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장. 숨 막히는 살기
왕굉과 낭정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들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온몸의 솜털이 삐쭉 섰다.
그 살인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게다가 남해도장을 박살 냈어? 미치지 않고서야 거길 건드릴 리 없는데?
만약 두변이 죽는다면, 광서에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겠구나. 이문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일까? 그때가 되면, 털끝만큼이라도 연루된 사람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할 거 아닌가!
뒤늦게 결승점을 통과한 당엄은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는 야생마왕과 의식불명의 두변을 보고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두변이 아닌 말과 시합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심지어 그 말이 자기를 이겼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두변이 혼절한 상태로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최단기록을 세운 덕에 만점 50점을 가져가게 되었다.
당엄의 기록도 만만찮게 뛰어났지만, 2등을 했다는 이유로 45점을 받았다.
현재까지 두 사람의 총점은 당엄 356.5점, 두변 350점이었다.
원래 13점이나 뒤처져 있던 두변은 이제 6.5점 차이까지 따라잡았다.
졸업 시험이 끝나기까지 아직 전투 무도, 잡학 시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두변은 예상치 못한 자객의 습격을 당해 생사불명 상태가 되어버렸다.
반 시진 뒤, 환관 학원에 도착한 이문회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혼수상태에 빠진 두변을 보게 되었다.
일순간 이문회는 분노로 머리와 심장이 터져버릴 듯했다.
이문회가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두변을 품에 안았다.
나의 미래이자 희망이자 가장 아끼는 아이이거늘.
눈에 너무 힘을 주어서인지, 이문회의 눈가가 찢어지면서 눈물이 아닌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를 너무 세게 깨물어서인지, 이문회의 입속에서 까드득 소리가 나더니 입안이 온통 선혈이었다.
“왜? 도대체 왜!”
“감히 누가 이런 짓을!”
“아직 어린애란 말입니다! 먼저 누굴 해하려고 들지도 않던 아이이거늘!”
“이 세상은 이리도 영특한 천재 하나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무슨 일이든 나를 향해 오면 될 것을, 왜 애꿎은 이 아이를 해친 겁니까. 왜!”
이문회가 한 마리 짐승처럼 포효했다.
그가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입속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고, 눈가와 입가가 온통 새빨간 피로 가득했다.
급기야 눈빛에 광기가 돌고, 눈에 뵈는 게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왕굉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갔다.
“이 대인, 정말 우리가 한 짓이 아니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여 범인을 밝혀내겠소.”
이문회가 소리쳤다.
“누가 한 짓이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직접 광서 바닥을 들춰내서라도 이 일의 진상을 밝힐 것이고, 그땐 이 일에 연루된 누구든 내가 다 죽여버릴 겁니다.”
이문회가 섬뜩한 눈빛으로 왕굉과 낭정을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두변이 죽지 않길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두변이 죽는다면 내가 당신들을 모조리 죽여서 두변과 함께 묻어줄 것이고, 쓰레기 같은 당엄 놈도 내가 산 채로 사지를 찢어발겨 죽일 겁니다. 그리고 당엄 배후에 있는 자는 사례감의 1품 환관이든 누구든, 다 내 손에 죽을 겁니다.”
왕굉과 낭정은 이문회의 광기 어린 눈빛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두변이 무사하길 빌고 또 빌어야 할 겝니다. 두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땐 내가 당신들 파벌 전체를 멸할 것이니!”
산장 왕굉이 억울해하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한 짓이 아니외다.”
이문회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두변을 품에 들어 안은 뒤, 산장 서재를 나섰다.
서재 밖에는 학생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다들 휘둥그레진 눈으로 인사불성이 된 두변을 바라보았다.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가 갑자기 급습을 당해서 생사불명의 상태가 되어버리니 학생들은 크게 상실감을 느끼며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홀로 낄낄대면서 비웃는 사람이 있었다.
“잘 당했네. 잘 당했어. 두변 저 재수 없는 놈은 일찍이 죽었어야 해. 그러니까 제발 곱게 죽어줘라. 네놈이 죽기만 하면 나는 남의 똥이나 치우는 잡역 환관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날 욕보인 적도 있잖아?
그러니까 네놈은 죽어도 싸지!”
너무 기쁘고 흥분한 나머지 마음속의 말을 입 밖으로 그대로 내뱉어 버린 염세의 얼굴은 웃음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득의양양해하면서도 영악함이 뒤섞인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문회가 왕굉과 낭정에게 다시 몸을 돌려서 말했다.
“두변이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시험을 중단합니다. 두변이 살아 돌아온 뒤에 시험을 재개하도록 합니다.”
염세가 이문회의 말을 듣더니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물었다.
“아, 왜요? 두변 저놈이 뭐라고 우리가 기다려야 합니까?”
정말 염세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이문회가 누구인지 정말 깜빡 잊은 상태였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이문회가 염세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염세는 이문회의 섬뜩한 얼굴에 놀라서 바지에 오줌을 지릴 뻔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좀 그렇지 않습니까. 두변 한 사람을 위해서 이 수백 명의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천하에 도리라는 게 있는데…….”
염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문회가 염세를 냅다 걷어찼다.
순간 염세는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가서는, 단단한 학원 담장에 그대로 처박혔다.
쾅!
굉음과 함께 염세의 모든 뼈가 부러지고 근맥이 끊겼다.
염세는 그렇게 악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오장육부가 파열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부산장 낭정은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자신의 의자가, 자신의 후계자가 이렇게 발차기 한 번에 죽어버리다니.
“이문회, 분수를 치키시오. 이곳은 환관 학원이고, 이곳의 산장은 왕굉 대인이오. 그리고 염세의 말이 맞잖소. 두변 한 사람을 위해서 수백 명의 시간을 낭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오? 산장이 아닌 이상, 그런 결정권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소.”
다른 때였다면, 낭정도 절대로 이문회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
이문회가 산장을 하는 동안 낭정은 꼬리를 다리 사이에 숨긴 개처럼 굴었다.
얼마 전에 이문회가 여씨 토사를 건드려서 파직되고 죄인의 신분으로 경성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는 천지신명에게 온갖 기도를 올리면서 이문회가 죽길 바랐다. 그런데 이문회가 사지 멀쩡하게 다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으니, 죽기보다도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이문회가 자신의 눈앞에서 의자 염세를 죽였으니, 순간 눈에 뵈는 게 없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부산장 낭정의 말에 이문회가 몸을 돌려 물었다.
“확실합니까?”
낭정이 몸을 움찔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께서도 다 계신데, 뭘 어쩌고 싶은 것이오? 나는 조정에서 세운 광서 환관 학원의 부산장이오. 하지만 이 대인은 이곳에서 아무 직책도 없으니 그런 결정권이 없소.”
이문회가 천천히 낭정에게 다가갔다.
이문회의 옛 산장이던 대환관 어만루가 나섰다.
“문회, 그만하거라. 네가 간섭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세 명의 사례감 대환관도 이문회에게 호통쳤다.
“이문회, 적당히 하시오!”
낭정은 어르신들이 자기편을 들어주자, 다시 어깨에 힘을 주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잖소. 두변의 일은 우리와 무관하오. 두변을 미워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오? 두변 한 사람을 위해서 졸업 시험을 미룰 수는 없소. 두변도, 이 대인도 그럴 자격이 없소.”
낭정 앞에 다가간 이문회가 걸음을 멈추고 힘껏 주먹을 쥐더니,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화들짝 놀란 낭정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주먹으로 이문회의 주먹을 막았다.
쾅.
우지끈.
힘을 잔뜩 실은 두 사람의 주먹이 맞닿는 순간, 굉음이 울리면서 누군가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낭정의 주먹 전체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낭정의 손가락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완전히 찢어져서 뼈마디가 튀어나왔다. 허공으로 날아간 낭정은 피를 토하면서 헌 걸레짝처럼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두변이 돌아온 뒤에 졸업 시험을 재개합니다.”
이문회가 학생들을 향해 말한 뒤에 자리를 떠나려고 걸음을 뗐다.
“좋습니다! 동의합니다!”
이백여 명의 학생 무리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큰소리로 그의 말을 따라했다.
“사람을 전부 풀어라. 두변이 암살당한 지점 사방 몇 리 이내의 땅을 삼 척 깊이까지 파서라도 자객을 잡아야 한다. 자객을 잡아오지 못한다면, 살아서 나를 볼 생각하지 말아라.”
이문회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배후가 누구든, 그놈이 땅끝까지 도망쳐서 숨더라도 그놈을 잡을 것이다. 내가 그놈을 산 채로 능지처참할 것이고 그놈의 구족을 멸할 것이다.”
이문회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이문회만큼이나 화가 난 광서 동창 천호 몇 명은 이문회에게 아예 군령장을 내려달라고 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문회의 명령을 받은 천호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잠시 뒤, 자객을 잡기 위해 모인 일천여 명의 동창 무사와 몇천 명의 동창 소속 인원이 계림부 전체를 뒤덮었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도 없었고 아무런 비명도 없었지만, 계림부 전체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 속에 잠식되었다.
또 무슨 일이 난 건가? 또 무슨 큰일이래?
창틀 사이로 무장한 동창 무사들이 쉼 없이 오가는 걸 본 백성들이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계림부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집 문을 닫았고, 거리의 떠돌이 개들조차 분이기에 압도되어 감히 짖지 못했다.
숨 막히는 살기가 계림부의 하늘을 뒤덮었다.
계림부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이곳이 피바다가 되고, 하늘에서 사람의 잘린 머리가 우수수 떨어질까 두려웠다.
불과 몇 달 전에도 그들은 이문회의 대살육을 목격한 산 증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분위기도 지금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같은 시각. 천 리 밖 광주 양광 총독부 안.
전 광서 순무 낙문이 오매불망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올 거야. 분명해!
낙문은 자신의 심복인 4품 무사 세 명에게 두변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다.
학원의 학생 나부랭이를 죽이는 데 이렇게 고급 인력을 쓰는 건 아까웠지만, 낙문은 두변이 미꾸라지처럼 또 죽음을 피해갈까 봐 확실히 그를 죽일 수 있는 맹독까지 동원했다.
그가 쓴 맹독은 이 세계에서 정말 보기 드문 정신계 맹독으로, 몸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다.
두변이 죽었다는 소식만 듣게 된다면, 낙문은 즉시 출항하여 방씨 가문의 해외 영지로 도피할 것이고, 그곳에서 계속해서 관리 생활을 하면서 마음 편히 여생을 즐길 계획이었다.
“이문회, 나를 이런 처지로 만들어놓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알았느냐. 이런 치욕을 겪고도 내가 복수하지 않으면 대장부라 할 수 없지. 의자 두변 그놈이 네놈의 역린이라고, 네놈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그렇게 떠벌려댔으니, 내가 친절하게 그놈을 죽여줄 수밖에. 내가 그놈을 죽인다고 해도, 넌 나를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난 곧 대녕 제국을 떠나 방씨 왕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 테니 말이다.
하하하하!
네놈은 내가 양광 총독부에 숨어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겠지. 의자가 죽은 심정이 어떠하냐? 아주 고통스럽지? 마음껏 고통스러워하거라. 네가 고통스러운 만큼, 내 기쁨이 배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