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01화 (201/648)

201장. 어딘가 익숙한데

두변은 두강에 대한 기억은 많이 없었지만, 그의 아들 두우(杜禹)에 대한 기억만은 분명했다.

이 몸의 주인 두변이 두씨 가문에서 가장 많이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은 두염이 아니라 오히려 두우였다.

두염이 두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건 맞지만, 그는 스스로를 태생이 두변과 다른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두변을 경멸하고 아예 무시했다.

그런데 두염보다 한 살 어린 두우는 달랐다.

두우의 부친 두강은 오랜 세월을 타지에서 관직 생활을 하느라 두우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 두우란 놈은 노부인의 치마폭에서 노부인의 총애를 듬뿍 받으며 두씨 가문의 패왕처럼 자랐다. 두우는 이삼일에 한 번씩 두변을 괴롭히는 낙에 살았고, 두변을 괴롭히는 정도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두변에게 허구한 날 이유 없이 주먹질에 발길질하는 건 물론이었고, 두변이 고자라는 것을 알고는 고자가 어떻게 생긴 건지 보자며 호시탐탐 때를 노렸다.

그리고 두우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두평아의 가슴이 주먹만큼 커지면 그녀를 따먹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이때, 갑자기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오 부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두 공자, 어서 두평아를 구해세요! 무슨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저쪽 두 공자가 두평아를 알고 있다면서 평아를 방으로 끌고 가려고 해요!”

두변은 이내 화가 치밀어서는 이삼, 이사 등을 이끌고 곧장 객청을 뛰쳐나갔다.

이곳에서 잠시 사는 사람이 포정사 두강이라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되도록 그를 멀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두강이 단순히 두씨 가문의 신분으로 온 거라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만.

하지만 어쨌든 두강이 새로 부임한 광서 포정사라고 하고, 그가 광서로 온 정확한 목적을 모르는 상황이니, 두강이 신임 순무 장양명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를 어떤 식으로 대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두변은 지금 동창 백호이자 광서 동창 소주인인 만큼, 사적인 일로 큰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방이 예상치도 못하게 먼저 건드리면서 공격할 명분을 줬으니, 이참에 매운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두평아는 장원에서 살기로 한 사람이 포정사 대인이라는 것만 알았지, 포정사의 이름이 두강인지도, 더욱이 경성 두씨 가문의 사노야인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본능적으로 이들과 마주치는 걸 피했다.

두강이 포정사에 부임하면서 그의 부인과 막내아들 두우를 데려왔다. 두강이 두우를 데려온 건 두우가 집에서 하도 공부를 안 해서이기도 하고, 노부인의 치마폭에 싸여서 법도 하늘도 없이 날뛰는 게 보기 싫어서 그를 곁에 두고 제대로 훈육하기 위해서였다.

두우는 경성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해서는 오씨네 장원에 와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제 주인 세력만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시종 넷을 데리고 장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으며, 오씨 장원이 얼마나 저속하고 촌티가 나는지 손가락질하며 평가하기 바빴다.

아무리 두강이라도 원래는 오가의 여인들이 사는 거처에 들어서면 안 되고, 더군다나 두우의 나이가 열일곱이 되었으니 남녀가 유별하다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어디 두우가 그런 거 상관이나 하던 놈인가.

두우는 그런 법도 따위 없이 자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었고, 경성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니 이런 촌구석에 와서는 더욱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두우는 자신이 포정사 대인의 아들이라는 점만 믿고 여인들의 거처로 향했다. 거처를 지키는 여종이 앞을 막아서자 여종의 뺨을 때리면서 비키게 했다.

그런데 웬걸. 두우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두평아를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엔 두평아의 아름다운 뒤태, 그다음엔 그녀의 풍만한 가슴,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된 두우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 싶었더니, 두평아잖아?

“두평아! 네가 여기 있었구나! 경성에서 내가 말했었잖아. 네 가슴이 주먹만 해질 때 내가 널 데려가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네가 없어졌더라고. 네년 일가가 두변 그 천생 고자인 놈을 데리고 도망쳤다길래, 내가 얼마나 상심이 컸는지 아냐?

매일 괴롭힐 바보놈도 없어지고, 나랑 자게 될 년도 잃게 되어서 내가 얼마나 속상했겠어. 이야, 찾으려고 할 때는 어디서도 못 찾던 걸, 여기서 이렇게 찾게 되네!”

뒤늦게 두우를 알아본 두평아가 화들짝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혼세마왕(混世魔王)이던 두우는 두변을 한 번 괴롭히기 시작하면 정도도 없이 괴롭혔고, 두평아는 그런 두우가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다.

“딱 때맞춰서 네가 여기 있었네. 지금 당장 나랑 방으로 가서 내 수발을 들어라. 내가 여길 떠날 때 네년도 데려가 주마. 내가 몇 년 동안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아느냐? 가슴도 아주 잘 컸구나. 어디 촉감이 얼마나 좋은지 한 번 만져볼까?”

두우가 사악하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두평아의 손목을 잡아채고 그녀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버르장머리 없이 자란 환고(紈絝) 자제 두우는 경성에 있을 땐 그나마 청루에서만 이렇게 여인들을 막 대하면서 놀았다.

하지만 이곳은 광서이고 두평아는 과거 가노의 딸이었으니, 두우는 두평아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것이라 생각했다. 두평아를 만지는 것도 상관없고, 두평아를 죽이는 것도 다 자기 자유라고 생각했다.

두평아가 있는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바로 도망가려 했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되도록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그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두우 같은 놈에게 도리나 이치 같은 걸 따져서 뭐할까.

“하하, 또 도망치려고? 네년이 오늘 내 손에 다시 잡히면, 도망칠 생각은 다시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두우가 쥐를 희롱하는 고양이처럼 두평아를 쫓았지만, 체력이든 무공이든 평범하기 그지 없는 탓에 한참을 뒤쫓다가 이내 숨을 헐떡였다.

두우가 자신이 데려온 시종들에게 명령했다.

“저년을 잡아서 벽에 눌러놓아라.”

건장한 시종들이 곧바로 두평아를 잡아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벽에 눌렀다.

두평아가 죽을힘을 다해서 발버둥 쳤지만, 시종들에게 눌려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디 한 번 도망쳐 봐. 네년이 어딜 도망간다고 그래? 몇 년 사이에 뭘 먹었길래 가슴이 그렇게 커졌어? 내 허락도 없이 그렇게 커지면 안 되지. 혼 좀 나야 정신 차리지?”

두우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리면서 두평아를 희롱했다.

만약 두평아가 단순히 오씨 가문의 소부인이었다면, 두우도 부친의 명성에 먹칠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렇게까지 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집에서 부리던 가노의 딸을 보게 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두평아가 냉랭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두우, 좋은 말 할 때 날 놔줘. 내 동생 두변이 이제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됐는지 알아?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두변이 네놈의 손을 잘라버릴 거야.”

두우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두평아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두변? 그 천생 고자? 그놈이 이문회를 의부로 삼았다는 건 들었는데, 이문회는 곧 죽어. 두변 그 바보가 제 혼자 뭘 할 줄 안다고. 걘 그냥 엄당의 개새끼일 뿐이야.

아,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걘 어디 있어? 안 그래도 요즘 심심해서 죽겠단 말이지. 내 장난감이 내 동의도 없이 사라지면 되나. 계림에 도착해서 내가 제일 먼저 하려는 일이 뭔 줄 알아? 그놈의 바지를 벗겨서 천생 고자의 아랫도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는 거야. 몇 년 사이에 변화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두우가 입맛을 다시면서 두평아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지금은 일단 우리 사이의 옛정을 좀 떠올려 볼까? 아, 그리고 진짜 뭘 먹고 자란 거냐?”

그때 뒤쪽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우!”

흠칫 놀란 두우가 허공에 무안하게 멈춰있던 손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서 두변을 쳐다보았다.

“이게 어쩐 일이래? 천생 고자도 여기 있었잖아? 잘됐네, 잘됐어. 안 그래도 몇 년 사이에 네 아랫도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거든. 아, 똑같으려나?”

두우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두변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놈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내가 두일명을 고자로 만들었다는 걸 모르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 이상 여기서 저러고 있을 리가 없는데?

두변의 추측대로 두우는 두변이 두일명을 고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두일명이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두씨 가문은 그를 꼭꼭 숨겨버렸고, 두변이라는 이름은 두가의 금기어가 되었다. 그래서 그날 일은 두씨 가문 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었다.

두우는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슬쩍 듣긴 했지만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우가 시종들에게 명령했다.

“얼른 가서 저 바보도 잡아 봐라. 저놈 바지를 벗겨서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

시종들이 두우의 명령을 듣고 곧장 두변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라.”

두변의 명령이 떨어졌다.

푸슉, 서걱.

이삼, 이사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종 넷을 단칼에 죽여버렸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도 잡아.”

두변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이삼이 두우의 목을 한 손으로 덥석 잡아서 거칠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두변이 옆에 있던 두평아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누이, 괜찮아?”

두평아가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두변을 꼭 껴안으면서 대답했다.

“괜찮아.”

“저놈이 누이를 만졌어?”

두평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손목만 낚아챘어.”

두변이 이를 부득 갈았다.

“어느 손?”

“오른손.”

두변이 이사의 곡도를 꺼내서 두우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

두우는 두변이 자신의 시종들을 죽이고, 자기를 이렇게 멋대로 대하는 것에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이 바보 새끼가 감히 내 시종들을 죽여?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거냐? 죽여버릴 거다! 내가 죽여버릴 거라고!”

두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동창 무사 한 명이 두우의 오른팔을 덥석 붙잡고 두변의 앞으로 내밀었다.

두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비명을 질렀다.

“두변, 두변! 지금 뭐 하려는 거냐. 감히, 네놈이 감히!”

“병신!”

두변이 짧게 내뱉고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두우의 오른손을 곡도로 잘라버렸다.

두우의 오른손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그의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두우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오른손을 보고 처절하기 짝이 없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아아악! 너, 죽여버리고 말 거야. 널 죽여버리고 말 거라고!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저놈을 죽여라! 당장!”

두우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자, 두변이 성가시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명령했다.

“잘 잡아.”

이삼이 두우의 목을 더욱 세게 잡고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고정했다.

두변이 두우의 뺨을 좌우 번갈아 가며 후려쳤다.

짝, 짝, 짝, 짝.

두변에게 따귀 열 대를 맞자, 두우의 나름 준수한 얼굴이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사과해. 두평 누이에게 사과해.”

“꿈 깨셔!”

입술이 부어서 입을 다물지도 못하는 두우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말했다.

두변이 다시 두우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쉬지 않고 두우의 뺨을 수십 대 갈겼다.

두우의 얼굴은 더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가 입을 벌려서 입 안에서 부러진 이 몇 개를 뱉어냈다.

“사과해.”

“절대로 안 해!”

두우가 고집을 부리자 두변이 이삼에게 말했다.

“숨 막혀 죽으라 그래.”

이삼이 두꺼운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입안 가득 물을 한 모금 머금더니, 종이를 향해 물을 뿜었다. 그리고는 물에 축축하게 젖은 두꺼운 종이를 두우의 얼굴에 얹었다.

두우는 숨이 막혀서 발버둥 쳤지만, 동창 무사들이 그를 꽉 잡고 있는지라 발버둥 칠수록 숨은 점점 더 가빠왔다.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건 어떤 고문보다도 고통스러운 법이다.

죽음의 공포가 두우를 덮치고,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저승사자가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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