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장. 야생마의 미친 활약
슉, 슉, 슉, 슉.
갑자기 두 방향에서 화살 열 발이 두변을 향해 날아왔다.
피하기 힘들겠는데!
인마합일 상태인 두변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을 몹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여덟 발의 화살을 간신히 피했지만, 나머지 화살 두 발이 그의 옷깃을 찢으면서 스쳐 갔다.
예상치도 못한 급습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두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누구야! 또 누가 날 암살하려는 건데!
벌써 이번이 두 번째 암살인지라, 두변은 일단 빠르게 이 위험지역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두변은 야생마의 속도를 좀더 높이면서 달렸고, 이 구간만 지나면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슉, 슉, 슉, 슉, 슉.
두변의 눈앞에 금빛의 무언가가 갑자기 번쩍였다.
무수히 많은 독침이 부채꼴 모양으로 촤르륵 펼쳐지면서 그의 상반신을 향해 날아왔다.
“아, 이런.”
화살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던 두변은 벌써 눈앞까지 온 독침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독침들을 날려버릴 생각에 빠르게 현기를 모은 뒤, 한 번에 현기를 분출했다.
대부분의 독침이 두변의 현기를 맞고 튕겨 나갔지만, 독침 십여 개가 엄청난 현기 내력을 품은 채 매서운 기세로 두변의 현기를 뚫었다.
이 독침들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무도 고수가 현기를 깃들여서 쏘아낸 것이었다.
푹, 푹, 푹, 푹.
십여 개의 독침이 두변의 몸에 박히고, 순식간에 그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바로 인사불성이 되었다.
같은 시각.
이문회가 의자 두변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환관 학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문회는 불길한 예감에 채찍을 휘두르며 더욱 빠르게 질주했다.
이 독침의 독은 독성이 매우 강하면서 희귀한 신경계 맹독으로, 독침 하나만 맞아도 목숨을 잃게 된다.
사람 하나를 죽이고자 한다면, 심장이 아닌 뇌를 죽이는 게 가장 빠르다.
이런 신경계 맹독은 몇 초 이내에 사람의 대뇌와 정신을 죽여버릴 수 있다. 그래서 두변이 침을 맞자마자 인사불성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혼절하기 직전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야생마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야생마는 주인이 위험해졌다는 걸 깨닫고 모든 잠재력을 끌어모아 번개처럼 빠르게 위험 구간을 빠져나갔다. 독침을 쏜 자객 셋이 두변을 죽이려 달려들 틈도 주지 않았다.
잠시 뒤, 자객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입은 건 환관 학원의 옷이었지만, 얼굴에 수염 자국이 거뭇하게 있는 걸 보아하니 누가 보아도 환관이 아니었다.
환관 학원의 졸업 시험은 대부분 학원 내에서 치러지지만, 기마 시험만 경주로 때문에 학원 밖까지 나가게 된다.
물론 학생들의 안전과 시험의 공정함을 위해 구간마다 감시하는 엄당 무사가 있지만, 자객들이 엄당 무사 다섯을 죽이고 그들의 옷을 입은 채 이곳에서 잠입해 있었던 것이다.
“끝났으니 주인께 알리러 가겠네.”
“주인께서 어디 계신지 아시오?”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말고 즉시 흩어지게.”
무공 실력이 뛰어나 보이는 세 자객이 짧게 한마디씩 한 뒤에 즉시 흩어졌다.
세 자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숲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두변은 인사불성인 채로 야생마 등에 업혀서 달리고 있었다.
주인의 통제를 잃은 야생마는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이때, 세 번째 관문인 강이 야생마의 눈앞에 나타났다. 만약 두변의 인마합일이 있었다면, 야생마는 이곳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건넜을 것이다. 제 주인이 최적의 경로로 안전하고 빠르게 자기를 조종할 거라 믿으니까.
하지만 지금 야생마는 오롯이 자기 자신만 믿고 주인의 목숨을 책임지면서 강을 건너야 했다.
야생마가 눈을 크게 뜨고 강물을 쳐다보면서, 자기가 건넜던 모든 강을 떠올리면서 어디가 가장 수위가 낮을지 가늠했다.
야생마는 푸르릉 거센 콧김을 내뿜은 뒤, 마음의 불안함을 잠재우며 용감하게 첫발을 내디뎠다.
비록 야생마가 강을 건너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수위가 추측했던 것보다 높았지만, 일반적인 말보다 훨씬 더 크고 강인한 체격을 가진 덕에 강물에 쓸리지 않았다.
야생마는 겁먹지 않고 씩씩하게 강을 건너면서 점점 더 속도까지 냈고, 결국 비교적 빠르게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두변의 한참 뒤에 있던 당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야생마보다 당엄이 빠른 건 당연했다.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하자, 마지막 관문인 1킬로미터 장애물 달리기가 나왔다.
1킬로미터의 경주로에 각양각색, 높낮이가 다양한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두변이 깨어 있었다면 어디로 가야 높은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지, 어떤 경로가 장애물이 가장 적은지 1초 만에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생마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지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결정을 내렸다. 일직선으로 달리면서 무슨 장애물이든 냅다 훌쩍 뛰어넘겠다고.
드디어, 야생마의 미친 활약이 시작되었다.
야생마는 뒷발에 힘을 잔뜩 싣더니, 직선 경로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다른 말과 비교도 못할 정도의 엄청난 순간 폭발력을 자랑하면서 높은 장애물을 휙 휙 뛰어넘었다.
이 와중에도 혼절한 두변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야생마의 목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다른 말들이었다면 벌써 기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달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과 야생마는 보름 동안 밤낮을 함께 하면서 쌓아온 신뢰가 있었고, 그 신뢰는 그 어떤 기수와 말보다도 두터웠다.
다른 말이었다면 장애물을 십여 개 뛰어넘었을 때 이미 기진맥진해져서 다리에 힘이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야생마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몸의 체력을 쥐어짜면서 열심히 장애물을 넘었다.
야생마는 마치 피곤함이란 걸 평생 모르고 산 말처럼 정신없이 달렸다.
주인을 위해서든 자기를 위해서든 절대로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당엄이 천리마를 타고 이미 뒤쫓아와서 장애물을 넘기 시작했다.
두변을 발견한 당엄은 저도 모르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은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아까 그 정도의 속도라면 벌써 완주하고도 남았을 텐데?
야생마가 일직선으로 무식하게 장애물을 뛰어넘는 걸 본 당엄이 또 생각했다.
왜 경로를 고르지도 않고 저렇게 무식하게 높은 곳만 골라 뛰는 거야?
당엄은 자신이 사람이 아닌 말과 시합하고 있다는 걸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야생마는 최적의 경로를 고르지 못한 탓에 헉헉대면서 장애물을 뛰어넘었고, 네 번째 관문을 통과할 때쯤부터는 서서히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스윽!
당엄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야생마를 추월해서 종점을 향해 질주했다.
네 번째 관문을 통과한 뒤에 종점까지는 800미터 평지였다.
평지는 당엄의 천리마가 제 실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두변의 야생마는 지금 체력이 안 되는 데다 무식하게 장애물을 뛰어넘느라 탈진해서 평지에서 충분히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일단 평지에서 당엄에게 뒤처지게 된다면, 다시는 그를 추월할 기회가 없어진다.
천리마가 자신을 추월하는 걸 본 야생마는 순간 경주를 시작할 때 참았던 화가 갑자기 솟구쳤다.
야생마가 으르렁, 그야말로 살기 가득하게 포효했다.
일생 동안 무수히 많은 암컷과 황홀한 밤을 보냈고, 무수히 많은 수컷을 발길질로 죽인 야생마였다. 말 중의 여포(呂布)라고 불릴 만한 이 야생마가 천리마를 향해 포효하자, 천리마가 흠칫 놀라더니 저도 모르게 속도를 늦췄다.
야생마가 그 틈을 타서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야생마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고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그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나는 마왕(馬王)이다! 나는 절대로 질 수 없다! 마왕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할 수 없다! 마왕이 아니라면, 내겐 죽음뿐이다!’
야생마왕이 속으로 외쳤다.
사자왕, 호랑이왕과 마찬가지로 왕좌에서 한 번이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그 짐승에게는 단 하나의 결과만 기다릴 뿐이다. 바로 죽음!
이미 극한에 달한 야생마왕이 한 번도 도달해본 적 없는 자신의 한계치를 돌파해서는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야생마왕이 천리마를 추월한 건 당연했고, 점점 더 천리마와의 간격을 넓혀갔다.
눈앞에서 승리를 빼앗기게 된 당엄은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천리마를 워낙 아끼는지라 웬만해서는 채찍질을 하지 않던 당엄이지만, 지금은 천리마의 몸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연신 후려쳤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채찍질에 천리마가 울음소리를 내면서 악착같이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내서 달려도 이미 종점에 가까워진 두변과 야생마왕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야생마왕은 800미터 직선 경주로를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완주했고, 포효하면서 전속력으로 결승점을 돌파했다.
결승점에 서 있던 시험관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야생마왕이 결승점에 도착한 시간을 기록했다.
기록이 깨졌다. 역대 최단 기록이 깨졌어!
두변은 기마 시험의 최단 기록을 다시 5분의 1이나 줄였다.
환관 학원의 역대 최단 기록은 22분이었고, 두변의 완주 시간은 고작 17분이었다.
낭정과 왕굉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당엄도 역대 최단 시간보다 짧은 시간으로 완주했지만, 두변이라는 너무 막강한 상대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다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전속력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야생마왕은 그렇게 몇백 미터를 더 질주한 뒤에 서서히 멈추는 게 아니라, 무릎을 꿇으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속도를 늦추지 못한 채 바로 넘어지면서 말의 몸통 전체가 미끄러지듯이 바닥에 쓸렸다. 온몸의 힘을 다 쓴 야생마왕의 입가에는 하얀 거품이 가득했고, 가슴이 터질 듯이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말 모든 힘을 다 써버려서 제 몸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말 등에 업혀있던 두변은 그대로 몇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가더니,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세게 떨어졌다.
시험관 어만루가 흠칫 놀랐다.
어만루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재빨리 두변에게 달려가서 그를 품에 안았다. 두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입술은 까맣게 변했으며 기맥이 거의 잡히지 않았다.
어만루가 급히 두변의 옷깃을 풀어헤치자, 그의 가슴팍에 선명하게 남은 십여 개의 검은 독침 자국이 나타났다. 순간 어만루의 두피가 저릿해졌다.
두변이 누군가의 급습을 받았고 맹독에 중독되었다는 게 확실해지자, 어만루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그가 왕굉과 낭정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호통쳤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인가. 다들 제정신이오? 이문회가 없으니, 나 같은 무골호인은 사람도 못 죽일 것 같은가?”
갑작스러운 어만루의 분노에 왕굉이 화들짝 놀라서는 두변의 상태를 살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두변의 모습에 속으로는 몹시 기뻤지만, 겉으로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더듬었다.
“어르신, 저,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
부산장 낭정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저희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왕굉이 말했다.
“어르신, 여기는 광서 환관 학원입니다. 저희가 만일 학생을 암살하려 했다면……, 엄당에서 영원히 매장당할 각오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만루가 두변을 품에 안은 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내가 소식 하나 알려주지. 이문회가 복직했고, 어제 막 남해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축무애를 체포했네. 자네들은 두변이 제발 죽지 않길 기도해야 할 걸세. 그렇지 않으면 자네들이 두변을 암살한 게 아니라고 해도 이문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