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56화 (156/648)

156장. 피를 토하는 여여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두변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정신력 증진은 영원한 것이고, 정신력 증진을 해야만 졸업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 당엄을 이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정신력 증진만이 7품 무사 이상의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물론, 후자를 선택함으로써 추가 시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산점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산점 15점 받자고 정신력 15포인트 증가를 포기하는 건 정말 멍청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정신 대사 열멸 임무 개시

- 임무 목표: 정신 대사 견사(犬舍: 개집)가 열멸하기 전에 정신력 계승을 받아라.

‘고승이 참 개성 있는 사람이네. 이름을 지어도 견사라는 이름을 짓냐. 무공 수준이 뛰어날수록 겸손한 건 이 세계의 미덕인가 보군.’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 임무 포상: 정신력 15포인트 증가.

- 임무 실패 시, 졸업 시험 불참, 심할 경우 산송장이 된다.

임무 실패 시의 결과를 들은 두변은 어쩐 일인지 심장만 덜컹할 뿐, 그 외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위험한 임무여도 구두사 신의 심연에 뛰어든 것만 할까. 그땐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그리고 꿈속 세계가 있으니 위험한 국면을 기회로 바꿀 수 있겠지.’

두변이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정신 대사는 어디 계십니까? 어디로 가서 계승을 받아야 하죠?”

- 견사 고승의 사찰에 있다. 견사사(犬舍寺)로 가거라. 안남 왕국의 전변부(디엔비엔푸)와 낭발랍방 왕국의 경계 지역에 있는 한 마을에 있다. 이곳에서 천구백 리 떨어져 있으니,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할 것이다. 십여 시진 뒤면, 견사 고승이 자신의 계승자를 결정할 것이고, 네게는 여러 명의 경쟁자가 있을 것이다.

낭발랍방 왕국은 현대 지구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으로, 유명한 고적지이자 불교의 중심지이다.

“아, 일찍 좀 알려주지 그랬어요. 지금 막 안남 왕국에서 온 거 빤히 알면서. 헛걸음치고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 껄껄.

기이한 불빛은 두변에게 별다른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알 수 없는 웃음만 지었다.

만약 미리 두변에게 알려주었다면, 두변의 앞길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고 재난 수준의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꿈속 세계에서 벗어난 가엾은 두변은 다시 야생마 등 위로 몸을 날리고 안남 왕국 전변부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목적지는 견사사였다.

북풍관.

여여해는 성문 위에 서 있는 여인 저홍엽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탄식했다.

아름다운 외모, 막강한 무공, 병법도 뛰어난 저홍엽은 평생을 독수공방하였다. 여여해는 만약 저홍엽이 자신의 첩으로 들어왔다면, 여씨 가문에 용맹하고 유능한 장군 한 명이 더 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홍엽은 저홍면처럼 몰락하는 대녕 제국을 위해 충성을 바쳤다.

북풍관을 지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거라면, 여여해는 이곳에 있는 노약한 병사를 죄다 죽이고 저홍엽을 생포할 것이다. 그리고 저홍엽에게 자신의 첩이 되지 않겠냐는 마지막 제안을 할 것이고, 저홍엽이 끝까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죽일 요량이었다.

일주향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렬!”

여여해가 명령을 내리자, 십만 대군이 칼처럼 각을 맞추며 진을 치기 시작했다.

대형 투석차가 장전되었고, 3만 궁수대가 활시위를 당겼다.

스무 배가 넘는 병력 차이가 있다 보니, 아무리 공성전이라고 해도 여여해가 북풍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기껏해야 몇 시진일 것이다.

여여해가 커다란 오른손을 허공을 향해 치켜들었다.

그는 일주향이 끝나는 순간 곧바로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까악. 까악. 까악!

하늘에서 까마귀 떼가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까마귀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여여해의 심장이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큰일이 났길래 몇백 마리의 까마귀를 보낸 거지? 설마 성화교에 관한 소식이 누설된 건가?’

까마귀들은 공중에서 군의 낙하대를 발견하고는 한 마리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여여해의 수하가 서둘러 까마귀의 다리에 묶인 밀서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밀서를 차마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장 여여해에게 건넸다.

삽시간에 여여해의 손에 수십 통의 밀서가 쥐어졌고, 그 사이에도 더 많은 밀서가 쉴 새 없이 날아왔다.

큰일이 났다는 걸 직감한 여여해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제발 아니길. 제발 아니길!”

여여해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숨을 내뱉지도 않고 빠르게 밀서 하나를 펼쳤다.

여여해는 밀서의 내용을 본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눈앞이 하얘지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여여해의 거대한 몸이 휘청이고,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그의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온몸의 솜털이 삐쭉 섰다가 모든 모공에서 식은땀이 터져 나왔다.

밀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사륭석이 2, 3만 명 만병을 이끌고 백수현을 함락시켰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사륭석, 그 미친놈이 감히 여씨 토사부를 공격해? 내게 십만 대군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미친 짓을 벌였다는 거야?’

여여해는 사륭석이 출병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이미 문관 집단을 통해 육십만 냥 은자로 그를 회유하게 했으며, 열댓 명의 사륭 부족장을 매수했다.

심지어 그는 무려 일만 명의 병사를 사륭 부족과 여씨 토사부의 경계 현에 주둔시켰다.

그런데 사륭석이 이 모든 준비를 무력화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사륭석은 단순히 병사들을 이끌고 보여주기식으로 여씨 토사부를 침략한 게 아니라, 아예 여씨 토사부를 완전히 함락시킬 기세로 들이닥쳤다.

여여해는 힘겹게 숨을 내쉬면서 침착함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백수현은 이미 잃었으니 연연하지 말자.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니, 그곳에 있는 금은보화와 여인들로 족히 이틀은 즐기겠지.

사륭 병사들은 순 들개들이니, 고깃덩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지.’

여여해가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다졌다.

‘북풍관을 뚫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여기를 뚫고, 군대를 두 개로 나눠서 하나는 여씨 토사부로, 하나는 계속해서 나와 함께 북상한다.

대녕 제국의 변경을 뚫고 강하게 나가야만 황제를 겁박할 수 있어.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문회를 죽이고 영설 공주의 혼사를 받아 내야 해.’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여여해는 천천히 눈을 뜨고 두 번째 밀서를 펼쳤다.

그는 제발 희망적인 소식이 담겨 있길 바라면서 밀서를 읽었지만, 더욱 나쁜 소식을 읽고 말았다.

여여해는 온몸이 얼음골에 떨어진 사람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백수현이 함락됐다는 소식은 최악의 소식도 아니었다.

최악의 소식은 사륭석과 그 병사들이 한 시의 지체도 없이, 다른 곳에 눈도 돌리지 않고 홍하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수현은 잃어도 되지만, 심지어 그 주위 몇 개 현까지 버려도 그만이지만, 홍해성만큼은 아니었다. 그곳은 여씨 가문의 사당이 있는 곳이고, 홍하 후작부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홍하성에 이십여 만 명의 백성이 있고, 엄청난 양의 은자, 무수히 많은 공방, 그리고 무기, 갑옷, 소금과 포목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씨 토사부에는 핵심이 되는 성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정치 중심지인 문산성이고, 다른 한곳이 바로 경제 중심지인 홍하성이었다.

두 성의 중요도는 여여해가 둘 중 하나만 포기하라고 해도 그 어떤 성도 포기할 수 없는 정도였다.

일단 홍하성이 함락된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재난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여여해가 다리 하나를 잃는 것과 동일했다.

모든 것은 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안 그래도 이문회가 문산루를 급습한 탓에 여씨 가문의 은자 출혈이 꽤 심했는데, 거기다 홍하성까지 잃게 된다면 여씨 가문은 기둥 하나가 뽑히는 꼴이었다.

여여해가 기억하는 사륭의 만병들은 미치광이들이었다. 그들은 겁도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모든 재산을 약탈할 것이다.

홍하성에 있는 그 많은 공방이 잿더미가 된다면, 다시 공방을 만들어서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은자와 시간, 자원을 들여야 한다.

어쨌든 홍하성이 함락된다면, 여씨 토사부의 모든 것이 10년 전으로 후퇴하는 셈이었다.

여여해는 눈앞이 캄캄해졌고, 팔다리가 덜덜 떨리면서 식은땀 때문에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온몸이 싸늘한데 유독 가슴에서는 기혈이 솟구쳤다.

피를 토하기 직전, 여여해가 벌게진 눈으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사륭석! 내가 꼭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생애 최대 난제에 당면한 여여해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넋을 놓았다.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일단 군대를 이끌고 다시 홍하성으로 돌아가? 군대를 나눠? 아니면, 계속해서 북상을 강행해?’

여여해는 세 가지 선택지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했다.

‘십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홍하성으로 돌아가는 건 절대 불가능해! 이대로 퇴각하게 된다면, 이문회를 죽이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영설 공주의 혼사도 물 건너가. 그럼 내가 손해 본 삼백만 냥 은자도 돌려받지 못한다고. 이대로 퇴각하면 여태 쌓아왔던 공이 다 무너져버려.

그렇다고 해서 북상을 강행할 수도 없지. 북풍관을 뚫고 간다고 해도 홍하부를 잃게 되면 모든 걸 잃는 건데.

홍하성에 구천 명의 주둔 병사가 있고 용맹한 장수이자 아우인 여여호가 있긴 하지만, 정예군이 육천 명밖에 되지 않아. 다른 군대를 상대한다면 5만 명도 거뜬히 막아내고 보름 이상 버틸 수 있겠지만, 만병이라면 얘기가 달라져. 게다가 몇천 명도 아닌, 2만 명이 넘는 들개 같은 만병이라면 더더욱.’

여여해는 사륭석이 이끄는 만병이 공성전을 치르게 될 때의 모습을 잠깐 상상했다. 그 많은 수의 만병들이 아마 사다리도 필요 없이 맨손으로 순식간에 성벽 위까지 오를 것이고, 궁수부대는 화살을 쏘기도 전에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앞뒤가 막힌 좁은 길에서 싸움을 벌일 때,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용감함이다. 사륭 부족은 그 점에 있어서 몹시 막강한 존재였다.

군용품을 끊는 전술을 쓰자니, 사륭 부족은 애초에 군용품이란 걸 들고 전장에 나서는 부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뭐든 씹어 먹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약탈하며 연명했다. 그들은 설령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대도 절대로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여여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 몇만 정예병을 보내는 방법뿐이었다. 홍하성이 아직 함락되기 전이니, 홍하성 안팎에서 협공해서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방법으로 만병을 공격하고 전멸시키는 방법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여여해는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털썩 앉은 뒤 자신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금세 냉정함을 되찾은 그가 곧장 가장 정확한 결정을 내렸다.

“여여룡, 여씨 군대의 삼만 대군을 이끌고 빠르게 남하하거라. 모든 기마병을 이끌고 제일 빠른 속도로 홍하성으로 가. 그리고 성안에 있는 부대와 함께 힘을 합쳐서 안팎으로 만병을 박살 내라. 다시는 후환이 없도록 만병을 전멸시켜야 한다.”

여여해는 줄곧 사륭 부족과의 전투를 피해왔고, 갖은 더러운 수단을 써서 사륭 부족의 고위층을 매수했다. 사륭 부족이 차지한 토지는 온통 고산 밀림으로 이뤄져 있었고, 여러 나라와 경계가 접해 있어서 정세가 복잡한 만큼, 여여해에겐 매력적인 땅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벌어진 전투는 도저히 피할 상황이 안 되니, 이참에 사륭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심보였다.

홍하성 주위는 모두 평지로, 고산 밀림과는 일정 거리 떨어져 있다. 여여해는 이런 지형에서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고 기마병도 십분 활용할 수 있으니, 사륭을 처치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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