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장. 도망치는 소목지
“혹시 이문회 대인이십니까?”
소목지 쪽의 군함에서 한 장군이 나서서 물었다.
이문회가 눈을 가늘게 뜨고 군함을 확인하더니 물었다.
“그렇다. 그쪽은 광서 수군 소속이냐?”
“말장은 광서 수군 유격(遊擊) 장군 전유광입니다. 말장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진남공 송결 대인을 지원하러 왔습니다.”
유격 장군이 말했다.
두변은 속으로 냉소했다.
‘광서 수군의 유격 장군이 소목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다니, 정말 황당하군.’
유격 장군이 먼저 꼬리를 내리자, 이문회는 그에게 대꾸할 새도 없이 두변이 탄 배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멀리서 어렴풋이 두변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두변을 향한 그리움이 너무도 짙어서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했다.
두변을 이곳에서 마주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문회는 있는 힘껏 눈을 비볐다.
그런데 다시 그 배를 보는데, 갑판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정말로 두변이 아닌가.
이문회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두변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두변이 뱃머리로 가서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외쳤다.
“소자, 의부 대인을 뵙습니다.”
두변이 탄 배와 이문회가 탄 군함이 빠르게 가까워졌고, 이문회는 군함이 멈추기도 전에 지체 없이 뛰어올라 그대로 두변의 배 갑판 위로 떨어졌다.
그는 곧바로 두변을 일으킨 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아들이구나.”
두변은 일순간 목이 메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변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의부, 지금 안남왕 여창을 도와서 천도를 하고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어쩌다 이 해역에 오시게 된 겁니까?”
“지금 안남 왕국은 육지가 더 위험하다. 값이 나가는 것들은 모두 해상으로 운반하고 있지. 그나저나 너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이냐? 광서 수군이 왜 너를 포위한 것이야?”
“저는 막씨 왕족의 보물을 찾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막씨 가문의 후손이 수군과 함께 저를 포위해서 제게 보물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겁니다. 일전에 제가 계왕 전하와 여여해 앞에서 막씨 가문의 보물을 찾게 되면, 절반을 막씨에게 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저들이 무력으로 저를 협박하니 저도 보물을 나눠줄 마음이 사라져서요.”
“영웅 막천남의 보물 말이냐?”
“맞습니다.”
사실 막천남의 보물은 막씨 후손을 위한 유산이 아니라 두변 같은 초월자를 위한 선물이었지만, 두변은 이 일을 이문회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의 질문에 그렇다고만 대답했다.
“얼마나 되느냐?”
“59만 냥 황금입니다.”
이문회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나 많다고?”
하지만 그는 이내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참으로 안타깝구나. 지금 제국에서 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없다. 황제 폐하께 황금을 바치면, 폐하께선 그 돈을 변방의 군대에 군비로 보내시는데, 그렇게 간 돈 중 절반은 변방 장군들의 뒷주머니로 흘러가게 된다.”
두변이 물었다.
“진남공께서 쓰실 군비가 아직 부족하신가요?”
“저번에 내가 50만 냥 은자를 지원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은자 100만 냥은 더 필요하다.”
진남공 송결은 군비를 정말 아끼고 또 아꼈다.
하지만 안남 왕국의 전투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어쩌면 앞으로 들어갈 돈이 지금껏 쓴 돈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럼 진남공께 10만 냥 황금을 군비로 드리겠습니다.”
“좋다. 남은 돈은 어떻게 쓸 생각이냐?”
“남은 돈 중 대부분은 계왕 전하와 순무 장양명 대인께 드리고자 합니다. 의부께 부탁이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 상주서를 올려서 계왕 전하께 여씨의 반역을 대비하여 병마를 모집하고, 군대를 훈련하라고 성지를 내려달라고 해주십시오. 여씨가 반역을 일으킬 시점은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를 수 있습니다. 그게 당장 내년이 될 수도, 내후년이 될 수도 있어요.”
번왕에게 병마를 이끌고 군대를 훈련하라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고,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이문회가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많은 황금을 네가 보관하기엔 위험할 것이다. 계왕 전하와 장양명 대인께 황금을 전달하고자 해도, 네가 직접 전달하지 말고 황제 폐하께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거라. 폐하의 사람을 통해 황금을 전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민간인이 광서 수군을 멋대로 이용하고 너를 포위해서 공격까지 하다니. 내가 광서 수군 유격대를 가만히 둘 수 없구나. 하지만 지금은 유격대 장군을 죽일 때가 아니다. 추후에 진남공께 오늘 일을 꼭 책문하라고 전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문회가 막한과 소목지를 쳐다보다가 두변에게 물었다.
“정말로 막씨 가문의 보물을 찾게 되면 절반을 주기로 약속했느냐?”
“네. 사람들 앞에서 약속했습니다.”
“막씨 후손과 네 관계는 어떠하냐.”
“막한은 지금 저를 지나가는 행인 취급하지만, 여씨에게 반항하는 세력 중 하나이긴 합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말에 의하면, 막한이 두변에게는 계표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고도 했고.
물론 두변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머저리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지만 말이다.
이문회가 말했다.
“그럼 막한에게 5만 냥 황금을 나눠주는 건 어떠하냐. 그렇게 하면 네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막한도 그 돈으로 병마를 준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의부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문회가 막한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거기 계신 분은 막씨 가문의 후손 막한 소저가 맞소?”
“그렇습니다.”
머저리가 대답했다.
“나의 아들 두변이 보물을 찾게 되면 막 소저에게 절반을 나눠주기로 약속했다고 들었소. 그런데 막 소저가 사사로이 조정의 수군을 대동하여 강제로 그 몫을 빼앗으려고 했으니, 약속했던 몫을 절반의 절반으로 줄여서 주겠소.”
머저리 막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그 보물은 우리 막씨 왕족의 보물입니다.”
“지금 무슨 자격이라고 하였소?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오.”
막한이 분노해서 말대꾸하려던 찰나, 소목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이문회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이문회 대인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문회가 말했다.
“내 아들 두변은 이번 일로 얻게 된 돈을 사적으로 쓰지 않고, 진남공, 황제 폐하께 바칠 것이오. 배를 하나 보내서 금괴를 실어가시오.”
잠시 뒤, 막한이 탄 군함에서 돛단배 하나가 내려졌다.
두변이 5만 냥 황금을 세어낸 뒤, 황금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서 돛단배에 올려줬다.
소목지가 공수의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
“역시 이문회 대인께서는 참으로 정의로우십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이문회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말했다.
“한낱 평민 주제에 조정의 수군을 무단으로 이용해서 나의 의자를 포위해놓고, 이대로 가겠다는 뜻인가?”
이문회가 계표표를 바라보았다.
계표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목지는 계표표가 이 배에 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 치의 고민 없이 공격하려고 했으니, 계표표도 그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문회가 검을 뽑아 들자, 옆에 있던 계표표도 검을 꺼내 들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소목지를 참살하기 위해 배에서 뛰어내려 군함 쪽으로 돌진했다.
소목지는 이를 악물고 두말할 것 없이 군함에서 뛰어내려서는, 아예 바닷속으로 잠수해서 미친 듯이 빠르게 달아났다.
이문회와 계표표도 빠르게 소목지를 쫓았지만, 소목지도 무공이 뛰어난 데다 수영을 무척이나 잘했다.
이 광경을 본 막한이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당신들 지금 뭘 하려는 겁니까. 소 공자에게 해를 끼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막한도 검을 뽑아 들고 세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소목지가 점점 더 멀어지자, 이문회가 데려온 군함의 장군이 눈치 있게 재빨리 군함을 몰아서 가까이 다가갔다.
“쇠뇌를 쏘고, 독화살을 쏘아라.”
이문회가 명령했다.
슉, 슉, 슉, 슉.
빽빽한 독화살들이 소목지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소목지가 더욱 깊이 잠수했다.
푸슉.
독화살 한 발이 소목지를 명중했는지, 수면 위로 붉은 피가 떠올랐다.
그 뒤로 소목지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소 공자!”
막한이 소리치면서 붉은 피가 떠오른 곳을 향해 빠르게 수영해 다가갔다.
이문회와 계표표도 이참에 소목지를 완전히 죽일 생각으로 물속으로 잠수했다. 하지만 이문회와 계표표가 아무리 찾고 찾아도 소목지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한 시진이 지난 뒤, 이문회와 계표표가 소목지를 찾는 걸 포기하고 다시 갑판 위로 돌아왔다.
이문회가 말했다.
“염주항까지 호송해주마. 네가 가진 황금을 일단 진남 공작부에 가져다 놓아라. 그곳이 제일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광서 수군 유격 장군에게 말했다.
“전 장군, 지금 당장 진남공의 수군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수군과 합류하시오.”
전유광이 공수의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
“말장, 즉시 그리로 가겠습니다.”
사실 전유광의 품급은 이문회보다 한 급 높았다. 하지만 그는 이문회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인간 야차에 가까운 이문회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유광은 이미 이문회에게 찍혔고, 그가 죽을 날도 머지않았다.
이문회는 군함을 이끌고 두변을 호송했다.
두변은 염주항으로 가는 동안, 기대, 기이에게 천마혈군 2백 명을 이끌고 속히 염주부로 오라는 전서구를 보냈다.
행여나 비둘기가 가다가 죽거나 길을 잃을까 봐 한 번에 십여 마리를 내보냈다.
꼬박 하루가 지난 뒤, 이문회와 두변 등이 염주항에 도착했다.
혈교방의 선원과 이문회의 무사들이 40만 냥 황금을 진남 공작부로 옮겼고, 두변에게는 4만 냥 황금을 남겨두었다.
혈교방의 선원들은 상자에 담긴 게 황금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누구나 이렇게 많은 돈 앞에서는 다른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 않을까.
혈관음이 선원들을 노려보면서 꾸짖었다.
“창피하게들 왜 이래? 철 좀 들어라. 평소에 너희에게 은자를 적게 주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두변은 금방이라도 뚜껑이 열릴 것 같은 혈관음을 진정시키고 묵직한 금괴 하나를 꺼냈다.
그는 금괴를 혈교방의 선원 우두머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이 황금은 전부 제국의 군비로 쓰일 거라서, 제가 형님들께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안 됩니다. 이 금괴는 몇십 냥 황금 정도이니, 나눠서 가지세요.”
선원 우두머리가 연신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 쳤다.
“아유, 아닙니다. 저희가 이걸 어찌 가지겠습니까. 안 됩니다.”
혈관음이 성가시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준다고 하면 넙죽 절을 하면서 가져가, 이 못난 놈들아.”
선원 우두머리가 머뭇거리다가 혈관음의 눈치를 보면서 금괴를 건네받았다.
그와 그의 선원들은 일제히 두변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면서 기뻐했다.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진남공 부인은 갑자기 이렇게 많은 금괴가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두변을 찾았다.
두변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진남공 부인과 진남공 세자가 두변을 향해 예를 표했다.
“두 공자의 뛰어난 덕행에 감탄밖에 나오질 않네요. 우리 진남 공작부에서는 폐하의 사람이 올 때까지 목숨 걸고 이 황금을 지켜내겠습니다.”
두변이 정중하게 답례했다.
“부인과 세자야께 어려운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