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71화 (171/648)

171장. 유래에 없는 만점

시험관은 수금체로 작성된 두변의 답안지를 개안이라도 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한 글자도 빠짐없이 감상했다.

글씨체만 감탄 나올 지경이면 모르겠는데, 관건은 시험지의 문장이었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답안지의 책론을 읽고 있자니 이유 모를 송구스러움에 자세가 절로 낮춰졌다.

조금 전 당엄의 답안을 채점할 땐, 그의 문장이 우수한 건 맞지만 채점자의 시선으로 문장을 꼼꼼히 따지면서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 답안을 보고 있자니, 답안을 읽으면 읽을수록 솜털이 삐쭉 서고 손에 식은땀이 줄줄 났다.

시험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이런 답안을 채점하지? 내게 그럴 자격이 있나? 마음 같아선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이 책론을 정독하고 싶은데.

빈틈을 찾아내라고? 이런 문장에 빈틈이 있긴 한가?’

미안하지만, 이들 시험관은 이 책론을 자신이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무리 시험관들이 사례감 출신의 대환관이고, 국학 수준이 진사와 동급이라고 해도,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한 원작자의 국학에 견줄 수는 없었다. 평범한 진사가 스물다섯에 장원급제한 천재의 책론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책론을 정독한 시험관은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두피가 저릿해진 채로 심호흡을 하고는, 팔고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솔직히 그는 시선을 옮기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팔고문은 책론만큼 심장 떨리는 문장이 아니기를.

시험관이 자신의 자질을 의심할 정도이니, 그가 느끼는 압박감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팔고문을 읽기 시작한 시험관은 또 한 번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

제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지 말게. 아무리 천재여도 그렇지, 다른 사람들 생각도 좀 해야 할 거 아닌가.

이렇게 흔해 빠진 문제를 이토록 멋들어지게 답하는 사람은 아마 대녕 제국에 딱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문제는 내로라하는 문인이라면 한 번쯤 써봤을 법한 팔고문이었지만, 이 답안만큼 충격을 안겨주는 문장은 없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만 더 특출나면 될 것을, 이렇게 경악무도하게 잘 쓸 필요가 있나? 문장이 구구절절 정교한 건 차치하고, 호방한 검기까지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 흔해 빠진 주제를 소름 돋게 잘 쓸 수 있지?

시험관이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면서 생각했다.

가엾은 시험관은 모를 것이다. 두변이 써낸 이 팔고문은 무려 전시에서 차석을 한, 명조 시대의 일대 대사이자, 문관 세력의 총 지도자였던 손승종의 것이라는 걸.

시험관은 정신이 거의 마비된 듯한 멍한 표정으로 세 번째 시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쯤 되니, 시험관은 채점은 포기하고 이 사람이 이렇게 수준 높은 문제를 어떻게 답할지 미칠 듯이 궁금해졌다.

누구나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듯이, 대개 작문을 잘하는 사람들은 시문에서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시문을 모두 읽은 시험관은 머리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놀라움과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번개가 그의 머리 위를 때리고는 온몸을 관통하면서 손까지 덜덜 떨려왔다.

당대의 시선 이백의 시이니, 그럴 수밖에.

한참을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험관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들. 여기 답안지가 하나 있는데, 내 재량으로는 도저히 이 답안지를 평가할 수가 없네. 난 이 답안에 만점을 줄 것이니, 알아서들 하시게.”

말을 끝낸 그는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여운에 잠겼다.

“만점이라니? 농이 지나치군.”

“국학 시험에 만점은 나올 수가 없지.”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고 해도 허점이 있기 마련이오.”

“너무 졸려서 그러는 것이오? 만점이라니.”

나머지 네 명의 시험관들이 첫 번째 시험관에게 핀잔을 주면서 답안지를 건네받았다.

시험관들은 답안지를 보는 순간부터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답안지를 읽었고, 몇몇은 저도 모르게 이따금 헉 소리를 내면서 두피를 긁어줘야 했다.

원래 좋은 글, 좋은 시는 정말 사람의 두피를 저리게 한다.

시험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답안지를 한 번 보고 또 보았다.

그랬더니 더 전율할 뿐이었다.

세 번 다시 읽었다.

더더욱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들은 여운에 젖은 표정으로 한참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책론, 이런 팔고문, 이런 시를 쓸 줄 아는 인재가 환관 학원 졸업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지금 장난하는 건가? 당장 이 학생더러 전시에 참가해서 장원이 되라고 해야 하오.”

시험관 한 명이 오랜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이런 걸작은 황제 폐하께, 내각 대신에게 채점하라고 줘야 하오. 우리 같은 사례감 환관들이 이런 문장에 채점할 수가 없소.”

“그, 그럼 몇 점을 줘야 하오?”

“만점이 맞지.”

“하지만 역대 국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소.”

“그럼 이 답안에서 점수 깎을 구석을 찾아낼 수 있소? 어느 문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오? 자네가 어디 한 번 짚어보려오? 이 답안에 훈수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아, 그런 뜻은 아니오. 내가 어찌 감히 이런 작품을 지적할 수 있겠소. 난 그럴 자격 없소.”

“다들 동의하는 것 같으니, 그럼 만점이오.”

그렇게 환관 학원 졸업 시험에서 유래에 없는 국학 시험 만점자가 나왔다.

두변 국학 시험 결과, 만점 150점에 150점.

이 충격적인 결과는 내일 아침 홍방에 내걸릴 것이다.

시험관들은 이 결과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줄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두변의 국학 시험 성적이 150점으로 확정되었다.

환관 학원 졸업 시험에서 국학 시험 만점을 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시험관 입장에서는 이 결정이 최선이었다.

채점을 담당하는 다섯 명의 시험관 중, 특히 사례감 출신의 대환관 세 명이 만점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번 졸업 시험에 참여하는 학생이 총 330명으로, 시험관들은 두 시진을 더 채점하고 나서야 모든 채점을 끝냈다.

다섯 명의 시험관들은 채점을 마치자마자 얇은 수금체로 작성된 답안을 둘러싸고 앉았다. 가장 먼저 그 답안지를 채점했던 사례감 출신 시험관이 떨리는 손으로 답안 위에 붙여진 이름을 가린 종이를 떼어냈다.

답안지 위에는 두변의 시험번호와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깜짝 놀란 시험관들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이, 이게 무슨 일이람?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던 그 두변?

차양도 없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험을 쳤던 그 두변?

시험이 시작되고 한 시진 만에 답안을 제출한 그 두변?

시험관들은 두변이 당연히 자포자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장일치로 만점을 준 답안의 주인공이 두변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가장 중요한 건, 두변이 낸 답안이 환관 학원의 졸업 시험이 아니라 회시나 전시에 내놓아도 충분한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시험관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두변이 한 시진 만에 답안을 제출했던 건, 자포자기해서가 아니라 소나기가 내리기 전에 빨리 답안을 제출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것을. 답안을 이미 다 작성했으니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뚱이로 시험장에 앉아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한 시진 만에 만점짜리 국학 시험 답안을 내다니, 시험관들은 황당하다 못해 인생의 허망함까지 느꼈다.

시험관들은 영종오 대종사가 두변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끼고 있었다.

‘천재는 정말 자기 마음대로 다하는구나!’

이때, 한 시험관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혹시 문제가 유출된 건 아닐는지요?”

나머지 네 명의 시험관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중 사례감 출신의 세 명은 고개까지 저으면서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단언했다.

이번 국학 시험 문제를 출제한 사람들이 바로 이 세 명이었고, 문제가 정해지고는 아예 시험지를 밀봉하여 극비로 보관했다. 그리고 이 세 명은 졸업 시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특수한 방에서 감금되다시피 바깥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로 지냈다.

그리고 두변은 당시 계림에 있지도 않았으니, 그가 문제를 빼돌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험관 중 한 명이 수염을 쓸면서 말했다.

“문제가 유출됐다 하더라도, 아무나 이런 수준의 문장을 써낼 수 있는 건 아니오.”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왔다.

이런 수준의 문장과 시는 부정행위로 여러 사람의 것을 짜깁기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건 글 쓴 사람 본연의 천부적인 재능이 흘러넘쳐서 가능한 수준이지, 연습이나 고뇌로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글이었다.

다섯 명의 시험관은 두변이 이런 답안을 써냈다는 것이 놀랍긴 했지만, 엄당에 이런 천재가 있다는 것에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시험관들 뒤에 서 있던 광서 환관 학원 산장 왕굉은 불길한 예감에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이익 집단은 이번 졸업 시험에서 당엄의 입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당엄을 광서 환관 학원으로 전학하게 한 것, 왕굉이 광동 환관 학원 산장에서 광서 엄당 산장으로 이직한 것, 두변의 3대 학부 대회 가산점을 취소한 것, 만수절을 빌미로 졸업 시험을 두 달 반이나 앞당긴 것, 당엄이 무리 없이 1등을 할 수 있도록 추가 시험에서 가산점 30점을 준 것, 졸업 시험이 끝난 뒤에 한 명만이 동창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까지.

이 모든 것이 다 당엄의 앞길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일들이었다.

비록 당엄이 졸업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것에는 조금도 걱정이 없었지만, 그래도 당엄이 보란 듯이 2등과 엄청난 점수 차를 만들길 원했고, 유래가 없는, 모든 학생이 절망할 만한 고득점을 받길 원했다.

원래 모든 게 다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왕굉 등은 3대 학부 대회 때만 해도 두변을 견제했지만, 그때의 가산점을 취소하고 졸업 시험을 두 달 반이나 앞당긴 뒤로는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학원 꼴찌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이렇게 단기간에 고득점을 받기란 불가능했고, 졸업 시험 준비만 해도 빠듯한 시간에 제국 방방곡곡을 도느라 정신이 없는 두변이니 말이다.

게다가 두변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시험장에 나타나서 시험 시작 한 시진 만에 자포자기하듯 답안을 제출한 걸 보고는 그를 완전히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두변이 국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왕굉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두변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치자. 하지만 무도 수준은 초급자만도 못하지. 여천천과의 결투에서도 제대로 된 검법 하나 내놓지 못했잖아. 만약 여천천이 벼락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면, 두변 저놈은 벌써 땅속에 묻혔을 테지.’

두변의 무도 능력이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라는 건 환관 학원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왕굉이 두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 뒷조사를 해본 결과, 두변은 어렸을 때부터 산술을 잘못했고 숫자도 제대로 셀 줄 모르는 수준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매번 0점을 받는 것도 재능일 테지만, 두변은 학원에서 치러지는 모든 산술 시험에서 항상 0점을 기록했다.

왕굉은 두변이 아무리 국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해도, 이어질 시험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낼 거라고 확신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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