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장.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때, 총독부 대청 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수백 명의 부호, 권문세가, 제국의 귀족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모두 남해도장에서 이문회에 의해 자식을 잃은 가족들이었고, 이문회를 죽여달라고 사정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수백 명의 권세가들이 이문회 앞으로 달려들어 그를 단단히 에워쌌다.
“엄당의 주구 이문회! 제 발로 지옥으로 뛰어드는구나.”
“이문회! 이곳이 어느 안전이라고 무사들을 이끌고 온 것이오!”
동창 무사 수백 명이 이문회를 보호하면서 이들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이때 낙문은 이문회가 양광 총독부까지 쫓아와서 자신을 잡으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완전히 놀라고 말았다.
그는 빠르게 짐을 싼 뒤, 몰래 출항하기 위해서 뒷문으로 달려갔다.
이문회가 큰소리로 외쳤다.
“동창은 폐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시어 체포하라는 범관을 잡으러 온 것이오. 우리의 앞을 막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이문회가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쳤다.
“셋을 셀 테니 즉시 물러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검끝이 무자비하다고 탓하게 될 것이오!”
“셋!”
“둘!”
수백 명 권세가들은 이문회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이문회를 에워싸고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몇몇은 칼까지 뽑아 들고 이문회를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하나!”
이문회가 셋을 다 세자, 양광 총독 고정이 냉랭한 태도로 말했다.
“이문회, 자네 앞에 있는 이 수백 명의 사람은 다 남해도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오. 이들은 모두 명망 있는 가문, 부호, 관리, 조정의 훈귀이지. 자네가 지금 뭘 하려거든, 생각을 잘하고 일을 저지르는 게 좋을 것이네.”
그가 경고하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무력으로 총독부를 공격하는 대가가 무엇일지도 잘 생각해보게.”
이문회가 깊이 심호흡을 한 뒤 양광 총독 고정을 바라보았다.
“저는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부터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총독 대인께서도 그 점을 모르시는 것이 아닐 텐데요.”
그러더니 이문회가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일순간, 수백 명의 동창 무사가 바로 말에 올라 이문회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람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말굽으로 찍고, 뒷발로 차고.
순간 수백 명의 권세가가 바닥에 나뒹굴면서 피와 살이 흩날렸다.
사람들은 자기라도 살겠다며 다른 사람을 밀치고 밟았으며, 대문 앞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수십 명의 권세가가 눈 깜빡할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죽여라!”
수백 명의 동창 무사가 검을 휘두르며 매서운 속도로 돌진해서는, 이백 명 병사로 이뤄진 총독부 수비선을 단번에 찢어버렸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4품 무장이 칼을 치켜들고 이문회를 향해 달려왔다.
이문회가 검을 뽑아 허공을 가로질렀고, 검강이 그대로 4품 무장의 목을 댕강 잘라버렸다.
이문회는 양광 총독 고정의 앞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동창 무사 팔백 명을 이끌고 총독부 안으로 홍수처럼 휘몰아쳐 들어갔다.
“폐하의 성지를 받고 범관을 잡으러 왔다. 앞을 막는 자들은 죽음뿐이다!”
“조정의 범관을 잡으러 왔다. 앞을 막는 자들은 죽음뿐이다!”
몇 분 뒤, 뒷문이 막혀서 담을 넘으려던 광서 순무 낙문이 동창 무사에게 붙잡혔다.
동창 무사가 그를 이문회 앞으로 끌고 가자, 낙문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문회! 정말 미친놈이로구나. 총독부까지 공격해가면서 나를 잡겠다니! 이건 반역이다! 네놈은 절대로 곱게 죽지 못할 것이야!
남해도장의 무고한 학생들까지 죽이다니, 네놈은 미쳐도 한참 미쳤어. 조금 전에 네놈이 죽인 사람들이 다 어떤 사람들인지 아느냐. 조정의 훈귀가 몇 명이고, 퇴직한 조정 대신이 몇 명인지 아느냐고! 네놈은 분명히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야!”
낙문이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면서 외쳤다.
이때, 밖에서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철갑옷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백 명의 여경사 무사가 양광 총독 고정을 보호하면서 총독부 안으로 들어왔다.
총독 고정이 부른 여경사 병마가 드디어 도착했고, 광주부의 주둔병도 말에 박차를 가하며 총독부로 달려오고 있었다.
수백 명 여경사 무사와 팔백 명 동창 무사가 팽팽하게 대치했다.
양광 총독 고정이 천천히 말했다.
“이문회, 낙문은 광서의 순무이니 그가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겼다고 해도 그를 잡아갈 기관은 여경사이지, 동창이 아니다. 당장 범관을 이리 내놓아라.”
광동 여경사 진무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탐관 낙문을 체포하라. 체포를 막는 자는 즉시 죽여도 좋다!”
“알겠습니다.”
진무사의 수하가 대답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여경사 무사가 앞으로 나서서 광서 순무 낙문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낙문이 그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죽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해외에 있는 방씨 제국으로 도피해서 노년을 즐길 것이다.
양광 총독 고정이 말했다.
“이문회, 광주부의 삼천 주둔병도 곧 이리로 올 것이다. 순순히 낙문을 우리에게 넘긴다면, 내 무력을 쓰지 않고 자네를 무사히 보내주겠다. 그리고 네가 오늘 총독부를 습격한 것도 사소한 일로 만들어주지. 하지만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살아서 광주를 떠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주부에 주둔하는 삼천 병사가 완전 무장한 채로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고정이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이문회, 더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낙문을 우리에게 넘겨라.”
여경사 진무사가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멍하니 서서 뭣들하고 있는 게냐. 당장 낙문을 뺏어오너라. 막는 자가 있다면 다 죽여도 좋다.”
이문회가 양광 총독 고정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총독 대인, 저는 대인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짓을 할 배짱이 없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대인께서는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전혀 감을 못 잡고 계시는 겁니다.”
이문회가 광서 낙문의 어깨를 꽉 잡고 무릎을 꿇린 뒤 천천히 말했다.
“낙문, 참회의 시간을 주겠다. 너를 키워주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것, 너를 믿어줬던 폐하의 후은을 저버린 것, 그리고 너만 바라보던 광서 만민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참회해라. 백만 냥이 넘는 은자를 더러운 뇌물로 받았던 것도, 여씨 가문과 공모하여 제국의 피와 살을 빨아먹은 것을 참회하라.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 나의 의자 두변을 암살한 것도 참회해야 한다.”
이문회의 말을 듣던 낙문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불안함이 엄습한 낙문이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이, 이문회. 뭐, 뭘 하려는 것이냐. 나는 아직 광서 순무이고, 제국의 봉강대리이다. 나는 조정의 2품 관리인데, 네깟 4품 관리가 나를 어찌할 수 있단 말이냐? 황제의 지의 없이는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고!”
이문회가 낙문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날카로운 검날은 낙문의 목을 지금이라도 벨 것처럼 차가웠다.
낙문이 오한이 든 사람처럼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전율하더니 아랫도리에서 오줌이 찔끔 새어 나왔다.
양광 총독 고정이 이를 악물면서 매서운 눈초리로 이문회를 노려보았다.
“이문회! 낙문은 조정의 2품 관리이다. 지금 총독인 내 앞에서 한 성의 순무를 죽이려는 것인가? 네가 견뎌야 할 뒷감당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고 있는 건가?”
이문회가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광서에 있는 몇천 명의 여씨 가문 사람들을 죽였을 때보다 훨씬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양광 총독 고정이 이를 물고 말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낙문을 죽이는 건 지옥불로 뛰어드는 것이다!”
이문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남해도장을 공격했을 때부터 제게는 이미 물러날 퇴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어떤 퇴로도 필요치 않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대인께서는 제가 뭘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신다고요. 다들 제가 미쳤다고 하지만, 저는 살면서 이보다 더 정신이 맑은 적이 없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이문회가 검을 휘둘렀다.
“안 돼. 제발 나를 죽이면…….”
낙문이 처절하게 외친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있던 낙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졸업 시험의 마지막 과목인 전투 무도 시험이 곧 시작되었다.
무도 시험은 두변과 당엄의 결전이 될 것이고, 무도 시험에서의 승패로 두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전투 무도 시험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만점 80점의 연무(演武),
2부는 만점 20점의 비무(比武).
연무는 말 그대로 검법, 도법(刀法), 권법, 곤법, 창법 등 중 한 가지 기술을 골라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공 수준이 높은 대환관이 채점을 진행한다.
연무는 무과(武科) 같기도 하고, 현대 지구의 체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도법이 됐든 창법이 됐든, 권법이 됐든, 각각의 공법에는 갑을병정 네 가지 난이도가 있게 되고, 각 급의 만점은 갑 80점, 을 70점, 병 65점, 정 60점이다.
어떤 공법이든 만점을 받고자 한다면 모든 동작, 속도, 내력, 호흡 등을 정석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병급, 정급 기술에서 만점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병급과 정급인 공법은 동작의 정확도, 근맥과 호흡의 조화, 현기의 운용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을급 공법에서는 현기 운용 부분에 대해서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초식 하나하나에 현기 내력이 충분해야 하고, 동작의 각도가 정확해야 하며, 힘도 충분해야 한다.
갑급 공법은 너무 어려워서 거의 도전하는 사람이 없는 편이었다.
각 초식이 틀리지 않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내력으로 뿜어져 나오는 검기, 강기도 정도가 적절해야 한다. 관건은 갑급 공법 특유의 기장(氣場)까지 형성해야 하는데, 사실 이게 지극히 어려웠다.
고명한 공법들은 다 제각각 특유의 기장이 있어서 상대가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다치게 된다.
하지만 공법의 기장까지 파악하려면 그 공법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자신의 근맥과 기장 사이에 합을 맞춰야 한다.
아무튼 갑급 공법은 정말 정말 어렵고, 몇 년의 연습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7품 무사에 이르지 못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기장이란 걸 이해하지도 못했다.
물론, 두변이 고른 것은 단연 갑급 공법으로, ‘역사구검(逆邪九劍)’이라는 공법이었다.
이 검법은 기이하기 짝이 없고 환관 무도 중에서 한 획을 긋는다고 할 만한데, 이 검법만 익히면 상대가 누구든 이 기술을 막기가 힘들게 된다.
역사구검이 어려운 이유는 표면적인 동작만 알아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웬만한 검법은 7할이 겉으로 보이는 동작이고, 3할이 내재인데, 이 검법은 7할이 내재, 3할이 동작이었다.
만약 겉으로 보이는 동작만 배웠다면, 이 검법을 시전할 때 사람이 무척 우스꽝스럽고 광인이 춤을 추는 모습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검법의 내재적인 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매우 어려웠는데, 매 초식에 체내의 현기를 유연하게 운용해야 하고, 특수한 내력 효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 검법의 성공 여부는 시전자가 이 검법 특유의 기장을 만들어냈는지로 판단한다.
바로, 굴절 환영(幻影)!
굴절 환영이란, 이 검법을 쓸 때 환영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 두 명으로 보이고, 계속해서 환영의 위치와 형체가 바뀌면서 상대를 현혹시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이 검법을 쓸 수 있다면, 세상엔 이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검법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시각적인 효과일 뿐이고, 현기와 내력으로 주위 공기를 굴절시켜서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검법이 최초에 공개되었을 때는 정말 세상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이 검법이 실전에서의 의미는 크지 않으면서, 시각적인 충격과 기이함, 신비로움이 주된 검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기 좋을 수도 있지만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서 대부분 사람은 이 검법을 연마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배우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데다, 전문적으로 몇 년을 연마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습득력이 빠른 사람이어도 도저히 배우지 못하는 검법이었다.
두변은 연무에서 엄청 화려하고 충분히 시선을 끌 검법으로 완벽한 만점을 받아내고 싶었다. 그러기엔 역사구검이 딱이었다. 현장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수 있을뿐더러 실로 신비하고 화려한 검법이니까.
‘역사구검’은 겨우 아홉 수에 불과하지만 검보(劍譜)는 총 390장에 달했다. 아홉 수 정도의 다른 검법의 검보가 기껏해야 수십 장이 전부인 것에 비하면, 역사구검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두변이 성공적으로 역사구검 검법을 시연할 수 있다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