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장. 대승적으로
두씨 가문이 방씨 가문의 문턱에도 닿지 못하는 가문이긴 했지만, 방청의의 부친은 점술가가 말한 때에 태어난 아들이 적자라는 점과 두회의 야심을 방씨 권력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청의의 부친은 점술가의 말이 못 미덥긴 했지만, 이런저런 우연이 겹쳐서 끝내 이 정혼을 맺게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두헌(두변)은 태생이 고자였고, 방청의는 그 치욕스러움을 견디지 못해서 두씨 가문에게 두헌(두변)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라고 협박했다.
어차피 두씨 가문에는 두헌(두변)과 같은 시간에 태어난 서자 두염이 있었고, 두염은 뛰어난 재능으로 열다섯의 나이에 거인에 합격했다.
두씨 가문은 방청의를 포함해서 원래 두헌(두변)의 것이었던 모든 것을 두염에게 주었다.
작년에 열일곱이 된 두염은 회시, 전시에도 연이어 합격해서 그해 최연소 진사가 되었다. 비록 이갑 차석이었지만, 열일곱에 이런 출세를 하기란 정말 어렵다 할 만했다.
두염은 한림원에서 1년 반을 보냈고, 올해는 7품 현령 관직에 부임하게 되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7품 현령이라니, 정말로 대단하지 않은가.
게다가 7품 현령은 두변의 6품 백호보다 훨씬 더 높은 셈이었다. 관제상 동창 백호 두변은 수백 명을 관리하지만, 두염은 십여만 명을 거느리는 현령 대인이었다.
경성을 떠나기 전, 두씨 가문과 방씨 가문이 두 사람을 위해서 사치스럽고 성대한 혼례를 올렸다. 두 사람의 혼례는 태자의 혼례보다 몇 배는 더 성대했다. 물론워낙 검소한 천윤제 때문에 더더욱 비교가 되었겠지만.
제국 대부분의 문무 고관, 조정 훈귀가 그들의 혼례식에 참석했고, 황제가 두 사람에게 백년가약 편액을 하사했으며, 태자도 친히 혼례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명예로움과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리는 혼례였다 할 만했다.
온 천하가 그들의 혼례를 주목했고, 두 사람은 무수히 많은 남녀의 질투대상이 되었다.
방청의는 두염이 남편감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잘생긴 외모, 출중한 문무 재능, 그리고 일편단심 자신만 바라보는 사내이니, 두염은 사실상 모든 여인이 바라는 남편감이었다.
하지만 방청의는 그래도 지금 당장은 두염이 자신과 어울리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두염은 더욱 강해져야만 하고, 더 많은 권력을 쥐어야 했다.
그래서 방청의는 월경 중이라는 이유로 두염과 첫날밤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
오주부, 방씨 장원 안.
두염은 창가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잠시 뒤, 그는 하늘에 걸린 초승달을 올려다보다가 책을 덮었다.
두씨 가문에서 제일 잘난 사내인 두염의 얼굴빛이 붉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지금 조금 흥분한 상태였다.
방씨 장원의 관사가 방청의와 자신에게 방 하나를 준비해줬기 때문이다.
두염은 영설 공주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신분을 가진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는 혼례를 올린 후로 줄곧 진정한 부부가 되고 싶어서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방청의와 함께 밤을 보내는 건 신선경에 오르는 것만큼 황홀하지 않겠는가!
곱고 새하얀 피부를 가진 방청의는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방청의를 부인으로 맞이한 건, 그가 평생의 복을 쓴 것이고, 온 세상 사내들의 질투를 받을 만큼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두염이 떨리는 마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청의, 밤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자는 게 어떻소.”
두염이 자연스럽게 방청의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같은 시각.
오씨 장원 밖에서 어지러운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변의 넷째 숙부, 광서 포정사 대인 두강이 장원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어서 대문 밖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창의 시백호 두변, 안에 있다면 나와서 얼굴 한 번 보자!”
두염이 부드럽게 방청의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자, 방청의가 까르르 웃으면서 그의 손을 살짝 피했다.
두염이 울상을 지으면서 투정했다.
“우리 이제 부부 사이잖소. 나를 이대로 홀아비로 만들 셈이오?”
방청의가 손끝으로 두염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창피하지도 않아요?”
방청의가 발그레한 얼굴로 빙긋 웃다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요즘 ‘옥여진경(玉女眞經)’을 수련하고 있는 거 알잖아요. 수련하다가 정기가 빠져나가면 수련하는 진도가 얼마나 늦어지는지 알아요? 여태 쌓아온 게 다 무너진다고요.”
북명검파는 천하 제일의 무공 비급을 수도 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여인들에게 있어서 옥여진경은 최고 수준의 절대 무공 비급으로, 방청의 같은 신분을 가진 여인들만 이 무공을 수련할 수 있었다. 이젠 고인이 된 최병정도 옥여진경을 수련할 자격은 없었다.
여천천이 왜 옥여진경을 수련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녀의 자격이 안 돼서가 아니라 여천천은 검종(劍宗)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기종(氣宗)인 옥여진경을 수련하지 않은 것이다.
이 무공을 익히게 된다면, 내공 현기 수련을 하게 될 때, 평소보다 절반의 노력으로 같은 수준의 수련 효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옥여진경은 최고 등급의 내공 비급인 셈이었다.
방청의가 올해 열아홉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내력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정확히 그녀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당엄보다는 확실히 강했다.
어쨌든 북명검파는 무도에 있어서 엄당보다 훨씬 더 조예가 깊을 테니까.
천하 무공 비급은 1품에서 9품까지 급이 나뉘는데, 통상적으로는 1품 비급이 최고 등급이지만,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절대 무공 비급은 급으로도 나뉘지 않는다.
옥여진경이 바로 절대 무공 비급 중 하나였다.
영종오 대종사의 ‘정신 각성술’도 당연히 급으로 나눌 수 없다. 이 비급은 무도 비급이라기보다는 이 세계의 무도 과학 이론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는 더할 나위 없이 컸다. 세상에 둘도 없는 비급이니, 이연정이 영종오를 제국의 보물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두염이 짐짓 토라져서는 말했다.
“옥여진경은 내공 비급이라서 평생을 수련해야만 하오. 내가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이오?”
방청의가 그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일단 내가 7급에 도달한 뒤에요. 7급이면 금방이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정말, 당신은 부끄러운 것도 몰라요?”
두염이 그제야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소. 이번엔 진짜요. 또 바꾸기 없소.”
“나를 못 믿는 건 아니죠? 내가 당신을 위해서 경성을 떠나 이 시골까지 따라왔고, 당신이 부임한 뒤에 입지를 제대로 다질 수 있도록 집에서 무려 구백 명을 데려왔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걸 해줬는데, 양심도 없이 나를 안 믿는다고요?”
고귀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애교를 부리자, 두염은 거의 녹아버릴 지경이었다.
두염이 두손 두발 다 들면서 잘못했다고 방청의를 달랜 뒤, 화제를 바꿔서 물었다.
“아 참, 계림을 지날 때 그 고자놈을 한 번 보고 갈 것이오?”
방청의의 말투가 금세 오만해졌다.
“아니요. 그놈이 엄당에서 명성을 조금 얻었나 본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놈을 직접 찾아갈 필요는 없죠. 그놈의 뺨을 때리러 갈 가치도 없어요. 개 한 마리가 눈앞에서 시끄럽게 짖어댄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잡아 죽여야겠지만, 눈앞에 있지도 않은 개를 죽이기 위해서 직접 그 개를 찾아가진 않잖아요.”
“부인 말이 맞소. 부인 말이 맞아.”
두염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씨 장원.
“동창의 시백호 두변, 밖으로 잠시 나오거라.”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두변이 대문으로 향했다.
오씨 장원 대문 밖은 수백 개의 횃불 때문에 대낮처럼 밝았다.
두씨 가문 무사 수십 명, 관졸 수백 명, 오주부 주둔병 수백 명, 오주부 여경사 무사 수백 명까지, 총 천여 명의 사람과 말이 오씨 장원을 물샐 틈 없이 포위했다.
뿐만 아니라 오정도 부자도 묶인 채 바닥에 눌려 있었다. 그들은 절망한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변이 의외였던 건, 앞장선 사람이 포정사 두강이 아니라 오주부 지부와 오주부 참장이라는 점이었다. 이 두 사람은 오주부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문관과 무관이었다. 그들 옆에는 오주부 여경사 천호도 서 있었다.
이번에 이문회가 광서를 피로 씻어낼 때 오주부 지부가 칼날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주부 지부는 여씨 토사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오주부 지부는 방씨 권력 집단 쪽 관리였다.
전 순무 낙문은 여씨와도 협력하고, 방씨와도 협력하는 박쥐 같은 사람이었다. 이문회에게 쫓겨서 더는 갈 곳이 없을 때 양광 총독 고정에게 가서 뒤늦게나마 완전히 방씨 가문에 의지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찌 보면 고정도 낙문에게서 손을 털고 간접적으로나마 이문회에게 낙문을 넘겼다고 볼 수도 있었다.
두변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친 사람은 오주부 지부 이명담으로, 이명담 옆에는 이를 부득 갈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두 사부인 강씨가 서 있었다.
경성과 꽤 먼 곳에 있는 광서에서조차 방씨 가문의 권력이 통하는 걸 보면, 방씨 가문의 권력은 정말로 제국 어디든 안 통하는 곳이 없다 할 만했다.
양광 총독 고정은 방씨 가문이 광주에 심어둔 자였는데, 이제는 광서 포정사 두강까지 합세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지부 세 명, 동지(同知: 지부知府의 보좌역) 몇 명, 현령 십여 명이 다 방계 출신이었다.
광서만 이러는 게 아니라, 양강(兩江: 강소성, 강서성, 안휘성) 지역에 가게 되면 방씨 권력이 온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이번에 이문회가 광서를 피로 씻어내고 여씨 가문의 관리들을 모조리 죽이면서 엄당이 얻은 이익도 컸지만, 어떤 면에서 봤을 땐 방씨 가문이 얻은 이득이 더 컸다.
중요한 고위 문관직이 한꺼번에 십여 개나 비워졌는데, 그 빈자리를 모두 엄당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광서에 있던 방씨 세력과 여씨 토사는 서로의 영역을 범하지 않는 관계였다. 그리고 당시 이문회의 주요 목표는 여씨 가문을 척결하는 것이었으니 일시적으로 방씨와 잠시 손을 잡을 수도 있었다.
엄당이나 방씨 세력이나 누가 먼저 입을 연 건 아니었지만, 총독 고정의 선택을 보면 그 관계가 명료해진다.
고정은 이문회가 총독부를 공격하도록 유인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낙문을 죽이도록 이문회를 몰아세웠다.
당시 몇백 명 동창 무사가 몇천 명 주둔병에게 포위되어 있던 상황인지라, 고정의 명령 한마디면 동창 무사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고정이 당시에 이문회의 발을 묶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이문회가 낙문의 머리를 들고 유유히 총독부를 빠져나가게 하고, 이문회가 계속해서 광서의 여씨 세력을 몰살하게 놔뒀다.
고정의 의도는 분명했다.
엄당의 손을 빌려서 여씨 가문에 매수당한 관리들을 척살하고, 방씨 세력은 어부지리를 얻는 것.
동창의 주인인 이연정도 여씨 토사의 세력을 원천봉쇄하는 게 급선무이니, 엄당이 방씨 세력인 문관 집단과 일시적인 협력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방씨 집단이 대녕 제국에게 더욱 큰 악성 종양이었다. 방씨 세력이 원씨 가문을 수장으로 한 무관 집단과 연합하게 되면서 황권이 급격히 추락했고, 황제를 꼭두각시로 취급했다.
하지만 방씨 가문은 적어도 지금 대녕 제국을 뒤엎을 생각이 없었다.
두변이 두강을 되도록 건드리지 않고 멀리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버르장머리 없는 두우가 두평아를 범하려고 하자, 화를 참지 못했을 뿐이다. 만약 이런 권력 관계가 없었다면, 두변은 벌써 두우를 산 채로 찢어버렸을 것이다.
두변은 이제 광서 동창의 소주인으로서 이래저래 대승적으로 생각할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