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장. 굶주린 늑대 같은 여인
흑애 감옥은 성 밖의 산속에 있는데, 천연 동굴을 개조한 모양새였다.
막야는 두변 등을 데리고 비밀 통로를 통해 백색부를 출발해서 백 리를 달려 이 무시무시한 흑애 감옥 앞에 도착했다.
절벽으로 이뤄진 큰 산의 한가운데에 좁은 균열이 있는데, 이 균열이 바로 흑애 감옥의 입구였다.
밖에서 봤을 땐 그저 그런 절벽산이었지만, 이 안에 끔찍한 마교 광신도들이 몇백 명이나 있다는 걸 누가 알까.
“흑애 감옥은 막씨 가문이 건설한 겁니다. 우리는 밀도를 만들어서 제일 밑층의 감옥을 통해 모든 수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막야가 말하다가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가실 겁니까? 그들은 사람 목숨을 잡초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짐승들입니다. 소주인께서 정말로 위험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두변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겐 정말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마교 군단은 애초부터 나를 위해 존재한 걸지도 모르죠.”
막야는 의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두변의 말을 따라 그를 비밀 통로로 안내했다.
막야가 한 연못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흑애 감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바로 이 연못 아래 있습니다.”
“다들 밖에서 날 기다려라.”
두변의 말에 이위, 이사, 계표표 등이 깜짝 놀랐다.
두변이 혼자서 광신도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두변이 명령한 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곧바로 비밀 통로를 찾아내서 흑애 감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금색 불빛이 말했다.
‘봐봐. 숙주가 자기 살길을 하나 만들어내고 있잖아. 물론 미치지 않고서야 해내기 힘든 선택이지만, 이 길은 우리가 계획했던 길이 아니야.’
푸른 불빛이 말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해. 무슨 결과가 있을 줄 알고 이 방법을 택해! 우린 이렇게 위험천만한 방법을 배제하잖아.’
금색 불빛이 말했다.
‘하지만 숙주가 성공한다면, 백색부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얻게 되는 건 맞아. 만약 이대로 숙주가 성공하게 된다면, 우리는 숙주에게 진 꼴이 되는 건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붉은 불빛이 말했다.
‘숙주가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 마교 광신도를 군대로 삼겠다는 건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짓이야.’
금색 불빛이 말했다.
‘그럼 숙주가 성공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촤르륵, 촤르륵.
비밀 통로는 지하 수로였는데, 두변은 수로를 타고 끊임없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철푸덕.
순간, 두변은 흑애 감옥의 최하층에 도착했다.
이와 동시에, 수십, 수백 쌍의 반짝이는 초록색 눈이 두변을 쳐다보았다.
두변은 사람의 눈동자가 초록색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족히 몇백 쌍은 돼 보이는 초록색 눈동자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두변은 어둠 속에서 뻗어나온 몇 쌍의 손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옷이 벗겨지고 말았다. 살면서 누군가한테 이렇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벗겨진 적이 있던가.
저 초록 눈의 광신도들에 비하면, 미국 드라마에서 봤던 흉악범들이 한없이 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두변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희미한 불빛으로 보았을 때, 그의 옷을 발가벗긴 건 모두 여인들이었다.
‘여인이 열댓 명은 돼 보이는데, 내가 저 굶주린 늑대 같은 여인들을 다 어떻게 상대하지?’
이것 또한 두변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여인들은 그를 거침없이 물속으로 집어넣은 다음, 솔과 수건으로 그의 온몸을 박박 문질러서 깨끗하게 씻겼고, 그후에는 벌거벗긴 채로 석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석판째 들어올려서는 흑애 감옥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두변으로서는 사실 지금 정신 공격을 쓸 수 있었지만, 일단 이들이 뭘 할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두변은 꼭 진상품인 것마냥 한 감방 안으로 들려서 들어갔다.
흑애 감옥은 천연 동굴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지라, 대부분의 감방이 동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은 감방은 보기 드물게 금빛 찬란했고, 곳곳에 다양한 서적과 화려한 복식, 그리고 정갈하게 만들어진 간식이 놓여 있었다.
가구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탁자 위에 놓인 잔들도 모두 금과 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감방에는 커다랗고 푹신해 보이는 침상도 하나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치수부터 큰 치수까지 다양한 치마와 상의, 그리고 여인들이 입는 배두렁이와 속옷이 걸려 있었다.
음침한 감옥에 이렇게 사치스러운 감방이 있을 수가 있나? 이 감방의 주인은 누군데? 누군진 몰라도 여인이겠지?
나를 진상품처럼 이렇게 깨끗하게 씻겨놓고 옷도 안 주는 걸 보니, 나를 대장에게 공물로 바치려는 건가?
두변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줄지어 감방 안으로 들어왔지만, 석판 위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두변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여인들은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한 접시씩 들고 와서 거하게 한 상 차리기 시작했다.
아니, 여긴 감옥인데, 어디서 저렇게 귀한 요리를 가져오는 거야?
모든 요리가 탁자 위로 다 올라온 듯하자, 여인들이 일제히 촛불을 껐고 감방 안은 완벽한 어둠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말했다.
“주인, 식사하시지요.”
잠시 뒤,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그 사람이 의자에 앉는 소리, 수저를 들고 접시와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났다.
두변은 주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 사람이 얼마나 진중한 식습관이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젓가락이 닿는 소리를 들어보면, 이 사람은 한 번 입에 댔던 요리를 다시 먹지 않았고, 모두 조금씩만 덜어서 먹었다.
“주인, 목마르신지요?”
한 여인이 물었다.
“응.”
주인이라고 불리는 여인이 짧게 대답했다.
이 주인이라는 사람이 여인인 건 맞는 것 같지만, 목소리가 좀 이상했다.
“소인이 주인께 마실 것을 대령하겠습니다.”
시중드는 여인이 칼 한 자루를 가지고 두변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손목을 그어서 잔에 피를 받았다.
두변은 자신의 손목이 그어지는데도 굳이 반항하지 않았다.
주인이라고 불리는 여인이 한 잔 가득 받은 피를 포도주처럼 음미하며 마셨다.
“주인, 어떠신지요?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시중드는 여인이 물었다.
주인이 고개를 저은 모양이었다. 시중드는 여인이 그의 가슴팍을 향해 칼을 내리꽂으려고 했다.
날 잡아 와서 깨끗하게 씻긴 건, 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였군. 이게 바로 천마교였어!
그때 두변의 내력이 격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두변의 가슴에 칼을 꽂으려던 여인은 6품 무사급 내력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콰광!
엄청난 단혼영 정신력이 그 여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악!”
순간 여인의 뇌가 갑자기 폭발하는 듯하더니, 여인의 정신 영역이 순식간에 완전히 새하얘지면서 비명 소리와 함께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정신 공격술? 당신은 누구야?”
주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인이 깜짝 놀란 물었다.
두변이 말했다.
“기음음 교주, 전 당신의 모습을 알고 있으니, 여기 있는 촛불을 다 끌 필요 없습니다. 지금 부끄러워할 사람은 저인 것 같은데요.”
화려한 감방에서 살고 있고, 피를 포도주처럼 마시며, 사람의 목숨을 잡초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이 여인은 바로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천마교주 기음음이었다.
20년 전, 영종오, 이도진, 혹은 계청주, 여여해 등이 아직 두각을 나타내기 전, 기음음 교주는 벌써 서남을 넘어 제국 전체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의 천마교는 서남 전체를 휩쓸었고, 아무도 그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당시 종사급 무도 강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손에 죽은 종사가 족히 다섯 명은 넘었다.
기음음은 그때 서남 전체의 무도 파벌을 평정했고, 천마교는 거의 서남 무림을 통제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기음음은 당시 야차보다도 무서운 죽음의 여신이었다.
그렇게 천마교가 한창 무림을 평정할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마교가 짧은 몇 개월 만에 갑자기 기세가 꺾였고, 연이어 몇 번의 패배를 하면서 천마교 내의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정, 막씨, 여씨 토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천마교를 향해 총공격을 퍼부었다.
2년 뒤, 북명검파의 수백 명 고수, 서남 토사 연합군 몇만 명, 그리고 수십 개 무도 파벌의 수천 명 무사가 천마교 총단 액운산을 포위하여 결전을 펼쳤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천마교는 그 결전을 끝으로 완전히 파멸하게 되었다.
그 결전에서 생존한 천마교 사람은 모두 천마교주 곁에서 시중을 들고 그녀를 지키던 어린 동군(童軍)들로, 모두 열일곱 살 미만의 아이들이었다.
당시 생존했던 동군들은 천마교주와 함께 흑애 감옥에서 10여 년 수감되었으니, 그때 어렸던 아이들이 벌써 서른 몇 살의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천마교주의 손에서 자란 동군들은 천마교주를 주인으로 섬겼고, 어머니로 섬겼다. 이들은 교단 내에서 최고 무공을 가진 자들은 아니었지만, 교단 내에서 가장 용감하고, 충성스럽고, 교주에게 열광적인 사람들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여 천하를 호령하던 천마교는 너무 갑작스럽게 기세가 꺾여서 많은 이들이 뜻밖이라며 놀라워했다.
천마교의 기세가 갑자기 꺾이게 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지만, 공교롭게 두변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견사 대사가 알고 있던 것을 두변이 알게 된 것이다.
천마교주는 지금 쉰이 넘은 나이였다.
“허세 부리긴. 죽여라.”
천마교주 기음음이 말했다.
여인 몇 명이 곧장 두변에게 다가가 그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했다.
“기음음 교주, 천마교가 파멸하게 된 이유는 당신이 ‘천마책(天魔策) ’ 제9권의 수련을 강행해서입니다. 그로 인해서 근맥이 역전하게 되었고, 당신의 무공은 증진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요. 그리고 부작용으로 인해서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있고요. 지금은 아마 일고여덟 살의 어린아이일 테죠? 다 알고 있으니까 촛불 밝혀도 돼요. 난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아니까.”
두변의 말이 끝나자, 감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감방 안의 촛불이 다시 켜졌다. 드디어 천마교주 기음음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옥좌에 앉은 여인은 두변의 말대로 여인이 아닌 여자아이였다. 살결이 희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아이는 기껏해야 일고여덟 살처럼 보였다.
이 여자아이가 이대로 자라기만 한다면, 분명 여완완보다 훨씬 더 요염하고 아름다울 게 분명했다.
천마교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자아이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두 눈동자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기음음이 이런 모습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여자아이가 된 기음음의 모습을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룡팔부(天龍八部)에 나오는 천산동모(天山童姥)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천산동모는 평생을 어린아이 모습으로 산다지만, 기음음은 근맥의 역행으로 서른이 넘은 여인에서 매일매일 어려지다가 이젠 저렇게 어린아이가 돼버렸다. 도대체 무슨 원리이기에?
천마교가 파멸한 이유가 바로 천마교주의 회춘 때문이었다. 근맥의 역행으로 인해서 무공 수준도 덩달아 역행했고, 나중엔 그 누구의 적수도 되지 못할 정도로 무공을 잃게 된다.
하지만 막씨나 여씨가 그녀를 죽이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감금해둔 이유는 기음음이 보물이라는 건 알지만, 이 보물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냥 가둬두기만 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