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장.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두변이 흠칫 놀랐다.
‘계청주가 이 정도로 천문학적 조예가 깊다고? 이 세계의 무도 종사는 원래 이렇게 다방면으로 학술적인 대사가 되는 건가?’
이 문제는 현대 지구에서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겠지만, 고대 시절에는 거의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정도의 고난이도 문제였다.
현대 지구에서는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이 발견된 뒤에야 밀물 썰물의 원리가 밝혀진다. 그런데 만유인력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 세계에서 계청주가 벌써 밀물 썰물의 원리를 밝혀냈다는 게 몹시 놀라웠다.
“많이 어려운가? 어려운 게 정상이다. 이 세상에는 이 문제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도 몇 없고, 이 문제가 왜 천문학 분야의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대답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만 돌아가라. 나중에 이 문제의 답을 알게 되거든 다시 오고.”
두변의 놀란 표정을 읽고 오사형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바다에서 밀물과 썰물이 발생하는 원인은 바로 달과 태양의 인력(引力) 때문입니다.”
두변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오사형이 깜짝 놀라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고민도 하지 않고 맞힌다고?
이 문제는 사부께서 무려 10여 년을 고민해서 알아낸 건데? 나도 천문학 공부를 꽤 오래 했지만, 아직도 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이 청년이 단번에 정답을 맞히다니. 혹시 천문학 천재인가?
오사형의 눈빛이 흔들렸다.
두변이 당혹한 표정의 오사형에게 물었다.
“오사형, 혹시 제 답이 맞습니까.”
오사형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다.”
오사형이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아주 놀라운 청년이군. 하지만 아직 두 번째 문제가 남았다. 이 문제를 맞혀야만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지금 이 문제는 조금 전의 문제보다 더욱 어렵고, 천고의 수수께끼라고 불리는 정도의 문제지.”
“문제를 내주시지요.”
“윤월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변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이 세계에서는 정말 천고의 수수께끼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윤달이 존재하는 이유는 춘하추동 절기를 맞추기 위함이다.
옛날 사람들은 달이 지구를 도는 주기를 한 달이라고 계산했고, 12달을 1년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계산하고 보니, 춘하추동 절기에 맞는 달의 오차가 점점 더 커졌고, 춘하추동의 절기가 점점 더 뒤로 밀린다는 걸 발견하고 윤달을 끼워 넣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짜와 절기의 오차를 맞추기 위해 4년이 지날 때마다 윤달을 넣었다.
옛날 사람들은 단순히 날짜와 절기를 맞추기 위해서 윤달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 때문에 윤달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고대 사람들은 그 원리를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달을 설명하려면 태양 중심설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두변이 또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세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세계가 움직이는 동안, 태양빛이 바로 내리쪼이는지, 아니면 비스듬히 비치는지에 따라 온도와 기온이 변화하는 것이고, 그래서 1년에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1년이 지나는데, 달의 주기는 우리가 눈으로 달의 모양을 보며 계산할 수 있습니다. 달이 우리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게 한 달이기 때문에 태양과 달의 회전차 때문에 발생한 절기와 날짜의 오차를 없애기 위해 윤달이 존재하는 겁니다.”
오사형은 두변이 줄줄이 읊는 이론을 들으면서 눈을 점점 더 크게 떴다.
“이제 지나가도 괜찮겠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아, 들어가십시오.”
오사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보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두변은 유유히 문을 지나서 두 번째 관문으로 향했다.
오사형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두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두변이 수십 미터 걸어갔을 때, 또 한 명의 사내가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농부 같아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는 손이 몹시 거칠었고, 낫 한 자루를 등에 메고 있었다.
두변이 두 번째 관문에 도착하자, 사내가 놀라서는 두변에게 물었다.
“오사제의 관문을 통과한 것이냐? 참으로 놀라운 청년이구나. 나는 대소저의 사(四)사형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려면 마찬가지로 내가 낸 문제를 맞혀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사형이 말했다.
“사부께선 지리 연구하는 걸 좋아하시는데, 나는 무도 외엔 별다른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사부께서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산과 강의 흐름, 그리고 지리에 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사부께서 내신 문제 하나를 아직도 풀지 못했지. 만약 그 문제를 맞힌다면, 이번 관문을 통과시켜주겠다.”
“문제를 내주십시오.”
“바람이 왜 생기는 것이냐?”
두변이 잠시 당황했다.
이게 지리 문제라고?
아, 고대에서는 이게 지리 문제일 수도 있겠지.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이 동풍을 빌린 걸로 그가 천문 지리에 밝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두변이 대답했다.
“태양이 우리 세계를 비추면서 공기의 온도를 상승시킵니다. 하지만 그런 온도 상승은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공기의 유동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게 바로 바람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물론, 바람이 생기는 이유는 지금 두변이 대답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서는 이 정도로 단순하게 말해도 사람들이 크게 충격을 받으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아니나 다를까, 사사형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고뇌에 빠졌다.
“맞구나. 일리가 있다. 일리가 있어.”
사사형이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희색이 돌아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활짝 웃으면서 옆에 있던 담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쾅!
굉음과 함께 담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두변은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사형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변의 말이 이해되면서, 미지의 영역을 알게 된 기쁨을 참지 못한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의 현답을 얻게 되자, 그는 두변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선생, 고맙소. 안으로 들어가시오.”
그렇게 두변은 두 번째 관문도 무사히 통과했다.
또 수십 미터 앞으로 걸어간 두변은 세 번째 관문에 도착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내는 백의를 입은 서생으로, 그는 무기 대신 손에 책을 한 권 쥐고 있었다.
“대소저께서 사람을 제대로 데리고 오셨나 보오. 사사제, 오사제의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하다니. 나는 대소저의 삼사형이오. 천문 지리는 정통 학문이 아닌 좌도방문이지만, 문학적 재능과 무공만큼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오. 사내대장부가 문학에 일자무식이라면, 속이 텅 빈 썩은 나무와 다를 바 없소. 그런 사내는 대소저의 짝이 될 수 없지. 이번 관문은 통과하기 힘들 것이오. 내 이름은 유문경(劉文京)이고, 이갑 7등 진사 출신이오.”
‘이갑 진사라면 마음 편히 관리 생활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청룡회에 들어와서 제자를 자처한 걸까?’
두변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유문경이 설명했다.
“장양명 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으나, 장 대인께서 좌천되고 나서 나도 사직했소. 일찍이 계 대종사께 무도를 잠시 배운 적이 있기에 벼슬이 순탄치 않게 된 후 다시 돌아왔소.”
‘장양명 대사의 학생이었고 대사의 불의를 보고 사직까지 한 것이라면, 이자는 우리의 맹우가 틀림없어!’
두변은 존경심을 담아 유문경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두변은 유문경이 장양명 대사의 제자이니만큼 문학적 조예가 무척 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관문은 통과하기가 녹록지 않아 보였다.
계표표의 삼사형 유문경이 말했다.
“나는 문제로 팔고문을 내지도 않을 것이고, 과거 시험과 관련된 문제를 내지도 않을 것이오. 어제가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이었으니, 오늘 중양절에 관한 시를 한 수 써 보시오.”
두변은 유문경의 문제에 함정이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듣고 분명히 중양절에 관한 시를 지을 것이다.
하지만 유문경의 문제에는 ‘어제’와 ‘오늘’을 넣어서 이미 지나버린 중양절에 대한 오늘의 감상을 쓰라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단순한 문제였지만, 두변은 유문경의 출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두변은 잠시 고민하더니, 시성(詩聖) 이백의 시를 가져오기로 했다.
“어제 높은 곳에 올라 얼큰하게 연회를 열었는데,
오늘 아침 또다시 술잔을 드네.
국화는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중양절을 두 번이나 만나니.”
(음력 9월 9일 중양절은 국화가 만발할 때라서 국화주와 국화전을 만들어 먹는다. 음력 9월 10일 중양절 다음날인 소중양에는 국화를 감상하는 풍습이 있다.)
유문경이 깜짝 놀랐다.
두변이 얼마 고민하지 않고 이런 걸작을 만들어내니, 유문경은 두변의 시문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매가 정말로 안목이 있군. 그간 계속 사내들을 내친 이유가 있었어. 어디서 이렇게 재능이 출중한 사윗감을 데려왔을까.’
두변이 감격스러워하는 유문경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 사형, 제가 이 관문을 통과한 겁니까?”
“자네의 재능에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는군. 이제 마지막 무도 관문만 남았으니, 몸조심하시오.”
두변은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계청주는 눈앞에 보이는 고탑 위에서 두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변은 마지막 관문만 순조롭게 통과하면, 계청주에게 혼담을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빛이 반짝였다.
무도 관문은 이 네 개의 관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6품 하등 무사일 뿐이다. 아무리 그가 동년배보다 무공 수준이 뛰어나다지만, 이곳은 무도 고수들이 운집해 있는 청룡회다.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계표표의 대사형이나 이사형일 테니, 계표표와 무공 실력이 그리 차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변은 마지막 관문 앞에 멈춰섰다.
마지막 관문 앞에 선 사내는 이문회와 나이가 비슷한 마흔 넘은 중년의 사내였다.
“계 대종사의 두 번째 제자 사무도(謝無刀)라고 한다.”
중년의 사내가 공수의 예를 표했다.
두변이 정중하게 답례했다.
“이사형을 뵙습니다.”
이 사무도라는 자는, 유능하고 용맹한 1품 무도 고수이자 장수였다. 계청주가 최근 무림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직접 나서지 않다 보니, 그의 둘째 제자인 사무도가 매번 전장에 나서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셋째, 넷째, 다섯째 사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하다니, 정말 놀랍군. 하지만 우리 청룡회의 근본은 무도이다. 무공 수준이 높지 않다면, 대소저의 짝이 될 자격이 없다.
내 관문을 통과하는 건 무척 간단하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자네에게 검을 찌를 것이고, 자네가 내 검을 막아내서 다치지 않는 게 이번 관문의 통과 조건이다. 피부가 까지는 정도로만 검을 찌를 것이니, 다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사무도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두변은 속으로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거 참. 엄청 쉬운 것처럼 말하는데. 이번 관문이 저한텐 제일 어렵거든요? 이게 어떻게 쉬워요!
1품 무도 고수의 공격을 6품 무사가 어떻게 막으라고!
막는 건 차치하고 그의 검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사무도가 말했다.
“만약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그만 돌아가도 좋다. 우리 대소저에게 혼담을 넣겠다는 것은 잊고 살아라. 대소저의 짝이 되고자 한다면, 무도 수준이 당연히 높아야 해.”
마지막 관문에 도착한 이상, 두변도 여태 쌓은 공든 탑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두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사형 사무도가 물었다.
“확실한가? 내가 지금 자네를 죽이게 된다면, 어디 가서 억울하다고도 말도 못 할 것이다. 내가 다치지 않을 정도로 찌른다는 것도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지 않나.”
두변이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사무도가 검을 뽑아 들며 물었다.
“준비됐는가.”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슉!
사무도가 검을 찌르는 속도는 두변의 속도보다 몇 배는 빨랐다.
두변은 사무도가 검을 찌르는 그 순간에 맞춰서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면서 검을 내질렀다.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공격이다!
동시에 두변은 사무도를 지나쳐서 그의 뒤에 있는 문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