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장. 레전드 쇼타임!
당엄이 말했다.
“어이쿠, 두변 동학, 조심해야겠네. 나보다 아직 13점이나 뒤처져 있잖아. 앞으로 볼 시험에서 나는 1점도 양보해줄 생각이 없거든.”
총점으로 보았을 때, 산술 시험이 끝났으니 졸업 시험의 절반이 끝난 셈이었다.
당엄의 점수는 국학 140점, 산수 93점, 만수절 추가점수 30점, 총 263점이었고, 두변의 점수는 국학 150점, 산수 100점, 총 250점이었다.
앞으로 무도 150점, 잡학 50점, 기마술 50점이 남았지만, 이 세 과목에서 두변이 당엄을 13점이나 이길 확률은 극히 낮았다.
당엄이 지게 된다면 단순히 광서에서 퇴출당하는 정도겠지만, 두변은 아예 이 세상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두변의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당엄의 말대로, 국학과 산술 시험은 이론 과목이기 때문에 당엄이 두변의 존재를 의식하는 수준일 뿐이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진 않았다.
이어서 치러질 시험들이야말로 두 사람의 결전이 될 것이다.
두변은 당엄에게 한 과목도 져선 안 되고, 거기다 13점까지 따라잡아야 했다.
반 시진 뒤, 종소리가 울렸다.
졸업 시험의 세 번째 시험은 기초 무도 시험으로, 두변과 당엄의 정면 대결도 본격화된 셈이었다.
기초 무도의 첫 과목은 힘이었다.
오백 근짜리 돌을 용상 자세로 들면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이 과목은 거의 칠 할에 달하는 학생들이 만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당엄과 두변도 만점을 받았고, 이로써 당엄의 총점은 273점, 두변은 260점이 되었다.
물론 점수차는 여전했다.
두 번째 과목은 민첩성이었다.
민첩성 시험의 합격 기준은 한 호흡 사이에 검을 열 번 찔러야 하고, 열 번 모두 한 점을 찍어야만 만점 10점을 받을 수 있다.
기초 무도이긴 해도 민첩 시험은 꽤 난이도가 있어서 대부분 학생이 만점을 받지는 못했다.
기초 무도의 두 번째 과목, 민첩성 시험이 시작되었다.
인원수가 많은 탓에 다섯 개의 시험장으로 나눠서 시험을 보고, 시험관 다섯 명이 각 시험장에서 시험을 감독했다.
당엄이 가장 먼저 나섰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목검을 쥐어 들고 검 끝에 먹을 묻혔다.
당엄은 준비 자세 같은 것 하나 없이 곧바로 검을 찔렀다.
슉, 슉, 슉, 슉.
주위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당엄의 검이 너무도 빨라서 학생들의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시험관은 당엄의 번개 같은 움직임을 예리하게 확인했다.
검은 총 열아홉 번 내질렀고, 하얀 종이 위에는 검은 점이 하나밖에 없었다.
합격 기준의 두 배인 셈이니, 당연히 만점이었다.
“만점!”
시험관이 말한 뒤, 당엄의 성적표에 점수를 적었다.
일부러 가장 먼저 시험을 본 당엄은 곧장 두변이 있는 시험장으로 향했다. 민첩성 시험으로 두변의 무도 수준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두변의 민첩성 시험을 감독하는 시험관은 어만루였다.
어만루는 두변에게 일부러 점수를 후하게 주기 위해서 그의 감독을 담당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두변의 시험을 고의로 방해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당엄이 도착했을 때, 때마침 염세가 시험을 보고 있었다.
염세의 얼굴이 어제보다 더 부은 터라, 당엄은 그가 염세라는 걸 알아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염세의 눈빛은 살기와 원한으로 가득했다. 그는 그 살기를 원동력 삼아서 남은 시험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염세가 시험장 바닥에 그려진 원 안으로 들어간 뒤, 목검을 잡고 검 끝에 먹을 묻혔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곧바로 검을 찔렀다.
슉, 슉, 슉, 슉.
그는 한 호흡에 총 열여덟 번 검을 찔렀고, 모두 한 점에 명중했다.
당엄의 눈빛이 살짝 가늘어졌다.
염세가 경망스럽고 약자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천박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무도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할 만했다. 민첩도만 보고도 그가 이미 7품 무사 급에 달하는 무공자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이문회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광서 환관 학원 학생들의 무도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할 만했다.
염세 이후로 민첩성 시험은 계속되었지만, 나머지 학생들의 점수는 예상했던 대로 처참해서 싱거울 뿐이었다.
7점, 6점, 5점, 7점, 3점.
요컨대 민첩성 시험이 어려운 탓에, 여태 당엄, 염세, 그리고 다른 두 사람만이 만점을 받았다.
시험장 하나당 총 46명의 학생이 시험을 봤고, 반 시진이 지난 후 드디어 두변의 차례가 되었다.
두변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미 시험장 앞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염세, 당엄, 왕굉, 낭정이 두변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집중했다. 이 시험이 두변과 당엄의 운명을 결정할 결전의 시작이니까.
두변이 주위에 몰려온 학생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내가 영종오 대종사께 민첩성 하난 제대로 배웠으니까.”
이제 그는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첫째는 자기의 실력을 전부 보여주지 않고, 만점 기준에 부합하는 실력만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력을 다해서 자신의 실력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적당히 실력을 감추는 게 맞았다.
두변이 마지막으로 민첩성을 확인했을 땐, 1초에 열네 번 검을 찔렀다.
두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목검을 쥐고 검 끝에 먹을 묻혔다.
시험관 어만루, 당엄, 왕굉, 낭정, 염세 등은 자기가 목검을 쥔 사람인 양, 손에 땀을 쥐었다.
시작!
두변은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검을 찔렀다.
슉, 슉, 슉, 슉.
학생들은 번개처럼 빠른 두변의 동작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변이 1초에 열아홉 번 검을 찔렀다.
사람들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두변은 제 실력을 숨기지 않고 철저하게 전력을 다해서 실력을 드러냈다.
두변은 멋에 살고 멋에 죽는 놈인지라, 사람들이 그의 실력에 감탄하는 걸 보고 싶었다.
제 실력에 두변 자신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첩성 훈련은 시작할 땐 실력이 쭉쭉 늘지만, 뒤로 갈수록 실력향상이 더디고 어렵기 마련이다.
보통 7품 무사는 1초에 열여덟 번을 찌르고, 6품 무사는 스무 번쯤, 그리고 3품 무사는 많아야 스물다섯 번을 넘지 않는다.
두변이 열네 번에서 한 번에 열아홉 번으로 실력을 끌어올리면서, 이제 당엄과 나란히 1등이 되었다.
사람들은 두변이 1초에 세 번 정도밖에 검을 찌르지 못했고, 그 세 번마저 다 다른 곳을 찔렀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거의 6품 무사에 달하는 실력으로 나타났으니, 정말 놀라서 자지러질 정도였다.
당엄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만점!”
어만루가 시원하게 점수를 외쳤다.
두 번째 과목이 끝난 후, 당엄은 283점, 두변은 270점이 되었다.
다음 과목은 고정 과녁 궁술이고, 만점이 15점이었다.
지난번 두변이 옥진 군주 앞에서 과녁 궁술을 했을 땐 대략 14.5점 정도 되었으니, 이번에 어쩌면 만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두변의 정신력이 40에 불과해서, 정신력 집중 궁술을 익혔음에도 만점에 도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변이 견사 대사의 정신력을 계승 받아서 정신력이 55가 되었으니,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졸업 시험에서 화살을 쏘는 궁술 과목은 민첩성보다 훨씬 더 고득점을 얻기 어려운 과목이었다.
민첩성 시험에는 대략 열댓 명이 만점을 받지만, 궁술 시험에서는 만점자가 한 명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광서 환관 학원 설립이래, 궁술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역대 최고점은 13.5점이었다.
만약 두변이 만점을 받을 수 있다면,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것과 더불어 당엄과의 점수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당엄이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면서 두변에게 말했다.
“표적장에서 보자. 멋진 모습을 기대하마.”
국학, 산술, 힘, 민첩성 시험보다 관람의 재미가 있는 시험은 단연 궁술 시험이 아닌가.
두변은 정신력 각성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력 집중 사격도 할 줄 알았다.
현대 지구의 말을 빌리자면, 사격 시험은 두변의 레전드 쇼타임이 될 것이다!
이문회는 사나흘 동안 백 리에 한 번 말을 갈아타면서 쉬지 않고 몇천 리 길을 달려서 산동에서 광서로 돌아왔다.
이문회는 두변이 무척 그리웠지만, 지금은 계림보다 남녕부로 가는 게 우선이었다.
두변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으니, 이제부터는 이문회의 반격의 시간이었다.
경성에서는 의부 이연정이 반격을 시작했고, 맹렬하고 사나운 기세로 인간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연정의 목표는 어마감과 내각 대신들이었다.
이문회는 광서 관아 전체를 대상으로 칼을 들었고, 광서 순무 낙문과 남해도장 산장 축무애를 가장 먼저 처단하려 했다.
낙문은 이미 줄행랑을 쳤지만, 축무애는 도망치지 않고 남해도장에 있었다.
축무애는 이제 아무런 관직도 없는 상태라 오히려 잡기가 힘들었다. 남해도장의 산장인 그는 조정의 제약을 받지 않는 데다, 여씨 토사의 뇌물을 받았다고 해도 뇌물수수로 처벌할 길이 없었다.
축무애를 잡아들일 수 있는 죄목은 딱 하나였다. 광서 참장 임효를 선동하여 지방 주둔군을 사사로이 이동시켰다는 것!
이 죄목으로는 축무애를 사형에 처할 수도 유배를 보낼 수도 없지만, 일단 동창의 손아귀에 넣기만 한다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녕부에 도착한 이문회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동창 무사 대장인 이위와 무천추가 동창 무사 일천 명을 이끌고 남녕부에서 이문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상봉의 감격스러움에 젖을 겨를도 없었다.
이문회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축무애를 체포하러 간다!”
동창 무사 일천 여 명이 위풍당당하게 남해도장을 향해 달려갔다.
“날 잡겠다고? 꿈 깨라 그래라.”
축무애가 남해도장에서 제일 높은 탑루에 올라 먼 곳을 내다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뭘로 날 잡을 건데? 내가 여씨 가문과 각별한 사이이긴 하다만, 조정에서 여씨의 죄목을 판정하기라도 했나? 내가 뇌물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조정의 관리도 아니잖아. 광서 참장을 선동해서 주둔병을 임의로 사용했다고? 증거 있어? 나는 도리어 그때 임효를 말렸다고. 이문회. 나는 낙문 그 모자란 놈과 달라. 상대를 잘못 골랐어.”
축무애가 음흉한 미소를 보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축무애가 이토록 자신만만한 이유는 남해도장에는 몇천 명의 학생 병사가 활과 검을 들고 이곳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문회가 축무애를 잡으려 한다면, 이 학생들을 내세워서 인간방패로 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축무애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정강왕(靖江王)의 아들이자, 진정한 황실의 귀족 자제이며 천윤제의 조카인 영충욱이었다.
이 조정 번왕의 아들이 축무애의 딸인 축무쌍에게 구애하기 위해서 남해도장에 와서 무예를 익히고 있었다.
엄당의 앞잡이인 이문회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친을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 영충욱은 가슴을 손으로 치면서 말했다.
“축 백부, 제가 여기에 있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동창 놈들이 다른 곳에서 설치고 다니는 건 그렇다 쳐도 제 앞에서는 일개 가노(家奴)에 불과합니다.”
정강왕 아들인 영충욱은 남해도장 대문 앞에 서서 턱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멸시하는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번왕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문관이나 무장들 앞에서는 별 쓸모가 없지만, 황실의 가노인 엄당은 그를 주인처럼 섬기는 게 당연했다.
척, 척, 척, 척.
이문회가 이끄는 동창 무사들이 남해도장 대문 앞에 멈춰 서서 대열을 갖췄다.
번왕의 아들 영충욱이 명황색 황실 예복을 입고 이문회를 가리키면서 호통쳤다.
“가노 이문회, 나는 정강왕의 아들인 영충욱이다. 당장 말에서 내려와 예를 갖추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