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48화 (148/648)

148장. 구두사의 마지막 질문

이 지구는 두변이 원래 살던 현대 지구보다 신비로운 구석이 있긴 했지만, 그런 신비한 에너지는 대부분 땅굴 깊숙이 숨겨져 있고, 지상 세계와 동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두변은 이곳에 살면서 초자연 현상을 많이 겪어본 것도 아닌지라, 자신이 살던 지구보다 이곳 사람들의 무공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점 외에 대부분 면에서는 지금의 지구가 정상 지구의 고대 중국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꿈속 세계에서 두변이 본 그 문단 내용이 터무니없는 내용이 아니었다.

467년 전에 발생했던 대지진 때문에 운남과 광서에 거대한 대지 균열과 심연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 평범한 뱀 한 마리가 예기치 못하게 대지 균열 사이로 들어가게 되었고, 균열 속에 누적된 이계의 에너지에 의해 지금의 강력한 구두사가 된 것이고, 그래서 구두사 신의 나이가 467살인 것이다.

생각 정리가 끝난 두변은 구두사에게 자신이 정답을 추론한 과정을 얘기했다.

구두사 신의 아홉 쌍 눈이 두변을 한참 동안 지그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아주 똑똑한 놈이로구나. 넌 이 문제를 맞힌 세 번째 사람이다.”

두변은 정답을 맞힌 사람이 자기 외에 두 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어서 마지막 질문을 앞둔 구두사가 잠시 침묵했다.

길고도 짧은 정적이 지나고, 구두사 신이 신중하게 물었다.

“세 번째 문제에 답할 준비가 되었느냐?”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변은 왠지 구두사 신이 자신보다 세 번째 문제에 진심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어쩌면 구두사 신이 모든 제물에게 이 세 가지 질문을 하는 건, 단순히 시간 때우기나 심심풀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변이 깊이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준비됐습니다.”

구두사 신이 말했다.

“세 번째 문제다. 네가 만약 이 문제를 맞힌다면, 나는 너를 지상으로 올려보낼 것이고, 구슬을 선물로 주겠다. 사람의 내력 수양을 단번에 대폭 향상시키는 건, 아마 지상에서도 이 방법밖에 없을 게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천 년 전 생겨난 이 이상한 지구에는 수많은 이계 에너지가 땅속 깊숙이 침투되었고, 그 에너지는 특수한 자기장을 통해서 천지에 넓고 얇게 퍼졌다.

이런 에너지를 이 지구에서는 천지 원기(元氣)라고 하는데, 무사가 자신의 내력 수양을 증진하려면 이 에너지를 오랫동안 흡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구두사 신은 대지 균열 사이로 들어와 이계의 에너지를 아주 가까이서 몇백 년을 흡수했고, 그 덕에 이계 에너지의 결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구두사 신이 선물한다던 에너지 구슬은 천지 원기와 같은 것이지만, 천지 원기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귀한 구슬을 얻게 된다는 건, 두변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천운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딱 다섯까지만 세겠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대답하지 못했거나, 오답을 얘기한다면, 나는 네 머리와 몸통을 잘근잘근 씹어 먹을 것이다.”

두변이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두사 신이 던진 질문들은 무척 어려웠지만, 완전히 뜬구름 잡는 생뚱맞은 질문들이 아니었다.

“세 번째 문제다. 난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

두변은 질문을 듣자마자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쓰러지고픈 심정이었다.

마지막 질문이 제일 어려울 거란 걸 예상했지만, 이렇게 어려운 질문일 줄이야.

구두사 신의 눈빛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원하는 강렬한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구두사 신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오, 사.”

두변이 다시 빠르게 꿈속 세계로 들어갔다.

두변은 조금 전 두 질문처럼 찍어 맞히듯이 대답하지 않고, 대신 현대 지구에서 읽었던 역사 서적을 빠르게 떠올렸다.

구두사 신이 몇 살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이건 답이 없는 질문이 아니야.

대지 분열이 일어나는 주기와 규칙을 알아내기만 하면 돼.

찾았다!

일천 년 전, 지구가 두 개로 갈라진 이래 이 세계의 서남 지역에는 대지 분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지 분열의 간격은 95년이었고, 그다음은 100년, 그다음은 200년, 또 그다음은 약 300년,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대지 분열이 일어났을 때가 바로 467년 전이다.

다음번 대지 분열이 일어날 때가 바로 구두사 신이 이 세계에서 사라질 때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대지 분열이 일어나면서 땅속 깊은 곳에서 발산되는 이계 에너지는 지상 인간 세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지하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되는 수준의 재난일 것이다.

구두사 신이 아무리 거대하고 강해도, 핵분열 정도의 멸종이 일어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두변은 여태 일어난 대지 분열의 주기를 정확하게 계산한 후, 다음 대지 분열이 일어날 때를 정밀하게 계산했다.

두변은 곧 답을 얻어냈다.

9년!

이전에 일어난 대지 분열의 주기에 따르면, 다음 대지 분열은 정확히 9년 뒤에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바로 구두사 신이 죽게 될 때다.

대답을 막 던졌던 이전 질문들과 달리, 두변은 처음으로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가 치밀하게 계산을 통해 얻어낸 답이었다.

두변이 눈을 번쩍 떴다.

“일!”

구두사 신이 마지막 숫자를 셌다.

뱀 머리 하나가 시뻘겋게 쩍 벌린 입으로 두변의 머리와 몸통을 혀 위에 올려놓았다.

구두사가 조금만 힘을 줘도 두변의 몸은 독사의 이빨에 찍혀 두 동강 나서 죽게 될 것이다.

두변이 재빨리 외쳤다.

“9년입니다. 앞으로 9년의 수명이 남아 있어요!”

구두사 신의 몸이 살짝 떨렸다.

이번에도 구두사 신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두사 신이 천천히 말했다.

“젊은이, 정답이다. 세 번째 문제까지 맞힐 줄은 정말 몰랐는데. 참으로 놀랍구나.”

두변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구두사 신, 제게 약속했던 것을 주실 때가 됐습니다. 구슬을 제게 주시지요.”

두변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다 맞혔다! 이제 살아서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기 능력치가 한 번에 7품 무사급으로 상승하게 되다니!’

두변이 속으로 기뻐하던 찰나, 그를 혀 위에 올려놓고 있던 뱀 머리가 갑자기 입을 닫아버리고 그를 배 속으로 꿀꺽 삼켜버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두변은 반항할 틈도 없이 구두사의 배 속으로 떨어졌다.

두변은 크게 분노했다.

지금 뻔뻔스럽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야?

아 물론, 세상에 약속을 지키는 인간도 수많은데, 고작 뱀에게 그런 기대를 건 내 잘못이지!

강한 자에게는 약속을 어기는 게 권력일 테니까!

두변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왠지 구두사 신이 이렇게 쉽게 믿음을 저버리는 영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사 신이 세 가지 문제를 낸 건, 결코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용도로 보이지 않았고 무척 진지해 보였다. 그리고 두변도 마음의 지혜를 십분 활용하여 대답했고, 구두사 신에게 확실한 정답을 주었다.

두변은 구두사 신이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국 배 속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귀가 간지럽구나. 지금쯤 너는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온갖 욕을 하고 있겠지.”

구두사 신의 목소리가 두변의 머릿속에서 울려왔다.

“조금 이해가 안 될 뿐입니다.”

구두사 신이 말했다.

“내가 이 질문들을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물었지만, 마지막 문제까지 맞힌 사람은 네가 두 번째이다.”

두변이 물었다.

“첫 번째로 다 맞힌 사람이 사륭석입니까?”

“아니다.”

구두사 신이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31년 전, 사륭석은 그의 부모와 함께 제물이 되어 이곳에 떨어졌다. 원래는 나도 그놈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고작 두 살배기 밖에 안 된 아이가 꼼지락대던 게 꽤 귀엽긴 했지만, 그땐 내가 이미 몇백 년을 살았을 때니, 동정심이란 걸 잊은 지 오래됐을 때지.

그런데 내가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아이를 먹어버리려고 할 때, 그 아이는 나를 무서워하긴커녕 까르르 웃으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독이빨을 만졌지.”

두변은 구두사 신이 묘사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구두사 신이 이어서 말했다.

“예전이었다면 그 아이가 뭘 하든 망설이지 않고 바로 잡아먹었겠지. 하지만 그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내게 남은 수명이 40년이라고 말해줬다. 그때 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개념이 생겼고, 잊고 살았던 동정심이 내 마음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지. 그래서 나는 그때 그 아이를 먹지 않고 키우게 되었다.”

두변은 그제야 사륭석의 두 눈이 왜 독사를 닮았는지, 그가 말하는 어투가 왜 그렇게 어색한 건지 깨달았다.

구두사 신이 키운 인간이니,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한 건 당연지사였다.

사륭석은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사륭 지역에 나타났다.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사륭석은 사륭 지역의 모든 부족장과 싸워서 이겼고, 사륭 토사 몇백 리 영토를 통일했다.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사륭석이 살아왔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지라, 그가 돌을 깨고 나타난 사나이라고 생각했다.

두변은 사륭석에 관한 모든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그는 구두사 신이 어떻게 사륭석을 키웠는지, 뭘 먹였는지는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녀석도 지상으로 나간 뒤 한 번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 녀석은 속으로 나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는 게지.”

“사륭석 몸에는 구두사 신의 문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두사 신을 사륭 부족 전체의 유일 신앙으로 삼았고요.”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의 신앙이자 상징이었다.

나는 안다. 사륭석이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증오하는지. 내가 그 녀석의 부모를 잡아먹었으니 말이다.”

두변은 침묵했다.

구두사 신이 이렇게나 씁쓸해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사륭석을 키운 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구두사 신이 물었다.

“내가 너에게, 그리고 모든 제물에게 왜 그 세 가지 문제를 내는 줄 아느냐?”

두변이 대답했다.

“죽게 되는 날을 정확히 알고 싶었겠지요.”

구두사 신이 말했다.

“그래. 난 내가 정말로 죽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수십 년 전에 이미 정답을 얻었지만, 난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오늘 또 같은 대답을 했으니 이젠 정말 믿어야겠지.

예전의 나는 그저 평범한 독사처럼 먹이를 집어삼키는 본능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본능만 쥐고 살기엔 너무 오래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 지혜라는 게 생겼고, 나만의 생각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나는 내가 영생의 삶을 사는 신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실한 답을 듣게 되니 조금 슬프긴 하군.

하지만 두렵진 않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지는 알고 있지만, 난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내 몸은 이 심연에 심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을 벗어나는 즉시 나는 토양을 잃은 나무처럼 서서히 말라 비틀어져 죽을 거다.

난 막강한 존재지만 살아가는 의미를 모른 채 살아왔다. 차라리 내가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런 의미 따위 중요치 않겠지. 하지만 내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남은 시간만이라도 내가 살아있는 의미를 찾고 싶다.”

구두사 신의 고백을 듣던 두변은 다소 숙연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너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내가 반신반의했던 그 답이 정답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너를 내 배 속으로 삼킨 이유는 네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 너의 몸으로는 이 구슬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네가 이 구슬을 삼키게 된다면, 그 기운이 네 오장육부와 온몸의 핏줄을 터트릴 테니까.”

구두사 신의 말은 사실이었다. 두변은 그저 현기 각성을 한, 9품 하등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사람이 구두사 신의 강력한 에너지 구슬을 삼키게 된다면, 구슬이 단전에 도착하기도 전에 순간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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