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두변의 군대
임횡이 미간을 찌푸린 채 호통쳤다.
“네놈은 죽을 때가 됐는데도 입만 살았구나. 네놈이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동창 천호소의 밀정을 죽인 탓에 장 천호께서 크게 노하셨다. 장 천호의 명령을 따라 네놈을 체포하러 온 것이니, 순순히 명령에 따르거라.”
두변의 예상대로 동창 배신자 장소는 두변이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동창의 율법을 어겼다는 정당한 빌미로 두변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이어서 동창 변절자 임횡이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장 천호의 명령에 따라 두변을 체포한다. 체포에 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봐라. 두변을 잡아라!”
임횡은 명령을 내리자마자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십여 명의 무사가 칼을 뽑아 들고 두변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 죽여라.”
두변이 짧게 말했다.
이삼, 이사, 이위가 십여 명의 무사를 눈 깜빡할 사이에 다 죽였다.
임횡이 화들짝 놀라면서 줄행랑을 치자 두변이 크게 외쳤다.
“어이, 임 백호! 어딜 그리 바삐 가나?”
이삼이 번개처럼 빠르게 임횡을 따라잡은 뒤,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임횡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두변.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거냐. 나를 건드렸다간 네놈의 사지가 찢길 것이고, 계림에 있는 네 가족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두변이 가엾다는 눈빛으로 임횡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멍청하긴. 죽을 때까지도 저렇게 멍청해서야 원. 장소가 네놈을 희생양으로 썼다는 걸 아직도 모르냐? 죽여라.”
이삼은 두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횡의 머리를 베었다.
두변은 조금 전에 일부러 죽이지 않은 임횡의 무사 한 명에게 임횡의 머리통을 던졌다.
“가서 이걸 장소에게 전해라. 괜히 번거롭게 말도 안 되는 빌미 찾지 말고, 나를 죽이고 싶거든 그냥 와서 죽여. 바지 벗고 방귀 뀌는 놈처럼 굴지 말고, 목이나 제대로 닦아 놓으라고 전해. 내가 곧 그 목을 베어줄 테니까.”
겁에 질린 무사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임횡의 머리통을 집어 들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같은 시각. 8리 밖에 있는 신(新) 백색부 동창 천호소.
변절 천호 장소가 말에 올라타 있었고, 그의 뒤로 기마병 백여 명과 무사 사백여 명이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동창 무사의 가면을 쓴 여씨 무사들이었다.
잠시 뒤, 한 무사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달려와 장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호 대인! 두변 그 자식이 임 백호와 십여 명의 무사를 전부 죽였습니다. 임횡의 머리를 천호 대인께 가져다드리라면서 이 말을 전하라 했습니다. ‘괜히 번거롭게 말도 안 되는 빌미 찾지 말고, 나를 죽이고 싶거든 그냥 와서 죽여. 바지 벗고 방귀 뀌는 놈처럼 굴지 말고, 목이나 제대로 닦아 놓으라고 전해. 내가 곧 그 목을 베어줄 테니까.’라고요.”
장소가 격노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이구나. 이문회가 정말 눈뜬장님이 맞았네. 그렇게 멍청한 놈을 의자로 삼다니.
구 동창 천호소를 평지로 만들어주마. 두변과 그의 일행을 흔적도 없이 죽여버려라. 출발!”
장소가 명령하자, 변절 동창 무사 오백여 명이 위풍당당하게 구 천호소를 향해 갔다.
어지러운 말굽 소리가 조용하던 백색부의 밤하늘을 찢었다.
한 시간 뒤.
장소가 이끈 동창 무사 오백 여 명이 구 동창 천호소를 포위했다.
이때, 천호소의 대청 안에서는 촛불이 대청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일고여덟 명의 사람이 얼큰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맛있게 고기를 뜯고 있었다.
장소 등이 천호소에 도착하자, 엄청난 기운이 천호소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영종오 대종사의 기운이었다.
“대종사 한 명으로 목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본데. 웃기지도 않는군.”
장소가 냉소했다.
장소와 오백 명 무사들 뒤에서 또 다른 엄청난 기운이 천호소를 덮쳤다.
천도회 회주 이도전의 기운이었다.
영종오 대종사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다 보니, 그는 내력의 절반만 쓸 수 있는 상태였다.
이도전은 거의 막상막하의 수준으로 영종오의 기운을 위협했고, 두변의 예상대로 영종오가 두변 일행을 구하지 못하도록 그를 꽉 잡고 있었다.
변절자 장소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두변 그놈을 토막 내서 없애버려라.”
변절 무사 오백 명이 천호소 안으로 홍수처럼 밀려 들어갔다.
변절자 장소와 그의 오백 명 무사가 구 동창 천호소 안으로 들이닥쳤다. 수십 명 고수는 층계를 오르지도 않고 곧바로 창문을 깨고 실내로 들어갔다.
방 안은 코를 찌르는 술 냄새로 가득한데, 두변과 그의 일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기를 뜯으며 술잔을 비운 사람들은 두변 등이 아니라 거리의 비렁뱅이들이었고, 인사불성으로 취한 그들은 장소 등을 바라보면서 흐릿한 눈동자로 물었다.
“어이구? 댁들은 누구슈? 같이 한잔하려는 거요?”
부아가 치밀어 오른 장소가 칼을 뽑아 들고 자리에 있던 비렁뱅이들을 단칼에 죽여버렸다.
“으아악!”
“아악.”
장소는 피가 뚝뚝 흐르는 칼을 쥐고 무사들과 함께 천호소를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그와 그의 무사들이 아무리 뒤져봐도 두변 등을 찾을 수 없었다.
“백색성 전체를 봉쇄하고 땅을 파서라도 두변 그놈을 찾아내라!”
“온갖 곳을 다 뒤져서라도 그놈을 데려와야 한다.”
“지명 수배를 내리고, 그놈의 초상화를 성 곳곳에 붙여라.”
화가 나서 시뻘겋게 눈이 충혈된 장소가 연이어 명령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백호가 장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인, 이곳에서 철수하시는 겁니까?”
철수? 아니. 절대로 철수할 수 없어!
장소가 소리쳤다.
“아니. 이대로 이곳을 점령한다. 이곳은 두변의 유일한 둥지인데, 이곳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그놈이 무슨 낯짝으로 진무사 이옥당을 만나러 가겠느냐.”
그렇게 장소와 무사 오백 명은 두변의 둥지인 구 동창 천호소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백색성의 지하 밀실 안.
누가 봐도 평범해 보이는 한 사내가 두변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인의 별명은 흑운(黑雲)입니다. 소주인을 뵙습니다.”
이문회가 몇 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백색부를 뚫어내지 못했지만, 그가 성공적으로 잠입시킨 수하가 몇 명 있었다. 흑운이라는 자가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작전은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이다. 신 천호소가 천도회 부근에 있으니,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그곳을 공격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장소를 호랑이굴 밖으로 유인했고, 나를 자극하기 위해서 그는 구 천호소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두변의 말이 맞았다. 장소의 눈에는 구 동창 천호소가 조정을 대표하는 백색부에 있는 유일한 동창의 근거지였다. 두변이 자기 둥지를 잃어버리는 건, 장군이 자신의 영지를 잃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두변은 장소와 생각이 달랐다. 두변은 자기가 백색부에 있는 한, 자신이 가는 곳이 곧 백색부 동창 천호소였다.
“우리가 백색부에서 치를 첫 전투가 바로 동창의 변절자 천호 장소를 죽이는 전투이다. 여기 진무사부에서 받아온, 변절자를 척결하라는 명령이다.”
두변이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서 펼쳤다.
그 위에는 진무사 인장도 있었고, 경성 동창의 인장도 찍혀 있었다.
“장소와 그의 무사들이 앞으로 며칠 동안 구 천호소에 머무르겠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의 환경이 열악하기도 하고, 장소도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자신이 습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천도회 근처로 돌아갈 것이야. 하지만 장소는 이능어의 명령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며칠 내로 변절자 천호 장소, 그리고 그의 수하 오백 명 무사를 죽여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에겐 군대가 필요하다. 몇천 명까진 아니어도 몇백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군대를 꼭 백색부 안에 있는 사람으로만 구성해야 하고, 외부에서 데려올 순 없다.”
만약 백색부 밖에서 대녕 제국 사람을 데려온다면, 여씨 토사는 백색부에 주둔병을 늘릴 빌미가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녕 제국과 여씨 토사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서 여씨의 반란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었다.
진남공 송결이 안남 왕국에서 결전을 치르고 있으니, 절대로 지금 당장 여씨 토사를 자극할 수 없었다.
여씨 토사가 지금 서남 토사 연맹을 통합하는 데 온 신경이 쏠려있긴 해도, 절대로 방심할 수 없었다.
“흑운, 비밀리에 이삼을 백색부 밖으로 보낼 방법을 생각해봐라. 이삼은 안륭 토사부로 가서 저홍엽 장군께 삼천 낭군을 이끌고 남하해서 백색부 가까이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려라. 이건 나의 의부 이문회 대인과 의조부 이연정 어르신의 친필 서신이다. 이걸 보여드리면 우리를 도와주실 테니, 잘 챙겨가거라.”
두변이 흑운과 이삼에게 명령했다.
두변이 영종오 대종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종사,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여씨 토사 영지에 한 번 갔다 와 주셔야겠습니다.”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뭘 하면 되느냐?”
“지금 여씨 토사는 서남 토사 연맹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토사가 여씨를 따르기로 했고요. 그들은 미래 성화 제국이 건국될 때, 왕후에 봉해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토사가 다 여씨에게 굴복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뇌명(雷鳴) 토사가 그중 하나지요. 대종사께서는 뇌명 토사를 암살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서남 토사 연맹에 큰 파장이 일 것이고, 자신들이 토사구팽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겠죠. 여씨 토사는 서남 토사 연맹의 통일을 위해서 그들을 열심히 위로할 것이고, 여여해와 여완완은 백색부에 눈 돌릴 틈이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 저홍엽 장군께서 무사하실 수 있습니다.”
“알겠다. 내 지금 당장 가마.”
두변이 영종오 대종사에게 깊이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제국의 국보인 영종오 대종사를 자객으로 쓰게 된 게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두변이 이위와 계표표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딱 하나입니다. 어떻게 백색부에서 우리만의 군대를 만들 것인지. 이위, 표표 누이는 저, 그리고 이사와 함께 움직일 겁니다. 오늘 밤에 우리만의 군대를 찾아내야 합니다.”
몇 사람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야간 통행 금지령이 떨어졌지만, 이위, 계표표, 이사와 두변은 무공 고수이기에 순찰하는 병사들의 눈을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
새벽 1시가 될 무렵, 두변 등은 한 주루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멸혼루라고? 막영 토사께서 말씀하신 멸혼루?
두변은 막씨 가문의 주군 영계를 받기 위해 멸혼루에 도착했다.
몇백 년 전, 막씨 가문은 안남 왕국의 왕족이었기에 그들 가문의 영계는 곧 국왕 영계나 마찬가지였다.
이 영계, 즉 반지 안에는 막씨 보물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만큼 막씨 가문이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막영 토사가 죽기 전에 이 비밀을 두변에게 말해주면서 막씨 가문의 마지막 희망을 두변에게 맡겼다. 이는 막씨 가문의 마지막 힘을 두변에게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막씨 가문의 마지막 힘이 바로 잔혈방이었다.
백색부에 분포된 세력의 비율은 여씨 가문 6할, 계청주의 청룡회가 3할, 그리고 막씨 가문의 잔혈방이 1할 수준이었다.
동창 밀정의 정보에 따르면, 잔혈방은 대부분 백색부의 아래 구역에서 활동했고, 총 4천여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잔혈방 무사는 대략 몇백 수준인데, 보통 지하에서 활동하면서 이미 몇 차례 여씨 토사를 급습했었다.
대녕 제국과 여씨 토사를 나란히 두고 보자면, 잔혈방은 여씨 토사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싫어했다. 당시 여씨 토사가 등에 칼을 꽂지만 않았다면, 막씨 토사부가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남진 않았을 것 아닌가!
잔혈방 최대의 적이 여씨이다 보니, 그들은 대낮에는 움직이지 않았고, 밤에만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여씨 토사는 그들의 비밀 근거지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두변이 막영에게 처음 멸혼루라는 말을 들었을 땐,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건물일 줄 알았는데, 멸혼루는 겉보기엔 굉장히 평범한 주루였다.
두변 등은 문을 두드리지 않고, 창문을 넘어서 멸혼루 안으로 들어갔다.
슉, 슉, 슉!
어둠 속에서 두변 등을 향해 무기가 날아왔다.
네 사람은 어둠 속에서 소리에 의존해 재빨리 무기를 피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새까만 그림자가 서늘한 검광을 내뿜으며 두변을 향해 다가왔다.
계표표와 이사가 동시에 상대의 검을 쳐냈지만, 계표표의 몸이 살짝 휘청였다.
계표표가 주화입마 상태인지라 종사급 무공 실력을 발휘할 순 없었지만, 이사의 힘까지 더해졌는데도 그녀가 휘청이는 걸 보면 검을 찌른 사람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검을 쳐내자, 검은 그림자는 순간적으로 자세를 틀어서 두변을 향해 검을 찔렀다.
누가 봐도 그의 검술은 1품 무사의 검술이었다.
두변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야를 찾아왔습니다!”
두변의 말을 듣는 순간, 검은 그림자의 검이 일순간 허공에 멈췄다.
아야는 검을 쥔 사내의 별명이었고, 그의 의모(義母) 외에는 아무도 그의 별명을 알지 못했다.
사내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검을 거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의모께서 당신들을 보낸 것이오?”
이어서 그는 재빨리 창문을 걸어 잠그고, 두꺼운 휘장으로 창문을 단단히 막은 뒤에 촛불을 켰다.
두변은 그제야 사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야는 평범한 모습의 중년 사내로, 백색부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을 무척 흔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