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28화 (228/648)

228. 죽여라

두변이 물었다.

“그럼 그 몇백 개나 되는 성창륭 점포의 주인장은 누구냐?”

좌앙이 대답했다.

“천도회 회주 이도전과 홍하회 회주 여여지의 딸, 이능어입니다.”

이때, 문 앞에 있던 늙은 거지 도 백호가 쯧쯧,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두변 백호, 그냥 패배를 인정하게. 자넨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어. 그러니까 건량이 떨어지는 대로 우리와 함께 구걸이나 하자고.”

임계연 등이 일제히 두변을 바라보았다.

진평이 모두를 위해 곡식을 사겠다고 은자를 들고 나갔는데, 곡식을 못 사왔을 뿐만 아니라 두 다리를 잃었다. 두변은 일개 곡식 점포 주제에 동창을 이렇게 괴롭힌다는 것에 몹시 분노했다.

두변이 진평을 위해 복수하지 못한다면, 그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고, 자기만 믿고 백색부로 따라온 사람들의 마음도 완전히 흩어질 것이다.

두변은 잠시 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지금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직 청룡회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막씨 토사로부터도 아무것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지금 그의 곁에 서 있는 몇 사람이 전부인데, 이대로 정면충돌을 해야 하는 걸까. 정말로 혈로를 뚫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정면 결투는 파멸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싸우지 않는다면 인심은 흩어지고 존엄도 바닥을 치게 된다.

그러니 싸워야만 했다. 오직 전투만이 살길이었다. 죽을 때까지는 싸워야 진정한 살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결사의 각오로 임하면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법.

잠시 후, 두변이 눈을 뜨고 말했다.

“우리에겐 몇 사람이 전부이고, 곧 식량도 바닥날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백색부에는 우리 편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우리가 한 번도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낸 적이 없으니까. 우리가 우리의 실력과 의지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에 방관자들조차도 우리를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두변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을 이었다.

“식량을 살 수 없다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뺏으면 되니까.

성창륭 점포 그 비열한 새끼들이 감히 우리 동창 사람의 다리를 부러트렸다. 만약 이 일에 보복하지 않는다면, 우린 나중에 척추까지 끊길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난 그 잘난 성창륭의 점포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그 점포를 털고, 그곳의 점원을 모조리 잡아들일 것이다. 체포에 응하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려라!”

이삼, 이사, 이위 등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기합을 외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백색부에 온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어깨를 펴고 다니지 못했다. 정말 울적하고 억울했었다.

그런데 두변이 드디어 그 울분을 터트릴 곳을 찾아준 것이다.

비록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두변과 함께 정면으로 맞서 싸우길 바랐다.

두변이 문 앞으로 가서 도 백호와 거지가 된 다른 동창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들 동창 사람인데,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문 앞에 있던 거지 둘이 마음이 동했는지 움찔했지만, 도 백호가 냉랭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죽고 싶은 거면 혼자 가서 죽으시오. 괜히 우리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두변이 별말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 이위 등에게 말했다.

“모두 동창 무사복으로 환복해라. 성창륭 점포를 털고, 악랄한 상인들을 체포한다.”

“알겠습니다!”

두변은 심복들, 혈관음, 계표표와 함께 동창 무사복으로 갈아입고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성창륭 점포를 향해 갔다.

그들이 거리에 나서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변 등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천호소에서 진평의 다리를 부러트린 점포까지 3리 정도 떨어져 있어서 두변 등은 불과 일각 만에 점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포는 과연 아주 큰 양곡점으로, 무려 3층 높이에 점원이 수십 명이고, 열댓 명의 건장한 호위가 있었다.

중요한 건 점포의 규모가 아니었다. 점포 밖에는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수백 명 천도회 무사들을 데리고 서 있었다.

두변이 예상했던 대로 이들은 두변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두변의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바로 성창륭 연쇄 점포의 주인, 천도회주 이도전과 홍하회주 여여지의 딸, 이능어일 것이다.

이상한 건, 이능어는 무사 수백 명과 함께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뿐, 두변 등을 저지하지 않고 냉랭한 눈길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두변이 그대로 성창륭 점포 안으로 들어가서 큰소리로 외쳤다.

“성창륭 점포 점원이 동창 사람을 때리고, 곡식이 있는데도 팔지 않았다. 난 대녕 제국의 율법에 따라 이 점포를 철저히 조사할 것이고, 동창 사람을 공격한 가해자를 모두 체포하겠다.”

두변이 매서운 눈초리로 점원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누가 감히 나의 막료의 다리를 부러트렸는가.”

이때, 중년의 뚱뚱한 사내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이 양곡점의 주인장이었다.

주인장이 같잖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

“내가 때리라고 명령했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동참했지.”

주인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서 누가 엄당 주구 진평의 바지를 벗겼지?”

그러자, 점포 안에 있던 수십 명 점원과 열댓 명 호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벗겼죠! 그 환관 놈의 아랫도리가 참 귀엽더라고요.”

“아, 엉덩이도 새하얀 것이 어찌나 탐스럽던지. 그놈이 혀 깨물고 죽을 기세가 아니었으면, 제가 벌써 그놈의 맛을 봤을 텐데. 쩝.”

“하하하, 엉덩이가 뽀얗긴 했지. 아, 설마 그 진평이란 놈이 저 환관놈 두변의 남총인가?”

“에이, 그럴 리 없지. 두변은 고자라서 그게 안 돼.”

점원들이 낄낄대면서 한마디씩 얹었다.

점포 주인장이 말했다.

“여기 점포의 편액 못 봤나? 엄당의 주구 놈들은 여길 못 들어 와. 썩 꺼지지 못해? 먼지 나도록 맞고 싶어서 여길 찾아온 거지? 진평이 아니라, 우리가 두변 네놈의 다리를 부러트린다고 해도 어디 가서 네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을 거다. 여긴 백색부지 계림부가 아냐. 엄당은 이곳에서 개만도 못한 존재니까.”

청룡회주의 딸 이능어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냉소가 걸려 있었다.

“여봐라. 저 냄새 나는 개새끼들을 당장 점포에서 내쫓아라. 뭘 가지고 때려도 좋고, 손발을 다 분질러도 상관없다.”

주인장이 소리쳤다.

점포 안에 있던 수십 명의 점원과 호위가 두변 등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두변이 칼을 뽑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칼을 뽑아라.”

두변의 뒤에 서 있던 이위 등과 혈관음, 그리고 계표표까지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앞으로 한 발만 더 왔다가는 가차 없이 죽여버릴 것이다.”

두변이 경고했다.

점포 주인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곳은 백색부라니까. 개만도 못한 놈이 말도 할 줄 아네. 당장 저놈들을 내쫓아라.”

밖에 서 있던 이능어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입을 열었다.

“두변. 정말로 싸우려고? 이 점포의 배후에는 천도회, 홍하회, 백색부 지부, 참장, 그리고 너희 동창의 천호까지 있다. 여기서 싸움을 벌였다간, 동창이 백색부의 모든 세력과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고, 자살을 자처하는 것이다.”

점포 주인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저놈은 지금 큰소리를 치고 있는 거다.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약한 놈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처치해라. 이곳 백색부에는 엄당 놈들이 설 곳이 없고, 개새끼가 될 게 아니라면 썩 꺼져야 한다는 걸 똑똑히 알려줘라. 하하하!”

점포의 점원과 호위들이 몽둥이를 들고 두변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라.”

두변이 명령했다.

서걱, 서걱, 서걱.

두변 등이 점원들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순간 머리통 하나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개, 또 한 개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한 명, 또 한 명의 몸이 세로로 두 동강 났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점원들을 죽였다.

죽이고, 죽이고, 죽여라!

고작 몇 명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두변의 지휘하에 백색부 여씨 세력과의 정면 전투를 시작했다.

천도회주의 딸 이능어가 깜짝 놀랐다.

두변이 정말로 대살육을 펼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그녀는 두변이 기껏해야 진평의 다리를 부러트린 몇 사람만 죽인 뒤, 그걸 빌미로 점포 주인장을 협박해서 식량을 뜯어가겠거니 했다.

그런데 두변은 아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작정으로 보였다.

이능어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홍하회와 천도회를 향한 선전포고다!

미친 건가? 저 정도 인원으로 우리와 싸워보겠다고 이런 짓을 벌여?

점포에 있던 점원과 호위는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무공 수준이 높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이제 막 무도에 입문한 사람이 몇 명이 전부였다.

그 덕에 두변 등은 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명의 사람을 죄다 죽였다.

“이 점포 전체를 폐쇄하라.”

두변은 문밖에 있는 이능어와 수백 명 무사를 무시하고 명령했다.

이삼, 이사 등이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밟고 지나가면서 점포의 곳곳에 봉인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 듯이 일인당 곡식 두 포대와 고기, 채소, 계란 등을 잔뜩 챙겨서 점포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식량 외에 촛불 같은 생필품도 잊지 않고 챙겼다. 동창 천호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

짝, 짝, 짝, 짝.

이능어가 밖에서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정말 멋지네. 아주 멍청한 대살육이었어.”

두변이 죽인 수십 명의 사람은 이능어의 사람이었고, 그가 압류한 점포도 그녀의 것이었지만, 이능어에겐 티끌만큼의 일인지라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두변, 여기가 아직도 계림으로 느껴지는 거냐? 아직도 이문회를 뒷배로 믿고 이렇게 설치는 거야? 이문회는 이미 관직에서 파면됐고, 안남 왕국으로 갔다. 백색부에 있는 몇 마리 햇병아리들 데리고 뭘 해보겠다고 이러는 것 같은데, 넌 죽어도 여기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해. 믿는 구석 하나 없으면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을 저지르다니. 네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두변이 차가운 표정으로 이능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댁은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본관은 백색부 동창 시백호이다. 지금 본관이 공무를 집행하는 걸 방해하겠다는 건가?”

이능어가 말했다.

“백색부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던데. 우리가 네놈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개새끼 주제에 사람 성가시게 손이 좀 가네 싶었는데, 이렇게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서 죽일 빌미까지 주다니 말이야. 정말 너무 멍청해서 귀여울 지경이네.”

두변이 한쪽 눈썹을 으쓱했다.

“음? 지금 본관을 공격하겠단 말인가? 동창 백호를 공격하겠다고?”

이능어가 냉소를 지었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백색부에서 동창 천호 두 명이 죽었고, 지부도 두 명, 지현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죽었다. 너 같은 깨알만 한 동창 백호 하나 죽인다고 해서 우리가 눈 하나 깜빡일 것 같아?”

이능어의 말이 맞았다.

백색부에서 죽은 대녕 제국의 관리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지금 백색부에 있는 관리들은 모두 여씨 토사의 주구가 되었다.

하지만 백색부에서 죽은 관리들은 다른 이의 칼을 빌려 살해됐거나 혹은 원인불명의 이유로 죽었다. 여씨 토사는 대놓고 대녕 제국의 관리를 죽일 리가 없으니, 다른 사람의 손에 피를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대녕 제국을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괜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지?”

두변이 대꾸했다.

이삼, 이사 등이 포대를 들춰 멘 채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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