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장. 흑갑 돌격대
두변이 손오공이 천상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이야기를 한창 열을 올리며 얘기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빽빽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변이 흠칫 놀랐다.
염효의 대군이 이렇게 빨리 도착했다고? 그럴 리 없을 텐데?
두변이 밖으로 나가보자, 천호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염효의 대군이 아니라 막야와 그의 잔혈방 무사들이었다.
“두 대인, 제가 지원군을 데리고 왔습니다.”
막야가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두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는 막야와 그의 무사들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막야와 두변의 관계가 사실 그리 친밀한 건 아니었다.
막야는 막영 토사의 의자이자 견사 대사의 의자였지만, 두변은 그저 견사 대사의 정신 계승자이면서 막영에게 막씨 가문의 후손을 탁고(托孤: 임종시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다.) 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야가 이런 때에 지원군을 이끌고 왔다는 건, 설중송탄(雪中送炭) 수준이 아니라 공생공사를 각오하고 온 것이다.
두변은 이번 대전에서 자신이 필승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야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번 전투가 두변이 질 수밖에 없는,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전투였다.
두변의 눈빛을 보자, 막야가 오해했는지 서둘러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든 무사를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그중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 3백 명만 저를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두변은 막씨 가문의 잔여 세력에서 아직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가 3백 명이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막씨 가문이 대단하긴 하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무사 3백 명씩이나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막야를 따라나서다니.’
두변이 두 팔을 벌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저와 함께 피를 적시며 싸워주시는 여러분은 모두 제 형제입니다.”
두변이 말을 끝내자마자 천호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막야와 잔혈방 무사들이 천호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다급한 말굽 소리가 들리더니 청아하고 차가운 얼굴의 여인이 나타났다.
“잠깐!”
머저리 막한이 등장했다.
막한이 말을 탄 채 막야의 앞을 가로막았다.
“막야, 내 잔혈방 무사들을 이끌고 이 엄당 주구놈을 도우러 오다니. 내 동의를 받고 움직인 것이냐. 막씨 가문의 주인은 나이지, 네가 아니다.”
막야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삼소저, 두변은 남이 아니라 소저 모친의 탁고를 받은 자입니다.”
“탁고?”
막한이 눈을 흘기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저놈은 제 코가 석 자인데 누가 누굴 탁고한단 말이냐.”
막한이 고개를 돌려서 명령했다.
“모두 내 명령을 따라 돌아간다. 엄당 주구놈의 사활은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3백 명 잔혈방 무사들이 난감해하면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이들은 막야를 그 누구보다도 존경했다. 몇 년 동안 이들을 돌봐주고 어떻게든 금전을 마련해온 사람은 막한이 아닌 막야였다. 막한은 그저 돈 쓸 줄만 아는 주인이지, 실제로 막씨 세력에 큰 보탬이 되는 사람은 막야였다.
하지만 항렬로 따지자면 막한은 이들의 절대적인 주인이었다.
무사들이 우물쭈물하자, 막한이 국왕의 영계를 낀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말했다.
“지금 반역을 하려는 것이냐. 내 명령을 따르라니까!”
막한이 국왕의 영계를 내세우니, 3백 명 무사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막야를 따라 나선 무사들은 잔혈방에서 가장 기개가 곧고 가장 충성심이 강한 자들이었다. 무사들은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두변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들은 허리를 숙인 채 한참을 일어서지 않았고, 이렇게라도 자신들의 미안한 마음을 두변에게 전하려고 했다.
두변도 무사들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며 답례했다.
“여러분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으니 괜찮습니다. 제가 했던 말은 여전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제 형제입니다. 나중에 제 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막한이 냉랭하게 말했다.
“나중에? 오늘 죽는 사람이 무슨 나중을 논해?”
막한이 말머리를 틀고 명령했다.
“돌아가자.”
막야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 말했다.
“삼소저, 제가 지금껏 막씨 가문을 위해 공헌하고 희생한 건 충분했으니, 저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막한이 눈썹을 치켜뜨고 물었다.
“반역을 일으키겠다는 건가?”
막야가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무슨 반역을 일으키겠습니까.”
막야가 반역을 일으킬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막한은 벌써 수십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막야는 막한의 무공 실력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성격이나 인성에 결함이 있다는 것.
여태껏 그가 만나본 무공 고수 중에 멀쩡한 사람은 오직 계표표 한 사람뿐이었다.
막한이 막야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저 엄당 주구놈을 따라서 죽겠다는 말이냐.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오늘부터 너는 더 이상 막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나 막한이 너를 막씨 가문에서 추방하겠다.”
막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백 명 잔혈방 무사를 이끌고 천호소를 떠났다.
막야는 천호소에 남아서 두변과 함께 있게 되었다.
어쩐 일인지 막한은 두변에게 막씨 가문의 보물에 대해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자기가 5만 냥 황금을 얻게 되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아예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보물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걸 보면, 저 여인도 그렇게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두변은 시야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막한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두변은 이제 막한에게 화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막한에게는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고, 막한을 그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시스템이 두변에게 막한이 엄청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해줬지만, 두변은 두 사람이 절대로 전우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막한이 자신을 공격할 경우, 망설임 없이 죽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익.
평소엔 반만 열어두던 백색부 성문이 활짝 열렸다.
수문장과 병사들이 바닥에 엎드려서 큰절을 올리며 외쳤다.
“대장군께서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백색부 참장 염효가 몇천 대군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백색성 안으로 들어갔다.
계청주가 청룡회 고탑에 서서 먼 곳을 내다보았다.
대사형이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염효의 대군이 입성했다고 합니다.”
계청주가 무미건조하게 그러냐고 대꾸했다.
“대전이 곧 시작될 모양입니다.”
“대전은 무슨. 늑대 한 마리가 쥐새끼 하나 잡는 일인데. 그것도 고자인 쥐새끼를 말이야.”
“하지만 사매가 그곳에 있지 않습니까.”
“염효는 내 딸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사매가 주화입마 상태인지라, 지금 참전하게 되면 근맥이 아예 못 쓸 지경으로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을 가기로 선택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두변 그놈이 죽게 되면 표표도 정신이 좀 맑아지겠지. 표표가 무공을 아예 못 쓰게 되는 한이 있어도, 두변 그놈이 죽는 게 더 중요하다.”
대사형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사매 계표표가 다칠 것이 염려되었지만, 이번 전투에 대해서는 계청주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건 대전이 아니라, 악독한 늑대 한 마리가 힘없는 쥐새끼 하나 지르밟아 죽이는 것에 불과했다.
천도회.
“사존, 염효의 대군이 입성했다고 합니다.”
눈을 감은 채 명상하고 있던 이도전은 눈을 뜨지도 않고 그러냐고 대꾸했다.
이도전의 제자는 민망한 듯 조용히 물러났다.
이도전이 언짢은 기색으로 투덜댔다.
“두변 그놈이 죽었다고 또 알리러 오지 말거라. 그딴 사소한 일로 날 방해하지 마.”
백색 지부 관아.
지부는 마당에서 오금희(五禽戱: 화타華佗가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 등의 동작을 모방해서 구성한 체조 형식의 운동) 연습을 하고 있었다.
막료가 지부에게 말했다.
“대인, 염효 대군이 입성하여 동창 천호소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백색 지부는 오금희 연습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이 터무니없는 익살극도 막을 내릴 때가 됐지. 조정에 충성하면 이런 말로를 맞게 된다는 걸 잘 보았느냐? 역시 사람은 시기와 형세를 잘 보고 처신해야 한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천도회의 이능어가 말을 타고 두변의 동창 천호소 앞을 지나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호소를 향해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유유히 떠나갔다.
반 시진 뒤, 염효의 대군이 천호소 앞에 도착했다.
두변이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 염효의 대군은 5천에서 6천이 되어 있었다.
동창 천호소가 볼품이 없긴 해도, 나름대로 관아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전체 면적은 꽤 넓었고, 앞뒤로 커다란 연무장도 있었다.
하지만 염효의 6천 대군 앞에서는 너무도 미약할 뿐이었다.
6천 병마가 천호소 앞을 빽빽하게 에워싸자, 그 광경은 마치 고깃덩이를 둘러싼 개미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멀리서 보면 시커먼 밀물에 잠식되는 작은 섬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대형 쇠뇌 50구, 투석기 19구가 대열의 앞쪽에 쫙 늘어섰다.
염효의 병사들은 모두 상급의 갑옷, 활과 군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열이 갖춰지자, 6천 명 병사들이 일제히 활시위에 화살을 올리고 사격 대기 상태를 취했다.
두변의 6백 명 동창 무사들은 담벼락 안쪽에서 무장한 채로 서 있었다.
염효의 눈에는 이들은 진흙으로 쌓은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며, 파도 한 번 치면 전부 다 휩쓸려 갈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염효의 군대는 조정의 군대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준마에 타 있던 염효는 그 어떤 호통도 치지 않고, 전투에 대한 선언이니, 혹은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는 등의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죽을 놈들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염효는 늑대 같은 두 눈으로 천호소 대문을 노려보았다.
그는 쇠뇌와 투석기가 완전히 설치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한방에 천호소를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장군, 모든 투석기가 준비되었습니다.”
“장군, 모든 대형 쇠뇌가 준비되었습니다.”
수하가 차례로 보고하자, 염효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명령했다.
“장전하고 공격을 준비해라.”
그리고 이때, 천호소 안에 있던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흑갑 돌격대를 출격시켜라. 적의 투석기와 대형 쇠뇌를 전부 다 부숴버려라.”
“알겠습니다!”
천호소 문이 열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흑갑 돌격대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염효의 병장들은 흑갑 돌격대의 맹렬한 기세에 깜짝 놀랐다.
두변, 저놈이 미친 건가?
고작 백 명으로 6천 명을 상대하겠다고 선공을 해?
죽을 때가 되니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나 보군!
“화살을 쏘아라!”
염효가 명령했다.
3천 명 병사가 일제히 활을 들고 흑갑 돌격대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염효는 돌격대가 3천 개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가 되어서 전멸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슉, 슉, 슉.
시꺼먼 화살비가 돌격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염효와 병장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3천 개의 화살 전부가 다 부러지거나 흑갑에 부딪혀서 튕겨 나갔다.
흑갑 돌격대는 한 명도 죽지 않았고, 3천 개의 화살은 그들의 갑옷에 그 어떤 흠집조차 남기지 못했다.
돌격대가 눈 깜빡할 사이에 일렬로 놓인 투석기 앞에 도착하자, 염효의 몇백 명 병장들이 투석기를 보호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다.
서걱, 푸슉, 콰직.
흑갑 돌격대는 날렵한 칼솜씨로 염효의 병장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다. 그들은 병장들의 공격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병장들의 칼과 창은 조금 전에 힘없이 튕겨 나간 화살처럼 흑갑 돌격대의 갑옷에 그 어떤 흠집도 남기지 못했다.