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40화 (240/648)

240장. 말도 안 되는 청혼

여완완이 이어서 말했다.

“저번엔 번개를 불러와서 나를 죽였었지? 이번에도 또 같은 방식으로 번개를 불러와 봐라. 나와 결투를 또 한 번 더 치르는 거다. 어떠냐?”

뭐? 내가 미쳤다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냐?

두변이 눈빛으로 말했다.

여완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랑 싸우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뭐. 듣기로는 시문 재능이 그렇게 대단하던데, 그럼 내가 죽었다가 부활한 것으로 시를 한 수 지어줘. 들어보고 괜찮으면 결투 신청을 철회할 거니까.”

저 여자가 지금 나를 희롱하고 있는 게로군.

두변은 너무도 능청스러운 여완완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여완완은 두변을 흡혈 괴인이 있는 깊은 심연으로 던져 넣었었다. 물론 진심으로 두변이 죽길 바랐지만,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자신의 눈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예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완완은 두변을 보고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왜? 죽었다 살아난 시를 지으라니까 너무 어려워서 그래? 그럼 나랑 결투를 한 번 더 치러야겠네.”

여완완이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두변이 대답했다.

“누구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자요.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죽었지만 살아있네.”

두변은 여완완을 위해서 명시를 베껴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완완이 여천천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노골적으로 시를 지었다.

그런데 여완완은 시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참 이상한 시이긴 한데, 철학적이긴 하네. 아주 수준이 높아.”

두변과 여완완 사이의 대화가 마무리된 듯하자, 소목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여러분, 막한 소저께서 이 자리에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신다고 합니다. 잠시 주목해주시지요.”

두변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막한을 바라보았다.

저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가 뭘 하려는 거지?

청아한 얼굴의 막한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

“안남 왕국의 왕족이었던 제 선조들께서 가문의 후손들에게 귀중한 보물을 남겨주셨습니다. 대대로 전해진 소문에 의하면, 막씨 가문은 그 보물을 얻게 될 경우 다시 예전 왕족의 광휘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보물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막한이 이어서 말했다.

“자리에 계신 많은 분께서도 그 보물을 얻고자 하시는 걸 압니다. 그래서 제 어머니를 죽이지도 않고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심연에 감금했던 거겠지요. 저도 여러 이유로 인해서 지하 세계에서만 지냈고요. 그런데 지금 제게 막씨 왕족 보물의 비밀이 담긴 국왕의 영계가 있습니다. 막씨 가문은 이 반지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대대로 연구했지만, 아무도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사람이 많을수록 집단 지성이 발휘될 수 있으니, 국왕의 영계를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왕족 보물의 비밀이 바로 이 반지의 수정석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막한이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다들 한 번씩 들여다보신 뒤에 집으로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보물을 찾게 될 경우, 보물의 절반을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여여해 후작과 계왕께서 자리에 계시니 여쭙습니다. 두 분께서 저를 위해 증인이 되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좋소.”

여여해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계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막한이 손수건으로 반지를 받쳐 들고 옆에 앉은 이도전에게 반지를 건넸다.

이도전은 즉시 불빛 아래에 반지를 가져다 대고 수정석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두변은 막한의 행동에 화가 나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내가 목숨까지 걸어서 힘들게 구해온 반지를 모두에게 보여준다고? 돈을 아주 물처럼 쓸 줄만 알지, 아낄 줄을 모르는군. 멍청아, 저건 무려 대대로 내려온 막씨 가문의 가보란 말이다! 이건 다 소목지의 계략임이 분명하지. 안 봐도 훤하다고! 막한 저 멍청한 여인은 어째서 소목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거야!

두변이 속으로 화를 삭이는 사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전부 반지를 한 번씩 보게 되었다.

막한은 막씨 가문이 몇백 년 동안 풀지 못했던 가보의 수수께끼를 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고 해서 이들이 뭘 알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국왕의 영계를 손에 넣었다는 걸 빌미로 지하 세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막씨 가문의 보물이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몰락한 왕족 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다들 반지 안에 새겨진 도안을 보고도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수정석 안의 도안은 너무도 복잡해서 규칙이란 게 보이지 않았다.

자기 차례가 된 두변도 반지를 들여다보았지만, 보물에 대한 정보는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여여해가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이번 연회의 목적은 백색부 동창의 운명을 정하기 위함이오. 정확히 말하면 두변의 생사를 결정하는 자리지. 나도 참 놀랍더군. 고작 동창 백호 한 명을 위해서 계왕과 광서 순무 대인까지 행차하셨으니 말이지.”

여여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계왕을 슬쩍 쳐다보고 말을 이어갔다.

“말 길게 하는 걸 싫어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난 백색부에서 내게 맞서는 자는 죽여야만 하오. 안 그러면 우리 여씨의 체면이 설 수 없지 않겠소? 다만 계왕께서 제 작은 제안 하나를 받아들여 주신다면, 저놈의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요.”

계왕이 말했다.

“홍하후, 편히 말하시오.”

여여해가 말했다.

“듣기로는 계왕 전하께서 무척 애지중지하는 따님인 이강 군주께서 그렇게 똑똑하고 총기가 좋다면서요. 제 아들 여언(勵彦)을 대신해서 이강 군주에게 청혼하고자 하는데, 우리 가문 간의 혼인을 맺어서 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계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고 말았다.

두변은 여여해의 입에서 이강 군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두변도 이강 군주를 본 적 있던 터라, 이강 군주가 얼마나 선량하고, 총기가 가득한 소녀인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강 군주는 두변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물론 여씨 가문이 계왕에게 청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언은 여여해의 서출이었다. 그런데 이강 공주는 계왕의 적녀이면서, 이강 군주라는 명호도 황제가 직접 내린 것이었다.

일개 토사의 서출과 번왕의 적장녀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혼사였다.

그리고 이강 군주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가 여씨 가문에 시집가게 된다면, 그녀의 혼삿길이 어떨지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여여해가 계왕의 체면을 지켜주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여여해가 황실의 체면을 마음대로 짓밟는 수준이었다.

계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두변이 먼저 나서서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제가 능지처참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강 군주는 절대로 여씨 가문의 서출과 혼례를 올리지 않을 겁니다.”

“그럼 네가 죽어줘야겠구나.”

여여해가 담담하게 대꾸하더니, 염효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참장 염효, 계왕과 대인들께서 자리를 떠나시면, 곧장 병마를 이끌고 동창 천호소를 없애버려라. 저 건방진 두변은 당연히 죽여버리고.”

“알겠습니다.”

백색부 참장 염효가 대답한 뒤, 사악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여여해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계왕과 광서 순무 장양명을 무시했다.

백색부 참장 염효가 물었다.

“만약 계왕과 장 순무께서 떠나지 않으시면 어떡합니까?”

“안 떠나? 그럼 대군을 이끌고 주변 주부를 위협하고, 도적단으로 위장해서 백성 몇백, 아니 몇천 명을 죽이면 그만이다.”

여여해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계왕과 장양명이 경악했다.

여여해가 아예 가면까지 벗어던질 정도로 안하무인일 줄이야.

“이쯤에서 파하지. 문산성으로 돌아가자.”

여여해가 여완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완완이 대답했다.

두 부녀는 그렇게 계왕과 광서 장 순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연회석에 내버려 두고 오붓하게 연회를 떠났다.

여씨가 서남 토사 연맹을 통일하는 게 무척 순조로운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막 나가지 않을 것이고, 반역의 의지를 이렇게 가감 없이 내비칠 리가 없지 않은가.

계왕과 장양명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분노가 아니라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여여해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것은 반역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어쩌면 그가 반역을 일으키는 게 당장 내년일지도, 내후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창 천호소 안.

계왕이 말했다.

“두변, 포기하게. 이곳의 국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해. 지금이라도 백색부를 떠나게. 자네는 지금까지 정말 최선을 다했네.”

장양명이 말했다.

“왕야의 말씀이 맞다. 그만 포기해라. 이건 비전지죄(非戰之罪: 일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운수가 글러서 성공하지 못함을 탄식하는 말)다.”

광서 동창 진무사 이옥당도 한마디 했다.

“그래. 두변, 포기하거라. 내가 너를 다른 지역의 동창으로 보내서 백호로 지낼 수 있도록 해주겠다.”

두변이 말했다.

“여씨의 반란이 머지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더더욱 백색부를 포기해선 안 됩니다. 이곳은 여씨의 기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씨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이곳을 꽉 틀어막아야 합니다. 간신히 한 번의 승리를 거뒀는데, 지금 와서 포기하는 건 이전의 노력을 전부 수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옥당이 말했다.

“그렇지만 너와 네 6백 명 군대로는 염효의 5천 대군을 이길 수 없다. 저번에 너를 죽이지 못했으니,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죽이려 할 것이다. 지금 이 국면에서 네가 백색부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 네가 이곳에서 죽기엔 그 죽음이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두변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백색부에서 버티고 있는 건, 동창과 조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시스템과 했던 약속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난관을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시스템과의 내기에서 완전히 지는 것이고, 꿈속 시스템은 그대로 그를 포기할 것이다.

두변은 그런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혈관음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두변, 표표 언니가 또 피를 토했어.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심각해. 온몸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어.”

두변은 계왕 등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혈관음을 따라 나갔다.

계표표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피를 토했고, 내력 현기가 온몸의 근맥을 치고받으면서 그녀를 괴롭혔다.

계표표의 발작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어서, 치료를 더 지체했다간 무공을 전부 잃는 건 당연지사이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다.

두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계표표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계표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기만 믿고 따라와 준 이 여인을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지!

두변은 눈을 질끈 감고 생각에 잠겼다.

문득, 시스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스템은 다른 세계에서 온 성원단이라는 단약이 계표표의 주화입마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었다.

맞아. 이 세계의 단약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성원단으로는 가능하겠지. 그런데 그 단약을 어디서 찾지?

두변의 머릿속에 또 다른 무언가가 떠올랐다.

막씨 왕족의 보물!

그래!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커. 시스템이 허투루 노선을 계획했을 리가 없어. 그리고 어쩌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열쇠도, 백색부 참장의 5천 대군을 무찌를 비장의 무기도 막씨의 보물에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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