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76화 (176/648)

176장. 당엄의 사과

다들 두변의 점수가 발표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어서 2등의 성적과 답지가 공개되었다.

당엄, 산술 시험 2등, 93점.

사람들이 헉 소리를 내면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높은 점수이긴 하지만, 학생들은 당엄의 점수가 너무 높아서 놀란 게 아니었다. 93점인데도 2등이라면 분명 더 높은 점수가 남아 있을 것이고, 당엄이 아닌 누군가가 1등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제와 같은 장면을 또 보게 되리라 직감했다.

염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불길함을 감지했다.

당엄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머릿속에는 쿵쿵대는 심장 소리만 들려왔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염세가 중얼거리면서 자기가 아는 모든 신에게 제발 자기가 생각하는 결과가 아니길 빌었다.

‘절대로 그 자식 이름이 나타나선 안 돼!’

하지만 염세의 기도는 무용지물이었다.

엄당 무사가 1등의 성적과 답지를 붙였다.

두변, 산술 시험 1등, 100점.

‘또, 또 만점이라니.’

학생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피가 저릿해졌다.

‘저, 저러고도 사람이야? 그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다 맞혔다고?’

누군가가 갑자기 소리쳤다.

“어제 시험 칠 때 두변은 분명히 자고 있었어!”

다른 누군가가 대꾸했다.

“아냐. 두변은 처음 일각 동안 문제를 풀었어.”

또 누군가가 말했다.

“두변이 한 문제만 풀고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 시간에 열 문제를 다 풀었을 줄이야. 심지어 만점이라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그저께 국학 시험에서는 적어도 한 시진이라는 시간을 썼는데, 어젠 일각밖에 안 썼다는 거잖아.”

“두변의 존재로 인해서 내가 한없이 멍청한 놈으로 느껴지네. 두변이 요괴인 거야, 아니면 내가 너무 멍청한 거야? 이쯤 되니까 헷갈려. 걔가 비정상인 건지, 아니면 내가 비정상인 건지.”

“에이, 걱정하지 마. 두변이 비정상인 거고, 우리가 정상인 거야.”

“이제 두변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사람은 없겠지? 어제는 시험관들이 직접 시험 문제를 다시 내셨잖아.”

학생들이 웅성거리다가 마지막 한마디를 듣고 조용해졌다.

이 상황에서 두변을 더 의심한다는 건, 자신들의 지능이 떨어진다는 걸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두변이라는 괴물에 감탄했지만, 염세는 지구의 종말이라도 맞이하는 사람처럼 절망스러웠다.

이곳에 있는 수백 명의 학생이 내기의 증인이었다. 염세는 두변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린 뒤 따귀 열 대를 맞아야 했다.

귓가가 웅웅 울리고, 땅이 핑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두변 그 자식이 언제부터 천재가 된 거지? 꼴찌만 하던 때가 참 좋았는데. 내가 그놈 얼굴에 발길질해도 순순히 나한테 기고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두변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야 안에 나타났다.

염세에게 다가온 두변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졌으니까 무릎 꿇고 절이나 해.”

염세의 얼굴이 터질 듯이 새빨개졌다.

그는 이 내기를 없던 일로 치부하고 싶었고, 만약 주위에 학생들이 없었다면 두변을 죽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명의 증인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서 내기를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곧 죽어도 두변에게 무릎을 꿇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따귀를 맞고 싶지도 않았다.

염세는 이를 악물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할 게 그렇게 없나.”

염세가 씩씩대면서 자리를 뜨려고 걸음을 옮겼다.

염세는 내기 약속을 지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산장과 부산장이고, 졸업 시험에서 좋은 성적만 받게 된다면 아무런 차질 없이 어마사에 들어가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자신에게 오늘 일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두변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고 뺨까지 열 대 맞게 된다면, 오늘 일은 평생 지우지 못할 오점이 될 것이다.

내가 가겠다는데, 감히 누가 내 앞을 막아? 두변의 무공으로는 날 붙잡을 수 없어!

염세가 주먹을 꽉 쥐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편, 아직 자신이 두변에게 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던 당엄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면서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만약 두변이 염세를 막아서지 않는다면, 무공이 약해서 차마 염세를 막지 못하는 것일 테다.

두변은 염세를 불러세우지도 막아서지도 않았다.

염세가 십여 미터 정도 걸어갔을 때,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환관 어만루였다.

“졌으면 그 대가를 치를 줄을 알아야지. 만약 내기 약속을 파기한다면, 곤장 열 대를 맞고 너를 이곳에서 내쫓을 것이다.”

대환관 어만루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염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염세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뒷배인 부산장 낭정을 쳐다보았다.

부산장 낭정이 입을 열었다.

“염세, 내기를 했으면 안 좋은 결과일지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당연한 이치도 모르는 것이냐.”

예상치 못한 낭정의 꾸지람에 염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의부 낭정의 말이라면 꼭 들어야 했다.

염세가 깊이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몸을 돌려서 두변 앞으로 되돌아갔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염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었다.

염세는 이 자리에서 혀라도 콱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명장 한신(韓信)도 가랑이 사이를 기는 굴욕을 참고 끝내 불후의 공적을 세웠지. 한신도 하는데, 난들 못할까. 이 정도 치욕스러움을 견딜 줄 알아야, 훗날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어.

어쩌면 오늘 이놈에게 무릎을 꿇은 것도 내 미담이 될 수 있겠지. 가랑이 사이로 한신을 무릎 꿇게 했던 그 사람도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었잖아? 두변도 분명 같은 취급을 받을 거야.’

염세는 온갖 합리화를 하면서 큰 결심을 한 듯 두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 두변을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두변,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넌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내가 널 모함했다.”

“그래, 알겠어.”

두변이 짧게 대꾸하고는 바로 염세의 얼굴을 향해 따귀를 올려쳤다.

짝!

맑은 따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염세의 뺨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왕굉, 낭정, 당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두변의 동작과 따귀를 치는 소리로 그의 무공 실력을 가늠했다.

하지만 뺨을 맞고 있는 염세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온갖 합리화를 해서 좀 괜찮아졌나 싶었지만, 뺨을 맞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남지 않고 엄청난 치욕스러움이 온몸을 지배했다.

짝! 짝! 짝! 짝! 짝!

두변이 염세의 뺨을 좌우로 신명 나게 때렸다.

따귀 한 대에 백여 근이 넘는 힘이 실렸다.

주위 사람들은 따귀 소리가 한 번 울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보기만 하는데도 제 볼이 너무 아팠다.

두변은 시간을 끌지 않고 깔끔하게 열 대를 다 때렸다.

염세가 이미 돼지 대가리처럼 벌겋게 부은 얼굴로 입을 벌리더니 부러진 이빨 두 개를 손바닥에 뱉었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의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염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두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겪은 치욕은 나중에 꼭 몇백 배로 갚아 주마.”

염세가 주위에 몰려든 학생들을 거칠게 밀치면서 자리를 떠났다.

두변이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나중에? 졸업 시험이 끝나면 넌 죽는다. 나중은 없어.

이때, 당엄이 갑자기 두변에게 다가갔다.

당엄이 진지한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다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말했다.

“두변, 미안하다.”

두변이 흠칫 놀랐다.

이건 또 무슨 경우?

“내가 오만함과 편견 때문에 너라는 진정한 경쟁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날 용서해라.”

당엄이 두변에게 악수를 청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면서 여태 쌓인 원한을 풀자는 뜻인가? 이렇게 갑자기? 당엄이라면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닐 텐데?

당엄의 의도가 미심쩍었지만, 두변은 말없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두변이 당엄과 손을 맞잡는 그 순간, 당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엄지로 두변의 호구혈(虎口穴)을 눌렀다. 호구혈은 매우 중요한 자리로 다른 사람에게 눌려서는 안 되며, 이는 무도 현기 수업 입문 때 배우는 것이라서 무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수였다.

하지만 두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엄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두변은 무도의 입문 수준도 배워보지 못한 사람임을 확신했다. 배운 적이 없는데 뭘 두려워할까!

두변이 염세를 때릴 때, 당엄과 왕굉, 낭정은 그가 아무런 무도 기초가 없다는 걸 눈치챘다.

두변이 정말로 무공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염세의 모든 이빨을 부수고, 그를 산송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두변의 천재 횡보는 여기서 끝이구나!

앞으로 남은 시험 중, 50점짜리 연단학 외에는 나머지는 거의 다 무도 과목이었다.

엄당 일원이라면 산술도 잘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무도를 잘해야 한다.

이론적인 과목은 졸업 전에나 중요하지, 실제로 관직 생활을 하거나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일하는 데 산술이 필요한 일부 직무 이외에, 동창, 어마사 등 권력 기관에서는 이런 이론적인 지식을 쓸 일이 만무했다.

그리고 동창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라면, 무도 소양이 제 1 요소라 할 수 있었다.

당엄이 속내를 감추고 두변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 편협한 시선을 버리고 오늘부터 너를 나의 진정한 경쟁상대로 보겠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잘못을 뉘우치는 것처럼 들리지만, 왜 그렇게 오만하게 들리는 걸까?

당엄이 이어서 말했다.

“두변 동학, 내가 오늘 사람들 앞에서 정식으로 선포하마. 이번 졸업 시험에서 나는 너를 경쟁상대로 삼을 것이고, 네 성적이 나보다 우수하다면 나는 광서에서 완전히 발을 빼겠다. 그리고 이후로 네가 있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무슨 직위든 너를 위해 양보하마.”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순진무구한 학생들은 당엄이 뻔뻔한 염세와 달리 겸손함을 아는 사람이라며 감탄했다.

하지만 두변은 당엄의 속뜻을 알아차렸다.

당엄이 암묵적으로 말한 건, 이번 졸업 시험에서 당엄이 이길 경우 두변은 광서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하며, 당엄이 나타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조용히 숨죽이고 비키라는 뜻이었다.

당엄은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는 자신감에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먼저 고개를 숙여서 들어온 덕분에 더 많은 미명을 얻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두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나도 사람들 앞에서 정식으로 선포한다. 이번 졸업 시험에서 나는 너를 경쟁상대로 삼을 것이고 네 성적이 나보다 우수하다면, 나는 광서에서 완전히 발을 빼겠다. 그리고 이후로 네가 있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간 무슨 직위든 너를 위해 양보하마.”

같은 말이지?

만약 졸업 시험에서 내가 너를 이기지 못한다면, 이 세계에서 계속 임무를 진행할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광서에서 발을 빼는 게 아니라 아예 이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일부러 호탕한 행동을 누군들 못하겠어!

“역시 두변은 내가 탄복할 만한 영웅적인 면모가 있군.

오늘 시험은 기초 무도, 힘, 민첩성, 고정 과녁 궁술, 기마 궁술 시험을 볼 텐데, 두변 동학이 얼마나 준비했을지 궁금하네?”

당엄이 물었다.

“힘이야 문제없는데, 민첩성 수업은 영종오 대종사께 고작 사흘밖에 배우지 못했지. 고정 과녁 궁술은 시간이 너무 촉박한 터라 하루밖에 배우지 못했고, 기마 궁술은 아예 손도 못 댔어.”

두변이 일부러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한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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