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45화 (245/648)

245장. 긴장감 하나 없이

기대와 기이는 반나절 만에 염주부에 도착했다.

두변이 물었다.

“다들 괜찮으신가?”

“모두 안전하게 잘 계십니다.”

기대가 대답했다.

두변의 군대가 도착했으니, 이문회는 다시 안남 왕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재회의 기쁨을 길게 누리지도 못하고 다시 작별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의부, 몸조심하십시오.”

두변이 이문회에게 예를 올렸다.

이문회는 두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린 채 한참 동안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두변, 제국이 다시 태평성대가 되었을 때, 이 아비는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네 곁을 지킬 것이다. 그날이 10년 뒤, 20년 뒤일지라도, 언젠가 그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이문회는 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군함으로 돌아가서 출항 명령을 내렸다.

두변은 기대의 천마혈군 백 명에게 신비로운 검은 갑옷과 흑검을 주면서 무장하라고 명령했다.

이제 두변은 어디든 뚫을 수 있는 강력한 돌격 선봉대를 가지게 되었다.

칠흑 같은 검은 갑옷과 흑검을 든 돌격대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살기와 신비로움을 내뿜었다.

두변은 2천 근 초화감유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 용액 2천 병을 마차 두 대에 가득 실었다.

그는 수정으로 만들어진 병이 깨질까 봐 통 사이사이에 모래와 흙을 잔뜩 부어두었다.

“백색부로 돌아가자.”

두변이 명령하자, 2백 명 천마혈군이 두변 등을 호위하면서 백색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백색부까지 가는 길에 자신들을 급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도적단 천 명이 온다 해도 그들을 가뿐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살상 무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두변 일행이 백색부 성곽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도 건드리는 사람조차 없었다.

소목지는 막씨 가문의 보물을 또 다른 사람과 나누기가 싫었던 터라, 두변의 행적을 염효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두변이 오가는 길은 모두 비밀 통로이기에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백색부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잘린 시신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여여해가 했던 말을 떠올린 두변은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듯했다.

두변이 백색부 동창 천호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천호소 뒷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계왕이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두변, 드디어 돌아왔구나.”

“왕야, 이곳의 상황은 어떱니까? 왜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건지요?”

두변이 물었다.

“여여해가 말했던 대로, 그들이 우리를 쫓아내기 위해서 염효의 군대와 이도전의 천도회 무사들이 도적으로 변장해서 백색부 근처에 있는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다. 처음엔 몇백 명씩 죽이다가, 이제는 하루에 천 명 넘는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을 전부 잘라서 천호소 앞에 쌓아놓고 있어. 우리에게 경고하는 거지.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한, 더 많은 무구한 백성들이 목숨을 잃을 거라고 말이다.”

두변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머리 없는 시신이 곳곳에 널려있던 게로군. 그래서 백색부에 가까워질수록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던 거였어!

두변은 곧바로 천호소 앞문으로 달려갔다.

계왕의 말대로 천호소 앞에는 잘린 머리가 산처럼 쌓여 있는데,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 족히 2, 3천 개의 머리가 쌓인 듯했다.

두변이 산처럼 쌓인 머리 더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복수하겠습니다. 그 짐승만도 못한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습니다.”

계왕이 두변의 뒤를 따라 나왔다. 그가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 이 광경을 보면서 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너무 마음의 짐을 가지지 말아라. 겉으로 보았을 땐 이들이 자네 때문에 죽은 것 같지만, 실상은 대녕 제국이 이들의 목숨을 지켜줄 힘이 없었던 것이야. 대녕 제국이 힘이 없으니까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창궐하는 게지. 오늘의 희생은 내일의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라. 여기서 책임을 논한다면, 조정의 번왕인 내 책임이 더 크다.”

“왕야, 조정의 제도가 바뀌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번에 제가 막씨 왕족의 무덤에서 59만 냥 황금을 얻었습니다. 그중 5만 냥을 막씨의 후손에게, 10만 냥을 진남공께 드렸고, 저는 4만 냥을 남겼습니다. 나머지 40만 냥은 일단 진남 공작부에 보관해두었습니다. 여씨 토사가 서남 토사 연맹을 집어삼키는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어쩌면 그들이 반역을 일으킬 시기가 내년이 될지도, 내후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가되면, 그들이 이끌 반역군은 십몇만이 아니라, 수십만이 될 겁니다. 지금 안남 왕국과 운남, 귀주, 사천, 광서에 퍼져있는 진남공의 대군은 기껏해야 십만입니다. 그리고 정예병은 모두 안남 왕국에 가 있는 터라, 운남 등 네 곳에 남아있는 주둔군의 전투력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고요. 나중에 여씨가 반역을 일으키게 된다면, 당장 제국을 지킬 제대로 된 군대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의부께 황제 폐하께 상주서를 올려달라고 청했습니다.그리고 되도록 진남공까지 설득해서 같이 상주서를 올리라고요. 상주서의 내용은 폐하께 왕야와 순무 장양명 대인, 그리고 진남공 세자야 세 분이 여씨의 반란을 대비하기 위해 정예병으로 꾸려진 군대를 만들고 훈련하라는 성지를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40만 냥 황금이라면, 십오만 명 이상의 정예 대군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계왕은 두변의 씀씀이에 깜짝 놀랐다.

‘무려 59만 냥 황금인데, 그걸 독식하지 않고 거의 전부를 제국을 위해 바치다니. 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숭고한 마음을 가진 자인가.’

계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영씨 황족이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길래 자네 같은 충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자네를 위해서, 자네의 의부를 위해서라도 대녕 제국은 무너질 수 없네.”

계왕이 깊이 심호흡을 한 뒤,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내가 지금 당장 폐하께 상주서를 쓰겠네. 여씨의 반란을 대비하기 위한 군대를 마련하겠다고 말이야. 번왕이 군대를 만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나는 전쟁이 끝난 뒤에 왕위를 내려놓고 세자에게 자리를 물려줘도 되네. 아니, 계왕 일족이 번왕의 자격을 잃게 되어도 상관없네.”

계왕은 감정에 취해서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군대를 만들라는 황제의 성지를 받아들인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 갖은 고초를 겪을 게 분명했다.

전쟁이 끝나면, 문무백관은 병권을 쥔 번왕은 존재할 수 없다고, 계왕이 언제 반역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규탄할 것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관리가 황제에게 상주서를 날려서 계왕을 괴롭힐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계왕은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왕위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계왕 일족이 번왕의 자격을 영원히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사실상 계왕이 번왕이긴 하지만, 오주부는 명목상으로만 그의 봉지였다. 사실상 그가 관리할 수 있는 땅은 오주부의 계왕부가 전부였다.

두변이 계왕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제국의 이익을 위하여.”

계왕이 답례했다.

“제국의 이익을 위하여.”

계왕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두변에게 물었다.

“우리가 떠나는 즉시 염효의 몇천 대군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텐데, 어떻게 막을 셈인가?”

“왕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막씨 왕족의 보물에서 아주 강력한 비밀 무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건 확실합니다. 단순히 승리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염효의 몇천 대군을 산산조각내서 제국의 썩은 이 하나를 뽑아버릴 수 있을 겁니다.”

“자네가 어떻게 6백 명의 군대로 몇천 명의 군대를 이길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난 자네를 믿네. 자네는 여태 했던 말을 꼭 지켰고, 번번이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어. 그럼 우린 자네만 믿고 먼저 떠나겠네. 우리가 한시라도 백색부를 빨리 떠나야 무구한 백성들의 죽음을 줄일 수 있네.”

계왕, 장양명, 두강은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백색부를 떠났다.

염효의 대군은 계왕 등이 떠난 지 한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백성들을 죽이는 걸 멈추고 백색부 밖의 군영에 집합하기 시작했다.

몇천 대군은 무고한 백성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두변과의 전투를 고대했다.

염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계왕, 역시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웠나 보군. 그래도 이제라도 엄당 주구 두변을 포기하고 도망쳤으니 참 다행이지.”

염효가 매서운 눈빛으로 대군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제군들이여. 동창 천호소를 평지로 만들어 버리고, 엄당 주구 두변을 갈기갈기 찢고, 그의 일행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염효와의 대전이 임박했는데, 백색부 동창 천호소에는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천마혈군은 어렸을 때부터 정신 교육을 받았기에 긴장감이라는 감정을 아예 알지 못했고, 두변은 이번 대전에서 승리할 확신이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았다.

혈관음은 두변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추종자라서 그가 여유로워 보이니 덩달아 여유로웠다.

기음음은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 역할에 푹 빠져 있어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두변을 졸졸 따라다녔다.

천호소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은 계표표 혼자였다.

계표표는 긴장해서 손에 땀이 마르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곳곳을 배회했다. 그녀는 방어선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그렇게 열댓 번을 확인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다시 방어선을 확인하러 갔다.

방어선을 확인한 계표표는 다시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조금 전 좀더 작은 병으로 나누어 담은 초화감유가 잘 있는지 점검한 뒤에야 두변 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두변은 기음음을 품에 안은 채 서유기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고, 혈관음은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두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계표표는 일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이야기나 하고 있어? 저 뭐야, 저 병에 담긴 무슨 감유라고 불리는 게 소용없으면 어떡해?”

두변이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표표 누이, 걱정할 것 없어요. 이미 무작위로 몇 병 뽑아서 확인해봤으니까. 정말 아무 문제 없을 거라니까요?”

“아니, 정말 만에 하나 효과가 없을 수도 있잖아.”

두변은 대답할 말을 못 찾아서 눈빛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누이, 그렇게 대꾸하면 나도 할 말이 없잖아요!’

계표표는 계청주를 닮아서 속에 있는 것을 잘 감추지 못하는 솔직한 성격이었다. 물론 그녀의 마음속은 관용과 정의로 가득 차있다는 게 다를 뿐.

두변이 자신이 걱정돼서 불안해하는 계표표를 향해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이자, 계표표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발을 구르면서 “정말, 미워 죽겠다니까!” 하면서 고개를 휙 돌렸다.

혈관음이 웃으면서 계표표에게 말했다.

“언니, 이리 와. 우리랑 같이 앉아서 이야기 듣자. 두변이 해주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데, 진짜 재밌어.”

계표표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너희들처럼 배짱이 크지 않나 봐. 다시 가서 확인 한 번 더 해볼래. 만에 하나 뭔가를 놓쳤다간 큰일 날 테니까.”

사실 계표표가 직접 나서서 더 확인해야 할 건 없었다.

두변이 여유로울 수 있는 건, 대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이미 끝내두었기 때문이다.

두변이 악마도로 갔던 사이, 천마혈군은 천호소 전체의 담벼락을 1미터 넘게 더 높게 쌓았고, 담벼락의 두께도 훨씬 더 두껍게 보수했다.

막씨 보물에서 가져온 2천 근의 초화감유는 작은 병 3천 개에 나눠 담았고, 병의 입구에 도화선을 붙여두었다.

돌격 부대 백 명은 검은 갑옷을 입고 흑검을 든 채 상시 무장 상태를 유지했고, 두변의 명령 한마디면 곧바로 돌격할 수 있는 상태였다.

대전에서 이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모두 준비되었는데, 뭘 더 준비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천호소에서 계표표보다 더욱 긴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임계연, 장옥윤 등은 불안해서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고 온갖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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