뚫고 폐를 찔렀다.
두변은 폐에 꽂힌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검기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혼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에너지를 다스리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여천천이 전류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틈을 타서 자신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 검을 찔렀다.
푸슉.
두변의 검이 그대로 여천천의 심장을 찔렀다.
두변이 악착같이 힘을 쏟아낸 터라, 그의 검은 여천천의 가슴을 뚫고 그녀를 갑판 바닥 위로 꽂아버렸다.
숨 막힐듯한 긴장감이 바다 위를 감쌌다.
사람들은 눈가가 찢어질 정도로 눈을 휘둥그레 떴고,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다.
결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끝이 나버렸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결투가 단 1초 만에 끝났고,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목숨을 잃은 사람은 두변이 아니라 여천천이었다.
두변은 여천천이 번개를 맞은 틈을 타서 일격에 죽여버렸다.
정말로 천둥소리에 귀를 막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축무애, 이도진은 그 광경에 솜털이 바짝 서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두 사람의 머릿속은 백지 그 자체가 되어버렸고,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이 결투는 여천천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이 두변을 죽일 수 있는 결투였는데, 도리어 두변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문회, 혈관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흘렀다.
이문회는 두변이 여천천을 죽인 것을 보고는 팽팽하게 긴장되어있던 신경이 단번에 느슨해진 탓에 하마터면 혼절할 뻔했다. 두피가 저릿해질 만큼 짜릿한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미래 엄당의 희망이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켰고 또 한 번 죽음의 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심지어 이번 기적은 하늘의 힘까지 빌려서 이뤄낸 것이다. 그러니 이문회로서는 더더욱 두변이 하늘이 내려주신 천재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영종오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두변과 함께 이 장면을 몇 번이고 예행 연습했지만(물론 말뿐이지만), 실제로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놀라움과 감탄에 입이 떡 벌어질 뿐이었다.
“정말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구나. 저 아이에게는 필시 대운이 따르는 것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알 길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우연히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두변이 신출귀몰한 법술 같은 걸 써서, 하늘의 번개를 몰아와서 결투에서 이긴 건가?’
두변은 갑판 위에 그대로 꽂힌 여천천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여천천의 아름다운 얼굴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마치 두변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였다.
여천천은 아마 살면서 처음으로 두변을 제대로 보려고 했겠지만, 아쉽게도 죽기 직전까지 두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천천의 두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끝내 영영 빛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
“드디어 네년을 죽였구나.”
두변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그의 가슴팍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두변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서 여천천의 시신 위로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두변의 얼굴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여천천의 오른쪽 가슴이었다.
이문회, 혈관음, 영종오와 이도진이 재빨리 갑판 위로 뛰어 올라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영종오는 두변을 품에 일으켜 안았고, 이도진은 여천천의 시신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두 눈을 공허하게 뜬 채로 숨을 거둔 여천천의 모습에 이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는 말밖에.
다행히 두변의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여천천의 검기가 그의 가슴을 뚫은 건 맞지만, 심장이나 폐를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여천천의 검기가 그의 몸을 뚫을 때, 선와 검법을 막 마쳤던 두변이 아주 살짝 몸을 틀면서 그녀의 치명적인 검기를 피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피한 반 촌 덕분에 살아남은 셈이었다.
여천천은 두변만큼 운이 좋지는 않았다. 그녀는 번개에 맞은 뒤로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고, 정확히 심장을 노린 두변의 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변이 가볍게 다친 건 아니었다.
여천천의 검기는 그녀의 성격만큼 포악한지라, 두변의 가슴팍을 뚫은 검기는 그의 오장육부에 충격을 주었다. 그로 인해서 두변의 모든 장기에서 피가 났고,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가엾은 영종오 대종사는 또 아픈 몸을 이끌고 두변을 위해 연단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는 줄곧 자유를 꿈꿔왔지만, 무슨 영문에서인지 점점 더 많은 걱정과 함께 아직까지도 원하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혼수상태인 두변의 머릿속에서 기이한 불빛이 나타났다.
- 여천천을 죽여라 임무 성공. 양기 10포인트 증가, 총 25포인트 달성.
- 십만 대군 프로세스 활성화 성공.
솔직히 말해서 두변은 양기 포인트가 증가할 때마다 신체의 변화를 이미 느끼고 있었다. 양기 포인트가 상승하면 할수록, 그의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 번은 그의 다리 사이가 어떤 여인들을 향해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었다.
‘그나저나, 십만 대군 프로세스가 도대체 뭔데?’
여천천을 죽이는 임무를 성공하자 십만 대군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가동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천천을 죽인 것과 십만 대군 프로세스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두변은 깊은 혼수상태지만, 의식 깊은 곳에서 기이한 불빛과 교감할 수 있었다.
‘십만 대군 프로세스 활성화라는 게, 제가 십만 대군을 얻는다는 뜻입니까?’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 그렇다.
순간 두변은 감격해서 생각했다.
진남공도 십만 대군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그가 직접 통솔하는 오만 대군도 조정 직속이지, 그가 사유한 군대가 아니고.
십만 대군이라니. 동창 주인이 되는 것보다 더 간지 나고 강하잖아!
두변이 물었다.
‘여천천을 죽인 것과 십만 대군을 얻는 게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 말해줄 수 없다.
‘그럼 십만 대군 프로세스라는 게, 얼마나 진행된 겁니까?’
- 활성화 성공 후, 10퍼센트 달성했다.
‘어떻게 해야 그 프로세스를 더 빨리할 수 있죠?’
- 관련된 임무를 활성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임무들을 활성화하는 조건은 네 선택이고, 네 미래의 궤적에 따른다.
두변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혹시 그쪽은 엄청 엄청 강하고 고도로 발달된 양자(量子) 컴퓨터 그런 겁니까? 그래서 이 꿈속 세계에서 내 뇌 기능을 열 배나 강화시키고, 시간을 몇십 배로 늘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예지하잖아요. 단순한 예지가 아니라, 아주 복잡하고 정밀한 계산을 통해서 얻어낸 예지요.’
- 말해줄 수 없다.
‘아니, 도대체 그쪽이 나를 이 세계로 던져놓은 이유가 뭡니까? 조금만이라도 알려줄 수 없다는 겁니까?’
- 말해줄 수 없다.
두변이 혼수상태에 빠진 기간 동안, 온 제국은 거대한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들썩였다.
요 며칠간, 이문회와 관련된 소식이 쉴 새 없이 제국 곳곳에 퍼졌다.
‘이문회가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을 밟아 죽였고, 항주 직조국 제독 환관 왕인을 납치하여 살해했다!’
이 소식은 무수히 많은 서생과 엄당 당원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문회를 탄핵하는 상주서에 이어서, 동창의 주인인 이연정까지 탄핵해야 한다는 상주서가 빗발쳤다.
수백 통으로 시작한 상주서는 금세 수천 통이 되었고, 그 많은 양의 상주서가 모조리 황궁의 문을 뚫고 황제의 앞에 도착했다.
꼭 사전에 상의라도 해둔 것처럼, 제국의 모든 행정구역과 주부에서 상주서를 올릴 수 있는 문관이란 문관이 죄다 탄핵 상주서를 올렸다.
그리고 따로 상주서를 올릴 권한이 없는 관리들은 몇십 명이 연대 서명하여 상주서를 올렸다.
아직 관리가 되지 못한 서생들은 연합하여 혈서를 쓰고, 직접 황궁까지 찾아가 혈서를 올렸다.
황궁에서는 그렇게 수만 명 서생이 쓴 몇백 통의 혈서를 받아야 했다.
만천하가 이문회를 공격하고, 동창을 공격했다.
제국이 이토록 들썩일 만한 일이 얼마 만일까. 무수히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고 앞다퉈 이문회를 사지로 내몰았고, 동창 주인인 이연정까지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폭풍전야가 다가오고 있었고, 거대한 포위망이 이문회를 서서히 옥죄었다.
하지만 황궁 안에 앉아 있는 황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오는 와중에도 광서 동창 진무사의 업무는 쉴 새가 없었고, 여전히 빠르고 정확하게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이문회는 아예 진무사 관아를 혈관음의 저택으로 옮겨버렸다.
그는 하루의 절반을 공무 처리에 썼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 동안에는 두변의 곁을 지켰다.
꼬박 아흐레를 혼수상태로 보낸 두변이 드디어 깨어났다.
두변이 눈을 뜨자마자 본 사람은 바로 이문회였다.
이문회는 얼굴이 거의 반쪽이 될 정도로 수척해져서는, 침상 옆으로 끌어다 둔 책상에 앉아서 분주히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는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오십만 냥 은자를 진남공 군영에 보냈다.
이십여 일의 긴 행군 끝에, 진남공의 십만 대군이 안남 왕국에 도착했고, 반군과의 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때 이문회가 보낸 오십만 냥 은자는 진남공에게는 설중송탄(雪中送炭)처럼 귀한 것이었다.
이문회는 아흐레 동안 매일 두 시진도 채 자지 못했다. 그의 눈 밑은 시꺼멓다 못해 깊게 파였고,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문회는 지금의 일분일초가 너무도 소중했다. 그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당장 모든 일을 처리하고 싶었고, 잠을 청하는 게 죄를 짓는 것만큼 죄책감이 들었다.
“의부, 이제 가서 눈 좀 붙이세요.”
두변이 말했다.
이문회가 뻐근한 고개를 들고 두변을 향해 활짝 웃었다.
“깨어났구나.”
두변이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오장육부가 많이 상해서, 영종오 대종사는 좀더 빠른 회복을 위해서 그가 며칠을 더 푹 잘 수 있도록 약을 만들었다.
사실상 며칠 전부터 두변의 호흡과 맥박은 평소대로 돌아왔기에, 이문회도 그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문회는 손에 쥔 공문을 마저 처리한 뒤, 두변을 향해 엄지를 척 올렸다.
“내 아들이 최고구나.”
두변이 겸연쩍게 웃었다.
이문회가 말했다.
“아, 네가 해야 할 것이 있더구나. 혈관음 낭자가 너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네가 이렇게 아무런 입장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두변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