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52화 (152/648)

152장. 최병정의 죽음

“그럼 여여해를 공격하는 걸 찬성하는 자는 누구인가! 찬성하지 않는 건, 반대하는 것과도 같다. 그자는 사륭 부족 전체의 원수이자, 배신자가 될 것이다.”

사륭석이 소리쳤다.

이 말을 듣자, 자리에 있던 수십 명의 사륭 무사 우두머리들이 잇따라 손을 높이 들었다.

“여씨 토사부를 공격합시다!”

“부족장들을 위해 복수해야 합니다!”

처음엔 몇 명만이 외쳤지만, 나중엔 수십 명이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소리쳤다.

“명령을 하달해라. 당장 사륭 부족 모든 용사를 집합시켜라. 그 누구든 내 명령에 따르지 않고 용사들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즉살해도 좋다.”

사륭석이 단호한 태도로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수십 명의 무사 우두머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뒤, 곧바로 사륭석의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동부를 떠났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사륭 전역의 동부로 달려가 출병을 준비했다.

진짜 죽여주는구나!

두변은 사륭석이 사륭 전역의 부족장들을 한 번에 죽여버리고, 사륭의 병권을 철저히 장악하게 된 걸 보고 감탄했다.

지금부터 몇백 리 사륭 토지, 몇만 명의 병사 모두가 사륭석 한 사람의 것이 된다.

이렇게 사륭 전체의 병권을 거머쥘 부족장은 고금 이래 사륭석밖에 없을 것이다.

구두사 신의 심연이 아무리 깊다 한들, 사륭석의 생각만큼 깊을까.

최병정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사륭석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사륭석의 다리를 붙들고 울음을 터트렸다.

“대왕, 하룻밤 부부여도 백일 은정이 남는다잖습니까. 이런 영웅을 제가 눈앞에 두고도 몰라보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다 신첩의 잘못이에요. 저를 아끼셨던 때를 회상해보세요. 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신첩이 평생 대왕을 섬기는 데 전념하겠습니다.”

사륭석 대왕이 최병정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그럼 저 두변이라는 자는?”

최병정이 대답했다.

“저놈만 제게 넘겨주시어요. 제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맛있는 요리를 대왕께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저놈의 머리뼈로는 대왕께 요강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최병정은 이 와중에도 두변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궁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두변이라는 자가 네년을 잘못 본 게 아니구나. 내가 그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도 한번 해 봐야겠다.”

사륭석이 어색한 말투로 말을 덧붙였다.

“돌대가리.”

사륭석이 큰 손으로 최병정의 목을 잡고 두변의 앞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반갑다, 두변.”

사륭석이 다른 손으로 두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대단하더군. 구두사 신의 심연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그렇고, 너는 내 계략을 빠르게 파악한 보기 드문 지혜로운 사람이다.”

두변이 사륭석의 손을 맞잡으면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사륭석 토사.”

사륭석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오늘 처음 만났으니 초면 선물로 최병정을 주겠다.”

사륭석은 최병정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그녀의 사지 근맥을 끊어버렸다.

“악! 안 돼요. 제발 두변에게 절 보내지 마세요. 차라리 날 죽여요! 날 죽여!”

최병정이 처참하게 울부짖으면서 소리쳤다.

철푸덕.

사륭석이 최병정을 쓰레기 버리듯이 두변의 앞으로 던졌다.

두변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최병정의 얼굴을 보면서 읊조렸다.

“불쌍하고 증오스럽고 우습고 창피한 여인이군.”

최병정은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최병정은 욕을 하고 싶었지만, 혀가 마비된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게 감옥에서 곱게 가지 그랬어. 지금이라도 내가 보내줘야겠네.”

두변이 선심 쓰듯 말한 뒤, 핏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은 검을 치켜들었다.

“다음 생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번 생의 죄업을 평생 갚아라.”

그리고는 최병정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렀다.

푸슉.

날카로운 검이 최병정의 심장을 관통했다.

최병정의 얼굴에 경련이 일더니, 두변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오고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두변은 최병정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최병정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죽었다.

어쩌면 지금의 최병정에겐 차라리 죽음이 하나의 해방이 아니었을까.

두변은 최병정의 시신을 들어 올려서, 우글거리는 독사 무더기를 향해 던졌다. 아마 그녀의 시신은 눈 깜빡할 사이에 백골이 될 것이다.

두변이 몸을 돌려서 사륭석 앞으로 다가갔다. 사륭석은 두변이 봤던 모든 사람 중에서도 키가 제일 컸다. 사륭석의 준수한 얼굴에서는 그 어떤 표정도 볼 수 없었고, 날카로운 두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마치 조금 전에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이런 정도의 인물이니 여여해의 적수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두변이 말했다.

“사륭 토사, 여여해가 십만 대군을 다 모았는데도 여씨 토사부를 공격하겠다고 한 이유가 뭡니까?”

사륭석이 대답했다.

“넌 똑똑한 사람이니,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답을 알 거라 믿는다.”

두변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여해가 모은 십만 대군은 서남 토사 연맹의 전체 병마로, 결정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십만 대군을 이끌고 대녕 제국에 반역을 일으킨다면, 아주 순조롭게 황제를 위협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겠지요. 그럼 병마를 내어줬던 열댓 개의 토사들도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여여해가 서남 토사 연맹을 집어삼키는 시기도 훨씬 더 앞당겨지겠죠.

하지만 지금 대왕이 여씨 토사부를 공격한다면, 여여해의 위신에 심각하게 타격을 줄 것이고, 그가 서남 토사 연맹 전체를 손에 거머쥐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안목이다. 다른 사람들 눈엔 십만 대군을 모은 지금이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순간이라 생각하겠지만, 내 눈엔 지금이 바로 여여해가 가장 취약할 순간이다. 그가 서남 토사 연맹의 십만 대군을 끌어모으긴 했지만, 완전한 병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십만 대군은 흩어지기 쉬운 모래알과도 같아서, 아직 그들이 단합되지 않았을 때 내가 공격을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이 시기를 놓쳐서 그가 서남 토사 연맹을 독식하게 된다면, 그때가바로 내 제삿날이 되겠지.”

사륭석이 말했다.

두변은 사륭석의 생각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위험 속에서 위험만 볼 줄 알지만, 사륭석은 위험 속에서 기회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륭석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덧붙였다.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던데, 여천천이 불타는 제단에서 부활했다. 성화교 예언 속의 성화 마녀가 되어서 환생했다는 말 때문에 여천천은 장차 서남 토사 연맹의 정신적 지주가 될 것이고, 여여해가 서남을 집어삼킬 결정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두변이 흠칫 놀라서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제가 여천천의 심장을 찔러 죽였다고요. 정말 확실하게 죽은 사람이 어떻게 부활한다는 겁니까? 뭔진 몰라도, 성화 마녀는 절대 여천천이 아닐 겁니다.”

“그건 이미 중요치 않다. 사람들이 성화 마녀가 나타났다고 믿는 한, 진상이 뭔지는 이제 중요치 않아졌다.”

사륭석이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두변이 또 한 번 멈칫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륭석의 말이 맞았다.

제단에서 부활한 성화 마녀가 여천천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화 마녀가 나타남으로써 여여해가 서남을 통일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여여해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한 명은 안륭 토사부의 저홍면 노장군이고, 다른 한 명이 바로 두변의 눈앞에 있는 영웅, 사륭석.

두변이 말했다.

“사륭 대왕, 대녕 제국의 통치하에 황제의 책봉을 받아들이고 제국의 토사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책봉은 받아들이나, 제국의 그 어떤 명령도, 파견하는 관리들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충성을 약속하는 의미로 경성에 사절단을 보내야 하며, 아들 한 명을 경성에 보내서 태학당에 다니게 해야 합니다.”

“내 아들은 아직 너무 어리다. 경성에 혼자 두기엔 너무 위험해. 하지만 의자 한 명을 받아들여서 경성으로 보내겠다.”

“좋습니다. 아, 추가로 우리 사이에 맹약을 맺는 건 어떨지요? 우리가 맺을 맹약에는 어떤 의무도 책임도 따르지 않고, 오직 우정만을 조건으로 하는 겁니다.”

사륭석이 두변의 제안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엄당과 맹약을 맺고 싶진 않지만 이문회 대인과 맹약을 맺는 건 좋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제가 의부를 대표해 대왕과 맹약을 맺겠습니다.”

사륭석이 두툼한 손을 내밀어서 두변의 손을 맞잡은 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마를 가볍게 맞대었다가 뗐다.

이렇게 간단하게 구두 맹약이 체결되었다.

두변이 물었다.

“사륭 대왕, 언제쯤 출병하실 예정이신지요?”

“모레 아침 일찍.”

“그럼 그전에 의자 한 명과 사절단을 준비해서 내일 바로 경성으로 보내십시오. 안남 왕국을 경유해서 경성으로 가면 됩니다. 그리고 사절단이 황제 폐하께 바칠 수 있도록, 충효를 약속하는 문서도 하나만 직접 작성해 주십시오.”

다음 날 아침 일찍.

점점 더 많은 사륭 부족 용사들이 사륭 대왕 동부 앞의 산골짜기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륭 부족의 영역은 제국의 현(縣) 두세 개를 합친 면적 정도여서 그런지, 제대로 된 군수품조차 없는 사륭 병사들은 맨몸으로 무기만 챙긴 채 빠르게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사륭의 만병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산골짜기로 모여들었다.

두변은 사륭 만병에게 갑옷이 있다는 게 몹시 놀라웠다. 물론 그들이 입은 건 철갑옷 같은 게 아니라, 덩굴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등갑(藤甲)처럼, 쉽게 불에 타는 재질이 아니라 특수처리가 되어 단단하고 튼실해 보였다.

게다가 사륭 부족에게는 이천 명이 넘는 기마병도 있었다. 일반 기마병과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이 타고 있는 게 전부 다 말은 아니었고, 일부는 깊은 산림에서나 볼 수 있는 짐승을 타고 있었다.

사륭 만병들은 하나같이 키와 체구가 작았다. 하지만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근육만 보아도 저들이 얼마나 민첩하고 순간 폭발력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사륭 부족은 산을 타는 게 일상인지라, 장애물이 많은 숲이나 가파른 절벽을 평지 거닐 듯 편안하게 다녔다.

두변이 더욱 놀란 것은 사륭 만병들의 눈빛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복수에 대한 갈망과 약탈에 대한 욕망만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그건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는, 아주 야만적이면서도 날 것의 눈빛들이었다.

전투를 치를 때, 이런 결사 부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법이다. 게다가 산속에서 전투를 치르게 된다면, 아무도 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여여해가 사륭 토사를 눈엣가시로 여기지만, 이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후가 되자, 경성으로 가는 수십 명의 사절단이 출발했다. 사절단을 이끄는 사람은 사륭석이 거둬들인 의자이고, 그의 나이는 열여섯 정도였다.

사절단은 사륭석이 작성한 충효 문서를 가지고 안남 왕국을 거쳐 경성으로 갈 것이다.

이들은 황제가 이 상황을 역전시킬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무기이기도, 이문회를 죽음에서 구해낼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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