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50화 (150/648)

150장. 최부의 죽음

최병정은 두변이 구두사 신에게 잡아먹히는 건 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두변이 살아 돌아왔으니, 가장 잔인하고 참혹한 방식으로 죽일 수 있어서 기뻤다. 두변을 산 채로 삶아서 그 피를 마시고, 그 살점을 뜯어 먹어야만 속에 맺힌 한이 풀릴 것 같으니까.

최병정의 말을 들은 부족장들은 맛있는 먹잇감을 보는 눈빛으로 두변을 찬찬히 살폈다.

젊고 탱탱한 환관을 먹을 기회가 그리 흔치 않은지라, 부족장들은 자신들의 곡도를 뽑아 들고 사륭석 대왕을 바라보았다. 사륭석 대왕이 고개만 끄덕해준다면, 곧바로 두변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산 채로 끓여 먹을 기세였다.

하지만 두변은 부족장들은 무시하고, 여전히 사륭석만 빤히 바라보면서 외쳤다.

“사륭 토사, 약속을 어기시겠다는 뜻입니까. 구두사 신의 지의를 거역하겠다는 뜻인가요!”

사륭석이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만약 네놈이 살아 돌아온다면 최부를 죽인다고 했지.”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륭석이 검 하나를 두변의 발치에 던져주면서 말했다.

“직접 죽여봐라. 네놈이 최부를 죽이지 못한다면 날 탓하지 말거라.”

두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무슨 뜻이지? 약속을 어기겠다는 건가?’

최부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최부는 광서의 해원일 뿐, 무공에 대한 조예가 깊은 건 아니었다. 그의 무공은 최병정보다 약해서 8품 무사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한들, 최부가 무공 햇병아리인 두변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부 기억 속의 두변은 시문과 서예에 능하긴 하지만, 무공은 입문자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많은 사람이 두변과 여천천의 결전을 지켜봤지만, 사람들은 여천천은 지은 죄가 많아서 벼락에 맞아서 죽은 것이지, 두변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이도진 종사도 여천천은 하늘의 뜻에 의해 죽은 것이지, 두변이 죽인 게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도진 종사로서는 두변이 번개를 불러온 걸 알았지만, 그에게 더 신비로운 색깔을 입혀주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공언했었다.

검을 뽑아 든 최부가 술동이를 집어 들고 술을 입에 콸콸 쏟아부었다.

“하하하. 두변 이 개자식. 내가 널 얼마나 죽이고 싶었는지 아느냐. 오늘 이렇게 내 소원이 이뤄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가 시를 잘 쓰고 서예에 능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네놈의 무공 실력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지.

그러니 나는 네놈을 개 한 마리 죽이듯이 쉽게 죽일 것이다. 아, 이번엔 너를 보호해줄 사람도 없을 텐데, 어쩌면 좋을까? 네놈의 의부인 이문회가 곧 죽을 테니 말이야?”

최부가 연회석 아래로 내려왔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네놈을 한 번에 죽이진 않을 테니까. 나는 네놈의 사지를 절단해서 뜨거운 물에 끓일 것이고, 네놈은 솥 밖에서 네 몸이 익는 걸 다 본 뒤에 천천히 죽을 것이다. 하하하!”

최부가 걸음을 멈추고 부족장들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제가 지금 바로 고기를 대령하겠습니다. 이참에 환관 놈의 고기를 한 번 맛보시지요.”

최부가 술동이에 남은 술을 꿀꺽꿀꺽 다 마신 뒤, 술동이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스릉, 슉.

최부는 검을 쥐고 평생 배운 모든 검초(劍招)를 선보이면서 두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최부의 발걸음, 흩날리는 옷자락, 그리고 바람을 가르는 검초까지, 모든 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최부는 무도 애송이 앞에서 자신의 화려한 검초를 마음껏 뽐냈다.

“두변, 네놈이 한 걸음에 시 한 수를 지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 그러니 오늘은 내가 한 걸음에 검초 한 수를 보여주마.”

최부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두변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열 걸음 뒤에 너를 죽일 수 있겠구나. 나도 열 걸음에 사람 하나 죽이는 고수가 되겠군. 하하하.”

최부는 자신이 말한 대로 1보 1검초를 선보이며 빠르게 두변 앞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보여주는 검초 하나하나가 매혹적이고 수려한 검무처럼 보였다.

“두변, 네 손발과 작별 인사할 때다.”

부드러운 검초를 전개하던 최부가 갑자기 검을 높이 치켜들더니, 두변을 향해 검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바로 그때, 두변의 검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두변은 자신의 내력 현기를 순간적으로 분출했을 뿐, 그 어떤 화려한 동작도 덧붙이지 않았다.

쓰윽.

서늘한 빛이 번개처럼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최부의 예술 같던 몸짓이 돌연 멈칫했다.

그는 허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고, 허리 아래로 몸이 저리는 느낌이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최부는 자신의 허리춤에 나타난 혈흔을 보았다.

쿵.

최부의 상반신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최부의 몸이 두 동강 난 것이다.

“저런 돌대가리!”

두변이 담담하게 욕을 뱉었다.

몸이 잘렸지만 바로 죽지 못한 최부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두변이 최부의 상반신이 고꾸라진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그의 얼굴을 발로 세게 내리찍었다.

콰직.

최부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졌다.

비명만이 가득했던 동부 안이 고요해졌다.

최병정은 눈가가 찢어질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두변의 무공 실력이 엉망인 걸로 알고 있는데?’

최병정은 넋이 나간 모습으로 최부의 으깨진 머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가문에서 버림받다시피 하고 사륭석의 첩이 된지라,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된 동생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동생이 두변의 손에 죽게 되었으니, 간담이 찢어질 정도의 고통이었다.

두변이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사륭석을 향해 말했다.

“사륭 토사, 최부를 죽였으니 이제 약속해주신 걸 이행하셔야 합니다. 여씨 토사부를 공격해주시지요.”

최병정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왕, 두변 저놈은 대왕을 죽이려는 거예요. 당장 저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세요!”

사륭석이 자리에 있던 열댓 명의 부족장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다들 여여해를 공격하는 데 동의하는가?”

부족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자리에 있던 부족장들이 용감하긴 했지만, 멍청하진 않았다. 이들은 모두 2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사륭석에게 완패한 후 야심만만한 포부가 무너졌고, 그럴 배짱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사륭석이 갑자기 서남의 토황인 여여해를 공격하자고 하니, 그 누구도 그의 결정이 내키지 않았다.

사륭 토사부의 병사인 만병(蠻兵)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륭 토사부의 상류층은 이미 세상 물정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배에 기름칠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좋은 생활을 내팽개치고 다시 전장에 나가는 것도 싫었고, 이미 십만 대군을 모았다는 여여해를 공격하기는 더욱이 싫었다.

사륭석이 두변에게 말했다.

“보았느냐. 우리 부족장들이 출병을 원치 않는다.”

두변이 말했다.

“사륭 토사, 구두사 신의 지의도 거역한다는 겁니까.”

사륭석이 싸늘해진 시선으로 두변을 노려보았다.

“구두사 신을 한 번이라도 더 들먹였다가는 네놈의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사륭석이 두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외쳤다.

“여봐라. 저놈을 뱀 진에 가둬라.”

사륭석이 손짓하자 수천 마리 독사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수천 마리 독사가 동그랗게 진을 쳐서 두변을 완전히 포위했다. 몇천 마리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감시하자, 두변은 뱀 진 안에 갇혀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최병정이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더니, 사륭석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 두변 저놈은 저와 원한이 깊은 놈입니다. 제가 저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수 있도록 제게 맡겨주시어요.”

“알겠다. 연회가 끝나면, 저놈은 네 맘대로 해라.”

최병정이 사륭석의 뺨에 진한 입맞춤을 하고는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대왕, 감사합니다.”

최병정이 두변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개자식, 네놈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괴롭혀주마.”

몇천 마리 독사에게 포위된 두변은 이 상황이 몹시 위급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이함을 느꼈다.

두변은 숨을 고르면서 자신을 강제로 진정시켰다.

여여해가 곧 병사들을 이끌고 북상할 거야. 시간이 얼마 없어!

만약 사륭석이 여씨 토사를 침범하지 않는다면, 의부께선 정말 죽은 목숨이야.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두변은 애초에 이 임무가 완수할 수 없는 임무는 아니었나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게다가 사륭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이 상황에 대한 계시를 주길 바라는 마음에 두 눈을 감고, 정신술을 이용해서 꿈속 세계로 들어갔다.

꿈속 세계에 들어간 두변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보게 되었다.

최병정이 사륭석에게 술을 한 잔 권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이 사륭석의 팔에 닿을 정도로 그의 팔에 찰싹 감겨서는 간지러운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대왕, 신첩이 대왕께 술을 한 잔 올리겠습니다.”

사륭석이 최병정의 술잔을 받아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사륭석의 목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얼굴에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코에서 갑자기 코피가 흐르더니, 그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술잔을 쥔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술을 함께 마셨던 십여 명의 부족장들도 목을 부여잡으면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술에 독을 탄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사륭석이 최병정을 향해 물었다.

“네, 네년이 감히 내 술에 독을 타?”

최병정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륭석, 나 같은 대녕 제국의 명문가 여인은 너 따위 야만인 나부랭이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네놈의 첩이 된 순간부터 줄곧 네놈을 죽이고 싶었다.”

사륭석이 피를 토하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이곳으로 온 뒤, 나는 너를 내가 가장 아끼는 첩으로 대우해줬다. 내가 네게 못 해준 게 무엇이냐? 왜 나를 해친 것이야?”

최병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곳? 이 아무것도 없는 동굴 말이야? 여기 비단이 있어, 보물이 있어, 뭐가 있어? 말이야 대왕이지, 사실은 그저 야만인이잖아. 너 같은 야만인은 네 분수에 걸맞게 야만스러운 여인과 어울려야 해. 그거 알아? 내가 네놈을 죽이기만 하면, 나는 여씨 가문의 첩이 될 수 있어. 그거야말로 진정한 부귀영화 아니겠어?”

최병정이 큰소리로 외쳤다.

“들어와!”

여씨 가문의 무사로 추정되는 수십 명의 무림 고수가 동부 안으로 들이닥쳤다.

최병정이 명령했다.

“이곳에 있는 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이 야만인 우두머리인 사륭석도 죽여! 아, 두변은 죽이지 말고. 난 저놈을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로 만들 거니까.”

푸슉, 푸슉, 푸슉.

여씨 무사들이 이미 바닥에 쓰러진 사륭 토사부의 부족장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두변의 꿈속 세계가 끝나버렸다.

두변의 등줄기에서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최병정이 여씨 가문이 보낸 첩자였군. 그래, 이게 정상이기도 하지. 최씨 가문과 여여해가 암암리에 거래를 계속해왔으니까.

최씨 가문이 세간의 구설수 때문에 최병정을 어쩔 수 없이 내쫓는다 해도, 최병정은 여씨 가문의 영토에 있는 게 마땅했다.

여인의 몸으로 혼자 이곳에 온 것도 모자라, 사륭석을 포함한 사륭 토사의 모든 부족장을 독살하다니, 과연 보통 모질고 독한 여인이 아니라 할 만했다.

잠시 생각하던 두변은 차라리 최병정이 여씨 가문의 첩자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속 세계 덕분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지했으니, 사륭석을 설득해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때.

최병정이 사륭석의 팔을 감싸 안고, 그에게 술잔을 건네면서 말했다.

“대왕, 신첩이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사륭석이 최병정이 건넨 술잔을 한 손으로 받아왔다.

꿈속의 그 장면이다!

두변이 모든 걸 바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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