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장. 임무를 완수하고
성원단은 투명한 구슬처럼 생겼고, 구슬 속에 기이한 기운이 회전하면서 광택이 돌았다.
이것 또한 누가 봐도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단약이었다.
두변이 단약을 계표표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어서 이걸 먹어봐요.”
계표표는 신기하게 생긴 단약을 보고 잠깐 놀랐지만, 두변이 건넨 단약을 물도 없이 꿀꺽 삼켰다.
불과 몇 초 뒤, 계표표의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고, 두 눈동자에는 잃어버렸던 생기가 가득해졌다.
기음음이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두변 오라버니, 표표 언니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예요? 혹시 막 둘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는 그런 나쁜 약은 아니죠? 나 아직 어린애라서 그런 거 못 보는데.”
기음음은 어린아이 연기에 아주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계표표가 곧바로 맨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내력을 운용해서 체내에서 느껴지는 약효를 모든 근맥에 보냈다.
성원단의 신비한 기운이 계표표의 온몸 곳곳에 퍼지면서 주화입마 상태에 빠진 단전과 근맥을 치료했다.
반 시진 뒤, 계표표가 드디어 눈을 떴다.
계표표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서 두변의 얼굴을 잡고 그의 볼에 진하게 입술 자국을 남겼다.
“나 이제 다 나았어. 근맥이 전부 치료되었고, 종사급 무공 수준도 되찾았어.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어서 이번 생에 다시는 원래의 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덕분에 낫게 된 거야. 당신이 나를 치료해주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차마 기대를 걸 수가 없었거든. 정말 고마워. 고마워!”
계표표가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말했다.
혈관음은 계표표보다 더 흥분해서는 계표표와 두변을 와락 껴안았다.
“나도 안을래. 나도 안을래!”
기음음이 소리치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음음이 키가 너무 작은지라, 두 팔을 힘껏 뻗어도 세 사람의 허리를 부둥켜안을 뿐이었다.
감격스러운 시간이 지나자, 네 사람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무덤 안을 둘러보았다.
이 많은 것을 얻게 되어서 너무 좋긴 하지만, 이것들을 지상으로 옮길 생각에 무척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무덤 밖을 지키던 삼안 괴수가 무덤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 두변은 어두컴컴한 무덤 밖에서 삼안 괴수의 눈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젠 삼안 괴수의 전신을 볼 수 있었다.
삼안 괴수의 전신을 보게 된 두변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둠 속에서 삼안 괴수가 무척 거대하다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네발 보행을 하는 삼안 괴수는 악어를 닮기도, 도마뱀을 닮기도 한데, 높이는 3미터가 넘었고, 총장이 십여 미터에 달했다.
“보물들을 밖으로 옮기는 걸 도와주지.”
삼안 괴수가 말했다.
“그렇게 해준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두변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삼안 괴수의 움직임은 무척 빨라서, 지상과 지하를 열댓 번 왕복하더니 금세 무덤 안의 보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상으로 옮겼다.
두변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막천남의 관 앞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큰절을 세 번 올렸다.
“선배가 베풀어준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선배가 완수하지 못했던 사명은 제가 꼭 완수하겠습니다. 제가 언젠가 꼭 선배의 동상을 만들어서 선배의 공헌과 업적을 세상 널리 알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두변이 몸을 일으키고 무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무덤 앞을 지키고 있던 삼안 괴수는 무척 나른한 눈빛으로 바닥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그는 꼭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삼안, 나와 함께 가는 건 어때요?”
두변이 물었다.
삼안 괴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주인의 곁을 지킬 거다. 앞으로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고 말이야. 네가 몇 년만 더 늦게 왔다면, 나를 아예 못 봤을 수도 있고, 내가 없어서 이 무덤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수도 있어.”
두변은 삼안 괴수의 거대한 머리를 붙잡고 꼭 반려동물 대하듯이 그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고맙습니다.”
두변은 삼안 괴수를 뒤로하고 무덤의 첫 번째 문 앞까지 왔다.
이때 쌍두사가 두변의 몸을 다시 한번 휘감았다.
“나도 해줘.”
두변이 피식 웃으면서 쌍두사의 뱀 머리에 각각 한 번씩 입맞춤을 남겼다.
쌍두사가 그제야 만족했다는 얼굴로 두변을 내려주었다.
쌍두사도 삼안 괴수처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몇백 년 동안 무덤을 지키던 두 괴수의 수명은 이미 끝자락에 가까웠지만, 자신을 키워준 주인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 하나로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이 두 괴수는 드디어 주인이 줬던 임무를 완수했으니, 마음 편히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음음이 다시 앞장서서 미로 같은 동굴 속을 걸었다.
들어올 땐 족히 만 미터 넘게 걸은 듯했는데, 나갈 때는 몇천 미터밖에 걷지 않았다.
지상에 도착한 두변 등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악마도는 섬 전체가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아무런 생명체나 풀 한 조각 보이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이 주위를 압박했고, 하늘에는 절대로 걷히지 않을 먹구름과 천둥 번개로 가득했다.
신기하게도 이 섬은 돌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했다.
기음음이 지상으로 나간 뒤에도 길을 안내했고, 몇천 미터를 더 간 뒤에야 해변가에 도착했다.
해변가에는 놀랍게도 수십 척 배가 정박해 있었다. 말이야 수십 척이지, 사실상 파손되지 않은 배는 몇 척에 불과했다.
삼안 괴수는 무덤 안에 있던 보물들을 이중 가장 멀쩡하고 커다란 배에 실어두었다.
기음음이 말했다.
“막씨 가문의 보물이 악마도에 있다는 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 자체가 워낙 신비로운 곳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수백 년 동안 이곳을 탐사했어요. 그리고 운 좋게 소용돌이를 피해서 악마도에 도착한 사람들도 몇몇 있었고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벼락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지 않아서 다 벼락 맞아 죽었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이 배들만 남아있는 거예요.”
두변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 등이 선박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한 건 갑판 위에 올려진 보물들을 선실 안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갑판 위에 보물들을 그대로 싣고 가게 되면, 예상치 못한 골칫거리가 생길 듯했다.
기음음이 말했다.
“지금은 아직 나갈 때가 아니에요. 지금 가면 폭풍우와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어요. 악마도는 둥근 달이 뜬 밤에만 잠깐 평온해지는데, 우린 그때 떠나야 해요.”
두변이 손끝으로 빠르게 날짜를 세어보더니, 오늘은 9월 16일이었다.
“우리가 운도 좋네요. 달이 제일 둥글 때가 바로 16일이니까요.”
기음음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네 사람은 선실 안에 숨어서 바깥의 폭풍우와 번개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몇 시진 뒤.
악마도에 밤이 찾아오면서, 하늘엔 동그란 접시 같은 둥근 달이 떴다.
악마도 전체가 신기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폭풍우가 그치자, 소용돌이와 번개도 사라졌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여전히 가득했지만, 해변가에는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 뿐이었다.
“지금이에요. 서둘러요! 이런 평온한 시간은 길어야 한 시진이에요.”
네 사람이 서둘러 돛을 올렸다.
혈관음이 조종간을 잡고 빠르게 악마도를 벗어났다.
반 시진이 후, 두변 등이 탄 배는 드디어 악마도 해역을 벗어났다.
네 사람은 한시름을 놓은 뒤, 다시 한번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악마도 해역을 벗어난 뒤, 혈관음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배 한 척을 발견했다. 그 배에 타 있던 사람들은 다가오는 배에 두변 등이 타 있는 걸 확인하자, 연신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악마도 해역에 들어가기 전에 두변 등과 잠시 헤어졌던 혈교방 선원들이었다.
열댓 명의 선원들이 곧장 바다에 뛰어들었다. 두변 등은 튼튼한 밧줄을 던져서 선원들이 배를 옮겨타는 걸 도왔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배와 두변 등이 탄 배를 능숙하게 운항하며 북쪽으로 향했다.
바다 위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았다.
단잠에 빠져 있던 두변 등은 시끄러운 종 소리에 눈을 떴다.
“앞쪽에 적선(敵船)이 보입니다!”
“적선이다!”
선실 밖에서 선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적선이라고?
두변이 벌떡 일어나서 갑판으로 뛰어가 보니, 전방 몇천 미터 떨어진 곳에 군함 여섯 척이 보였다.
군함마다 십여 구의 대형 쇠뇌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쪽에서도 두변의 배를 발견한 건지 쇠뇌의 활시위가 잔뜩 당겨져 있었다.
게다가 군함 갑판에는 수백 명 궁수가 두변의 배를 향해 불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군함 여섯 척이 두변의 배를 둘러싸기 위해 양쪽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혈교방의 군함은 모두 진남공의 해군에 합류한 터라, 이번에 두변 등이 타고 온 배는 평범한 선박이었을 뿐이다.
이때, 두변의 시야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활을 거둬라. 저들은 적이 아니다.”
소목지? 저놈이 왜?
두변이 미간을 찌푸렸다.
뒤이어 막한이 소목지 곁에 나타났다.
소목지가 두변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역시 두 형이군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써도 막씨 보물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는데, 똑똑한 두 형만 그 수수께끼를 풀었나 봅니다. 배를 두 척이나 끌고 온 걸 보니, 보물을 한가득 실어온 모양이죠?”
두변은 그제야 소목지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소목지는 줄곧 두변을 지켜보고 있었고, 두변이 출항하자마자 곧바로 군함을 마련해서 두변의 뒤를 쫓았다. 두변보다 늦게 출항하긴 했지만 어차피 백색부로 향하는 항로가 하나뿐일 테니 이곳에서 보물을 잔뜩 싣고 올 두변을 기다린 것이다.
소목지가 말했다.
“그런데 두 형, 그 보물은 막씨 가문의 것인데, 그렇게 허락도 없이 빼돌리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두변이 냉랭한 어조로 되물었다.
“뭘 어쩌고 싶은 겁니까?”
소목지가 대답했다.
“막 소저가 그날 연회에서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누구든 막씨 왕족의 보물을 찾게 되면, 필시 막 소저에게 절반을 나눠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건 계왕 전하와 여여해 후작께서도 증인이 되어주신 약속 아닙니까.”
“만약 내가 주기 싫다면요?”
“에이, 그러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 우리 쪽엔 군함이 여섯 척이나 있고, 두 형에게는 선박 두 척이 다잖습니까. 여기서 해상전을 펼쳐봤자 두 형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두 형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무력을 동원해야겠죠.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우린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가져야겠습니다.”
사실 상대방이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았다면, 막한에게 황금을 나눠주려고 했다.
막한은 막천남의 후손이고, 그날 연회에서 두변도 그 약속을 지키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상대방이 무력으로 협박부터 하고 있으니, 두변도 돈을 한 푼도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싸워 보겠다 이건가? 그럼 내가 기꺼이 싸워줘야지. 어차피 내겐 몇천 근 초화감유가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여기서 이걸 써버리면, 염효와의 대전에서 쓸 게 줄어들 텐데.
두변이 고민하던 찰나, 소목지가 큰소리로 외쳤다.
“두 형, 내가 다섯을 셀 동안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겁니다. 막 소저에게 절반을 내어주지 않겠다면 우리도 무력으로 뺏어오는 수밖에요.”
“다섯!”
“넷!”
여섯 척 군함에 있던 수백 명 궁수가 다시 한번 화살촉에 불을 붙이고 두변의 배를 조준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여섯 척 군함이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두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저건 또 뭐야. 제발 적선이 아니어야 할 텐데.
소목지도 여섯 척의 군함을 발견했는지 숫자를 세는 걸 멈췄다.
여섯 척 군함이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두변은 군함에 걸린 깃발을 확인했다. 이 여섯 척 군함은 안남 국왕의 군함이었다.
맹우의 군함이라는 걸 확인한 두변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곳은 안남 왕국의 해역이다. 안남 왕국의 전투 군함이 아닐 경우, 즉시 안남 왕국 해역을 떠나라.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안남 국왕의 군함을 지휘하는 사람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두변은 그 목소리를 듣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두변의 의부 이문회였다.
어떻게든 이문회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문회는 이연정의 말을 따라 두변과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안남 왕국으로 향했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이런 곳에서 이문회를 마주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