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10화 (210/648)

210장. 나의 동료가 돼라

같은 시각. 방청의는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매가 아찔하게 드러나는 잠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방청의의 피부는 매끈하게 빛이 났고, 몸에서는 꽃보다 향긋한 체향이 났다.

그녀는 막 그림을 다 그린 듯 붓을 내려놓고, 그 그림을 벽에 걸었다.

만약 두변이 화폭에 담긴 사내의 얼굴을 봤다면, 어딘가 눈에 익다고 생각할 것이다.

방청의가 그린 사람은 무림의 인간말종 운중사였다.

“운중사, 네가 마지막까지도 백색부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절대로 죽지 마라. 내가 땅을 파내서라도 너를 찾아내서, 네 뼈를 으스러트리고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방청의가 이를 부득 갈면서 표독하게 말했다.

그녀는 비수를 치켜들고 마구잡이로 그림을 찢었다.

화폭에 담겼던 운중사의 얼굴이 갈기갈기 찢겼다.

방청의는 고귀한 신분을 가진 여인인 데다 무공 실력까지 뛰어난지라, 한 번도 손해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없다.

하지만 2년 전, 그녀는 운중사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좌앙(左昻)이라는 4품 무사가 두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대인을 뵙습니다.”

좌앙은 한때 청룡회의 제자였지만, 지금은 백색부를 떠나 계왕부의 호위가 된 자였다. 계왕은 두변이 걱정되어 청룡회 소속이었던 좌앙을 두변에게 선물한 것이다.

두변이 물었다.

“청룡회를 떠났던 이유가 무엇이지?”

좌앙이 대답했다.

“잘못을 저질러서 쫓겨났습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적을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 사람의 온 가족을 몰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열세 살짜리 소녀를 차마 죽이지 못했는데, 그 일로 채찍 백 대를 맞고 청룡회에서 퇴출당했습니다.”

두변이 미간을 찌푸렸다.

좌앙이 한 일이 잘못이라고 단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린아이 하나 살려둔 것으로 채찍 백 대에 퇴출까지 하는 걸 보면 청룡회가 얼마나 횡포를 부리는 집단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백색부에서 계청주의 지위가 어느 정도냐.”

“제국 서남 무도의 수령이자, 지하 세계의 황제이자, 그곳에선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될 정도입니다. 계청주는 조정을 적대시하고 여씨 토사와는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고 또 물었다.

“백색부가 그렇게 혼란하다고 들었는데.”

좌앙이 대답했다.

“겉으로 보기엔 제국의 다른 지역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회 질서가 잘 잡혀있습니다. 겉으로 보았을 땐 민생이 평화롭고, 상인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곳이지요.

하지만 겉보기에 잠잠한 호수 같은 백색부는 사실 엄청난 지하 세계를 가진 곳입니다. 그곳에선 매일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지부 세 명, 지현 다섯 명이 모두 재임 기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 현직에 남아 있는 관리들은 개보다도 더 말을 잘 듣습니다. 오주부 참장도 이미 여씨 토사의 주구가 된지라, 사실상 그에게 있는 몇천 병마는 여씨 토사의 것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몇천 병마 이외에, 여씨 토사가 백색부에서 또 어떤 세력을 가지고 있느냐.”

좌앙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여씨 토사가 세 조직을 통해서 백색부를 장악하고 있는데, 첫 번째 조직은 제국 서남 지역에서 가장 큰 상회인 홍하회(紅河會)입니다. 매년 홍하회를 통해 거래되는 액수가 몇백만 냥에 이르고, 백색부뿐만이 아니라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거래가 홍하회의 동의하에만 진행됩니다. 서남 토사 전체가 홍하회에 지분이 있고, 홍하회의 최고 권위자는 여여해의 누이인 여여지입니다.

두 번째 집단은 성화교입니다. 서남 토사 연맹 몇백만 인구가 성화교를 신봉하고 있고, 성화교를 믿지 않는다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서남 토사 연맹 전체가 성화교를 믿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세 번째로는 천도회(天道會)입니다. 서남 연맹 최고의 무도 조직이고, 거의 모든 토사 영지에 지부가 있습니다. 천도회의 본부가 바로 백색부에 있고, 본부의 주인은 북명검파 고수 이도전입니다.”

좌앙의 설명을 들은 두변은 생각에 잠겼다.

‘정말 어딜 가나 북명검파가 껴있군. 보아하니 천도회는 여씨 토사와 북명검파의 연맹회라고 봐도 무방하겠군. 북명검파와 여씨 토사의 관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워.’

“이도전이라는 자와 이도진은 무슨 관계이지?”

두변이 물었다.

“쌍둥이 오누이입니다. 이도전은 여여해의 누이이자, 홍하회의 회주인 여여지와 혼례를 올렸습니다.”

두변은 좌앙의 설명 덕에 여씨 토사가 비밀리에 백색부를 장악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는 건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씨 토사는 금전, 무도, 관청, 신권(神權), 병권을 제 다섯 손가락인 것마냥 손아귀에 꽉 쥐고 있었다.

두변은 이문회가 보냈던 천호들이 왜 두 명이나 죽고, 한 명은 부패하게 되었는지 이제야 조금 감이 왔다.

누구든 정상적인 방법으로 백색부에서 살아남기에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기도 힘들었으니, 그곳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두변은 꿈속 세계 덕분에 정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남들에게 절대로 밝히지 못할 부당한 방법을 쓰게 될 것이다.

“일단 알겠다. 잠시 물러나 있거라.”

두변이 말했다.

이어서 두변이 만날 사람은 그가 백색부에 데려갈 다섯 번째 사람, 오주 동창 백호 임계연이었다. 두변이 오주부에 있을 때 만난, 아부 하나로 지구를 평정할 수 있는 바로 사람 말이다.

임계연은 세상 물정에 밝고 눈치가 빠른 자였는데, 의외로 심지가 곧아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연하게 살아남을 자였다.

“임 백호, 나와 함께 가겠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임계연이 곧바로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주인을 뵙습니다.”

두변이 말했다.

“이번에 나를 따라갈 땐, 승진은커녕 오히려 총기 직으로 좌천될 것인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임계연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총기가 대수입니까. 주인을 따라가는 거라면, 졸병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임계연이 괜히 아부 떠느라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줄만 잘 서면 지금 당장의 관직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만 맞게 잘 따른다면, 나중에 분명히 용처럼 하늘을 날게 될 날이 올 테니까.

두변이 말했다.

“내가 갈 곳은 백색부입니다.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당신도 알고 있겠죠. 그래도 나와 함께 가겠습니까?”

임계연의 안색이 그제야 조금 변했다.

그도 동창 사람인지라 백색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고, 이문회가 보냈던 천호 둘이 사인 불명으로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임계연이 결심한 듯 고개를 퍼뜩 들고 말했다.

“자고로 부귀영화는 위험 속에서 얻어내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귀하디귀한 주인께서도 그런 위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는데, 제가 뭐라고 내빼겠습니까. 노비는 얼마든지 주인을 따라 칼산과 불바다를 건너겠습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일원입니다.”

임계연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두변은 두평아와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다.

“오주 지부도 제 코가 석 자인지라 더는 이곳에 찾아오지 못해. 그리고 두우 그 자식도 누이를 괴롭히지 못할 거고. 두강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놈이 다시 누이를 괴롭히러 온다면, 그 누구도 두우를 지키지 못한다는 걸.”

두변이 말했다.

두평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두변을 끌어안고 눈물만 흘렸다.

지금 두평아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그녀는 동생을 너무도 사랑하고 아꼈다. 예전엔 그녀가 두변을 지켜주고 보호했다면, 이젠 두변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두평아는 이 사실이 무척 행복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동생을 보호할 수 있는 행복을 빼앗긴 기분이기도 했다. 두평아는 두변이 이제 다 커서 더는 자신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다 자란 새처럼 점점 더 멀리, 높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누이를 다시 보러 올게.”

두변이 다정하게 말하고는 두평아를 살짝 밀어냈다.

두변이 두평아를 살짝 밀어내자, 두평아는 더욱 서럽다는 듯이 목놓아 울면서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두평아가 한참이 지난 뒤에 겨우 놓아주자, 두변은 그제야 오정도 부부 앞으로 다가가 인사했다.

“계왕부와 오주 동창이 이곳을 보호해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눈물이 그렁그렁한 오 부인의 눈가에 오만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두변은 두우를 대할 때는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자신의 누이와 오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 수천 병마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었다.

오 부인은 두변이 경외스럽기도 한 동시에, 꼭 자기 자식을 보는 듯한 친밀감이 들기도 했다.

“고마워요. 어딜 가든 꼭 몸조심해야 해요.”

오 부인이 두변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정도 부자가 두변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이며 예를 올렸다.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소.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소.”

두변은 자신이 고른 사람들과 함께 오주부를 떠나 계림으로 돌아왔다.

계림에 도착한 두변은 곧장 광서 환관 학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두변이 백색부로 데려갈 여섯 번째 사람이 있었다.

졸업시험이 끝난 뒤, 당엄은 이곳을 떠나 광동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학생들도 대부분 자기가 할 일을 찾게 되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어마사, 광무사, 시박사, 염운사 등에 배치되었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환관 학원에 남아서 잡역 환관이 되었다.

두변의 유일한 친구였던, 어딜 가나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장옥윤은 잡역 환관이 되어 학원에 남아 있었다.

그가 비록 산술 시험에서 성적 75점을 받았지만, 다른 과목 점수가 너무 낮았다. 국학이나 무도, 잡학이나 연단에서 거의 0점에 가까운 성적을 보인 그는 정말 수학만 좋아하는 수학 벌레였다.

최종 성적이 뒤에서 몇십 등인 장옥윤은 환관 학원에서 매일 변소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바닥을 쓸면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어딜 가나 작은 사회가 있듯이 잡역 환관도 급이 나뉜다. 신체가 건장하고 비교적 사나운 사람들은 잡역 환관 중에서도 권력을 부리는 위치가 되어서 매일 놀고먹으면서 일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한 환관들에게 일을 몰아주었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손찌검을 했다.

장옥윤은 당연히 잡역 환관 중에서 가장 괴롭히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며 자랐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겁이 많고 성격이 유약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배척을 당했고, 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그의 부모가 아예 그를 환관 학원에 보내버렸다.

“장옥윤! 얼른 가서 변소를 깨끗하게 청소해. 깨끗하게 못 했다가는 점심밥도 못 먹을 줄 알아.”

체격이 건장한 환관 한 명이 장옥윤의 엉덩이를 발로 차면서 명령했다. 그렇게 장옥윤에게 일을 시킨 그자는 다른 환관들과 나란히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장옥윤은 누가 뭘 시켜도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해냈다.

두변이 다시 학원에 돌아왔을 때, 유례가 없을 정도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거의 모든 학생이 밖으로 뛰쳐나와서 그를 맞이했고, 손이 닳을 정도로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두변은 이미 환관 학원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백색부 동창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 다만 두변이 졸업하자마자 동창의 시백호가 되었고, 조정의 6품 관리가 되었다는 데 감탄했다.

두변은 사람들의 환대를 뒤로한 채,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잡역 환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가롭게 수다나 떨고 앉아 있던 환관들은 두변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여서는,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두변을 향해 달려갔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예를 표했다.

“노비, 두 대인을 뵙습니다.”

“노비, 두 대인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두 대인,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사실 이들 중 절반이 두변의 동창이었다. 그들은 과거에 두변을 괴롭혔지만, 지금은 정말 천상계 신선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를 떠받들었다.

두변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묵묵하게 변소 청소를 하고 있던 장옥윤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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