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장. 이제 찢는다?
계표표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비수를 손에 쥐고 자신의 심장을 겨눴다. 단순히 자결하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몸을 두 동강으로 자를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황급히 외쳤다.
“안 돼요! 멈춰요!”
두변이 헉헉대면서 계표표의 앞을 가로막았다.
- 임무 계표표를 구하라 카운트다운 종료!
계표표가 흠칫 놀라서는 본능적으로 동작을 멈췄다.
그녀는 비수를 허공에 든 채 놀란 눈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 이런 곳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변은 거의 죽을힘을 다해 이 미로 같은 곳으로 빠르게 달렸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을 만나 헤엄쳤으며, 아찔한 높이의 절벽을 기어서 올라와서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간신히 이곳에 도착했다.
깊은 동굴에 어떻게 이런 지형이 있을 수 있는지 놀랄 겨를도 없이 그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이제 그는 계표표의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육맥신검 임무, 백색부를 정복하라 임무가 중단되는 걸 막아냈다.
두변은 숨을 고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계표표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건 맞지만, 그녀를 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 건 아니었다.
‘저놈은 왜 옷을 벗으면서 다가오고 있는 거야? 무공이 꽤 되는 것 같은데? 저놈 뒤에 서 있는 저 영감탱이의 무공은 더 뛰어난 것 같고.’
뿐만 아니라 칼을 뽑아 든 무사 열댓 명이 이 사악하게 생긴 남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악려 등도 두변의 등장이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지금 이런 곳에서 영웅 놀이를 하겠다고?’
열댓 명의 패도회 고수들은 1품 무사 한 명, 3품 무사 한 명, 4품 무사 네 명, 그리고 6품 무사 세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의 모든 무사가 두변보다 무공 실력이 강했다. 기본적으로 이런 동굴은 위험천만한 곳인데, 특히나 무도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이곳에 들어올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한 명 정도는 때려눕힌다고 해도, 그럼 나머지는?
특히 저 1품 고수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두변을 찧어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놀란 두변은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꿈속 세계의 안내에 따라서 여기에 제때 도착하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저놈들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말 텐데.’
악려가 두변을 흘겨보더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이런 외딴곳에도 영웅 놀이를 하는 정신 나간 놈이 있다니. 자, 그럼 네놈으로 먼저 몸을 풀어볼까? 네놈을 죽인 뒤에 계표표를 유린해도 늦지 않아.”
말을 끝낸 악려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매서운 눈빛으로 두변을 노려보면서 손에 쥔 칼을 치켜들더니, 맹렬한 기세로 칼을 내리찍었다.
3품 무도 고수인 악려는 6품 무사인 두변을 거의 일격필살이 가능했다.
단혼영 정신 공격!
두변은 재빨리 검을 뽑아 들고, 단전 내 안의 모든 단혼영을 검기에 실려 악려를 향해 쏘아냈다.
두변은 당엄을 상대할 때와 달리, 단전 안에 남아 있던 모든 단혼영 에너지를 내뿜었다. 상대인 악려가 당엄보다 훨씬 강한 적이기 때문이었다.
두변이 막 검기를 쏘아냈을 때, 악려는 콧방귀를 뀌었다. 고작해야 6품 무도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제 칼은 두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로로 두 동강 낼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무서운 기운이 그의 눈알을 통해 뇌 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동굴 속에 울려 퍼졌다.
패도회주의 아들이자, 3품 무도 고수 악려의 머리가 폭탄이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처음엔 눈앞이 새하얘지더니, 나중에는 온통 암흑밖에 없었다.
두변의 검기를 맞은 악려가 그대로 허공으로 튕겨 나가고,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패도회 장로 운철이 허공으로 튕겨 나간 악려를 끌어안아서 착지한 뒤, 손끝으로 그의 태양혈을 누르면서 기운을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패도회 무사 열댓 명이 운철과 악려를 막아서면서 에워쌌다.
두변은 그들을 예의주시하면서 뒤로 살짝 물러난 뒤, 계표표에게 물었다.
“계 소저, 지금 상태는 괜찮아요?”
“주화입마 상태가 되었어요. 당신은 누구예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행인이요.”
“내게 이름을 말해줘요.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청룡회가 당신에게 이 은혜를 꼭 보답할 거예요.”
악려는 확실히 당엄보다 강했다. 그는 운철 장로의 도움을 받고서는 반 각도 안 되어 정신을 차렸다.
그때는 이미 패도회 무사들이 두변과 계표표를 포위했고,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두변을 죽여버릴 기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패도회 소주인 악려가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고, 심지어 어떤 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주인! 저희가 당장 이놈을 천 토막, 만 토막 내겠습니다.”
패도회 무사 우두머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악려가 두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내 뇌를 공격한 건 무엇이냐. 도대체 뭐길래 내가 방어조차 할 수 없었지?”
계표표가 놀라서 몸을 움찔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지금 계표표는 주화입마 때문에 시력이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주위 환경이 밝지 않고 깜깜하다 보니, 두변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계표표는 그저 두변의 냄새와 그의 목소리로 그를 기억해야 했다.
두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신 공격이냐? 설마 정신 공격이냐고!”
악려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두변을 다그쳤다.
옆에 있던 운철 장로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이래 정신 공격을 연마하는 종사급 무도 고수가 그리 많았지만, 전부 다 실패했습니다.”
악려가 말했다.
“하지만 이건 진짜야. 조금 전에 저놈이 쏘아낸 검기는 분명 6품 무사급 수준이었는데, 그 검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끔찍한 기운이 담겨 있었어. 그 기운이 내 눈을 통해 뇌로 들어갔고, 내 정신을 지배해서 방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다음 순간, 운철 장로가 1초 만에 두변 앞에 나타나더니, 서늘한 빛을 내뿜는 검을 들이밀었다.
“네놈이 어떻게 소주인의 정신을 공격한 건지 말해라. 당장 그 신비한 무공 비급을 내놔.”
악려가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두변 앞에 다가왔다.
“네놈이 그 신비한 무공 비급을 내놓으면, 네놈을 살려는 주마. 비급을 내놓지 않는다면 네놈이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스럽게 만들어주겠다.”
“악려, 네놈의 목표는 나다.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마. 네가 원하는 게 무공 비급이라면, 우리 청룡회에서 줄 수 있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절대 외공 비급도 줄 테니 이 사람은 놓아줘.”
계표표가 경고의 눈빛으로 악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어이구 이쁜이,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내가 네년에게 원하는 건 네년의 몸뚱아리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네년을 황홀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내가 정신 공격을 맞긴 했지만, 네년을 유린하고 죽이는 건 문제 없을 테니까 걱정마라.”
악려가 노골적인 눈빛으로 계표표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이내 두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칼을 들어서는 두변의 허벅지 사이를 겨눴다.
“정신 공격 비급을 내게 넘겨.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 뿌리까지 아예 잘라버려서 완전한 고자로 만들어줄 테니까.”
두변이 이미 환관이긴 했지만, 뿌리마저 잘리고 싶진 않았다.
“악려! 저 사람을 그냥 보내줘. 볼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계표표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는 영웅의식이 가득한 사람인지라, 항상 남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 의식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평생 그 일을 악몽처럼 여기고 죄책감에 찌들어 살 것이다.
비록 두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그와의 친밀감이 생긴 상태였다.
목소리와 말투를 들었을 때, 이 사람은 아직 어린 청년이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임에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나선다니, 인간적인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어린 청년이 악려에게 정신 공격을 가할 정도로 천부적인 무도 재능이 뛰어나다면, 더더욱 그가 헛되이 죽지 않길 바랐다.
“악려, 당장 이 사람을 보내줘!”
계표표가 주화입마의 상태임에도 목소리에 힘을 주어 소리쳤다. 정말 검패(劍覇)계청주의 딸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외친 직후에 다시 선혈을 왈칵 쏟아냈다. 뒤이어 또 한 번 더 선혈을 토하더니 주화입마 상태에서 너무 오래 무리를 한 터라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악려가 눈알을 굴리더니, 칼을 거두면서 계표표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품에서 수상한 약병을 꺼내더니, 그 안의 액체를 계표표의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멍청한 놈. 네 목숨까지 내던지면서 계표표를 구하는 걸 보니, 평소에 계표표를 많이 좋아했나 보다? 이렇게 하자. 네가 정신 공격 비급을 내게 주지 않으면, 네 앞에서 계표표를 유린하고 범해주겠다. 어차피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서 반항할 수가 없는데, 아주 극성의 최음제까지 먹였으니까 곧 약효가 돌 거다. 약효가 돌면, 옷깃만 스쳐도 달아오르는 계표표를 볼 수 있을 거고, 내게 반항하긴커녕, 아주 적극적이어서 내 위에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걸? 내가 신세계를 보여줄 테니까 두 눈 잘 뜨고 봐라.”
악려가 옷을 훌렁훌렁 벗더니, 아랫도리 내의만 남겨두고 저질스러운 눈빛으로 계표표를 바라보았다.
“어이, 아직 계표표의 몸매를 제대로 본 적 없지? 사실 나도 제대로 본 적은 없어. 난 지금 저년을 발가벗겨서 모두에게 눈요기하게 해줄 거다. 저년의 몸매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몸매이고 십만 명의 여인 중에서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표범 같은 몸매야. 얼마나 화끈할지 기대되지 않아? 넌 참 복도 많다. 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복이 많은 거겠지.”
악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웃음기를 거두고 계표표의 옷깃을 양손으로 쥐었다.
“정신 공격 비급을 줄 거냐, 말 거냐?”
악려가 금방이라도 계표표의 옷을 다 찢을 기세로 손에 힘을 주고 두변에게 물었다.
동굴 안이 워낙 어두운지라, 패도회 고수 중 한 명이 횃불을 밝혔다. 계표표의 나체를 더 잘 보기 위함이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맛을 다셨다. 나이가 지긋한 운철 장로도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계표표의 몸을 쳐다보았다.
횃불 덕에 계표표의 몸매를 볼 수 있게 된 두변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뱀가죽으로 만든 꽉 조이는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놀라운 곡선은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서남 4대 미인 중 가장 특수한 매력을 지닌 표범 같은 여인이 바로 계표표였다.
“이제 찢는다? 다들 계표표의 매끈한 몸을 볼 준비 됐나? 큭큭큭. 셋, 둘, 하나!”
“잠깐!”
두변이 다급하게 외쳤다.
“말해줄 테니까, 그 손 떼.”
악려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계표표의 옷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면서 두변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야, 정말 눈물 날 지경이네.”
악려는 두변이 주는 비급을 받는 즉시 두변을 죽여버릴 생각이었고, 마음 편히 계표표를 범하고 또 범할 생각이었다.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해도 자신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혹시 종이랑 붓이 필요해? 잘 좀 기억해봐. 하나도 빠짐없이 비급을 써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내가 네 몽중 정인과 몸을 섞고 또 섞는 걸 봐야 할 테니까.”
악려가 악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