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18화 (218/648)

218장. 계표표를 구하라

어느 신비로운 동굴 속.

계청주의 딸 계표표는 이곳에서 벌써 몇 개월을 수련하던 중이었다.

대지 균열이 일어났을 때, 이런 형태의 동굴과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동굴 중 이곳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오직 가장 용감하고 강한 무도인만이 이곳에서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개월의 수련을 거친 계표표가 드디어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이제 계표표는 종사급 수준을 돌파하게 된다.

여섯 살부터 무도의 길에 접어든 계표표는 그렇게 쉬지 않고 수련했고, 오늘 드디어 종사급 무도 고수가 될 예정이었다.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장엄하고 위대한 순간이었다.

오늘부터 청룡회에는 계청주와 그의 딸 계표표, 두 명의 종사급 고수가 존재할 것이다. 제국을 통틀어서, 서른 전에 종사급 무도 수준을 돌파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녀의 부친 계청주도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종사급이 되었고, 마흔다섯에 대종사가 되었다.

제국의 모든 여인 중. 천부적인 무도 재능이 계표표를 뛰어넘는 여인 또한 극히 소수였다.

천도맹의 예상 선자가 그중 한 명으로, 그녀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종사급을 돌파했다. 영설 공주도 스물셋의 나이에 1품 고수 수준을 돌파했다.

“아버지, 오늘부터 제가 아버지의 짐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무도 수련에만 매진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청룡회는 제가 맡아드릴게요.”

계표표는 계청주가 자신의 무도 수준을 향상시켜서, 전설의 경지를 돌파한 뒤, 북명검파의 장로와 막나를 죽여서 사부를 위해 복수하는 게 평생의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막강한 파벌에는 최소 1명 이상의 종사급 강자가 파벌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계표표는 올해 스물아홉이 되었지만 아직도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혼기를 걱정했지만, 정작 계표표 본인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떤 여인들은 혈관음처럼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마음이 무척 여린 경우도 있지만, 계표표는 그런 여인들과 달리 겉으로도 강하고, 속내와 심지는 쇠붙이만큼 단단하고 강했다.

계표표는 남녀 간의 사사로운 정을 바라지 않았고 그런 감정을 배척했다. 그런 감정을 가지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계표표를 제국 서남의 4대 미인 중 하나로 꼽았고, 네 명 중 가장 특별한 매력을 지닌 여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계표표는 모든 여인들을 압도할 만큼 폭발적인 몸매를 가졌지만, 자기 스스로를 전혀 여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성별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계표표는 이미 평생 혼례를 올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청룡회를 이끌 후계자에 대해서는 천부적으로 무도 재능이 뛰어난 아이를 양자로 거둬들인 뒤, 친자식처럼 키워서 후계자로 삼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계표표의 단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위대한 그 순간이 곧 찾아온다는 신호였다.

콰광!

마지막 현기가 단전 안으로 스며들자 계표표의 단전이 순식간에 폭발하면서 단전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계표표는 이제 천하 무도의 최고봉인 종사급 강자가 되는 것이다.

이어서 중요한 단계가 바로 단전과 근맥의 재건을 무탈하게 끝내는 것으로, 이 과정은 약 반 시진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는 수련자가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빠져서 근맥에 중상을 입을 수도 있기에 그 어떤 방해도 받아선 안 된다.

보통 4품, 5품 무도인이 승급할 때는 기껏해야 몇 분 정도면 단전 개조가 끝나지만, 계표표는 종사급 무도 수준을 돌파하는 것인지라 반 시진이나 필요했다.

계표표는 이 동굴에 있던 거의 모든 이계 괴물을 죽인 터라, 지금만큼은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계표표가 동굴 깊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단전 재건 과정을 시작했다. 단전 재건 과정이 끝나자 곧바로 근맥 개조 과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계표표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는 제발 발걸음의 주인공이 자기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했다.

지금은 계표표가 제일 중요한 시기인 만큼 제일 약한 때였다. 이 과정을 중단하게 된다면, 이번에 동굴에서 해왔던 모든 수련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늘은 계표표의 편이 아니었다.

몇 사람이 계표표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곧장 걸어왔다.

이곳은 굉장히 어두웠고 일부 광석이 뿜어내는 미세한 빛 외엔 다른 빛이 없는지라, 무엇하나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계표표의 몸매는 너무도 특수해서, 한 번이라도 그녀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몸매를 무조건 기억하고 만다.

그녀의 몸매를 무엇이라 표현할까!

표범? 아니, 티라노사우루스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계표표는 아주아주 아름다운 티라노사우루스이다.

잘록한 허리와 폭발적인 근육이 공존하는 몸매는 일반 여성에게서 무척 보기 드문 체형이라 할 것이다.

거의 1.8미터에 달하는 키 덕분에 그녀는 엄청나게 길고 탄탄한 허벅지와 종아리를 가지고 있었다.

미친 듯이 무도 수련만 해온 그녀는 크진 않아도 탄력이 넘치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아래로 하늘로 솟을 것만 같은 동그란 엉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흡사 모래시계 같은 그녀의 체형은 순간 폭발력을 가진 표범과도 같아서, 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그녀의 몸매를 잊지 못하던 한 사내가 계표표를 한눈에 알아보고 말았다.

“계표표?”

불청객이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사악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계표표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표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내였고, 계표표에게 맞아서 중상을 입은, 그녀에게 원한이 있는 사내였다.

이 사내는 패도회(覇道會) 회주의 아들, 악려(岳勵)!

패도회는 동천(東川) 지역에서 가장 큰 무도 파벌 중 하나이고, 회주 악상(岳殤)은 사천성 무도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제국 서남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도 고수였다.

악상은 일대 효웅이라고 불릴 만한 대장부지만, 악려는 부친의 명성을 철저히 짓밟는 짓만 하고 다니는 악질 망나니였다. 그는 여인들의 정절을 강제로 빼앗는 악취미가 있었고, 연쇄 강간범인 운중사보다 평판이 더 나빴다.

악려는 계표표를 우연히 처음 보고는 그녀의 몸매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그녀에게 미친 듯이 구애했었다.

계표표는 이자를 사람 취급도 하기 싫었지만, 악상과 계청주 사이의 옛정을 봐서 그의 구애를 거절하기만 했을 뿐, 인정사정 봐주지 않을 정도로 그의 체면을 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망나니 자식인 악려는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계표표와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의 차에 최음제를 탄 것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신 계표표가 곧바로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시 악려 나이가 스물여덟, 3품 무도 고수였을 때다. 3품 무도 고수면 꽤 수준 높은 무도자라 하겠으나, 계표표의 상대가 되기엔 너무 약했다.

계표표가 그의 두 다리를 부러뜨려 버렸으나, 목숨을 잃기 직전에 패도회 장로 운철에 의해 구출되었다.

악질 망나니 악려는 그렇게 동천에서 2년 넘게 다친 다리를 치료하면서 지내느라, 덕분에 2년 동안은 그에게 해코지당하는 무고한 여성들이 없었다.

그랬던 악려가 하필 이곳에 지금 나타나니, 계표표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계표표가 그를 만난 건,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 수준이 아니라, 하늘의 재앙급 일이었다.

“하하하! 이게 웬 떡이람! 계표표, 여기서 널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번에 네가 내 사지 근맥을 끊었을 때 다짐했지. 다시 너를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내가 기필코 너를 미친 듯이 탐한 뒤에 죽이고, 죽인 뒤에 또 탐하고, 또 완전히 죽일 거라고 말이다. 하하하!

그런데 그런 꿈같은 일은 꿈에서나 바랐지, 오늘 이렇게 내 눈앞에 네가 나타날 줄은 꿈에서도 몰랐네?”

악려가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짓궂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근데 거기 앉아서 뭐 하는 거지? 설마 지금 무도 경지를 돌파 중이라 멈추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건가?

무도 경지 돌파 과정은 자의로 멈출 수도 없고, 중단돼서도 안 되지. 안 그럼 주화입마 상태에 빠지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러니 지금 그 상태일 땐 누구나 너를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스물아홉에 종사급을 돌파하려고 하다니, 정말 놀라서 땀이 삐질 나네. 여인의 몸을 가졌으면 분수대로 지아비를 모시면서 조신하게 살아야지, 뭐하러 그렇게 강해지려고 안달이 났어!

조신한 현모양처의 삶이 훨씬 행복했을 텐데, 네 욕심 때문에 이렇게 나한테 강간당하고 죽임당할 위험에 처했잖아.”

악려가 낄낄거리면서 입맛을 다셨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 아니냐! 여봐라. 가서 저년의 두 손 근맥을 끊고 두 다리를 벌려서 꽉 잡고 있어라. 얼마나 불쌍하냐. 나이가 스물아홉이나 되었는데 아직 남자 맛도 못 봤다고 하니, 내가 오늘 좀 도와줘야겠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패도회 무사가 계표표를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이 달려들면서 비수를 꺼내 들었지만, 잘린 건 계표표의 근맥이 아니라 그들의 몸통이었다.

계표표가 앉은 자세로 검기를 내뿜은 것이다.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근맥 개조 과정을 멈추고 종사급 무도 돌파 과정을 중단했다.

패도회 회주의 아들 악려는 놀라고 말았다.

계표표는 여전히 앉아있는 자세로, 장검을 한 손으로 집어서 그를 향해 검을 날렸다.

악려가 재빨리 자신을 호위하던 무사 한 명을 자기 앞으로 끌어다 계표표의 검을 막게 했다.

푸슉!

계표표의 장검이 무사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하고 말았다!

악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자칫하면 뒤질 뻔했잖아!

하지만 계표표의 근맥과 오장육부가 체내에서 갈 곳을 잃은 현기를 견디지 못하고 기침을 하면서 왈칵 피를 토해냈다.

“하하하, 주화입마 상태에 빠졌나 보군. 여봐라. 가서 저년의 근맥을 모두 끊어라. 내가 오늘 저년이랑 백 번은 한 뒤에 죽여야겠으니.”

이 세계에는 철저히 나쁜 악인이 몇 없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악려였다.

패도회 무사 네 명이 칼을 뽑아 들고 계표표를 향해 달려갔다.

계표표가 여기서 더 움직였다간 더욱 심각한 주화입마에 빠져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으로 일장(一掌)을 날렸다.

콰광!

폭음과 함께 무사 네 명이 계표표의 내공 강기를 정통으로 맞아서 오장육부가 파열되고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가서 죽었다.

계표표가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그녀는 이제 가만히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악려가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주화입마 상태인데도 몇 품 고수들을 다 죽인다고?’

악려 옆에 서 있던 노인이 예리한 눈초리로 계표표를 살펴본 뒤, 악려에게 말했다.

“소야, 이젠 정말 힘이 없을 것이니, 직접 올라가시면 저 여인을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습니다.”

이 노인이 패도회 장로이자, 1품 무도 고수 운철이었다. 그해 계표표가 악려의 다리를 부러뜨렸을 때도 운철이 나서서 계표표의 공격을 막고 악려를 데리고 도망쳤다.

이번에 이들이 이 깊은 동굴에 온 이유는 악려의 무공을 단련하기 위함으로,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사들과 장로 운철까지 함께 온 것이다.

악려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외쳤다.

“쯧쯧. 이를 어쩌나. 계표표, 이제 네 악몽이 시작되겠구나. 나는 네년이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정도로 괴롭힐 것이다. 하하하.”

악려가 자신의 상의를 벗으면서 계표표를 향해 걸어갔다.

계표표는 종사급으로 승급하는 위대한 순간에 저런 인간말종을 마주친 게 너무도 절망스러웠다.

그녀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지만, 온몸의 맥이 주화입마 때문에 날뛰는 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3품 무도 고수 악려를 상대할 여력도 없었지만, 이대로 눈을 뜬 채 그에게 유린당한 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 죽기보다도 싫었다.

‘절대로 저놈이 내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해. 내 몸이 산산조각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누구도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지 못해. 나조차도 여인이란 걸 잊고 사는데, 저놈이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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