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72화 (172/648)

172장. 경악한 당엄

졸업 시험의 두 번째 과목은 만점 100점의 산술 시험이다.

다른 학원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환관 학원 졸업 시험에는 산술 과목이 있고 그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엄당 세력의 대부분이 황제의 세금 징수, 혹은 해외 무역과 관련된지라, 염운사, 세관, 시박사, 직조국 등에 많은 중요 인력이 투입되어 있고, 필수적으로 큰 금액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하고 장부 정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엄당은 문무 집단에서는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산술을 환관 학원의 단독 과목으로 나누어서 100점을 배정한 것이다.

산술 시험은 오전 9시에 시작돼서 오후 4시에 끝난다.

9시가 되기 전, 모두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전날 치렀던 국학 시험 성적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동이 트기도 전에 서둘러 공고 게시판 앞으로 와서 성적 발표를 기다렸다.

성적 발표를 손꼽아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은 흡사 현대 지구의 수능 수험생과 비슷했다. 다만, 환관 학원 졸업 시험이 수능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할 것이다.

수능은 붙은 대학 중에서 골라가면 되는 것이지만, 환관 학원 졸업 시험은 학생들의 평생을 결정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환관 학원의 졸업 시험은 무척 투명하고 공평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성적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는 잔인한 시험이었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기관에 들어갈 수 있고, 현대 지구로 치면 바로 과장급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평생 하급 노비처럼 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모든 학생이 공고 게시판 앞으로 모여들었지만, 두 사람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당엄이었고, 다른 한 명은 두변이었다.

당엄은 자기가 최고득점일 거라 예상했고, 2등과 몇 점 차이가 날지까지 짐작이 되는 상황이니 굳이 성적을 확인하러 오지 않았다.

그는 비교적 겸손하게 자신의 성적이 138점 정도 될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의 점수는 140점이었다.

두변은 열흘 넘도록 잠을 제대로 못 잔 터라, 어제 답안을 제출한 뒤로 밥 먹을 정신도 없이 곯아떨어져서 여태 자고 있었다.

환관 학원 학생을 통틀어서 시험 성적을 가장 궁금해할 사람은 염세였다.

그는 국학 시험에 제출한 제 답안이 무척 만족스러웠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당엄이 있으니 1등은 넘볼 수 없어도, 2등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 여섯 시 반. 태양이 막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엄당 무사 몇 명이 성적표를 붙이러 게시판 앞으로 왔다.

처음에는 무사들이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의 성적표와 답안지를 게시판에 차례로 붙이기 시작했다.

10등, 9등, 8등…….

10등부터 성적표와 답안이 차례로 게시판에 붙여졌고, 성적표가 공개될 때마다 게시판 앞 인파 속에서 환호가 들려왔다.

“내, 내, 내가 10등 안에 들다니!”

누군가가 기뻐하면서 외치자, 주위 학생들이 그에게 경망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됐다. 내가 됐어!”

또 다른 누군가가 방방 뛰면서 소리쳤다.

‘되긴 뭐가 돼. 과거 시험 보는 것도 아니고, 장원이라도 됐다는 거야 뭐야.’

옆에 있던 학생이 언짢아하면서 생각했다.

“휴, 10등 안에 들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덜 나왔네.”

이건 누가 들어도 허세 떠는 말이었다.

염세가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의 성적이 공개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그의 성적표가 게시판에 공개됐다.

염세, 국학 시험 3등, 110점.

염세는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기뻤지만, 등수를 보고는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높은 점수인데 내가 왜 3등이지? 2등은 누구야?’

당엄, 국학 시험 2등, 140점.

당엄의 점수가 공개되자,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와. 역시 당엄은 당엄이구나. 국학 시험에서 140점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아마 당엄이 역대 최고득점을 한 사람이겠지?’

당엄의 140점은 역대 최고득점을 거뜬하게 11점이나 제친 점수였다.

‘이야. 광서 해원은 역시 다르구나!’

학생들은 당엄을 질투할 엄두도 못 내면서 감탄했다. 그리고 당엄이 자기 성적을 예상하고, 굳이 성적을 확인하러 오지 않은 것도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하지만 이내 학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140점이면 진짜 높은 점수인데, 왜 2등이라는 거지?”

“그러게. 1등은 누구야? 국학 시험에서 140점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뭐야. 일부러 1등을 비워둔 건가? 엄당의 선현을 기리기 위해서?”

“그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 경우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니잖아.”

웅성거리던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던 찰나, 1등의 성적표와 답안지가 게시판에 붙었다.

두변, 국학 시험 1등, 150점.

웅성거리던 소리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몇몇 학생들은 자기가 헛것을 봤다는 양 눈을 힘껏 비비고 다시 공고 게시판을 쳐다보았다.

두변, 국학 시험 1등, 150점.

그들이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잠시의 정적이 지나자, 학생들은 펄펄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은 듯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야 저게? 말이 되는 거야?”

“뒤가 구린데.”

“와, 말도 안 돼. 국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가 있긴 해?”

학생들은 어제 보았던 두변의 몰골을 떠올렸고, 글을 쓸 기력도 없어서 한 시진 만에 답안을 제출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학생들은 채점에 분명히 무슨 착오가 있었을 거라 확신하면서 두변의 답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변의 책론, 팔고문, 시문을 읽던 학생들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두변의 답안을 다 본 학생 중 일부는 그의 문장에 두피가 저릿하고 솜털이 삐쭉 섰다.

두변의 답안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당엄의 문장과 시를 보면서 감탄했지만, 두변의 답안을 보자마자 당엄의 문장은 한 줄도 생각나지 않았다.

엄당 학생들의 수준으로는 두변이 써낸 책론, 팔고문과 시문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걸작을 마주했을 때의 그 웅장한 기세는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경악, 충격, 대경실색, 고산앙지(高山仰止: 덕망이 높은 사람을 우러러본다.) 등등, 그 어떤 말로도 학생들의 충격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낯설고 비현실적이고, 새삼 알 수 없는 경외감과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이어서 모든 학생의 시선이 염세에게 향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단연 염세이지 않을까.

염세는 번개라도 맞은 사람처럼 낭패스럽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두변의 답지를 바라보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두변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로 시험을 쳤잖아. 게다가 그놈은 한 시진이 되기도 전에 답안을 제출했는데, 이렇게 엄청난 문장을 써냈단 말이야?’

110점이라는 점수를 받고 무척 기뻐하던 염세는 두변의 성적을 보곤 얼어버렸다.

염세는 두변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두변과의 내기에서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전제를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변이 자신을 이긴 수준이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압살해버렸다.

염세의 두 발은 못이 되어 땅에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고, 그의 시선은 두변의 답안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염세의 반응이 이 정도인데, 잠시 뒤에 나와서 점수를 확인할 당엄의 표정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이때, 두변이 발 씻은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나타났다.

두변은 열흘 넘도록 먼 길을 달리느라 발 씻을 틈이 없었다. 두변이 어제 잠들기 전에 발을 씻으려고 신발과 양말을 벗었는데, 주위에 있던 모기와 파리들이 죄다 물 위로 떨어졌다. 그 냄새는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였다.

두변은 모기와 파리 사체가 둥둥 떠 있는 물에 발을 담그고 꼼꼼하게 발을 씻었다. 대야 바닥까지 훤히 보이던 깨끗한 물이 순식간에 가시거리가 1센티미터도 안 되는 더러운 구정물이 되었다.

두변은 그 물을 버리지 않고 작고 창문이 없는 골방에 넣어두고 하룻밤 숙성시켰다.

두변이 들고 있던 대야에서 극악의 냄새가 났고, 두변도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하겠는지 면포로 코와 입을 막고 있었다.

두변과 공고 게시판 사이의 거리가 십여 미터 정도 남아 있었을 때,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막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정말 구역질 나는 냄새였다.

아직도 두변의 성적표만 뚫어지라 바라보던 염세는 두변이 나타난 걸 모르고 있었다.

두변이 빠르게 염세의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내기에서 졌으니까, 내 발 씻은 물이나 드셔.”

촤악.

학생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정물이 염세의 머리, 얼굴을 타고 흘러 옷자락을 축축하게 적셨다.

그와 동시에, 당엄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뒷짐을 진 채 저쪽에서 걸어오더니 게시판을 바라봤다.

순간, 당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당엄은 일부러 성적을 보러 나온 건 아니었다. 그는 원래 이쯤에 일어나서 씻은 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검술을 연습하고, 아침 수련을 끝낸 뒤에 상쾌한 기분으로 조식을 먹는 것에 익숙할 뿐이었다.

당엄은 아침 수련을 하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던 중에,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 잠시 자신의 점수만 확인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엄, 국학 시험 140점.

점수를 확인한 그가 자리를 뜨려던 찰나, 무언가 불길한 느낌에 다시 공고 게시판을 쳐다보았다.

당엄은 분명히 자신이 1등일 텐데, 자기 답안 위로 또 한 장의 종이가 있다는 것에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왜 1등 답안 위에 종이가 한 장 더 붙어 있지? 국학 시험 순위에 관한 요약 같은 건가?

종이의 정체를 확인한 당엄은 흠칫 놀랐다.

당엄은 정신력 각성이 되었고 정신력 수준이 매우 높은지라, 멀리서도 작은 글씨가 잘 보였다.

두변, 국학 시험 1등, 150점.

당엄은 오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짝!

허공에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당엄은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엄은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뒤이어 밀려오는 감정은 어이없음과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된 건데?

이런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당엄은 두변이 문학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모두 두변이 국학 시험에서도 꼴찌를 할 거라는 예상을 할 때도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어제 두변의 몰골을 보고는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당엄은 붓을 쥐고 글을 쓰는 건, 무도 결투와 다르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피로가 누적되고 정신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무기를 쥐고 싸울 수 있는 건 체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떠한 것 덕분이다.(사실은 아드레날린 덕분이지만.)

하지만 정신이 피폐하고 붓을 쥐는 것조차 힘든 상태에서 좋은 글을 써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책론과 팔고문은 최상의 정신상태에서만 좋은 글이 나온다. 게다가 시문은 집중력뿐만이 아니라, 찰나에 스쳐 가는 영감까지 놓치지 않아야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두변은 어제 그 몰골로 한 시진 만에 답안을 제출했으니, 당엄은 그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점수를 받을 거라고 예상했다.

‘150점이라니. 말도 안 돼. 나 같은 천재도 140점이 최선인데, 어째서 그놈이 150점이라는 거야.’

놀라움에서 분노, 분노에서 치욕스러움까지 느낀 당엄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이건 철저히 음모다! 분명 뭔가 잘못됐어. 냄새가 난다고!

동창에서 온 노환관 어만루가 계속 두변을 싸고돌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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