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장. 아주 기이한 현상
인사불성인 두변의 머릿속에 기이한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 암살을 예상했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 그렇다.
기이한 불빛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경고해주지 않았습니까.”
- 이번 암살 덕분에 네게 엄청난 이득이 생길 것이다. 게다가 이 일 덕에 너는 마지막 시험인 전투 무도 과목에서 당엄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이번 암살에서 네가 얻을 것은 당엄과의 싸움에서 치트키로 적용될 수 있는 필살기다.
이문회가 두변을 동창 진무사 관저로 데려온 지 두 시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이문회는 계림에 있는 모든 연단사와 의원을 불러왔고, 오기 힘들다는 사람은 아예 납치해서라도 관저로 데려왔다.
제 발로 오거나 납치당해온 연단사와 의원들은 하나같이 두변의 상태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두변을 치료하기는커녕, 그가 무슨 독에 중독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두변은 끔찍한 안색을 하고 혼수상태로 침상에 누워 있었고, 이문회는 또 다시 두변의 침상 옆에 꼭 붙어서 그의 곁을 지켰다.
이문회는 저번보다 훨씬 더 야위었고, 눈 밑이 시꺼멓다 못해 움푹 팼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의 가슴팍에 일 척 길이의 상처까지 생긴 상태였다. 간단히 봉합하고 응급처치하긴 했지만, 면포가 자꾸만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여씨 가문의 광서 거점을 송두리째 뽑을 때부터 지금까지 꼬박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이문회는 한 달 내내 마음 편히 발 뻗고 잠들지 못했고, 기껏해야 잠깐 말 등에서 조는 정도가 다였다.
두변이 이문회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하면 이문회는 20근이나 살이 빠졌고, 외모로는 족히 10년은 늙어 보였다. 너무 오래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의 두 눈은 불덩이가 타오르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현대 지구에서 학생들이 글짓기를 할 때, 꼭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양초에 비유한다. 자기 자신을 불태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주위를 밝히는 그런 사람.
자기 생명을 태워가면서 두변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이문회가 아닐까 싶다.
이문회는 이번만큼은 두변이 깨어나기 전까지 절대로 침상 옆을 떠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만에 하나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두변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몇 시진 전, 이문회는 이위에게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북풍관으로 가서 영종오 대종사를 모셔오라고 명령했다.
영종오 대종사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인 데다, 보름 전에 오른팔이 절단되는 중상까지 입었다. 대종사 스스로도 일분일초를 아껴가면서 요양해야 할 시기인 걸 아는지라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몹시 죄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변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종사를 모셔와야 했다.
이곳은 북풍관에서 무려 몇백 리나 떨어져 있어서 바로 온다고 하더라도 꼬박 하루가 걸릴 거리였다. 이문회는 그저 만천신불(滿天神佛)에게 그때까지 두변이 버틸 수 있기를 빌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이위가 출발한 지 두 시진도 안 되어 영종오 대종사가 두변이 있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오른팔은 여전히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신 거지? 이위가 출발한 지 두 시진도 안 지났는데?
“내가 연단과 전투 무도를 아직 가르치지 못한 터라, 두변의 졸업 시험이 너무 신경 쓰여서 와 봤네. 그런데 환관 학원에 갔더니 두변이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이리로 온 것이네.”
영종오 대종사가 놀란 눈을 한 이문회에게 설명했다.
이문회가 안도의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종오 대종사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지만, 대종사만큼 진실된 마음으로 두변을 아끼는 사람이 누구일까.
대종사가 왔으니, 드디어 한시름 놓게 되었구나!
이문회의 마음속에 영종오는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인간이었다.
대종사 영종오가 맥읖 짚기 위해 두변의 침상 옆에 앉았다. 영종오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내밀었지만, 붕대에 칭칭 감긴 오른팔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왼손으로 두변의 맥을 짚었다.
맥을 짚은 영종오의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이어서 영종오가 두변의 눈꺼풀을 뒤집어보았고, 그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영종오는 두변의 옷깃을 살짝 들쳐서 상처를 확인한 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았다.
영종오 대종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문회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까?”
영종오 대종사가 대답했다.
“처음 두변을 보았을 때 제발 이 독이 아니길 바랐건만……. 정말 내가 생각한 그 맹독일 줄은 몰랐네.”
“무슨 독입니까?”
이문회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단혼영(斷魂影)이네.”
영종오 대종사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문회로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독이었다. 단혼영은 몹시 희귀한 독으로, 순수 무도를 하는 일부 무도 종사들만 아는 독이기도 했다.
영종오 대종사가 말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독이 참 다양하고, 단혼이라는 이름을 딴 독도 참 많지. 하지만 그것들은 다 허울일 뿐이고, 진정 사람의 혼을 빼앗는 독은 바로 단혼영 하나뿐이네. 사람들의 눈에는 이 맹독이 형광 액체의 일종으로 보일 테지만, 단혼영은 실제로는 독인 동시에 원기(元氣)가 작용하는 것이네.”
영종오가 잠시 침묵하면서 말을 정리했다.
“단혼영은 입을 통해서 먹었을 땐 큰 문제가 없어. 사람의 위에 들어가는 즉시 효력이 없어지거든. 하지만 혈액에 이 독이 침투하게 된다면, 맹독은 혈액을 따라 뇌로 전이될 것이고, 사람의 뇌세포를 단번에 죽일 수 있는 엄청난 원기를 분출하게 돼. 멀쩡한 사람 하나를 한순간에 죽여버리는 거지. 이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끔찍한 맹독 중 하나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맹독이기도 하네.”
“그, 그럼 다른 방도가 없습니까?”
영종오가 고개를 저었다.
“이 독은 해독할 수 없는 독일세. 몸이 아닌 뇌와 정신을 집어삼키는 독이다 보니, 그 어떤 단약으로도 구해낼 수가 없어.”
이문회의 심장이 거의 순식간에 터져버릴 듯했다. 몸은 하염없이 무거워져서 지옥 18층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영종오가 이어서 말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독은 중독되는 즉시 죽게 되는데, 두변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는 게 신기하긴 해. 수없이도 많은 대종사급 무도 강자가 자신의 무도 종파를 만들기 위해 이 독을 시험해보려고 직접 몸에 독을 놨었는데, 다들 예외 없이 즉사했어. 그런데 두변은 몇 시진이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물론 두변의 맥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는 건 맞지만, 확실히 살아있어.”
영종오 대종사의 말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었다.
대종사급 무도 강자가 왜 이런 맹독을 직접 자신의 몸에 시험했을까?
하지만 이문회는 그런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두변이 아직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는 영종오의 말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럼, 두변이 살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영종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런 현상이 아주 기이하단 말이지. 단혼영은 무도 내공이 아무리 깊은 사람이어도 닿는 즉시 죽게 되어있어. 두변을 암살한 배후가 누구길래? 누구길래 단혼영까지 쓴 걸까. 완전히 낭비지, 낭비야.”
알 수 없는 영종오의 말에 이문회가 재차 물었다.
“대종사, 제가 궁금한 건 두변이 깨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입니다.”
“외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네. 두변은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아야 해. 이건 두변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맹독과 정신력 싸움을 하는 것과 같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두변의 맥이 더욱 희미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 단약을 조금 쓰는 것이지.”
이문회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촉했다.
“그럼 어서 하십시오. 어서요.”
영종오가 품 안에서 단약 하나를 꺼낸 뒤, 따뜻한 물에 잘 개어서 두변의 입안으로 흘려보냈다.
이문회는 두변의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약을 먹였음에도 두변의 안색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분 뒤, 기다리다 못한 이문회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왜 아무런 차도가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의 이문회는 무서울 게 없는 영웅호걸의 모습이 아니라, 아이가 조금만 열이 나도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아비의 모습이었다.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의 생기가 점점 더 쇠약해지는 건 두변의 정신이 계속 죽어가기 때문이야. 사람의 몸은 뇌에 의지해서 운행되는 것이니, 뇌 손상이 조금만 생겨도 두변은 식물인간이 될 것이네. 이대로 간다면 두변의 정신이 단혼영에게 좀먹히고 말 것이야.”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까? 제가 그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습니다. 어떤 대가든요.”
어떤 대가든 치르겠다는 이문회의 모습이 너무도 절절했지만, 영종오 대종사는 고개를 떨구면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외부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지금은 두변의 뇌 속으로 들어갈 수 없네. 모든 게 두변 자기 자신에게 달렸어.”
인사불성인 두변의 머릿속 깊은 곳에 새까만 안개 같은 기운이 그의 뇌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검은 안개 같은 기운은 은은한 연녹색 형광을 띠고 있는데, 이 형광이 바로 맹독 단혼영이었다.
맹독 기운이 두변의 뇌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있었고, 두변의 뇌의 생기를 빨아들이면서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이 맹독은 단혼수(斷魂獸)라는 이계 생물에게서 추출한 것이었다. 단혼수는 대지 폭발이 일어났을 때, 깊은 땅굴 속에서 몹시 드물게 나타나는 이계 생물이었다.
단혼수의 두 눈은 아주 끔찍하게 생겼는데, 누구든 그 두 눈을 보게 되는 즉시 혼이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그 강력한 두 눈에 비해서 몸은 굉장히 약하고, 전투력도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땅굴 깊은 곳에서 걷다가 단잠을 자는 단혼수를 만나게 된다면 천운이라고 할 수 있다. 잠자는 단혼수를 만나면 아주 쉽게 단혼수를 죽인 뒤에 그 두 눈을 뽑아서 적어도 몇만 냥 은자에 달하는 값을 부르며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깨어있는 단혼수를 마주치게 된다면, 어릴 적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으면서 도망쳐야 한다.
아무리 무공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로 단혼수의 두 눈을 이길 수 없을 것이고, 단혼수에게 따라잡힌다는 건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혼수를 악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 두변의 뇌 속에 있던 기이한 불빛이 갑자기 몸을 부풀리면서 서서히 두변의 뇌 속에 퍼져 나갔다. 한 덩어리로 뭉쳐있던 기이한 불빛이 순식간에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넓게 펼쳐지면서 검은 단혼영 기운을 감싸기 시작했다.
단혼영에 중독된 두변이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두변의 머릿속 깊은 곳에 있던 기이한 불빛이 꿈속 세계의 힘으로 두변의 뇌 속 핵심 생기가 파괴되지 않도록 가둬버린 것이다. 그래서 두변의 정신 영역이 아직 단혼영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이다.
꿈속 세계의 기이한 불빛이 단혼영의 검은 안개를 한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서서히 감싸고 있었다. 이 과정은 몹시 꼼꼼하고 느리게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도 단혼영은 병균이 정상 세포를 잡아먹듯 끊임없이 두변의 대뇌를 집어삼켰다.
꿈속 세계의 기이한 불빛이 두변의 대뇌 핵심을 지키고 있는지라, 단혼영 때문에 그의 생기가 점점 더 허약해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있었다.
기이한 불빛은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네 시진에 걸쳐서 모든 단혼영을 조금의 빈틈도 단단하게 포위했다.
바로 다음 순간, 천천히 움직이던 기이한 불빛이 갑자기 뭉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이한 불빛이 품고 있던 단혼영도 줄어들면서 결국 작디작은 점이 될 정도로 압축되었다.
포위하는 과정은 네 시진이나 걸릴 정도로 길었지만, 단혼영을 순간 압축해서 붙잡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0.01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