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장. 청군측, 간신 주벌
같은 시각. 여씨 토사부 문산성.
군대를 출정시키기 전, 여여해가 전투 의지를 다지기 위해 십만 병장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십만 대군의 갑옷이 눈부시게 빛났고, 무수히 많은 장군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더없이 엄숙하고 웅장한 장면을 바라보던 여여해는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자신의 몇만 대군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몇백만 냥 은자가 다 이 몇만 대군에 들어갔지만,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뿌듯했다.
날카로운 검, 단단한 방패, 견고한 갑옷, 그리고 민첩한 군마까지.
몇만 명의 정예 병사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했다.
사실 서남 지역은 지형 때문에 기마전을 치를 일이 잘 없지만, 여여해는 멋을 위해서 사치스럽게 기마병 오천 명을 준비했다.
여여해의 몇만 정예병을 처음 보게 된 몇몇 토사들은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떨면서 여여해에게 순종하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순종하는 자는 창성할 것이고, 거역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여여해의 지금 기분을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서남 토사 연맹의 십만 대군이 한자리에 모이니, 그 광경은 실로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여여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말고삐를 세게 쥐면서 말했다.
“이런 기분이로구나.
정말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광경이로구나.
천하가 이미 내 손에 쥐어진 것 같구나. 내가 언젠간 꼭 이 대군을 이끌고 천하를 휩쓸어 여씨 제국을 세우겠다!”
여여해가 웃음기를 거두고 매서운 눈빛으로 북쪽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황제! 내 발치에 무릎 꿇을 날이 머지않았다.
이문회! 네놈은 일찍이 죽어야 했어. 오늘부로 나 여여해를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나의 적이 될 것이며, 결코 이 땅에서 살아 숨 쉬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이때, 부장수 여여룡이 여여해 옆으로 다가가 작게 말했다.
“주상, 때가 됐습니다.”
여여해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털에 윤기가 나는 거대한 천리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채 십만 대군 진열 앞을 가로질렀다.
마치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의 지도자가 누구인지 보여주려는 듯이 맹렬한 기세로 달렸고, 그대로 산꼭대기까지 달려간 뒤에야 멈췄다.
여여해가 산꼭대기 위에서 십만 대군을 내려다보면서 천둥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청군측, 간신 주벌!”
그러자 새까맣게 대지를 덮은 십만 대군이 여여해의 호령을 따라 외쳤다.
“청군측, 간신 주벌!”
“청군측, 간신 주벌!”
“청군측, 간신 주벌!”
여여해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검으로 북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전군, 출정하라!”
전고가 울리고, 십만 대군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둥두둥, 전고 소리와 십만 대군의 발걸음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수많은 전서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여씨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온 제국에 알려질 것이고, 제국은 또 한 번 혼란에 빠질 것이다.
또 하루가 지났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두변은 잠에서 깨어나 사륭 대왕 동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의식적으로 동부 밖의 공터를 내려다보던 두변은 화들짝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다니!
족히 삼만 명은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산골짜기 공터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고, 각자의 손에는 알 수 없는 각종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들의 얼굴과 몸에는 전부 구두사 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기마병도 삼천 명까지 늘어났다. 그들은 말, 당나귀, 멧돼지, 그리고 두변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짐승들을 타고 나타났다.
산골짜기는 이틀 사이 모여든 병사들로 빼곡했다.
거기다 더욱 놀라운 건, 열댓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장식과 전고를 몸에 두른 채 서 있었다.
사륭 부족의 인구가 총 십만에 불과한데, 이번 전투 한 번에 삼만 명이 모인 셈이었다. 사륭 부족 전체가 전사라는 말이 이제야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일찍이 밖에 나와 있던 사륭석이 뒷짐을 진 채 엄숙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사륭석이 처음으로 왕관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독사의 이빨을 엮어 만든 왕관을 쓴 그는 높고 거대한 돌덩이 위로 올라가, 산골짜기에 모인 병사 삼만 명을 내려다보았다.
“아우우!”
사륭석이 턱을 치켜들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일순간, 지진이 난 것처럼 산골짜기 전체가 흔들리고, 무수히 많은 새와 짐승들이 산림에서 뛰쳐나왔다.
아래에 있던 삼만 만병들은 격하게 흥분하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기고, 자신들의 왕에게 대답하듯이 똑같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여여해가 우리 땅을 빼앗으려고 하고, 우리의 아이들과 여인들을 약탈하려고 한다. 게다가 여여해는 벌써 십수 명의 부족장들을 독살했다. 치가 떨리는 원한 앞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산골짜기 곳곳까지 퍼져나갔다.
“죽여야 합니다!”
“그래요, 죽여야 합니다!”
삼만 병사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죽여야 한다! 여씨 가문의 사람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이고, 여씨 영토를 전부 빼앗아 오자.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약탈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여인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내를 죽여라!”
사륭석이 목청을 높이고 외치자, 삼만 병사도 피가 끓는 모습으로 똑같이 외쳤다.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우고, 모조리 빼앗아라. 출발하라!”
사륭석이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곧바로 코끼리의 등 위에 내려앉았다.
사륭석이 직접 전고를 치켜들고 북을 뚫을 기세로 두드렸다.
쿵쾅, 쿵쾅, 쿵쾅!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
“출발!”
“여씨 토사를 공격하자!”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우고, 모조리 빼앗아라!”
사륭석과 3만 병사의 외침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들은 굶주린 야수처럼 여씨 토사부를 향해 달렸다.
늦어도 내일 밤 전에는 여씨 토사부 영지까지 쳐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륭석은 여씨 토사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곳에서 백 리 떨어져 있는 홍하부를 먼저 공격할 생각이었다.
어젯밤 여여해는 위풍당당하게 십만 대군을 이끌고 북상했지만, 곧 사륭석이 그에게 똥침을 날리러 달려온다는 걸 알게 되리라.
그럼 여여해가 지금껏 황제를 위협하기 위해 이문회를 죽이려 했던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될 것이다.
그 표정이 정말로 볼 만하지 않겠는가!
여씨 가문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온 제국이 들썩였다.
특히 문산성과 가까운 운남과 광서 두 곳은 지진이라도 난 듯 아비규환이었다.
여여해 대군이 도착하기까지 백 리 정도의 거리가 남았지만, 사람들은 마치 종말을 맞은 피난민처럼 집을 버리고 고향을 떠났다.
운남과 광서의 각 주부 관리들은 바람 소리나 새 울음만 들려도 겁에 질려서 달달 떨었다.
“좋구나.”
광서 순무 낙문은 여여해가 십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 지 채 12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전서구를 받았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소식을 들은 낙문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총공의 시간이 도래했구나!’
이렇게 된 이상, 황제도 더는 이 사태에 대해 못 듣고 못 본 척할 수가 없게 된다. 여여해가 몇백 명의 기마병을 동원해서 몇백 통의 격문(檄文: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의분을 고취하려고 쓴 글)을 가장 빠른 속도로 제국 전역에 퍼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여해가 제국 경계 지역을 넘어서는 순간이 바로 이문회가 죽을 때이자 이연정이 동창 주인 자리에서 물러날 때였다.
가슴이 뜨거워진 낙문이 갑자기 붓을 쥐더니, 한 번에 수십 통의 밀서를 작성해서 남경, 항주, 경성으로 보냈다.
그리고 붓을 거두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바치는 상주서를 작성했다.
이 상주서는 이미 살기로 가득했다.
간신을 처단하지 않고 이문회를 죽이지 않으신다면, 천하가 안녕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폐하께서 그리 아끼는 노비가 제국의 토사를 자극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로써 제국 전체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문회를 죽이지 않고 동창을 벌주지 않으신다면, 폐하께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외면하시는 겁니다.
고금 이래, 이런 사태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어리석은 혼군은 극히 보기 드물었습니다. 폐하께서 지금껏 보이시는 태도로 인하여, 온 천하의 신하와 백성들은 일찍이 폐하께 등을 돌렸사옵니다.
낙문은 이미 문학적 소양 따위는 곁들이지 않고 상주서를 휘갈겨 썼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간단하고 직접적이었으며, 검자루를 쥐고 황제의 가슴을 푹푹 찌르는 말들만 골라서 작성하였다.
낙문이 마지막에 쓴 말은 해서공(海瑞公)이 명나라 황제 가정제(嘉靖帝) 주후총(朱厚熜)에게 썼던 <치안소(治安疏)>에서 나온 구절이었다.
하지만 해서공은 일대 충신이었고, 황제에게 <치안소>를 쓴 것은 죽을 각오로 올린, 주군으로서 정의를 지켜달라는 진정한 충언이었다. 만약 해서공이 주후총이 아닌 지금의 대녕 제국 천윤제를 보좌했다면, 해서공은 일찍부터 그를 성군이라 칭송하며 <치안소>의 ‘치’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에게 보낸 상주서가 오늘 밤 마지막 글은 아니었다.
낙문이 오늘 밤 작성하는 마지막 서신은 봉래도 북명검파에게 보내는 밀서였다.
밀서의 내용은 무척 간단했다.
낙문은 북명검파에게 막강한 정예 자객단을 준비하라고 했고, 영설 공주와 이문회를 예의주시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이문회가 도망치려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영설 공주를 무시하고 이문회를 죽여버리라고 썼다.
낙문이 작성한 밀서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암호로 작성되었기에 후일 그가 체포된다고 해도 그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할 일을 마친 낙문은 드디어 붓을 내려놓고 술잔을 쥐었다. 그는 향이 좋은 술을 술잔에 가득 채운 뒤, 밤하늘에 높이 뜬 달을 향해 건배했다.
“이문회, 네놈의 죽음이 참으로 기다려지는구나!
두변, 네놈도 오래오래 살아서 천 리 밖에서 나와 함께 달을 볼 날이 오길 바란다. 하하하!”
운남 어마사부.
이연정의 의자인 이옥당은 이문회와의 경쟁에서 실패 후 동창을 떠나 어마감 세력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가 동창이나 이연정을 배신한 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또한 어마감도 병마를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이었다.
이옥당이 어마감에 들어간 것은 이연정이 어마감에 못을 하나 박아둔 것과도 같았다.
운남에는 전마(滇馬: 다리가 짧은 말. 지구력이 좋기로 유명하며 차마고도에서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라는 말이 많았고, 그래서 이곳에도 어마사(御馬司)가 있었다. 이옥당은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정4품 어마사사(御馬司使)로 지내고 있었다.
이옥당은 이연정의 의자답게 매우 독한 구석이 있는 데다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이곳에 온 지 반년 만에 운남 어마사를 손아귀에 꽉 쥐었다. 그래서 운남 어마사 전체가 이옥당과 경성에 있는 이연정을 따를 뿐, 어마감의 제독이나 총독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문회에 비하면, 이옥당은 더욱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는 늘 동창 주인인 이연정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했다. 자신이 아닌 이문회를 선택한 이연정의 결정이 틀렸다는 걸 꼭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옥당과 이문회는 서로가 경쟁 상대이고, 그렇게 알게 모르게 수십 년을 겨뤄왔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형제애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이문회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옥당이 제일 격하게 반응하면서 곧장 이연정에게 서신으로 청을 올렸다. 그는 이연정에게 황제더러 가장 피비린내 나는 방법으로 경성의 난을 진압하라고 제안하라는 내용이었다.
퇴직한 대신이든, 국자감의 학생이든, 궁문 앞에서 농성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라는 뜻이었다.
물론 이연정은 그의 서신을 받자마자 불에 태워버렸고, 곧장 이옥당을 호되게 꾸짖는 답신을 보냈다.
만약 이옥당의 말대로 황제가 정말로 그렇게 강압적으로 지금 상황을 진압한다면, 반란을 일으킬 사람은 여여해뿐만이 아니게 될 것이다. 아마 산서와 산해관의 대군이 모두 청군측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경성으로 몰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