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39화 (139/648)

139장. 성지를 거역한 이문회

정능이 말했다.

“체포하지 못하게 하면, 이 자리에서 네가 보는 앞에서 저놈을 죽이는 건 어떻겠나? 듣기로는 저놈이 네 역린이라던데?”

정능이 이문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뒤를 향해 손짓했다.

수백 명의 어마감 무사가 혈관음의 저택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문회가 말했다.

“정능, 광서 어마감에 무사가 이렇게 많을 리가 없을 텐데? 경성에서 이렇게 많은 무사를 데리고 왔을 리도 없고.”

정능이 냉소를 지었다.

“네놈이 여씨 별원을 공격할 때 삼천 명 동창 무사를 마련한 것처럼, 나도 어마감 무사를 데려왔을 뿐이지.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정능은 굳이 감출 생각이 없었다.

정능이 데려온 무사 수백 명은 사실 광서 문관, 무관 집단 소속의 무사들을 어마감 무사로 변장시켜 데려온 것이다.

이문회와 두변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문회가 말했다.

“아, 이제야 알겠군. 네놈들은 애초에 나를 경성으로 압송할 마음이 없었군. 내가 무력으로 성지를 거역하기를 기다렸다가, 반역죄로 나를 이곳에서 죽일 생각이었어.”

정능은 대답 대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문회가 이어서 말했다.

“왕설, 그 멍청한 놈은 어마감과 사례감이 자신을 희생물로 썼다는 것도 몰랐나 보군.

네놈들은 두변이 내 역린이라는 걸 알고, 계속 나를 도발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 귀한 역린을 뽑아내려고 했지. 내가 명령을 거역할 유일한 이유가 두변이라는 것과 폐하께서 나를 경성에서 죽게 놔두지 않을 게 염려되어서 나를 이곳에서 죽이려 한 게로군.”

사례감에서 왜 균령에 이어서 사람까지 보내서 두변을 잡으려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디어 풀렸다. 이문회를 경성까지 보낼 겨를도 없이, 바로 광서에서 죽이기 위함이었다.

“문회 아우, 역시 똑똑하군. 그렇게 한 번에 사건의 본질까지 꿰뚫다니. 하지만 이걸 알게 됐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나?”

그렇다. 이제 와서 이문회가 이 모든 걸 알게 됐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질 건 없었다.

정능이 이어서 말했다.

“내게는 황제의 성지가 있고, 사례감 균령도 있다. 나는 명령에 따라 두변을 잡아갈 것이고, 저놈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이곳에서 바로 저놈을 죽일 것이다.

네놈이 감히 성지를 거역하고, 균령을 따르지 않았으니, 반역죄로 네놈을 죽이는 것 또한 이치에 맞는 일이지. 네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두변과 함께 체포당한다고 해도, 두변은 광서를 벗어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 것이야. 저놈은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니까. 저놈의 죽음은 너 말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네 의부인 이연정조차 신경 쓰지 않을 테지. 저놈의 존재 자체가 이원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테니.”

이 모든 게 음모라기에는 너무도 공공연했다.

이문회의 눈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두변의 죽음을 방관하거나, 성지를 거역하는 것.

하지만 성지를 거역하는 건 반역이었다.

대녕 제국, 경성의 황궁.

“으아아악! 으아아!”

이건 통군(統軍) 장수 네 명과 내각 대신 네 명을 이제 막 내보낸 황제의 포효였다.

언제나 온화한 모습을 보이던 황제가 격노하면서 상서방 안의 모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짐더러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이미 이문회를 모든 직책에서 파면했고, 경성으로 압송하라는 성지까지 내렸는데, 짐더러 뭘 더 하라는 게야!

매일 몇천 통의 상주서와 몇백 통의 혈서가 짐 앞으로 날아오고, 매일 몇백 명의 대신들이 궁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원성을 높이고 있는데!

산서의 군대는 정변을 일으켜서 산서 동창과 진왕부를 포위하고 있고, 수천 명의 태학당 학생들이 단식하면서 짐의 궁문 앞에서 버티고 있다. 그리고 도대체 왜 매일 열댓 명이 농성을 하다가 죽는 것이야?

조민(漕民: 조운선漕運船에 탑승하여 조운에 종사하는 인부)들이 난동을 피우고 있고, 조운(漕運: 조세로 쌀 등을 징수해서 지정 장소로 운송하는 일)이 모두 끊겼어. 경성에 들어오는 식량이 부족해지니, 식량값이 하루에 세 배씩 뛰고 있고.

조방(漕幇)에서는 짐더러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간사한 무리를 제거해달라고 하는데, 그놈들이 짐을 바보 취급하는 거 아니야? 제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조민들이 어떻게 조정의 간신을 구별한단 말이냐. 그들이 계동앙이 누군 줄 아냐고! 이문회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어찌 불평을 한단 말이냐!”

황제의 목청이 점점 더 커졌다.

“더욱 우스운 건, 문관 무장 집단 그놈들이지. 그놈들은 허구한 날 배로 불법 거래를 하면서, 짐이 일반 배로 식량을 운반해야 한다고 했더니, 뭐? 수십만 조민들이 먹고 살길이 없어져서 반역을 일으킬 거라고?

그리고 상인들은 왜 파업하는 거냐? 이문회가 언제 남경, 산서, 경성의 상인들의 심기를 건드린 적 있다고?

간신과 역적놈들이 판을 치는구나! 판을 쳐!

짐에게 유일하게 충실한 사람을, 짐의 유일한 심복을 짐의 손으로 없애라고 하다니. 이건 짐의 두 팔을 잘라내는 것과 다름없지 않느냔 말이다!”

격노한 황제가 소리를 지르다가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연신 기침을 하던 황제가 이미 색이 바래도록 세탁한 명황색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기침이 멎자, 황제의 손수건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또 피를 토한 것이다.

소리를 듣고 황급히 들어온 황후가 손수건에 묻은 피를 보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황후가 울면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 고정하세요. 절대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각혈하시는 걸 얼마나 어렵게 치료했는데, 또 재발하면 정말 큰일 납니다.”

황제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용상에 털썩 앉았다. 그는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짐이 황제 노릇을 제대로 못한 탓이오. 어찌 짐의 유일한 심복 하나도 못 지킨다는 말이오. 문회는 짐의 젊은 시절의 벗이었거늘.

당시 계왕과 함께 영종오 대종사에게 무예를 배웠는데, 그만한 충신이 없었거늘.”

황제가 서글픈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광서에 있는 놈들이 여씨 가문에 빌붙어서 제국의 피를 얼마나 빨아먹는지 아시오? 문회가 이번에 여씨 토사의 광서 거점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여씨 가문의 사람들을 몰살했소. 그 덕에 여씨 가문의 은자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으니, 그걸 메꾸려면 최소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건 곧 서남 토사 연맹을 통합하려는 여씨 가문의 계략이 몇 년이나 뒤로 밀렸다는 뜻이고, 그들의 원기가 크게 상했다는 뜻이지.”

황후가 물었다.

“그럼 이문회는 왜 진남공이 광서에 있을 때 이 일을 하지 않았던 겁니까? 진남공이 광서에 있을 땐, 여씨 토사가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도 못했을 텐데요.”

황제가 대답했다.

“만약 송결의 대군이 광서에 있을 때 문회가 이 일을 벌였다면, 사람들은 짐이 그 일을 추진한 것이라 여길 것이오. 그렇게 되면, 여씨 가문은 완전히 황실에게 등을 돌릴 것이고, 더 빨리 반역을 일으킬 것이오.

하지만 문회가 송결의 대군이 광서를 떠난 틈을 타서 이 일을 벌였으니, 이 모든 건 문회 자신의 의지가 되는 것이오.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의자인 두변의 복수를 위해서 한 일이니, 짐이 이 일에서 완전히 빠진 것이지.

문회는 지금 짐을 위해서 모든 걸 혼자 떠안으려는 것이오.”

“진정한 충신이네요.”

황후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가 탄식했다.

“문회가 얼마나 많은 공로를 세웠는데, 어찌 그걸 다 무시하고 간신으로 몰리냔 말이오. 진정한 간신들은 아직도 조당에서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어쩌면, 대녕 제국이 진정 짐의 손에서…….”

황제가 말끝을 흐렸다.

올해 이제야 마흔이 된 황제의 머리카락은 이미 태반이 하얗게 셌다.

황제는 겉에는 멀쩡한 용포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 입은 내의는 모두 색이 바랜 옷들이었다.

그는 도광제(道光帝: 청나라 제8대 황제. 이전 황제들의 통치기간에 크게 줄어든 황실 재정을 개인적인 검약을 통해 복구하고자 애를 썼지만, 농민반란, 아편전쟁 등 기울어가는 국세를 바로잡지는 못했다.)처럼 명예를 위해서 검소하게 지내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검소한 황제였다.

황후가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빨리 폐하의 벗인 이문회를 경성으로 데려와서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끝까지 죽이라는 성지를 내리지 않으신다면, 그들도 이문회를 마음대로 죽이진 못할 겁니다.”

황제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국자감의 멍청한 학생들이 백날 천날 단식한다고 해도, 매일 수십 명이 죽어 나간다고 해도, 짐은 절대로 짐의 손으로 두 팔을 자르지 않을 것이오. 조운을 끊겠다면 끊으라 그러지. 그놈들이 경성을 어느 지경까지 어지럽히려는지 봐야겠소. 이러다 정말 민란이 일어나서, 배고픈 백성들이 조정 대신과 부호의 집에 쳐들어가야 정신을 차리지.”

황제가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만에 하나 여씨 토사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짐도 문회를 지켜줄 수는 없소.”

여여해가 만에 하나 병사들을 이끌고 토사 경계지역을 넘게 된다면, 이문회는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제국의 서남 지역에 조정의 병력이 없었다. 만약 여여해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조정에서는 여씨 토사를 자극한 간신 이문회를 죽이는 조건으로 여여해를 물러나게 해야 했다.

황후가 말했다.

“하지만 이문회는 폐하의 벗이자, 가장 충실한 신하이잖습니까.”

황제는 말이 없었다.

조조도 한경제(漢景帝)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 아니었던가.

한경제도 조조를 죽이고 싶었을까.

칠국(七國)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반란을 일으킨 왕후들이 ‘청군측(淸君側: 황제의 측근에 있는 간신들을 숙청한다)’을 내세우고 조조를 제거하려 했다. 한경제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조조를 숙청했지만, 본래 목적이 조조가 아니었던 칠국의 왕후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녕 제국의 천윤제(天允帝)가 이문회를 죽인다면, 여여해는 분명히 병사들을 데리고 물러날 것이다. 여여해는 지금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없을뿐더러, 더욱 중요한 일을 염두하고 있었다. 그가 당장 하려는 것은 서남 토사 연맹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이었고, 그 일을 한 뒤에 반란을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아무튼 문관, 무장 집단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절대로 짐의 손에서 이문회를 죽이라는 성지를 받아갈 수 없을 것이오. 정 안 되면 반란이라도 일으켜 보라지.”

황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황제는 결단코 이문회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정 대신들의 뻔뻔함과 대외적으로 자신의 직속인 엄당의 간악함을 간과했다.

그들은 이문회를 경성까지 데려올 생각이 없었으며, 성지를 거역하게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이문회를 죽여버리고자 했다.

게다가 가엾은 천윤제는 이문회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될 것이다.

광서 염주부, 혈관음의 저택.

몇백 명의 무사가 두변과 이문회를 포위했다.

어마감 부제독 정능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문회 아우, 성지를 거역해서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겐가, 아니면 태산과도 같은 부정을 과시하던 면모를 버리고 의자 두변을 죽게 놔둘 것인가?”

이문회가 더없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그가 고통스러운 건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어마감도 황제의 의지와 상관없이 황제를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제국의 멸망이 한 단계 가까워진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제국이 정말로 이렇게 만회할 기회도 없이 썩어 문드러진 것인가. 두변이 성장하기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멸망하려는 건가. 이러니 영종오 대종사가 회의감에 휩싸여 자유를 찾지.”

이문회가 무거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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