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90화 (190/648)

190장. 범관 낙문을 잡아라.

왕굉이 말했다.

“내일 있을 전투 무도 시험은 너와 두변의 결전이다. 명심해라. 그를 죽이진 않아도 중상을 입혀야 한다. 꼭 그놈에게 중상을 입혀서 그놈의 후광을 깨끗이 지워버려라. 그래야만 광서 엄당의 청년 환관들이 네게 달라붙을 테니.”

당엄이 물었다.

“두변을 다치게 하면, 그럼 이문회는요?”

왕굉이 말했다.

“이문회는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만약 정식적인 무도 시험에서 두변이 다친다면, 이문회도 너를 어찌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문회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오전이 되자, 잡학 이론 시험이 시작되었다.

두변이 선택한 과목은 연단이었고, 그가 시험 볼 내용은 ‘연단학 기초 이론’이었다.

이번 시험은 모두에게 무난한 시험이었고,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당엄과 두변이 나란히 만점 20점을 받았고, 다른 십여 명의 학생들도 만점을 받았다.

이미 죽은 염세는 점수가 없었다.

잡학 시험은 이론 20점과 오후에 실시될 실기 30점으로 이뤄져 있다.

연단은 기마 궁술처럼 배정 점수가 높지 않지만 난이도가 무척 어려운 과목이었다. 대충 연단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만, 연단을 잘 만들어서 고득점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왜?

연단은 단순한 과학 실험 같은 게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이다.

연단의 재료, 불 세기, 비율, 시간 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야만 완벽한 연단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위 과정 중에서 하나라도 착오가 생긴다면, 그때까지 만든 모든 게 수포가 된다.

게다가 이문회가 졸업 시험을 미룬 것이 몹시 불쾌해진 몇몇 시험관들이 일부러 연단 실기의 난이도를 극악의 난이도로 만들었다.

이문회의 의자인 두변을 혼쭐 내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두변의 천재성이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오후가 되자, 연단 실기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시험관이 말했다.

“연단 실기의 내용은 구전금단(九轉金丹)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당엄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

구전금단이라는 연단은 이름만 봤을 때 먹게 되면 신선이 되거나, 엄청난 무공을 얻게 되는 것 같지만, 사실상 구전금단은 먹는 연단이 아니라 아주 귀한 장식품이라 할 수 있다.

황제의 황관과 친왕의 왕관에는 꼭 구전금단이 한 알씩 박혀있다.

이런 금단은 황금빛이어야 하는 게 당연했고, 호박(琥珀)처럼 투명하고 영롱해야 한다. 게다가 야명주처럼 광택이 돌아야 하고, 가만히 들고 있어도 빛이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고귀한 기운도 풍겨야 했다.

오성급 구전금단의 가치만 해도 같은 크기의 황금보다 귀한데, 구성급 구전금단은 거의 천상의 물건처럼 취급되며, 황제의 금관에 쓰이기도 하고, 황제가 친왕이나 번왕에게 진귀한 선물로 하사하기도 한다.

황제가 매년 상당한 분량의 구전금단을 필요로 하는데, 그건 자기가 쓰기 위함이 아니라 번왕 등에게 선물을 하기 위함이었다. 친왕이 아들을 낳게 되거나, 세자를 책봉하는 행사가 있을 때, 황제는 꼭 다양한 성급의 구전금단을 선물한다.

그런데 구전금단은 보통 황궁의 단약국에 있는 연단 대사가 만드는지라, 평범한 연단사는 구전금단을 만져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환관 학원의 학생들도 구전금단이 무척 낯설었다.

구전금단은 엄격히 따지자면 단약의 범위에도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희귀한 연단을 졸업 시험에서 만들라고 하니, 학생들이 저절로 헉 소리가 나는 건 당연했다.

극악의 난이도에 학생들이 혀를 내둘렀다.

물론 오직 두변만은 예외였다.

그는 어젯밤 꿈속 세계에서 오늘 시험 내용을 미리 알게 된 뒤, 밤새 연단을 연습했기 때문이다.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한 달 내내 구전금단만 죽어라 만들었다. 그리고 수천 번의 실패와 경험 끝에 그는 드디어 완벽한 구전금단을 만들어내는 법을 터득했다.

“시작!”

주시험관이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연단 실기 시험 시간은 총 세 시진이었다.

구전금단의 재료는 비싸지 않았고 조제 방법도 복잡한 편은 아니었다. 구전금단을 연단할 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건 불 세기와 기술이었다.

학생 한 명당 연단을 딱 한 번 할 수 있는 재료를 주기에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는 셈이고, 그래서 다들 섣불리 시작하지를 못했다.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재료를 바라보면서 구전금단을 어떻게 만들지 머릿속으로 한 단계씩 예행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변은 곧장 재료를 빻고, 화로에 불을 붙이고, 재료를 녹이고, 혼합하고, 다시 굽고…….

그의 모든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꼭 구전금단을 수천 번은 만들어본 사람 같아 보였다.

모든 과정이 절대적으로 정확했다. 모든 재료의 분량과 비율도 정확했고, 재료를 불 위에 올린 순간부터의 불 세기까지, 두변은 심혈을 기울여서 정밀하게 연단을 진행했다.

겨우 일각 뒤, 두변은 성공적으로 구전금단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구전금단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게 바로 황실을 대표하는 구전금단이로구나!

두변의 손바닥 위에 놓인 구전금단은 황금처럼 귀해 보이고, 호박처럼 투명하고 영롱했으며, 야명주처럼 빛무리가 흘렀다.

값싼 재료로 이렇게 귀해 보이는 걸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이러니 구전금단이 황금보다도 귀하다고들 하는 건가.

두변이 완성된 구전금단을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넣은 뒤, 상자 겉면에 밀봉지를 붙이고 납을 녹여서 인장을 찍고 상자를 제출했다.

시험 시간이 총 세 시진인데 두변이 시험 시작 일각 만에 구전금단을 제출하자, 모든 학생이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이미 놀라움을 넘어서 무한한 흠모의 연속이었다.

저녁이 되자, 황궁 단약국에서 모셔온 세 명의 연단 환관이 연단 실기 시험을 채점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성적은 차마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였다.

이게 다 무슨 쓰레기람.

이게 황금색이라고 만들어온 건가? 똥색에다 녹색까지 섞여 있는데?

겉면이 울퉁불퉁한 금단이라니. 어, 여기엔 불에 탄 자국까지 있군.

연단 환관들은 정말 고문을 받는 사람들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채점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제련한 구전금단은 제대로 틀도 잡히지 않았고, 금단이라고 불리기도 힘든 것들이 전부였다.

한숨을 쉬면서 다음 상자를 열던 연단 환관의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상자 사이로 새어 나오는 금빛을 보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연단 환관이 구전금단을 상자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가 꺼낸 금단의 황금색은 무척 선명하고 확실한 황금색이었다. 금단의 투명함도 나쁘지 않았지만, 영롱함이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광택도 보이긴 했지만, 흐르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은 나지 않았다.

“칠성급 금단은 되겠군. 지방 번왕의 아들에게 선물하기 괜찮은 수준일세.”

연단 환관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구전금단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텐데, 광서 학생 중 이리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말 의외로군.”

다른 연단 환관이 말했다.

“만점 30점에서 24점을 주겠소.”

“동의하네.”

“좋소.”

세 명의 연단 환관이 점수를 확정한 뒤, 밀봉지를 걷어내고 이름을 확인했다.

상자에는 당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역시 다재다능한 청년이로군. 연단도 이렇게 훌륭하게 해내다니, 참으로 귀한 인재요.”

“이번 연단 실기 시험에서 제일 좋은 성적을 얻어 가겠군. 아, 당엄이 만수절 연화단 시합에서도 1등을 하지 않았소?”

연단 환관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마디씩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왕굉은 한시름을 내려놓았다.

연단 환관들이 다시 상자를 하나씩 열면서 채점을 이어가는데,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흉측한 연단들이 난무했다.

연단 환관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있을 때, 한 연단 환관이 무심코 다음 상자를 열었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상자에서 쏟아져나오는 빛이 어두침침했던 방 안을 일순간 황금빛으로 채웠다.

크기, 색감, 투명도, 광택까지,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구전금단이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세 명의 연단 환관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단약국의 연단 대사가 만든 구전금단을 예시로 가져온 것 아니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건 구성급 구전금단이오. 이 정도면 태자 전하의 면류관에 박아도 될 수준이오.”

“이게 정말로 학생의 작품이란 말이오? 어떻게 이럴 수가.”

“만점 30점?”

“만점 30점.”

“좋소. 만점 30점!”

상자의 밀봉지를 뜯어내자, 연단 환관들의 눈앞에 ‘두변’ 두 글자가 들어왔다.

‘두변! 또 그 청년이란 말인가?’

‘정말 못 하는 게 없는 천재로구나.’

연단 환관들이 속으로 감탄했다.

연단 실기 시험의 최종 점수가 나왔다.

두변은 연단 이론, 연단 실기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서 총 50점을 받게 되었고, 당엄은 연단 이론 만점, 실전 24점으로 총 44점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두변의 졸업 시험 총점은 지금까지 모두 만점을 기록한 덕에 400점이 되었고, 당엄의 점수는 400.5점이 되었으므로 여전히 두변보다 0.5점 높았다.

산장 왕굉이 말했다.

“연단학 시험 성적이 나왔다. 네 점수는 44점이고, 두변은 만점 50점이다. 두 사람의 점수차는 고작 0.5점에 불과하다.”

당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왕굉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네 무공이 두변보다 훨씬 뛰어나니, 내일 있을 전투 무도에서 그를 꼭 압살해야 한다. 두변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말고 일격필살로 끝내야 해.”

당엄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때, 아름다운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북명검파 종사급 강자 검마 이도진이었다.

“네 무공 실력은 어느 정도이냐.”

이도진이 물었다.

“6품 중등입니다.”

당엄이 대답했다.

이도진이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네면서 말했다.

“여기 단약이 하나 있는데, 이걸 복용하면 짧은 시간 동안 네 내력 수준을 3할 정도 증폭시킬 수 있다. 효과 지속 시간은 일각 정도로 짧고, 사용 후에는 한 달간 요양도 해야 한다.”

당엄은 자신의 무공이 두변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생각하는지라 이도진의 호의를 거절하려던 찰나, 이도진이 그에게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네게 검법을 하나 전수해주마. 딱 한 수면 된다. 원거리에서 상대의 단전을 순식간에 망가트리는 검법이고, 두변이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게 될 것이다.”

당엄이 의아한 얼굴로 이도진과 왕굉을 쳐다보았다.

내 무공이 두변보다 훨씬 뛰어난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왕굉이 말했다.

“두변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너무 많이 해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그를 완전히, 확실히,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은 백 분의 백으로 그쳐선 안 되고, 백 분의 이백, 백 분의 삼백, 백 분의 천에 달해야 한다.

네 승리는 만무일실(萬無一失: 실패하거나 실수할 염려가 조금도 없는 상태)이어야 해!”

광주성, 양광 총독부.

양광 총독 고정이 담담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만약, 내가 싫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이문회가 소매에서 성지 두루마리를 꺼내서 펼쳤다.

“황제가 명하노라. 광서의 형세가 어지러우니, 이문회는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고, 편의행사하라.”

성지를 큰소리로 읽은 이문회가 고정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명령했다.

“총독부 안으로 들어가서 범관 낙문을 잡아라.”

팔백 명 동창 무사가 곧장 총독부 안으로 쳐들어가려고 하자, 총독부 수비를 담당하는 4품 무관이 병사 이백 명과 함께 총독부 대문 앞을 막아섰다.

“이곳은 총독부이다. 감히 어딜 쳐들어오려고 하는 것이냐. 지금 반역이라도 일으키려는 거냐! 당장 무기를 버리고 체포에 응하라.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여버릴 것이다.”

4품 무장이 큰소리로 외쳤고, 병사 이백 명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