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장. 7품 무사
“그래서 내가 배 속에다 에너지 균형을 맞추는 공간을 만들어 놨다. 내가 에너지를 뿜어내서 그 공간에 거대한 압력을 만들 것이다. 그때 네가 구슬을 삼키면 된다. 그럼 네 몸속의 에너지 압력과 내 배 속의 압력이 균형을 맞추어서 네가 폭발해서 뼈도 못 추리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는다.”
두변은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소인배가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구두사 신의 믿음을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 안개 같은 것이 두변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것의 정체는 구두사 신이 말했던 두변을 보호할 에너지체일 것이다.
이어서 밝게 빛나는 구슬이 두변의 앞에 나타났다.
“입을 벌려라.”
구두사 신이 말했다.
두변이 입을 벌리자 구슬이 날아오더니 천천히 두변의 입을 통해 그의 복부로 내려갔다.
그 느낌은 매우 이상했다.
구슬은 육안으로는 보이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으로. 그대로 내려가 두변의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해라. 이제 내가 에너지를 한 번에 분출할 것이다.”
구두사 신이 말했다.
쾅!
두변은 무슨 준비를 할 새도 없었다. 고도로 압축 응고된 구슬이 두변의 단전에서 순식간에 폭발했고, 동시에 두변의 주위를 감싸던 안개가 무한대로 짙어지고 거대해지면서 구두사 신이 말했던 에너지 압력이 형성되었다.
구두사 신은 구슬의 폭발력과 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하여 공간 압력을 형성했고, 그 덕분에 두변의 오장육부와 근맥은 무사했다.
두변의 체내에서 폭발한 에너지는 두변의 단전 안을 정신없이 사방팔방 부딪히면서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해 감옥에 갇힌 야수처럼 날뛰었다.
“체내의 에너지가 느껴지느냐? 그 에너지를 네 모든 근맥과 혈도로 인도해라. 그렇게 하면 그 강력한 에너지가 네 근맥 통로를 넓히고 강인하게 만들 것이다.”
온몸의 근맥을 새로이 하는 이 과정을 세수벌맥(洗髓伐脈)이라고 한다.
내력 수양은 단순히 단전의 공간을 넓히는 것뿐 아니라, 온몸의 근맥 통로를 더욱 넓게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순간적으로 현기를 내뿜을 때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손실 없이 방출할 수 있고, 수련할 때 천지 원기를 더욱 많이 흡수할 수 있다.
두변이 단전 안의 강력한 힘을 제어하면서 천천히 온몸의 근맥으로 인도했다.
그러자 근맥의 마디마디가 순식간에 더욱 단단해지고, 근맥의 통로가 더욱 넓어지는 게 느껴졌고, 온몸의 혈도에 있는 에너지 공간이 더욱 커지는 게 느껴졌다.
쾅, 쾅, 쾅, 쾅!
두변의 단전 안에 있던 구슬이 한 번, 또 한 번 폭발했고, 그는 구두사 신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근맥과 단전을 개조했다.
구슬이 한 번 폭발할 때마다, 두변의 무공 수준이 빠르게 올라갔다.
9품 하등.
9품 중등.
9품 상등.
8품 하등.
…….
이 세상의 모든 무도가는 자신이 흡수하는 천지 원기를 통해 내력 수양을 한다. 오직 그 길만이 근맥과 단전을 수련하는 방법이기에, 대부분 사람의 내력 수준은 아주 천천히, 비교적 안전하게 향상하게 된다.
만약 구두사 신의 보호가 없었다면, 두변은 절대로 이렇게 빠르고 미친 수준의 내력 향상을 견뎌내지 못하고 벌써 수없이 죽었을 것이다.
꼬박 두 시진이 흐른 뒤.
두변의 단전 안에서 끊임없이 폭발하던 구슬이 잠잠해지고, 단전, 근맥, 혈도의 개조도 드디어 멈췄다.
두변의 무공 수준 향상 과정이 끝나면서, 그는 이제 7품 하등 무사까지 내력 수준이 향상되었다.
단계로 따지자면 내력 수준이 한 번에 일곱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짧디짧은 두 시진 만에 두변의 단전과 근맥이 일곱 번의 강화와 개조를 거쳤다.
두변이 물었다.
“이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내력 수준을 올린 사람이 또 있습니까?”
구두사 신이 대답했다.
“없다. 나처럼 이계의 에너지를 흡수한 생명체가 극히 드물기도 하고, 인간이 우리를 마주하게 될 경우는 인간이 잡아먹히는 경우밖에 없으니까. 네가 나의 가장 오래된, 중요한 고민을 해결해줬으니 구슬을 선물해 준 것이다.
내가 사륭석을 키우긴 했지만 그에게 그 어떤 것도 준 적이 없다. 그 녀석은 이곳 심연에서 홀로 수련해서 강자가 된 것이다.”
설령 두변이라 해도 이런 형식으로 내력을 수련할 기회는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널 밖으로 내보내 주마. 나는 여기서 여생의 의미를 찾아야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뒤에는 내 존재를 잊는 게 좋을 것이다. 나 같은 것들은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더더욱 인간과 교류라는 걸 하면 안 되는 거겠지.”
두변이 구두사 신의 배 속에서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두사 신이 시뻘건 입을 크게 벌리더니 두변을 왈칵 뿜어냈다.
일순간, 두변은 포탄처럼 순식간에 몇천 미터를 거슬러 올라갔다.
슈욱!
어둠뿐이었던 심연을 벗어나자, 두변의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사실 심연 바깥은 이미 밤이었지만, 칠흑 같은 암흑 속에 있던 두변으로서는 하늘에 떠 있는 달도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공중에 붕 떴던 두변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는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두변은 자신의 몸이 몇 배로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두변이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 보았다.
우지끈.
두변의 손끝에서 쏘아진 내력이 몇 미터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그대로 부러트렸다.
이게 바로 현기 내력의 힘이구나!
두변은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7품 무사가 엄청난 무공 고수는 아니라도, 적어도 자기 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환관 학원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순위권에 드는 수준이었다.
다만, 두변은 무도 수준이 상승했다는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더욱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사륭석을 찾아가, 자신에게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라고 말하는 게 급선무였다.
같은 시각. 사륭 대왕 동부 안.
사륭석 대왕은 열댓 명의 부족장을 한자리에 모아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동부 안에는 각종 음식과 고기, 그리고 술이 가득했다.
대부분의 부족장은 몸에 맞지 않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마도 최부가 선물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최부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부족장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있었다.
과거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한 것으로 최씨 가문의 명망이 크게 떨어지면서, 최부의 앞길도 깜깜해졌다. 그래서 최부는 자신의 잘못을 만회해보려고 자진해서 사륭 토사의 일을 처리하러 왔다.
사륭 대왕에게 출병하지 말라는 제안을 하러 오는 일은 무척 위험했지만,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만 한다면 문관 집단의 용서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드디어 일이 마무리되어 가는군.
내가 이대로 광서로 돌아가면, 이문회를 죽인 1등 공신이 될 것이고, 내 앞길은 창창해지는 것이야!
이문회를 죽인 치명적인 한 방을 내가 날린 셈이지.’
최부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서 최병정에게 말했다.
“두변 그 개새끼는 벌써 구두사의 배 속에서 다짐육이 됐겠지? 곧 있으면 구두사의 똥이 될 거라고.”
최병정이 이를 부득 갈면서 말했다.
“그놈도 미친놈이지. 그 새끼가 진짜로 심연에 뛰어들어서 자살할 줄 누가 알았겠어? 자기가 무슨 하늘의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래도 그 개자식이 드디어 죽긴 죽었네.
그놈을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 못한 게 아쉽긴 해. 내가 손 볼 수 있다면, 그놈의 피부를 싹 다 벗겨버리고 뼈를 발라서 토막 냈을 텐데.”
두변을 향한 최병정의 증오는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해낼 수 없었다.
“안 되겠다. 두변 이름을 새긴 목각인형을 하나 만들어서, 매일 그 위에 똥오줌을 퍼부어야 직성이 풀리겠어. 그놈이 지옥에 가서도 영원히 고통받을 수 있게.”
최병정이 술잔을 세게 쥐면서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법!
최병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변이 휙 나타났다.
길고 큰 독니 하나를 들고 나타난 두변이 사륭석을 향해 외쳤다.
“사륭 토사 대인! 제가 구두사 신의 심연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건 구두사 신의 예전 독니인데,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사륭 대왕! 부디 제게 약속했던 걸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출병하여 여씨 토사부를 공격하시고, 최부와 최병정을 죽여주십시오.”
두변이 사륭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건 구두사 신의 지의니까요!”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사륭 대왕, 최병정, 그리고 최부도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심연에서 살아 돌아온 두변을 쳐다보았다.
‘내, 내가 지금 귀신을 본 건가? 저놈이 어떻게 살아서 돌아온 거야?’
최부와 최병정이 있는 힘껏 눈을 끔뻑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술에 취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라고 믿었다.
이, 이럴 수가. 두변이 어째서 살아 돌아온 거야?
저놈이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걸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거기서 살아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최병정이 사륭 토사에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심연에서 살아 나온 제물은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예외가 없었는데, 왜 이번만 예외인 거냐!
어째서 늘 저놈만 예외인 거야? 어째서!
최병정은 두피가 저릿해졌다.
두변이란 놈은 왜 매번 기적을 만들어 내는 거지? 설마, 저놈이 정말로 하늘의 점지를 받았던 건가?
연회의 주인석에 앉아 있던 사륭석 대왕은 독사 같은 눈빛으로 두변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두변이 적막을 깨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사륭 토사, 약속한 것을 이행해주시지요. 출병하여 여씨 토사부를 공격해주시고, 최부와 최병정을 죽여주십시오!”
퍼뜩 정신을 차린 최부가 허둥대며 외쳤다.
“대왕,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여씨 토사는 십만 대군을 모아 북상하여 대녕 제국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대왕이 여씨 토사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면, 십만 대군의 분노는 대왕의 머리 위로 쏟아질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진정으로 용맹무쌍하신 분이지만, 굳이 대녕 제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습니까.
저놈은 지금 대왕을 죽이려는 작정으로 저런 말을 한 겁니다. 대왕, 어서 저놈을 죽이시지요!”
최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사륭석이 여씨 토사부를 공격하는 건, 누가 봐도 멍청한 짓이었다. 여여해가 이미 십만 대군을 꾸린 상태지만 아직 출병하지 않았다. 사륭석이 여씨 토사부를 공격하는 최적의 시기는 여여해가 대녕 제국의 군대와 맞서 싸울 때이고, 그땐 사륭석이 어부지리로 여씨 토사부의 영토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대녕 제국의 거인 출신인 최부의 입에서 듣게 되니, 두변은 최부가 정말 창피도 모르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두변이 사륭석의 독사 같은 두 눈을 바라보면서 손에 쥔 독니를 치켜들었다.
“사륭 토사, 이건 구두사 신의 지의입니다. 설마 약속을 어기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최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소리쳤다.
“여러 부족장들! 지금 여여해에겐 십만 대군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엄당 개자식이 부족장들을 사지로 내몰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저놈의 말을 믿고 여여해를 공격하시렵니까!”
연회석에 앉아 있던 열댓 명의 부족장들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최부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그럼 저놈을 죽여버립시다. 저 개자식이 감히 여러분을 죽이려고 했으니까요.”
최병정이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요. 여러분, 당장 저놈을 죽이고 솥에 끓여서 뼈다귀탕으로 만들어 버리자고요.”
최병정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 두변이 살아서 돌아온 것을 보았을 때, 최병정은 놀라움보다 기쁨이 더욱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