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51화 (151/648)

151장. 술을 마셔 증명하라

“마시면 안 됩니다! 그 술엔 독이 있어요!”

두변이 사륭석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최병정과 사륭석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최병정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왕, 대왕께서 신첩에게 얼마나 잘해주시는데요. 신첩이 대왕을 얼마나 존경하고, 대왕을 얼마나 하늘처럼 여기는지 아시잖아요. 독이 있다면 차라리 제가 대신 중독되는 게 낫지, 절대로 대왕께서 중독되게 두지 않을 거예요. 제가 어떻게 대왕의 술에 독을 타겠어요.”

사륭석이 독사 같은 두 눈으로 매섭게 최병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에 쥔 술잔을 최병정의 입술 아래에 가져가면서 말했다.

“이 술을 마셔서 내게 증명해라.”

최병정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울먹였다.

“대왕, 정말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사륭석이 흔들림 없이 말했다.

“독을 타지 않았다면, 이 술의 절반을 마셔서 증명해라.”

사륭석이 아예 술잔을 최병정의 붉은 입술에 갖다댔다.

최병정이 두변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저 개자식이 감히 이간질하려 하다니. 대왕, 제가 증명해드리죠. 만약 술에 독이 없는 게 증명되면, 두변 저놈을 당장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어요.”

최병정이 사륭석의 손을 감싸고 술잔을 들이켰다.

두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술잔의 절반을 비운 최병정이 아련하고 그윽한 눈동자로 사륭석을 바라보았다.

“대왕, 이 술에 독이 있어 보여요? 만약 독이 있다면, 제가 대왕보다 먼저 죽었겠죠?”

사륭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최병정을 주시하기만 했다.

무려 1분을 기다려도 최병정이 아무런 이상증세를 보이지 않자, 사륭석은 그제야 술잔을 가져왔다.

“마시면 안 됩니다! 저 여인이 한 잔을 마셨다고 해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두변이 소리쳤다.

사륭석이 두변을 흘깃 쳐다보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놈. 감히 나와 애첩의 사이를 방해하다니.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친히 네놈을 으깨주마.”

사륭석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술잔을 높이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다들 코가 삐뚤어지게 즐기시오! 이따 저놈을 죽여서 오랜만에 인육을 먹어 봅시다!”

두변은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이어서 일어날 일들은 안 봐도 뻔했고, 그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할 것이다.

“좋습니다!”

“저 환관 놈의 고기를 구워서 먹읍시다!”

자리에 있던 열댓 명의 부족장들이 입맛을 다시면서 외쳤다. 그들은 최부가 진상한 고기와 술을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연회를 만끽했다.

최병정이 득의 어린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개자식,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다.”

사륭석이 두변을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놈. 나와 병정의 정이 얼마나 깊은데, 네놈이 감히…….”

사륭석이 돌연 무언가에 목이 막힌 사람처럼 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두 눈이 충혈되고, 목에 무수히 많은 시뻘건 핏줄이 솟아올랐다.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사륭석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최병정을 가리키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외쳤다.

“네, 네년이 독을 탔어?”

최병정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더니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탔지. 그러게 저놈의 말을 믿었어야지. 참 아쉽게 됐네. 눈이 달려있는데도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천하에 후회약이라는 게 없어서 참 아쉽겠구나. 하하하!”

최병정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사륭석이 점점 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간신히 기운을 내서 물었다.

“같은 술을 마셨는데, 왜 나만 중독되고 네년은 멀쩡한 게냐?”

최병정이 말했다.

“이 세상엔 참 다양하고 기묘한 독이 많거든. 한 종류만 먹었을 땐 괜찮지만, 다른 것과 함께 먹었을 땐 아주 치명적인 맹독이 되지. 내가 술과 음식에 각각 다른 독을 탔어. 나는 술만 마셨을 뿐 음식은 먹지 않았으니 중독되지 않았지. 그런데 너희는 술을 마신 데다 음식까지 먹었으니 중독된 거야. 그러게 누가 네놈더러 날 믿으래? 하하하.”

사륭석이 이를 부득 갈면서 최병정을 목 졸라 죽이려고 큰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저 허공에 손을 뻗었을 뿐,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코에서 검은 코피가 흘러나왔다.

자리에 있던 열댓 명의 부족장들도 목을 부여잡으면서 바닥에 쓰러졌고,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꿈속 세계에서 봤던 것처럼, 사륭 토사의 지도자급들이 전부 최병정이 쓴 독에 중독되었다.

“왜, 왜 이런 짓을!”

사륭석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사륭석. 나 같은 대녕 제국의 명문세가 여인은 너 따위 야만인 나부랭이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네놈의 첩이 된 순간부터 줄곧 네놈을 죽이고 싶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최병정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대꾸했다.

울컥울컥 피를 토하던 사륭석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곳으로 온 뒤, 나는 너를 내가 가장 아끼는 첩으로 대우해줬다. 내가 네게 못 해준 게 무엇이냐? 왜 나를 해친 것이야?”

최병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곳? 이 아무것도 없는 동굴 말이야? 여기 비단이 있어, 보물이 있어, 뭐가 있어? 말이야 대왕이지, 사실은 그저 야만인이잖아. 너 같은 야만인은 네 분수에 걸맞게 야만스러운 여인과 어울려야 해. 그거 알아? 내가 네놈을 죽이기만 하면, 나는 여씨 가문의 첩이 될 수 있어. 그거야말로 진정한 부귀영화 아니겠어?”

최병정이 큰소리로 외쳤다.

“들어와!”

여씨 가문의 무사로 추정되는 수십 명의 무림 고수가 동부 안으로 들이닥쳤다.

최병정이 명령했다.

“이곳에 있는 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이 야만인 우두머리인 사륭석도 죽여! 아, 두변은 죽이지 말고. 난 저놈을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로 만들 거니까.”

푸슉, 푸슉, 푸슉.

여씨 무사들이 이미 바닥에 쓰러진 사륭 토사부의 부족장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봤던 장면이 그대로 재연되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은 두변도 꿈속 세계에서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사륭의 모든 부족장을 죽인 뒤, 수십 명의 여씨 무사들이 사륭석을 포위했다.

“이 들개 새끼를 죽여버려!”

최병정이 사륭석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수십 명의 여씨 무사가 칼을 치켜들고 사륭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변이 눈을 질끈 감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돌대가리들!”

그러자 다음 순간, 사륭석이 거대한 체구를 번개처럼 일으키면서 포효했다.

“으아아아!”

사륭석의 포효와 함께 엄청난 내력이 폭탄처럼 터져나왔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수십 명의 여씨 무사들이 삽시간에 튕겨 날라가더니 마구 피를 토했다.

포효 한 번에 이토록 강한 위력을 발산하다니!

사륭석이 산처럼 우람한 몸을 곧추세우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중독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어서 더욱 놀라운 광경이 두변의 눈앞에 펼쳐졌다.

사륭석 대왕은 그 어떤 무기도 들지 않고, 커다란 손 두 개로 여씨 무사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정말 말 그대로 맨손으로 사람을 찢었다.

여씨 무사들은 반항할 틈도 없었고, 그의 공격을 피할 새도 없었다. 사륭석이 무사들을 잡는 순간, 무사들은 태산이 자신들의 몸을 누르는 것처럼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사륭석은 그 거대한 체구를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힘을 내뿜으면서 사람들을 찢고 다녔다.

쩍, 쩌억, 쩌억.

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명의 여씨 무사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었다. 여씨 무사들의 시신 중 단 한 구도 온전한 게 없었다.

최병정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쳐다보았다.

‘사륭석은 분명히 독이 든 술잔을 비웠고, 다른 독이 든 음식도 먹었어. 두 독을 동시에 먹었을 땐 죽어야 정상인데? 아까 분명히 중독된 모습을 보였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최병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죽지 않은 거야?”

이유는 간단했다.

사륭석은 구두사 신에게 길러진 인간이었다. 독사 우리에서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경험했다. 즉, 사륭석을 중독시킬 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사륭석이라는 엄청난 강자가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것만 알았지, 사륭석이 구두사에게 길러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변만 제외하고 말이다.

사륭석이 술에 독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 잔이나 비운 그때, 두변은 사륭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사륭석이 바닥에서 일어난 순간부터는 아예 감탄하면서 방청객처럼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죽지 않은 거야? 왜 중독되지 않았냔 말이야!”

최병정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사륭석이 대답했다.

“이 몸이 백독불침(百毒不侵)이기 때문이지.”

최병정이 놀라서 소리쳤다.

“내, 내가 독을 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단 소리야?”

사륭석이 대답하지 않았다.

최병정이 또 소리쳤다.

“그런데 왜 모른 척한 거야? 왜 내가 부족장들을 독살하도록 놔둔 거야?”

두변이 헛웃음을 터트리면서 또 한 번 욕을 했다.

“역시 돌대가리라니까.”

술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사륭 대왕은 최병정의 칼을 빌려서 부족장들을 죽일 작정이었다. 사륭석은 몸을 사리는 부족장들에게 이미 질렸고, 사륭 토사부의 권력을 독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이라는 미명이 있다 보니,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부족장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사륭 토사부의 용사들이 가장 존경하고 열광하는 인물상이 바로 영웅호걸이었다. 사륭석이 이미 다른 부족장들을 이겼고, 부족장들이 그의 발치에 꿇어서 충성을 맹세한 상황이었다. 사륭 용사들은 이미 패자가 되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을 죽인다는 건, 음침한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륭석은 최병정의 손을 빌려서 부족장들을 모조리 죽인 것이다.

오랜 눈엣가시를 제거하고 사륭 용사들의 분노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일거양득이니, 얼마나 즐겁지 아니한가.

사륭석이야말로 맹수처럼 과격하고 독사처럼 예리하게 머리를 쓸 줄 아는 영웅 중에 영웅이라 할 만했다.

최병정은 자신의 음모가 뜻대로 이뤄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완전히 남에게 이용당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저 독한 놈!”

최병정이 사륭석을 가리키면서 있는 힘껏 외쳤다.

사륭 대왕은 최병정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커다란 짐승 뼈를 쥐고 한쪽에 놓인 큰 북을 울렸다.

쿵쾅, 쿵쾅, 쿵쾅.

잠시 후, 수십 명의 사륭 토사부 무사의 우두머리들이 동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열댓 명 부족장들 시신을 발견하고는 아연실색했다.

사륭 대왕이 그들 말로 이렇게 외쳤다.

“여여해가 보낸 저 여인이 수십 명 무사와 함께 우리의 보금자리에 잠입했었고, 우리 부족장들을 독살했다.

나 사륭석이 구두사 신께 맹세한다. 여여해 일족을 모조리 죽여서 부족장들의 복수를 하지 못한다면, 난 천만 마리 독사의 먹이가 되어 마땅하다!”

말을 마친 그는 바닥에 꽂혀 있던 검을 부러뜨려 맨손으로 잡아 올렸다. 두 손에서 피가 후두둑 흘러내리니, 자신의 말을 피로 맹세한 셈이었다.

곧이어 사륭석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륭 토사는 출병하여 여씨 토사부를 공격할 것이다. 내 말에 반대하는 자가 있느냐!”

사륭석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반쯤 잘린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 감히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자가 있다면, 즉시 죽여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 누가 사륭석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을까.

동부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열댓 명의 부족장이 여씨 가문에 의해 한 번에 몰살되었고, 이에 사륭 대왕이 복수하겠다는 상황인데, 여기서 반기를 들었다간 사륭 부족의 배신자로 몰락할 것이다. 배신자의 결말은 능지처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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