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장. 구두사 신을 이겨라
이곳에는 아무런 빛도 없었으며, 칠흑 같은 암흑 그 자체였다.
문득.
시커먼 어둠 속에서 뱀 눈 한 쌍이 번쩍 뜨였다.
그러다 두 쌍, 세 쌍, 네 쌍.
마지막으로 아홉 쌍의 눈이 전부 뜨이자, 심연 속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두변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심연 동굴 안에는 사륭 부족이 숭배하는 구두사 신이 정말로 있었다!
구두사는 실존했으며, 그 크기는 두변의 상상 이상이었다. 구두사에게는 정말로 아홉 개의 머리가 갈라져 있는데, 머리 하나하나가 모두 수십 미터가 넘을 것처럼 보였다.
아홉 개의 뱀 머리 중 하나라도 입을 벌리면, 두변 서너 명은 거뜬히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이 세계에 온 이후로, 두변은 사실 이곳이 자신이 살던 지구의 고대 시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사람들의 무공 능력이 훨씬 강하다는 점, 그리고 몇몇 물질이 에너지에 의해 변형됐다는 점 정도?
하지만 정말로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상상조차도 해보지 않았던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거대한 뱀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뱀 머리 하나에 꽁꽁 묶여 있던 두변의 귀에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제물이 도착했군. 아, 그런데 좀 부실해 보이네.’
‘하루에 제물 세 개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
두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자연 현상인가? 지금 내가 구두사가 말한 걸 들은 건가? 요괴야 뭐야?’
하지만 두변은 뱀들이 입을 열어서 대화하는 게 아니라, 정신 교류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뱀들이 주고받는 말은 비교적 단순했고 느리기까지 했다.
‘여기서 벌써 몇백 년을 지냈는지 몰라. 자유도 없이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
두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두사는 마치 동굴과 한 몸인 듯, 동굴에 심은 작물처럼 몸통이 무언가에 파묻혀 있었다. 더욱 자세히 보니, 구두사의 몸통은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의 뼈와 해골에 파묻혀 있었다.
두변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두피가 저릿해졌다. 이렇게 많은 양의 사람 뼈와 해골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정도였다. 수백 년 동안, 구두사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새로 온 제물! 난 아주 공평하다. 우리 재밌는 놀이 하나 할까? 끝도 없는 나의 지루함을 잠시나마 덜기 위해서 말이다.”
구두사 신이 말했다.
두변은 공포에 떨리는 치아를 꽉 깨물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세 가지 질문이 있다. 만약 네가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모두 정답을 말한다면, 난 너를 산 채로 밖으로 내보낼 것이고, 구슬 하나를 선물로 줄 것이다.”
구두사 신이 말했다.
뱀 머리 중 하나가 입을 열자,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는 구슬 하나가 뱀 혀 위에 놓여 있었다.
두변은 저게 단순한 구슬이 아니라, 에너지를 응집시킨 에너지 결정체 구슬이라는 걸 알아챘다.
두변은 이번 임무 포상 중 하나인, 자신이 단번에 7품 무사가 될 수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구두사 신의 저 구슬이 임무 포상인 것이다.
“첫 번째 문제가 오답일 경우, 네 두 손을 먹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가 오답일 경우, 네 두 다리를 먹을 것이다.
세 번째 문제가 오답일 경우, 네 몸통과 머리를 먹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모든 문제를 맞힌다면, 나는 이 구슬을 네게 선물하고, 너를 이 굴 밖으로 보내줄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구두사 신이 묻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열을 세마. 네가 대답을 하지 않거나 틀린 답을 말할 경우, 난 네 두 손을 먹는다.”
갑자기 두변의 두 팔이 두변의 의지와 상관없이 높이 치켜들어졌다.
뱀 머리 하나가 얇은 혀를 낼름 내밀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두변이 오답을 말하거나 시간 내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이 뱀 머리가 두변의 두 손과 팔을 한입에 으스러트려서 먹어버릴 것이다.
“첫 번째 문제다. 내겐 머리가 아홉 개 있는데, 사고의 교류를 담당하는 주뇌는 하나뿐이다. 어떤 머리가 내 주뇌인가?”
“십, 구, 팔…….”
구두사 신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지만, 3초에 숫자 하나를 세고 있었다.
두변에게 총 30초의 시간이 주어졌다.
두변은 다급하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정신술을 이용해 꿈속 세계로 들어갔다.
꿈속 세계에 들어오자, 두변의 시간은 현실 시간보다 15배 느려졌고, 그 덕에 8분 가량의 시간이 주어졌다.
꿈속 세계의 장면은 현실과 똑같았다.
“첫 번째 머리가 주뇌입니다.”
두변이 대답했다.
“틀렸다.”
구두사 신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면서 두변의 두 팔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꿈속이지만, 두변은 자신의 두 팔이 잘려나가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바로 다음 순간, 꿈속 세계는 두변이 대답하기 전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두 번째 머리입니다.”
“틀렸다.”
구두사 신이 또 한 번 두변의 팔을 물어뜯었다.
세 번째 머리, 네 번째 머리, 다섯 번째 머리, 그리고 아홉 번째 머리까지 대답했지만, 모든 대답이 틀린 답이었고, 두변은 아홉 번이나 팔이 잘렸다.
두변은 끔찍하고 생생한 악몽을 아홉 번이나 연달아 꾼 것이다.
이건 평생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한 짜릿하고 오싹한 놀이였다.
두변이 더욱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건, 구두사에겐 머리가 아홉 개라서 아홉 개를 다 말했는데 전부 다 오답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거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그때, 허무하게도 잠에서 깨어났다.
와 씨, 아직 정답이 뭔지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꿈속 세계가 끝났다고?
정신 차려 두변. 여긴 현실이야. 내가 답을 맞히지 못한다면 이대로 두 팔을 잃을 거고, 그러면 도마뱀처럼 팔이 다시 자라나지도 않아!
구두사 신은 여전히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이, 일!”
아, 안 돼. 벌써 시간이 다 됐다고?
두변이 정신을 차렸을 땐, 크게 벌려진 뱀의 입이 벌써 두변의 두 팔을 입에 넣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두변이 대답하지 못할 경우, 바로 씹어 삼킬 생각일 것이다.
시간이 다 됐으니, 두변은 무슨 답이라도 내놓아야 했다.
두변이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퍼뜩 들고 대답했다.
“아홉 개의 머리 모두 주뇌가 아닙니다. 진정한 뇌는 지하에 묻혀 있고, 그게 바로 당신의 영혼이죠.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건 그저 당신의 육체에 불과하죠.”
두변은 퍼뜩 떠오르는 영감에 의해 대답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거쳐서 뱉은 답은 아니었고, 정말 정답인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이 답이 틀린 답이라면, 두변은 이대로 두 팔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두사가 두변을 오랫동안 뚫어지라 바라보더니, 입에 물고 있던 그의 팔을 뱉었다.
“정답이다. 수백 년 동안, 이 정답을 맞힌 사람은 네가 아홉 번째다.”
두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구두사 신이 말했다.
“이어서 두 번째 문제를 내겠다. 이번 문제는 숫자를 일곱까지만 셀 것이야. 내가 말한 대로, 이 문제를 틀리면 나는 네 두 다리를 먹어버릴 것이다.”
조금 전 두변의 두 팔을 입에 넣었던 뱀 머리가 이번엔 그의 두 다리를 입에 물었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금방이라도 두변의 두 다리를 절단낼 것처럼 그의 허벅지 위에 놓였다.
두변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구두사 신의 두 번째 문제를 기다렸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구두사 신은 조금 전과 달리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물었다.
“두 번째 문제다. 올해 내 나이가 몇이냐?”
두변은 마음 같아선 피라도 토하고 싶었다.
뭐 이런 개 같은 상황이 다 있어?
아니지, 뱀 같은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어.
네가 나무면 나이테라도 셀 수 있겠지만, 뱀 나이를 어떻게 가늠하냐고!
아니면, 그냥 날 잡아먹으려고 낸 문제 아니야?
이런 문제를 내가 어떻게 맞혀!
구두사 신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두변은 신경도 쓰지 않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칠, 육.”
두변은 눈을 질끈 감고 꿈속 세계로 들어갔다.
“올해 이백구십 살입니다.”
두변이 꿈속 세계에서 대답했다.
“틀렸다.”
구두사 신이 날카로운 이빨로 두변의 두 허벅지를 콰직, 하고 씹어 먹었다.
“끄악!”
두변은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꿈속이어도 정말로 기분이 더러웠다. 제 잘린 하반신을 내려다보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속 세계의 장면이 다시 대답 전으로 되돌아왔다.
“삼백 살.”
“틀렸어.”
두변은 또 한 번 두 다리를 잃었다.
“삼백팔십 살!”
“땡.”
그 뒤로 두변은 운을 시험하듯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숫자를 외쳤지만, 아홉 번 모두 틀린 답이었고, 연달아 아홉 번씩이나 다리가 잘렸다.
정말 답답한 것은, 구두사 신은 그저 두변의 대답이 맞다 틀리다만 말해줄 뿐, 두변이 나이를 더 많이 얘기했는지, 적게 얘기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만 알려준다면 정답을 말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꿈속 세계의 시간이 다 됐다.
이젠 때려 맞출 수도 없게 되었으니, 두변의 속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속 세계가 끝나던 그 찰나, 두변의 뇌리에 한 문단이 떠올랐다.
이 문단은 두변이 언젠가 읽은 책에서 본 내용이었다. 두변이 그 문단이 뭔지 자세히 보기도 전에 꿈속 세계가 끝나버렸고, 애석하게도 두변은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삼, 이.”
구두사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가고 있었다.
식은땀이 두변의 등줄기를 타고 그의 옷을 적셨다.
끝장났네. 이번엔 진짜 끝이야. 어떡하지.
난생처음 보는 구두사 신이 몇 살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두변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무 숫자나 내뱉기로 결심했다.
이 숫자가 정답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지만, 이젠 운명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 외엔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
구두사 신이 말하는 순간, 두변의 다리를 물고 있던 뱀 머리가 아예 그의 허리 아래까지 입에 물었다.
두변은 이 순간이 정말 죽기보다도 싫었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고! 아무 숫자라도 외쳐, 이 멍청아!
“사백육십칠!”
두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정말 제 두 다리가 잘리는 광경을 차마 못 보겠는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변은 자신이 외친 숫자가 정답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구두사 신이 또 한참을 조용히 두변을 바라보았다.
두변의 다리를 물고 있던 뱀 머리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그의 다리를 뱉어냈다.
“정답이다. 그런데, 답을 어떻게 알았지?”
구두사 신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두변은 본인이 더욱 놀란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러게? 내가 어떻게 구두사 신의 나이를 아는 거지?
다짜고짜 외친 숫자가 정답이라니. 왜 하필 그 숫자를 외쳤을까? 운이 좋아서인가?
아니다. 두변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정답을 맞힌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알려준 것도, 신선이 와서 그에게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두변이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걸까?
무의식 영역에서 튀어나왔던 그 대답은 두변의 사고를 거치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두변은 본인이 정답을 맞혀놓고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두변은 그제야 자신이 어떻게 구두사 신의 나이를 맞혔는지 깨달았다.
꿈속 세계가 끝나기 직전, 그의 뇌리에 빠르게 스쳐 지나간 문단이 있었다.
그 문단의 출처는 두변이 언젠가 읽었던 중국 서남 지역의 역사 서적이었다.
467년 전, 대주(大周) 왕조 시기, 중국 서남 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적 있었다. 사실 지진이라기보다는 대지 붕괴에 가까운 천재지변이었다.
그때의 지진 이후로, 천 리 강산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운남부터 광서까지 원인 불명의 땅굴이 생겨났고, 알 수 없는 괴생물체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