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장. 1등 할 확률
얼마 뒤 여여해가 북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옥당은 치가 떨릴 정도로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이옥당은 곧장 어마사의 이천 병마를 이끌고 운남 동창 진무사 관아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운남 동창 진무사 탕륭에게 말했다.
“여여해가 반역을 일으켰소. 당장 동창의 모든 병마를 이끌고 나와 함께 가야 하오.”
운남 동창 진무사 탕륭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옥당, 폐하께서 성지를 내리지 않으셨고, 이연정 대인께서도 명을 내리지 않았소. 우리가 이렇게 경거망동해서는 될 일이 아니오.”
이옥당이 화를 내면서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왜 이리 아둔한 것이오! 경성에서 명령이 떨어질 때쯤엔 모든 게 다 끝나있을 거란 말이오! 이문회가 벌써 땅속에 묻히고도 남았을 거란 말이오.”
이옥당이 탕륭을 노려보면서 협박에 가깝게 말했다.
“당장 명령을 내리시오.”
이옥당은 탕륭에게 더는 동의를 구하지 않고, 운남 동창 무사 집합령을 쓴 뒤 진무사 인장을 집합령에 찍었다.
고집이 세고 독단적인 데다가 어딜 가든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바로 이옥당이었다. 하지만 불행인 건지 다행인 건지, 그는 형제와 대의를 위해서라면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문회가 자신이 물러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게 바로 두변을 이옥당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운남 어마사사 이옥당은 아주 빠르게 동창과 어마사 소속의 삼천여 명 무사, 그리고 수십 개 조직의 이천여 명 무사를 모았다. 그는 약 육천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운남과 여씨 토사 경계 지역으로 향하여 여여해의 십만 대군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대녕 제국, 안륭 토사부.
저홍면 노장군이 이미 칠천 낭군을 이끌고 안남 왕국으로 간 터라, 안륭 토사부에는 노약한 병사 삼사 천 명만 남아 있었다.
저홍엽은 올해 마흔둘로, 저홍면 노장군의 의매(義妹)였다. 저홍면 노장군이 출정을 나갈 때면, 안륭 토사부를 지키는 사람이 바로 저홍엽 장군이었다.
저홍엽 장군에겐 또 다른 신분이 있었다.
바로 두변의 ‘의미상’ 의모(義母)라고나 할까.
두변보다 인품이 훨씬 뛰어난 이문회는 자신이 환관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한 여인의 종신대사를 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문회는 저홍엽을 마음에 품고 있긴 했지만, 세간의 구설에 오를 만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홍엽도 이문회 못지않게 고집이 센 사람인지라,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혼사를 치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수십 년간 보지 않고 살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
그 때문에 저홍면 노장군은 이문회의 의자 두변을 처음 보는 순간, 바로 자기 사람으로 생각했다.
여여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자, 저홍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륭 토사부에 남은 모든 병사를 모아 사천 명의 인원을 맞추고는 변경을 향해 달려갔다.
나흘이 지난 뒤, 두변은 몇천 리 길을 달려 다시 광서 염주부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땐 여여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온 제국에 퍼졌을 때인지라, 만천하가 들썩이고 있었다.
운남, 광서, 사천, 귀주, 심지어 광동에 있는 주부까지 마치 전쟁을 치를 것처럼 성문을 굳게 닫았다.
일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가는 백성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제국의 곳곳은 벌써 난세가 된 듯이 아비규환이었다.
비록 2군 부대이긴 하지만, 광서, 운남, 사천 등 몇몇 성의 주둔군을 합치면 무려 육만 정도의 병력은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몇만 대군은 자신들의 주둔지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이 반란이 일어났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군사비나 식량이 모자라서일까?
아니다. 아무리 비상시기여도 군대를 움직일 비상 군사용품과 군비는 있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 성의 총병이 연합하여 황제에게 상주서를 올렸다. 상주서의 내용은 몇만 대군이 황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부디 황제께서 천만 백성의 애환을 돌보시어 간신 이문회를 처형하고 이연정을 동창에서 내쫓으라는 것이었다.
황제가 이 조건에 응해야만 몇만 대군이 대녕 제국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적장의 목을 베겠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이 상주서는 세 개 성의 총병관이 쓴 게 아니라, 일반 병사가 혈서를 쓴 뒤 거기에 수만 명 병사가 연합하여 서명하여 완성된 것이었다.
황제 입장에선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주서였다. 이문회를 처형하고 이연정을 내쫓을 것 같으면, 이들이 목숨 걸고 싸울 전쟁이 남아 있기나 할 것인가.
같은 시각. 염주부에 도착한 두변도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소주인, 광서 엄당의 새로운 산장인 왕굉이 폐하의 만수절을 축하하기 위해서 엄당의 졸업 시험을 70일 앞당긴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수절 당일 광서 엄당의 모든 학생이 폐하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무도 대회를 열 것이고, 만수절 이튿날에는 시문 대회로 폐하의 은덕을 칭송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수절 셋째 날은 환관 학원의 모든 선생과 학생이 각종 화단(火丹)을 만들어서 밤하늘에 불꽃을 쏘아 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수절을 축하하는 사흘이 지나면, 환관 학원의 졸업 시험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두변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졸업 시험을 무려 70일이나 앞당긴다고? 내일모레가 폐하의 만수절인데, 만수절 3일까지 더한다고 해도, 엿새 뒤면 졸업 시험이라는 거잖아?
이런 젠장!
두변은 아직 배우지 못한 과목이 몇 개나 있었고, 그중 가장 중요한 과목인 무도 검술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두변이 여천천을 무찌른 건 맞지만, 그건 선와 검법으로 번개를 불러와서 여천천을 죽인 것이다. 두변이 할 줄 아는 검법이라곤 선와 검법뿐이었고, 따지고 보면 무도 검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실전에서 쓸 일이 전혀 없는 검법이었다.
두변이 이문회를 구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임무이지만, 졸업 시험도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임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 시험에서 수석을 해야만 한다.
두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정신술을 이용해 꿈속 세계로 들어갔다.
기이한 불빛과 교류하는 게 꽤 익숙해진 두변은 꿈속 세계로 들어가자마자 말했다.
“이전에 말한 적 있죠. 만약 내가 졸업 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나를 죽일 거라는 말이요. 그 말이 사실인가요?”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 그렇다.
“아니 왜요? 난 댁들의 그런 식이 참 마음에 안 드는데요. 뭐만 하면 자꾸 죽인다니요. 내가 졸업 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한대도, 동창의 주인이 되지 못한대도, 엄당의 우두머리가 될 수는 있잖아요.”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 정확히 말하자면, 널 죽이는 게 아니라 널 포기하는 것이다. 넌 모르겠지만, 너를 위해 이 세계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아느냐. 네 눈엔 졸업 시험에서 1등을 하지 않아도 앞길이 창창하겠지. 하지만 네가 거쳐야 할 필수 과정에는 그 어떤 착오도 생겨선 안 된다. 그 어느 단계서든 착오가 생기면 네가 여태 해왔던 모든 것이 수포가 될 것이고, 결정적인 프로세스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두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졸업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건 기이한 불빛이 말한 필수 코스 중 하나인데, 만약 1등을 하지 못한다면 향후 그가 개척해내는 길은 시스템에서 설정해둔 길이 아닐 것이고, 언젠가 엄당을 손에 넣게 된다고 한들, 이미 시스템의 설정값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두변이 물었다.
“지금 졸업 시험을 치른다면, 내가 1등 할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 원래는 70퍼센트였지만, 넌 만수절의 3일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테니, 가산점을 얻지 못하는 관계로 57퍼센트가 되었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57퍼센트가 그렇게 절망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확률이 더 떨어지면 안 된다.
두변이 물었다.
“내가 1등 할 확률이 낮아지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 네 정신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 고작 40포인트밖에 안 되지 않느냐. 그래서 궁술, 기마 궁술, 연단 등 많은 과목에서 만점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무도 검술이 가장 중요한데, 지금 네 실력으로는 일정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난 꼭 졸업 시험에서 1등 할 겁니다. 꼭 당엄 그 자식을 이기고 말겠어요.”
- 알겠다. 졸업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라 임무 시작. 목표는 오직 1등이다.
안륭 토사부, 북풍관.
이 성관(城關)은 여씨 토사부와 대녕 제국의 경계에 있었다.
십만 대군을 이끌고 성곽에 도착한 여여해가 북풍관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북풍관을 지키는 주장은 저홍엽으로, 그녀는 사천 명의 쇠약한 병사들과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여여해가 이 길을 택한 이상, 십만 대군이 대녕 제국으로 들어가려면 무조건 북풍관을 뚫고 들어가야 했다.
여여해는 행군을 무척 천천히 했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제국 전역에 퍼져서, 아주 적절한 때에 황제의 귀에까지 소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허물어진 성벽 위에 서 있는 아름다운 저홍엽을 보자, 여여해가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병사들을 이끌고 북상하는 이유는 반란을 위함이 아니라, 폐하를 위해 청군측을 하고, 간신을 주벌하기 위함이오. 당장 성문을 열어서 지나가게 해주시오!”
두변의 의모나 다름없는 저홍엽 장군이 담담한 투로 말했다.
“제국을 위해 변방을 지키는 게 내 의무요. 폐하의 성지 없이는 그 누구도 북풍관을 지날 수 없소. 꼭 이 성문을 지나고 싶다면, 내 시신을 밟고 지나가시오.”
여여해가 냉소를 지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하셨군.”
여여해의 십만 대군이 북풍관을 지키는 쇠약한 사천 병사를 모조리 죽이는 데에는 반 시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일주향만 기다려주겠소. 그때까지도 성문을 열지 않는다면, 내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버리겠소.”
바로 이때, 하늘에서 수백 마리 까마귀가 다리에 쪽지를 묶고 북풍관을 향해 날아왔다.
까마귀의 수가 어찌나 많은지, 사람들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착시가 보일 지경이었다.
하루 전, 사륭석이 이만 칠천 명의 만병을 이끌고 여씨 홍하부를 쳐들어갔다. 그리고 네 시진도 채 되지 않아 최남단의 백수현을 공파하고, 그곳에 주둔해 있던 삼천여 명의 여씨 병사들을 몰살시켰다.
이후 이만 여 명의 만병들은 성에 들어가 약탈을 자행했다. 지금 여씨 토사부의 백수현은 온통 피로 씻긴 듯 지옥이었다.
불을 지르고 약탈하고 거침없이 살육을 저지른 사륭석과 만병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미친 속도로 전진했고, 그들은 여씨 토사부의 다른 핵심지인 홍하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씨 후작부(府)와 삼십만 인구가 있는 홍하성은 현재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사륭석의 공격에 여씨 토사부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광서 환관 학원.
환관 학원에서 졸업 시험을 일찍 치르는 건 두변에게 명백히 불리했다. 왕굉이 일부러 두변을 골탕 먹이려는 건 확실했지만, 왕굉의 결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광서 환관 학원만 황제의 생일을 위해 유난을 떠는 건 아니었다.
황제가 올해 마흔아홉이고, 내년이면 지천명의 나이였다.
다른 황제였다면 벌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그의 만수무강을 빌고, 각국 사신을 경성으로 불러들여 크게 연회를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윤제는 그런 겉치레를 몹시 싫어했다. 그는 매년 조용히 생일을 보냈고, 기껏해야 황후, 태자, 공주와 함께 장수면을 한 그릇 먹는 게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