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09화 (209/648)

209장. 위장

두변이 물었다.

“육맥신검 제1장이 제국 서남 제일 고수인 계청주의 손에 있다는 거죠?”

- 그렇다.

“그자가 북명검파에서 그 비급을 훔쳐온 겁니까?”

- 훔쳐온 건 아니다. 그의 사부가 어쩌다 ‘육맥신검’ 제1장의 고보(古譜)를 얻게 되었는데, 북명검파가 그를 살해했다. 계청주의 사부가 죽기 전에 그 비급을 계청주에게 넘겨줬고, 계청주는 그 일 때문에 북명검파를 배반하고 나와서 자기의 파벌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계청주가 ‘육맥신검’의 제1장을 가보로 보관하겠군요. 아니, 계청주의 가보를 제가 무슨 수로 빼냅니까?”

두변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 그러니까 네가 계청주의 딸인 계표표를 부인으로 맞이해야 한다. 계청주의 자녀 중에 계표표의 무공 수준이 제일 높아서 언젠가 계청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청룡회주가 될 것이다. 그때 ‘육맥신검’ 제1장이 계표표의 손에 들어간다.

“계표표의 무공 수준이 높다고요?”

- 아주 아주 높지. 거의 1품 고수 수준이다.

두변이 놀라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1품 무도 고수 위로는 종사급밖에 없잖아. 몇 살이길래 벌써 그 정도 수준이 된 거야?

“나이가 몇이길래 벌써 1품 무도 고수가 된 겁니까?”

두변이 물었다.

이문회도 곧 종사급 무공 고수가 될 테지만, 그의 나이는 마흔이 다 되어 갔다.

- 스물아홉이다.

“아, 그런데 아직도 미혼이라고요?”

현대 지구에서 스물아홉 미혼 여성은 흔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나이가 스물아홉인데 혼인하지 않은 여성은 매우 보기 드물다. 스물셋인데 아직 혼인하지 않은 영설 공주도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이고.

- 걱정할 것 없다. 무공 수준이 몹시 높아서 적어도 향후 30년 동안은 청춘 미모를 유지할 것이다. 그 여인은 성숙하고 아름답고, 옥진 군주만큼 팔방미인이다. 지금껏 그녀를 향해 구애한 사내들이 많았지만, 모두 그녀에게 맞아 죽은 터라, 더는 그녀에게 구애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몇 명을 죽였길래 그래?’

“환관 주제에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까? 제가 고자라는 걸 알고 저를 때려죽여서 육전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저는 영설 공주를 정실 부인으로 맞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두변이 연달아 묻자, 기이한 불빛이 대답했다.

- 그래서 네게 또 다른 신분이 필요하다. 지금의 두변은 네가 관리 사회에서 쓰는 신분이고, 다른 신분은 네가 무림에서 쓸 신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분신이라고 해두지. 너는 네 분신 신분으로 계표표와 혼례를 올려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언젠가는 제가 고자라는 걸 알 거 아닙니까. 저 정말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서 묻는 겁니다.”

두변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이한 불빛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 사실, 네가 환관이어서 이 혼례가 가능한 것이다.

“아?”

두변이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으쓱했다.

의미심장한 말인데?

“혹시 계표표가 여인을 좋아합니까?”

두변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결벽증이 심해서 아무도 그녀를 만지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도 미혼인 거고.”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아, 그런 거라면 혼례를 올리지 않는 게 본인 정신건강에 좋긴 하지.

두변이 물었다.

“제 분신의 신분은 뭡니까?”

- 운중사(雲中邪)이다.

“어째 이름만 들었을 땐 나쁜 놈 같습니다.”

- 잘 맞혔다. 운중사는 무림에서 소문난 인간쓰레기다. 온갖 여인을 갖고 놀다가 도망치는 책임감 없는 놈이지. 그를 죽이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근 10년 동안 도망을 다녔는데, 2년 전에 중상을 입고 깊은 산속에서 혼자 숨을 거두었다. 시체가 완전히 부패해서 이 세계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네 분신으로 쓰기 안전하다.

두변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좀 다른 사람을 분신으로 쓰면 안 됩니까?”

- 왜? 현대 지구에서 인간쓰레기로 잘만 살았으면서?

“참나. 그것 때문이 아니라, 계속 추격하는 사람이 있다면서요.”

두변이 능청스럽게 맞받아쳤다.

- 널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운중사 신분으로 위장하라는 건 아니다. 너와 운중사는 키가 똑같고 얼굴형이 비슷하다.

두변은 과거 자신이 진평으로 위장했을 때를 떠올렸다.

영종오 대종사가 만들어 줬던 특수한 가면을 얼굴에 붙일 때도 두변의 얼굴형이 진평과 비슷하기에 가능했다는 게 떠올랐다.

“얼마나 오래 위장해야 합니까?”

- 꽤 오래 해야 한다. 앞으로 무림에서는 쭉 그 신분을 쓸 것이다. 무림과 관리 사회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네가 두변의 신분으로 무림에 들어온다면, 무림인들은 다 너를 멀리할 것이고,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두변은 현대 지구에서 즐겨보던 홍콩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 판에선 매일 밤 12시 전까진 경찰들의 세상이지만, 밤 12시 이후부터는 깡패들의 세상이야!’, 이랬던가.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 이 세계에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싶다면, 조당에서 최정상의 권력을 가져야 하고, 강력한 군대를 가져야 하며, 천하제일 무공을 가져야만 한다. 이 삼박자 중 어느 하나도 놓쳐선 안 돼. 천하제일 무공을 가지고 싶다면, 네가 꼭 무림에 몸을 담가야 한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이한 불빛이 이어서 말했다.

- 꼭 명심해야 한다. 운중사와 두변은 절대로 신분이 겹쳐선 안 되고, 그 누구도 네 정체를 알아채선 안 된다. 운중사로 살 때는 두변의 주변인이 절대로 근처에 나타나선 안 된다. 영종오 한 사람만 네가 운중사로 변장했다는 걸 알 것이고, 네가 운중사일 땐 영종오도 네 곁에 있을 수 없다.

“알겠습니다.”

- 이제 운중사의 외모를 보여주겠다. 그의 모든 특징을 기억하고,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영종오에게 변장을 요청해라.

두변이 알겠다고 대답하자, 그의 뇌리가 밝아지면서 한 사내가 나타났다.

두변은 그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이 운중사라고?’

운중사는 두변이 상상했던 것만큼 세상에 둘도 없는 미남은 아니었지만, 뭔가 특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첫인상은 누가 봐도 나쁜 사람 같았고, 눈빛과 표정에는 타고난 사악함이 가득했다.

따로 화장할 필요도 없이, 대화를 해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딱 봐도 이자가 파렴치한 강간범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운중사의 얼굴에는 사악하지만 매력적인 색기가 흘렀다.

‘이름이 운중학(鶴)도 아니고 운중사인 이유가 있네. 운중사가 본명은 아니었을 테지만, 왜 이런 이름으로 불렸는지 알겠어. 내가 저 꼴로 저잣거리를 걸어 다녔다가는 돌팔매질로 맞아 죽겠는데?’

“운중사라는 신분이 특별한 점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누구의 아들이라던가?”

두변이 물었다.

- 아주 특별하지. 하지만 그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네게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무공 실력은 어떠합니까?”

- 무도 천재인지라, 예전에는 무공이 무척 뛰어났다. 하지만 한 여인의 함정에 빠져서 무공을 빼앗기게 되었고, 지금은 너보다도 못한 실력이 되었다. 그래서 2년 전에 죽은 것이고.

“그 여인이 누굽니까?”

- 예상(霓裳) 선자(仙子)이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데요.”

- 그러니까 조당과 무림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무림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고귀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분명히 못된 년일 겁니다.”

-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여긴 꿈속 세계여서 괜찮지만, 무림에서 그 말을 했다가는 그녀를 선망하는 자들에게 능지처참당할 것이다.

“진짜라니까요. 제 촉은 틀리지 않아요. 딱 들어도 성녀인 척하는 못된 년일 겁니다. 선자는 무슨.”

두변이 눈썹을 으쓱하면서 말했다.

- 아무튼. 때가 되면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싸워야 할 테니까. 졸업시험 임무 때, 네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겪었지만, 너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항시 너를 지키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되는 두 번째 주요 임무부터는 예전처럼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대부분 시간에는 너를 지켜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목숨이 위협받을 때는 네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네게 한 가지알려주자면, 대부분의 숙주가 두 번째 주요 임무 단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임무가 저와 똑같았습니까?”

- 당연히 다르지.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세계와 임무는 게임이 아니다. 지금 이곳은 현실 세계이고, 네가 진행하는 모든 임무 또한 현실 세계의 상황에 맞춰서, 네가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길을 계산해서 부여되는 것이다. 네가 조금이라도 부주의했다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네 목숨과 숙명은 거기서 종료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두변은 기이한 불빛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기이한 불빛이 조금 진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구양진경’ 제1장을 전수해 주겠다. 피치 못할 이유로 나는 네 신체와 근맥을 직접 개입하여 개조할 것이다. 네가 따로 배울 필요 없이 이 무공을 익히게 되는 거지.

“알겠습니다. 이 세계에서 알려지면 안 될 무공이기도 하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 준비해라. 네가 기이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제 시작한다.

기이한 불빛은 두변에게 따로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무공 전수를 시작했다.

일순간 특수하고 신비한 문자가 두변의 뇌리를 가득 채웠고, 그 뒤로 두변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뒷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꿈속 세계임에도 그는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특수하고 신비한 문자가 두변의 뇌를 통해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온몸의 근맥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근맥, 혈도, 단전까지 빠르게 개조가 되었고, 모든 과정이 무공 전수 같다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웠다.

이 세계에서 내공 비급으로 무공을 배울 때, 무공자는 시간과 공을 들여서 조금씩 무공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두변은 ‘구양진경’ 무공을 한 번에 몸에 찍듯이 익히게 되었다.

무협 세계에서 두변 혼자만 판타지물을 찍고 있으니, 이게 바로 초월자의 특권이 아닐까.

두변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그의 단전과 근맥의 모든 개조가 끝난 뒤였다. 그의 단전 안에는 계속해서 회전하는 내력 태양 같은 것이 생겼다.

수없이 많은 내력 현기가 하나로 뭉쳐서, 빛을 내뿜으며 끊임없이 회전했다.

이와 함께 온몸의 모공이 활짝 열렸다.

정신력을 모으자, 갑자기 몇십 미터 이내의 천지 원기, 그러니까 이 지구에 침투한 이계의 에너지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변은 천지 원기를 정신력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두변이 정신력을 방출해서 무수히 많은 별처럼 공중에 떠다니는 천지 원기를 잡았고, 그의 단전 안에 있던 내력 태양이 회전하면서 그 많은 천지 원기를 거침없이 흡입했다.

두변은 완전히 놀라고 말았다.

지금 자신은 천지 원기를 조금씩 흡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자동 양수기처럼 대량으로 흡수하는 수준이었다.

‘구양진경’은 보통 내공 비급보다 열 배는 더 강력한 내공 비급이었으니, 누구든 지금의 두변을 보게 된다면 놀라서 혀를 내두를 것이다.

두변이 쉬지 않고 흡입한 탓에 오가네 장원의 천지 원기가 미친 듯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주위 수십 미터에 퍼져 있던 천지 원기를 죄다 싹쓸이하듯 흡수했다.

천지 원기는 바닷물과 같아서, 한 곳의 원기가 부족하게 되면 사방에서 그 빈 공간을 메꾸려고 더 많은 천지 원기가 몰려든다.

두변은 ‘구양진경’ 공법으로 천지 원기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흡수하고, 또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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