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37화 (137/648)

137장. 경성으로 압송하라

다음날, 두변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목욕을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향했다.

아직도 탁자 위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이문회는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어떤 공문들은 꼭 그의 손을 거쳐야만 하기에, 시간에 쫓기듯이 쉴 새 없이 공문을 확인하고 서명했다.

“의부, 이제 주무셔야겠습니다.”

두변이 이문회의 붓과 공문을 빼앗으려고 다가갔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잠깐만, 잠깐이면 돼.”

이문회가 조심스럽게 두변을 달래듯이 말했다.

두변은 이문회 옆에 서서 그가 손에 쥔 공문을 덮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공문을 밖에 서 있던 광서 동창 주부에게 직접 전달했다.

두변이 이문회를 재촉했다.

“아침을 드신 뒤에 바로 주무시러 가세요.”

“오냐. 아침 먹자꾸나. 먹은 뒤에 자러 가야지. 그래.”

어찌나 오래 앉아 있었던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던 이문회가 살짝 몸을 휘청였다.

두변은 굳이 이문회를 부축하지 않았다. 아직 젊은 그가 남이 부축해주는 걸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탁자에 앉아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한 사람당 삶은 달걀 하나, 죽 한 그릇, 순두부와 절임 반찬 한 접시가 전부였다.

이문회가 달걀 하나를 먼저 까서 그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달걀을 깐 뒤에 다른 생각을 하면서 달걀을 한입에 넣었다.

“쿨럭, 쿨럭.”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던 이문회가 한입에 넣은 달걀 때문에 사레들려서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연신 기침을 해댔다.

두변이 서둘러 이문회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따뜻한 두유를 건넸다.

“음식 드실 때 다른 생각 하시면 어떡해요.”

두변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문회가 두유를 마시면서 노른자를 간신히 삼켰다. 그리고는 두변의 핀잔에 민망해져서 살짝 웃었다.

쾅!

갑자기 방문이 그대로 열렸다.

기린포(麒麟袍: 조정 관리의 궁복)를 입은 환관이 몇십 명 정예 무사들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은 이문회보다 반 급 정도 더 높아 보이는 3품 환관이었다.

“명을 받들라.”

이문회가 환관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명하노니, 이문회의 광서 환관 학원 산장직과 광서 동창 진무사직을 면한다. 이문회는 즉시 체포에 응하고, 경성으로 와서 심문을 받도록. 이상.”

두변의 머리가 순식간에 거의 터질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문회는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한 사람처럼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아흐레 내내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공무를 수행했다. 자신이 언제 경성에 긴급 연행될지 모르니, 일분일초라도 쪼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문회, 넌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더군.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을 발로 밟아 죽이고, 상사이자 신임 항주 직조국 제독 환관 왕인을 죽였다고?

게다가 광서에 있던 여씨 토사 몇천 명을 한 번에 죽이지 않았나. 이 시기에 여씨 토사를 건드린다는 건, 서남에 있는 조정의 기둥을 뽑는 것과도 같거늘. 자칫하면 여씨 토사의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환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넌 몇백 년이래, 가장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저질렀더군. 이 일 때문에 조정이 얼마나 소란스럽고, 제국이 충격에 빠졌는지 알고 있나? 너를 능지처참해서 죽이라는 내용의 상주서가 매일 몇천 통씩 황궁으로 쏟아져 오고, 몇백 통의 혈서가 폐하의 눈앞에 던져지고 있다. 북쪽, 서쪽, 동쪽의 십몇만 대군이 자네 때문에 파업을 했고, 경성 태학과 국자감의 학생들도 수업을 불참하면서 너를 죽여달라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

그리고 궁문 앞에는 매일 수천 명의 서생이 무릎을 꿇고 폐하께 자네를 하루빨리 국법으로 다스려달라고 농성을 벌이고 있고.

남경, 북경에서 벌써 수십 명의 서생이 혈서를 쓴 뒤에 자결했다. 전 태자 소부이자 대학사였던 계동앙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이유로 말이야. 산서, 협서, 하남 등 지역에서는 서생들이 동창의 관아를 포위하기까지 했다는군. 각 성의 총독과 순무, 변관의 장수들까지 경성으로 들어와서 폐하께 너를 처분해달라는 청을 올리고 있단 말이다.

동창 대도독 이연정도 이 일에 연루가 되어 있으니, 널 지켜줄 겨를이 없을 것이야.”

환관이 표독한 눈빛으로 이문회를 노려보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놈 때문에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 황제 폐하께서 이 상황을 더는 못 버티고 계시니, 네놈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숨도 쉬지 않고 이문회를 질책하는 3품 환관은 직예성 어마감 제독 환관 정능이었다. 이 사람은 이문회와 같이 학원을 다닌 이문회의 사형이자 적수이며, 이문회에게 패했던 사람이었다.

정능의 품급이 이문회보다 반 급 높았지만, 어마감의 실권은 동창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과거에 이연정의 총애를 받고자 경쟁하던 시기, 정능은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여주려고 했던 반면, 이문회는 담담하기만 할 뿐 한 번도 먼저 나서서 이연정에게 아부를 떨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연정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실력도 비슷한 정능 대신 이문회를 골랐다. 이 일로 정능이 이문회를 몹시 시기하게 되었음은 분명했다.

만약 왕인이 살아 있다면, 지금 정능의 얼굴을 알아봤을 것이다.

이자가 바로 사례감 우두머리의 심복이자, 동창 사람으로 변장해서 왕인을 죽인 사람이었다.

“신, 명 받들겠습니다.”

이문회가 공경한 태도로 성지를 받았다.

이문회는 자신을 칭할 때, 환관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노비’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신하들이 쓰는 ‘신(臣)’이라는 호칭을 썼다.

정능이 무사들에게 손짓했다.

“여봐라. 이문회 공공의 손발에 족쇄를 채우고, 함거(檻車: 죄인을 호송하는 데 쓰던 수레)에 태워서 경성으로 압송하라.”

이문회는 무사들이 자신의 손목에 족쇄를 편하게 두를 수 있도록 순순히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두변은 이 상황에서 이문회를 구하기 위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문회, 이번에는 아무도 너를 구할 수 없다. 네 의부인 이연정 대인도, 폐하께서도 너를 구할 수 없어.”

정능이 쐐기 박듯이 말하고는 두변에게 시선을 돌려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이 젊은이가 바로 네가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리게 한 그 의자 맞는가?

여봐라. 이번 사건의 공범이니, 두변도 체포하여 압송한다!”

몇몇 무사들이 쇠사슬과 족쇄를 들고 두변에게 다가갔다.

이문회가 격노하면서 호통쳤다.

“누가 감히!”

이문회의 호통과 함께 방 안에서 엄청난 기운의 현기가 폭탄의 충격파처럼 세차게 터졌다.

뒤이어 무사들의 어깨가 짓눌릴 정도로 현기를 내뿜으면서 이문회가 천둥 같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누구든 내 의자의 털끝 한 가닥이라도 건드렸다간, 그놈의 양팔을 잘라버릴 것이다! 감히 내 의자를 체포하는 자가 있다면, 내 그놈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토막 낼 것이고, 그놈의 부모, 형제, 자매, 가문의 구족(九族)을 멸할 것이다!”

계림부, 광서 환관 학원.

전지 환관이 성지를 펼치고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황제가 명하노라. 이문회의 광서 환관 학원 산장직을 면하고, 왕굉의 광동 환관 학원 산장직을 면한다. 왕굉을 광서 염운사(鹽運使: 소금 운반을 책임지는 관리)로 봉하고 광서 환관 학원 산장을 겸임하게 한다.”

왕굉이 큰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노비 왕굉, 명 받들겠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환관 학원 부산장 낭정도 왕굉 옆에서 큰절을 올렸다. 그는 속으로 통쾌하기도 했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낭정이 통쾌한 이유는 이문회가 드디어 끝장났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말이지, 지금까지도 이문회가 한 미친 짓이 믿기지 않았다. 제국에서 감히 여씨 토사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예고도 없이 바로 몇천 명의 여씨 가문 사람을 죽이고 광서의 모든 거점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니. 게다가 그 이유가 오로지 두변을 위해서라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를 위해서 이런 짓을 한다고?

참나. 이문회와 두변 간의 부자의 정이 아무리 태산과도 같다고 해도 너무 멍청한 짓을 했어. 쯧쯧.

사실 워낙 편협한 낭정으로서는 이문회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두변뿐만 아니라 황제를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여씨 가문의 상당 부분의 불법 무역은 모두 광서 염주항에서 이뤄졌다. 그들은 제국에다 큰 관을 꼽고 미친 듯이 피를 빨아 먹으면서 소금과 철강 같은 중요한 물자를 대량으로 적국에 팔아왔다.

매년 셀 수 없는 양의 철강이 건로, 북달에 넘어갔고, 그 철강은 다시 적국의 탄탄한 갑옷과 무기로 만들어져 제국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여씨 가문이 염주항에서 벌어들인 은자가 몇백만 냥이 넘었고, 그 은자는 다시 여씨 가문 군사력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니 광서에 있는 여씨 가문의 거점을 제거하지 않으면, 여씨 가문은 제국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날로 성장할 것이고, 그러다 어느 날 분명히 반란을 일으켜서 서남부를 통일하려고 할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대녕 제국은 백만 평이 넘는 땅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제국의 고위직 중에서 여씨 가문의 불법 무역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문관 집단과 무장 집단에서는 이를 알면서도 방관했고, 심지어 여씨 가문에게 빌붙어서 매년 은자를 조공 받고 여씨 가문과 함께 대녕 제국의 피를 빨아먹었다.

엄당 집단도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었다. 왕인이 매년 여씨 가문에게서 받는 은자만 해도 수십만 냥이었다. 광서 시박사에도 빈틈이 있던 터라, 진남공의 해상세력을 운운하면서 여씨 가문의 불법 무역을 수수방관하며 크게 편의를 봐줬다.

이 일 때문에 화가 난 황제는 몇 번이나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화를 냈었다. 하지만 황궁 살림이 빠듯한지라, 황제는 다시 자신이 던졌던 물건을 직접 주워다 다시 닦아서 쓸 지경이었다.

황제가 이 일을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그 누구도 여씨 토사를 건드릴 수 없었고, 황제도 여씨 가문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사해봤자 결과는 뻔했다. 여씨 토사와 엮여 있는 그 누구도 이실직고하지 않을 것이기에 조사 결과는 깨끗하기만 할 것이고, 도리어 황제의 그런 행동이 제국의 토사들을 섭섭하게 만들 것이며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다.

그러니 여씨 가문의 사람을 죽이고 광서 거점을 제거하는 일을 황제가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위험천만한 일을 이문회가 한 셈이었다.

물론 낭정이 어찌어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고 해도, 그의 관심은 온통 한 가지에만 쏠려있을 것이다.

이문회가 끝장난다는 것!

낭정이 씁쓸한 것은 자신에게 든든한 뒷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낭정이 광서 환관 학원 부산장을 벌써 수년째 하고 있지만, 이문회가 면직된 지금에도 산장 자리를 꿰찰 수 없지 않은가!

전지 환관이 은자를 한가득 챙겨서 떠난 뒤, 낭정이 왕굉을 향해 정중하게 큰절을 올렸다.

“왕 공공, 축하드립니다.”

왕굉은 전 광동 환관 학원의 산장이자 당엄 파벌의 사람으로, 당엄을 보위하기 위해 광서로 전임을 자청한 모양이었다.

광서 환관 학원의 산장 자리는 광동의 산장보다는 못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왕굉은 광서 환관 학원 산장으로 전임하는 대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광서 염운사 직을 겸직하게 되었다. 그만큼 광서 염운사는 왕굉이 자신의 배에 기름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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