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41화 (241/648)

241장. 보물찾기

두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떴다.

그런데 국왕의 영계 안에 새겨진 도안을 아무리 쳐다봐도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막씨 가문에서도 대대로 그 비밀을 파헤쳤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지 않은가.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막씨 왕족의 보물이 천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번에 막한이 아예 반지의 비밀을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일부 사람들은 더욱 막씨의 보물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두변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서 그 반지에서 봤던 도안을 그려 보았다.

그 도안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규칙이란 게 없고 무수히 많은 점과 선의 조합일 뿐이었다.

두변은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이 도안을 머릿속에 띄워놓고 조용히 관찰하기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이 도안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현대 지구에서 이런 걸 많이 보긴 했지. 3D 도안과 비슷하잖아?

언뜻 보았을 때 이 도안은 잡다한 점과 선의 조합 같지만, 시선을 모아서 도안을 보게 되면 글씨와 무언가의 문양이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막씨의 선조가 이런 걸 알았다고?

두변이 집중해서 몰린 눈으로 도안을 뚫어지라 쳐다보았지만, 아무리 바라봐도 더 이상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머리가 아플 정도로 눈을 몰아서 도안을 바라보니, 드디어 입체적인 문양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지도는 마치 악마의 얼굴처럼 섬의 위쪽에 뿔이 나 있고, 아래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나 있었다.

두변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명상을 멈추고 눈을 떴다.

그는 곧장 붓을 쥐고 종이에다 자신이 본 악마 모양의 지도를 그려냈다.

“관음,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요?”

혈관음이 슥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악마도(惡魔島)잖아.”

두변이 환하게 웃었다.

“막씨 왕족의 보물이 바로 이 악마도에 있어요. 내가 추측한 게 틀리지 않았다면, 보물 중에 계표표 누이를 구할 수 있는 성원단이라는 게 있을 것이고, 염효를 무찌를 비장의 무기가 있을 거예요.”

혈관음이 눈을 반짝이면서 되물었다.

“정말?”

하지만 혈관음이 이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이 악마도에 갈 수 없어. 악마도까지 가려면 끔찍한 폭풍을 뚫고 가야 하고, 먹구름과 번개, 그리고 알 수 없는 소용돌이로 가득한 해역을 지나야 해. 이 위험한 해역을 지날 수 있는 배는 한 척도 없고, 악마도까지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들었어.”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보죠. 제겐 물러설 곳이 없어요.”

혈관음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힘을 보태도록 하지. 준비를 좀 한 뒤에 밤에 백색부를 떠나자. 그리고 모레 바로 출항하자.”

두변이 계왕, 장양명에게 말했다.

“왕야, 무리한 청을 하나 드리고자 왔습니다. 백색부에서 딱 열흘만 더 계셔주실 수 있는지요? 열흘이 지난 뒤에도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 백색부를 떠나시면 되고, 제 6백 명 천마혈군도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계왕이 진지하게 두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정말 확실한가?”

두변이 말했다.

“확실합니다.”

계왕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무너지는 하늘을 어깨에 진다는 사명감으로 자네를 위해 열흘을 더 벌어주겠네.”

그날 밤.

두변, 혈관음, 계표표는 백색부를 떠났다. 세 사람에게는 작은 꼬리가 하나 붙었는데, 그건 바로 여덟 살 소녀 모습의 기음음이었다.

기음음은 곧 죽어도 세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했고, 두변에게 분명히 자기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며 진지하게 말했다. 기음음의 말투가 음침하면서도 엄숙한 것이, 말투만 보면 여덟 살이 도저히 아니었다.

이틀 뒤, 두변 등은 배를 타고 출항했다.

악마도는 광서에서 남쪽으로 2천 리 넘게 떨어져 있는 곳으로, 다른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해역이었다.

이틀째 순탄하게 항해 중이었는데, 갑자기 주위 공기가 섬뜩하게 바뀌는 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전혀 보이지 않았던 빽빽한 검은 구름과 번개가 두변 등의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두변은 본능적으로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는 다른 지구에는 절대로 이런 해역이 없을 것이며, 악마도라고 불리는 섬도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계의 에너지 때문에 생겨난 곳이군.’

두변이 앞쪽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두변, 저기 보이는 검은 구름이 있는 곳부터가 악마도 해역이야. 저길 무사히 지나간 배가 한 척도 없었는데, 정말로 악마도로 가려고?”

혈관음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두변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가야죠.”

혈관음이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에게 다른 배로 옮겨타라고 지시한 뒤, 직접 조종간을 쥐고 두변 등과 함께 검은 구름이 가득한 악마도 해역으로 향했다.

콰과과광!

두변 등이 타 있던 배가 악마도 해역으로 진입한 그 순간, 엄청난 번개가 배를 내리치면서 배를 산산조각냈다.

이와 동시에 악마도 해역에 급류로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나타나고, 무시무시한 소용돌이는 두변, 혈관음, 계표표와 기음음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흡입력이 어찌나 센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네 사람은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이내 혼절해버렸다.

네 사람은 혼절한 상태로 끝없이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변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동굴 속에 있다는 걸 알아챘다. 본능적으로 이곳이 굉장히 깊은 곳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숨 쉴 공기가 충분했다. 동굴 벽에는 각양각색의 야광석이 박혀 있었고, 그 덕에 동굴 속이 깜깜하지 않았다.

“다들 괜찮아요? 기음음은?”

두변이 물었다.

“이 정도쯤이야 뭘. 소용돌이가 엄청 무섭게 휘몰아치긴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진 않네.”

기음음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옷매무시를 다듬고 앞장서서 고개를 돌렸다.

“다들 날 따라와요. 여기에 무척 무서운 괴물들이 있으니까, 조심히 다녀야 해요.”

두변은 흠칫 놀랐다.

기음음이 이곳에 와봤던 건가?

두변의 표정을 본 기음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예전에 이곳에 와 봤어요. 그때 이 동굴에서 한 달 내내 탐사를 한 덕에 막씨 왕족 무덤으로 가는 길을 찾아냈었죠.”

두변이 물었다.

“그런데 그때 막씨 가문의 보물을 얻진 못한 거야?”

기음음이 대답했다.

“무덤의 입구 앞에서 족히 3개월을 버텼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때 나는 천마교주였으니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이곳에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순 없었거든요. 그땐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갔죠.”

두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막씨 보물이 숨겨진 곳이 어딘지 알면서 왜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

기음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변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오라버니가 다치는 게 싫으니까요. 오라버니가 건강하게 잘 살아있어야 매일 나한테 재밌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맛있는 요리를 해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제 보물이 악마도에 있다는 걸 알아냈으니까 내가 따라와 준 거예요. 내가 없으면 오라버니는 막씨 왕족의 무덤까지 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을걸요?”

기음음이 정말로 자기를 오라버니처럼 생각한다는 것에 감동해야 할까?

“얼른 와요.”

기음음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두변, 혈관음, 계표표는 순순히 기음음의 뒤를 따라갔고, 기음음은 복잡한 동굴 속을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무덤으로 향했다.

이곳은 이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미궁이라 할 만했다. 만약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두변 등은 분명 이곳에서 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동굴 곳곳에서 잠들어 있는 괴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절대로 이 세계의 동물이 아니었다. 악마도라는 곳은 이계의 에너지가 가장 심하게 침투된 지역인 만큼 아주 신비롭고 위험했다.

네 사람은 족히 한 시진 이상을 걷고 또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궁 속을 한 시진 넘게 걷고 있자, 다들 폐쇄공포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두변 등도 어렴풋이 지나온 길을 기억할 수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길이 복잡해져서 어디로 왔고, 어디로 가는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만약 두변 혼자서 이곳을 헤맸다면, 세 사람은 족히 한 달 넘게 탐사해야 무덤의 입구를 찾지 않았을까.

“곧 도착해요.”

기음음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은 크게 기뻐했다. 더 걸었다가는 무덤을 찾기도 전에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통로의 모퉁이를 돌고, 네 사람은 길고 긴 여정 끝에 드디어 막씨 왕족의 무덤 앞에 도착했다.

두변 등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저들 앞에 놓여 있는 십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무덤 문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돌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했다.

이 거대한 문은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것처럼 단단해 보였고, 내력으로 부수려고 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다.

두변 일행이 문 앞에 멈춰 서자,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뱀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두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섬뜩하게 생긴 뱀의 두 눈이 두변을 노려보면서 뱀의 꼬리로 두변의 몸을 조여왔다.

두변은 뱀의 머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거대한 뱀의 머리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뱀 머리가 한 개 더 달려 있었다.

두변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생각했다.

쌍두사잖아? 쌍두사가 보기 드물긴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쌍두사는 처음 보는데? 그런데 이쪽 작은 뱀 머리는 왜 사람 얼굴을 닮은 거지?

“몇십 년 만에 나랑 놀아줄 사람이 나타났군.”

쌍두사의 작은 머리가 두변에게 말한 뒤, 옆에 서 있던 기음음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어라? 몇십 년 전에 왔던 그 여인 아닌가? 어쩌다가 이렇게 콩알만 한 애가 됐어?”

기음음이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뱀 머리가 다시 두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규칙은 같다. 이 무덤에 들어가고 싶다면, 내가 낸 문제들의 정답을 말해야만 해. 첫 번째 문제다. 태양은 왜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나?”

두변은 의외로 쉬운 질문에 저도 모르게 기음음을 쳐다보았다.

기음음이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대답 못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가 무척 어려운 문제이긴 했다. 지구의 자전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이 문제는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거의 해답이 없는 문제이리라.

두변이 대답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집니다.”

쌍두사는 두변이 정말로 정답을 맞힐 줄 몰랐던 건지, 조금 놀란 눈치로 두변을 쳐다보았다.

“두 번째 문제다. 태양광에는 몇 가지 색이 있는가?”

이 문제 역시나 이 세계의 사람들에겐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두변이 온 세계에서는 어린아이도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였다.

“태양광에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총 일곱 가지 색깔이 있습니다.”

이쯤 되자 두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막씨 왕족의 보물은 막씨의 후대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니라, 두변 같은 초월자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세 번째 문제다. 태양은 앞으로 몇 살 더 살 수 있는가?”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 정도 더 살 수 있습니다.”

두변이 세 문제 모두 손쉽게 대답하자, 쌍두사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두변을 쳐다보았다.

“정말 예상외로군. 모두 정답이다. 사실 나도 이 문제들의 답은 알고 있지만, 왜 그게 정답인지는 알지 못하거든. 여태껏 주인님 외에 이 문제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정말 신기하네.”

쌍두사가 두변을 한참 바라보더니 그의 몸을 풀어줬다.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라.”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동굴의 입구가 나타났다.

기음음 등은 존경의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자, 여기서부터는 두변이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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